안철수, 경영의 원칙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안철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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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는 존경하고픈 사람이 여럿 생겼다. 하긴, 예전에는 내 삶을 사는 것도 버거워서 남의 삶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누군가 잘살면 잘 살아서 싫었고 못살면 못 살아서 싫었다.

그냥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나 역시 피해 받지 않으면서 최대한 군중 속에 묻혀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꼼수의 극치를 달리는 이 정권의 행태를 하나 둘 접하면서 나 혼자 잘 산다고 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치에 ‘정’자라고는 관심도 없고 문외한인데다 무지하기까지 한 평범한 나 조차도 매일 매일 정치가 무엇이며 정의가 무엇인지를 곱씹고 생각해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민초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지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안철수’였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던가? 그냥 옛말 인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얼굴에서 인생이 보이고 삶이 보이고, 인격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옛말을 가져다대도 하나 꿀릴 것 없는 온화한 인상을 보여주는 그는 올 한해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한 인물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그의 행보 하나 하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가 지나온 길이 너무도 비현실적(?) 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길이 다른 누구보다도 기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나의 관심은 그가 출연하는 방송과 강연, 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어졌고 오늘 읽은 이 책 역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 책으로 일종의 강연록이다.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기획한 ‘관악초청강연’에서 직접 강연하고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는데 실제로 강연장에 와 있는 느낌처럼 생생하게 그의 목소리가 전달되는 것 같았다. 언젠가 무릎팍도사에 게스트로 나온 적이 있는 그였는데 그때 방송에서 잘린 이야기들이라고 언급한 부분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전해주었을지 기대가 된다.

 

27세의 젊은 나이로 최연소 의대 학과장이 되었을 만큼 뛰어난 의사였던 그가 돌연 컴퓨터 바이러스에 눈을 돌리고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해 경영에 뛰어들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마 열이면 열이 무모하고 어리석다고 말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면 안철수는 누가 뭐래도 멋진 경영인이다. 아니, 그와 같은 경영인이 100명만 있어도 우리 사회는 100명의 멘토를 더 갖게 될 것이라 믿고 싶을 만큼 그가 경영자로서 걸어온 삶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한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경영이 무엇인지 또 경영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선택의 순간들과 시련들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만의 ‘인생원칙’을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어,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순간에서 그는 3가지 원칙을 생각한다고 한다.

“과거를 잊고,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자”는 것이다.

나의 경우 아마도 주위 사람들의 평가가 가장 신경이 쓰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가 많았을 것인데, 앞으로는 그의 원칙을 내 삶에서도 좀 모방해 보아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참으로 솔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솔직함은 남에게도 그렇고 특히 안철수 자신에게 더욱 그렇게 보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보다 더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더 가치 있는 삶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도...

책은 이런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그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삶에 고뇌하는 사람들의 질문과 답을 싣고 있다. 한 마디로 책 속에 강연을 그대로 옮겨 심은 것과 같다.

아무래도 이 책은 책 장 맨 앞에 꽂아놓고 살아가면서 한 번씩 꺼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맙다, 참으로.

 

『제가 말하는 기업가는 기업을 일으킬 ‘기(起)’ 자로 씁니다. 즉 한자 그대로 새로운 업을 창출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기업가(起業家)입니다. 현상 유지에 힘쓰는 기업가가 아니라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사회에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가를 가리킵니다.』

 

참, 내용만 따지자면 별 다섯을 주어도 괜찮지만 분량에 비해 책값이 너무 비싸서 별 하나를 빼기로 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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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옆에 직업 옆에 직업 - 생생 직업현장 들여다보기 교실 밖 지식 체험학교
파트리시아 올 지음, 권지현 옮김, 세바스티엥 무랭 외 그림, 김나라 감수 / 미세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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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고 재미있고 유쾌한 직업관련 책을 만났다.

표지와 책 내부에 삽입된 삽화들을 보니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바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마치 짐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커다란 그림 안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직업이 다르다는 것~~

 

아이와 어른 모두 즐겨 읽을 수 있는 직업에 관한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 책 [직업옆에 직업옆에 직업]이다. 빨간 표지와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인상적인 책.

책에는 총 230가지의 직업이 소개된다.

눈을 감고 이 세상에 있는 직업의 종류를 말하라고 누군가 나에게 시키면 솔직히 수십여개정도 간신히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30여가지라니...정말 다양하고 많기는 하구나 싶은게 아이들의 미래 설계에 많은 도움을 줄 좋은 책임이 분명했다.

 

흔히들 직업이야기를 하면 좀 딱딱하고 전문적인 분위기라고 예상하기 쉽고, 어떤 특정 직업을 설명하는 글을 대하더라도 그 배경이나 관련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나 역시 예전에 Tv 주인공의 직업이 너무 독특해서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드라마 상의 주인공을 묘사하다보니 좀 더 멋있게 부풀려진 면도 없잖아 있었겠지만 직접 찾아본 소개글은 너무도 형편없어서 실망한 적이 있었다. 교육기관이나 자세한 설명없이 교과서처럼 짧게만 요약된 글을 읽으니 가지고 있었던 흥미조차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확실히 재미가 있다. 물론 아동도서이다 보니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어른들이 읽고 상상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사실이 즐겁기만 하다. 아이와 함께 손으로 꼭꼭 집어가며 이 사람의 직업은 이건데 이런 일을 하는구나라며 자연스럽게 대화도 오고가고, 나도 몰랐던 직업을 이 책에서 공부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생생한 직업현장을 다녀온 느낌이 들었던 점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24시간을 짧은 여러컷의 만화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한눈에 보아도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머릿속에서도 쏙쏙 정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이 외에도 좀 어려운 분야의 직업편에서는 직업용어를 설명한다든지, 이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혹은 그 분야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사람의 소개를 비롯해 정말로 여기저기 볼거리들이 가득가득한 책이었다.

 

언젠가 조카가 나에게 선장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언뜻 생각난 답은 배를 조종하고 지휘하는 책임자라는 식으로 간결하게 얼버무리면서 이야기했는데 아이는 더 자세한 대답이 듣고 싶었던 눈치였다. 하지만, 나 역시 그 분야는 문외한인지라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싶어도 배경지식이 없다보니 난감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이 책을 보면서 혹시나 싶어 찾아본 선장편에서는 역시나 좀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노마라는 유조선 선장의 하루일과가 그림으로 잘 표현되고 있었다.

 

이 책, 아이와 함께 꿈을 키워나가고 상상하기에 딱 좋은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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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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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마메를 말하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외로운 여자였다.
어린 시절에는 ‘증인회’ 신자였던 부모에 의해 자신 역시 종교적 의무를 다하기를 강요받아 따돌림보다 더한 ‘없는 존재’ 취급을 받을 만큼 철저히 혼자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을 나와 외삼촌 집으로 가서 신세를 지지만 여전히 애정에 굶주려 외로웠다고 토로한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하게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린 시절 자신에게 당당히 따스한 손을 내밀어준 ‘덴고’ 와 처음으로 모든 것을 공유할 만큼 친했던 친구 ‘다마키’였다.

하지만 아오마메에게 외로움이란 무서우리만큼 끈질긴 숙명이었나보다. 덴고와는 그때의 기억만 고스란히 간직한 채 헤어져 가슴속에서만 그리워하고 다마키는 가정폭력의 피해로 자살을 해버렸으니 그녀는 또다시 홀로 남겨진 셈이다.
만약, 그들이 어떻게든 그녀의 인생 테두리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면 아오마메의 인생은 적어도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이제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위안을 받거나 세상을 공유하지 않는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어느 누구나 그녀의 테두리안에 들여놓으려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 역시 사람이다. 누군가와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 말이다.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혹은 평범한 삶이 주는 위안이 힘이 되고 사람냄새 그리워하는 어쩔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아무 연고도 없는 남자와의 하룻밤 섹스를 통해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 ‘공유’하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다시금 기억해내고 우연히 알게 된 경찰관 ‘아유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다른 누군가를 살해하는 여자가 경찰관을 친구로 두게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오마메에게는 아유미라는 존재가 경찰관이라는 대립적 존재이기 이전에 자신의 외로운 삶에 거침없이 뛰어 들어와 준 그저 고마운 존재였는지 모른다.
겉으로는 냉정한 척 관심 없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유미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다시 혼자가 된 아오마메.

 이런 식으로 그녀는 여러 번 주변인물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결국 예전보다 더 차갑게 돌아서고 만다. 그나마 유일하게 그녀를 지탱해주었던 ‘덴고’에 대한 사랑만을 남겨둔 채.
그래서 그녀는 이제껏 다시 만난 적 없는 덴고를 위해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았던 것은 아닐런지. 
그야말로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마지막 보루였으므로.

 

 

덴고를 말하다

 

덴고는... 그래도 세상과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는 남자였다.
아오마메처럼 깊은 슬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듯 하지만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하며 일탈을 꿈꾸면서도 쉽게 단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학이라는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성장하고 어느 순간에는 집을 쫒겨나더라도 결국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수금하는 일은 싫다고 당당하게 거부한다. 그리하여 자유와 자립에의 첫 걸음을 얻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독립을 한 후에는 수학강사로써 살아가지만 자신의 소설을 쓰기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즉, 그에게는 아오마메와 달리 꿈이라는 것이 있었다. 스스로가 원하고 무언가를 목표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삶이 무의미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연상의 걸프렌드 야스다 교코라는 한 여자와 지속적으로 애정을 주고 받는 일이 가능했다고 보여진다. 아버지와의 관계 역시 그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자유로워 진 점을 보면 그는 그렇게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오마메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그녀의 세상에서 고독하게 살아갔다면, 덴고는 이와는 달리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면의 상처는 상처일 뿐이고 그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언젠가는 회복되리라는 것을 사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두 개의 달이 존재하는 세상일지라도 그는 끝까지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은 이야기거리가 너무도 많다. 리틀피플, 공기번데기라는 오묘한 소재부터 두 개의 달, 편협한 종교집단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썰로 풀어낼 것들이 여기저기 종합선물셋트처럼 놓여있다. 
그렇지만 난 딱 두 사람 아오마메와 덴고라는 인물만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려 노력했다.
그리하여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관계와 존재를 통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 역시 발견했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확신도 없이 어디에서든 속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불안한 인간. 그래서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좀 더 나은 세계를 찾아보자고 결심하고 뛰쳐나가게 되지만 그곳 역시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다. 이렇게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가듯이 불안한 마음으로 양쪽 세계에 발을 담그지만 한 곳에만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또 다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찾아 헤맨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단절을 택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숙명이라면 받아들이자.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말이다. 결국 세상을 연결하는 것도 닫아버리는 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라면 덴고처럼 끊임없이 타인과 혹은 낯선 세계와 조우하리라. 그리하여 언젠가 진짜 나의 세계를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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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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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두 글자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눈물과 그리움을 내포하는 말이 아닐까?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아픔, 상처를 듬뿍 안고서 세상의 모든 자식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이 ‘엄마’라는 두 글자가 나는 너무 너무 아프고 사랑스럽다.

 

어릴 때 나 역시 엄마 앞에서 울부짖었다.

엄마처럼 절대로 살지 않겠노라고.

조금 더 철이 든 지금

나는 엄마의 눈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되내인다.

난....엄마처럼 절대 살지 못할거라고.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서 온 몸을 내주지 못할꺼라고.

그건 나에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래서 엄마가 너무 존경스럽다고.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갑자기 다가와 또 한번 나의 가슴에 커다란 아픔과 치유를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엄마’라는 가장 흔하디 흔한 소재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의 필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였고, 책을 읽는 동안 자꾸 주관화되는 시선을 거둬들이려고 많은 애를 써야했다.

그녀는 네 엄마가 아니야. 소설속의 허구일 뿐이야라고 애써 부정하지만 자꾸만 오버랩 되어 눈 앞에 나타나는 나의 시간들과 엄마의 기억들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내 엄마 역시, 그녀의 엄마였으니.

집 나간 자식을 위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도록 온 짐을 가득 이고, 안고 상경한 그녀가

지난날 내가 공항에서 출국 전 마주한 내 엄마였다.

수화물의 무게가 정해져 있어서 가져가지 못한다고 공항에서 버럭대며 짜증을 내버린 내 앞에서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트렁크를 열어젖히고 빈틈을 찾아 그녀가 며칠 동안 준비했을 물건들을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무겁지 않은 것들이라 괜찮을꺼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3년만에 바로 그 공항에서 엄마를 다시 만났다.

홀쭉해진 얼굴, 이젠 뽑기엔 엄두가 안날 정도로 늘어버린 흰머리들.

그리고 처음 보는 검버섯 핀 그녀의 손이 내 짐들을 낚아채는 순간 ‘내 엄마’에게 돌아온 사실이 실감이 났다. 3년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헌신적인 엄마와 철없는 딸로 돌아와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주일 째 소식이 없는 엄마. 하지만 그들은 곧 깨닫는다. 이미 그들의 생활에서는 몇 년째 부재중인 엄마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엄마가 그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들은 한 인간으로서, 한 명의 여자로서 엄마를 보살피고 바라보지 못했다. 엄마의 ‘자리’에 있기만을 강요하고 그 자리의 엄마만을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그녀의 존재가 사라진 지금 그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사라진 ‘엄마’를 찾기 시작했고, 시간이 점점 흘러 이제는 ‘박소녀’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존재를 느끼고 자신 안에서 새로운 엄마를 형상화 시켜나가는 작업을 하기에 이른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평생 몰랐을 낯설고 가여운 엄마를 기억해 내며 지금 그녀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스레 느끼기 시작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어미가 낳은 자식은 신문에 소개되는 작가가 되고, 제대로 공부해 보지 못한 어미가 기른 또 다른 자식은 대기업의 직원이 되고, 약사가 된다.

그리고 누구의 엄마로만 불려 졌을 그 어미가 어떤 남자에게는 자신의 이름과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절대로 잊지 못하는 소중한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젊은 여인을 데려왔을 때 말없이 집을 나간 여인이,

어느 날 훌쩍 떠났다가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돌아온 남편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인 그 여인이 말이다.

 

서울역에서 한 순간에 사라진 그 엄마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자식들에게 자신과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그녀의 부재를 통해 자식들의 가슴에 생길 생채기들을 조금씩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만약 그녀가 어느 아침에 거짓말처럼 ‘죽음’으로 가족들과 이별을 했다면 그녀의 가족들은 생로병사의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며 그녀와 작별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순간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기억속에 오롯이 묻혀있던 엄마를 다시 꺼내보지도 못한 채,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죄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미안해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자식들이 갑자기 그녀를 보내고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엄마를 떠나 보내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그녀의 자식들이 엄마를 잃고 찾아다니는 과정을 통해 이제 성인이 되어버린 그들이 제대로 기억속의 엄마와 마주하기를 바랬다.

나는 너희를 너무도 사랑한 엄마인 동시에 그녀 역시 자신의 엄마가 필요한 철부지 딸이였노라고.

한 평생 핍박한 삶 속에서 여인의 삶을 포기한 채 엄마로만 존재 했음에도 누군가에게는 한 여인으로 기억되는 여자였노라고.

지난한 삶을 살아오면서도 자신의 것을 모두 퍼주고도 한없이 더 주고 싶은 아낌없는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위대한 ‘엄마’였노라고.

 

실종된 엄마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의 존재를 불러낸 자식들은 그런 기억들 속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좀 더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한 지난 시간들 앞에서 후회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현실앞에서 엄마의 자식이었을 그들의 원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고통스런 시간들을 감내하면서 조용히 그 상처들을 치유해 나간다.

이런 시간들 조차도 그들을 위한 엄마의 배려였음을 나는 안다.

 

책을 읽는 순간에도,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도 가슴 한 켠이 왜 그리도 아파오는지...

먹먹해진 가슴을 안고 바라본 빨간 표지의 ‘엄마’라는 두 글자에 급기야는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한때는 엄마가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듯 그런 인생을 살지는 않겠다고 큰소리 쳤음에도 난 아직까지 그녀가 쳐 놓은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이미 나를 지키기 위해 헤질대로 해져 너덜너덜 해지고 낡은 울타리일지언정 이 세상 어떤 것 보다도 더 강한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그늘이 되고 울타리가 되어야 함을 알지만 누군가의 보호막이 되어 지켜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두렵기까지 하다.

 

그런 두려움 앞에서 이제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외치기 보다는 엄마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당신이 내게 있어 얼마나 위대하고 큰 존재인지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너무 고맙다구요.

언제까지라도 내 엄마로 계셔 달라구요. 영원히 영원히...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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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생각의 출현 - 대칭, 대칭의 붕괴에서 의식까지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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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때가 있을 것이다. 평소에 어떤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삶과 죽음, 생성되고 소멸되어지는 생명현상에 문득 눈을 돌리게 되고 인간본연의 모습을 잠깐씩 탐구해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철저히 인문, 사회학적으로 편향된 지식을 축적하고 사고를 해오다 보니 이런 질문과 물음에 대해 철학적, 문학적 사고는 가능해도 자연과학적 사고는 어렵기만 하다. 자연과학은 무조건 어렵기만 할 것이라는 편견도 나의 인문학적 성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우연치 않은 기회에 [뇌, 생각의 출현]이라는 책을 읽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고나 할까? 물론 이 책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쉽고 어렵다의 이분법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이 책 자체가 사유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고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사실을 밝히면서도 철학적인 접근도 배제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으로 분류되기 보다는 이 둘을 합쳐 통합적인 지식과 배경을 통해 하나의 이론을 재정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이론이란 인간이 인간으로 더 잘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뇌의 작용과 ‘생각한다’는 과정을 탐구함으로써 ‘나’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 이론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물리학, 양자역학, 자연과학에서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방대하고 깊은 지식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다. 생각은 진화적으로 내면화된 움직임이며, 상상속의 움직임이 바로 우리의 사고작용이라는 정의를 내린다. 즉, 세포의 집합적인 활동으로 의식이 생성되고 이것이 또한 뇌의 활동이 되고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무수한 자연현상들이 대칭과 대칭의 붕괴의 과정을 통해 업그레이드 되었듯이 인간의 생각 역시 이 과정을 통해 확장되고 깊어질 수 있다고도 언급하는데 실제로 이러한 시스템이 반복적으로 수행되면서 창조적인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는 말이다.

 

이렇게 저자는 뇌를 통한 인간의 ‘사고 활동’을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통해 객관화시키고 있다. 즉, 우리가 스스로 대칭을 파괴하고 또 다시 그 대칭을 찾아가는 일이 모두 의식의 출현이요, 이러한 근간위에서 인간은 창조적인 주체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독창적이면서 통합적인 지식의 발현으로 탄생한 이 책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창조적인 인간의 발전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의 인간상임이 분명할 것이다.

신비하고 놀라운 생각의 출현과정을 알고 싶고, 생각의 대칭을 깨어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보물 같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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