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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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마메를 말하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외로운 여자였다.
어린 시절에는 ‘증인회’ 신자였던 부모에 의해 자신 역시 종교적 의무를 다하기를 강요받아 따돌림보다 더한 ‘없는 존재’ 취급을 받을 만큼 철저히 혼자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을 나와 외삼촌 집으로 가서 신세를 지지만 여전히 애정에 굶주려 외로웠다고 토로한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하게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린 시절 자신에게 당당히 따스한 손을 내밀어준 ‘덴고’ 와 처음으로 모든 것을 공유할 만큼 친했던 친구 ‘다마키’였다.

하지만 아오마메에게 외로움이란 무서우리만큼 끈질긴 숙명이었나보다. 덴고와는 그때의 기억만 고스란히 간직한 채 헤어져 가슴속에서만 그리워하고 다마키는 가정폭력의 피해로 자살을 해버렸으니 그녀는 또다시 홀로 남겨진 셈이다.
만약, 그들이 어떻게든 그녀의 인생 테두리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면 아오마메의 인생은 적어도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이제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위안을 받거나 세상을 공유하지 않는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 어느 누구나 그녀의 테두리안에 들여놓으려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 역시 사람이다. 누군가와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 말이다.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혹은 평범한 삶이 주는 위안이 힘이 되고 사람냄새 그리워하는 어쩔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아무 연고도 없는 남자와의 하룻밤 섹스를 통해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 ‘공유’하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다시금 기억해내고 우연히 알게 된 경찰관 ‘아유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다른 누군가를 살해하는 여자가 경찰관을 친구로 두게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오마메에게는 아유미라는 존재가 경찰관이라는 대립적 존재이기 이전에 자신의 외로운 삶에 거침없이 뛰어 들어와 준 그저 고마운 존재였는지 모른다.
겉으로는 냉정한 척 관심 없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유미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다시 혼자가 된 아오마메.

 이런 식으로 그녀는 여러 번 주변인물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결국 예전보다 더 차갑게 돌아서고 만다. 그나마 유일하게 그녀를 지탱해주었던 ‘덴고’에 대한 사랑만을 남겨둔 채.
그래서 그녀는 이제껏 다시 만난 적 없는 덴고를 위해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았던 것은 아닐런지. 
그야말로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마지막 보루였으므로.

 

 

덴고를 말하다

 

덴고는... 그래도 세상과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는 남자였다.
아오마메처럼 깊은 슬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듯 하지만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한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하며 일탈을 꿈꾸면서도 쉽게 단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학이라는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성장하고 어느 순간에는 집을 쫒겨나더라도 결국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수금하는 일은 싫다고 당당하게 거부한다. 그리하여 자유와 자립에의 첫 걸음을 얻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독립을 한 후에는 수학강사로써 살아가지만 자신의 소설을 쓰기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즉, 그에게는 아오마메와 달리 꿈이라는 것이 있었다. 스스로가 원하고 무언가를 목표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삶이 무의미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연상의 걸프렌드 야스다 교코라는 한 여자와 지속적으로 애정을 주고 받는 일이 가능했다고 보여진다. 아버지와의 관계 역시 그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자유로워 진 점을 보면 그는 그렇게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오마메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그녀의 세상에서 고독하게 살아갔다면, 덴고는 이와는 달리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면의 상처는 상처일 뿐이고 그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언젠가는 회복되리라는 것을 사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두 개의 달이 존재하는 세상일지라도 그는 끝까지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은 이야기거리가 너무도 많다. 리틀피플, 공기번데기라는 오묘한 소재부터 두 개의 달, 편협한 종교집단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썰로 풀어낼 것들이 여기저기 종합선물셋트처럼 놓여있다. 
그렇지만 난 딱 두 사람 아오마메와 덴고라는 인물만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려 노력했다.
그리하여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관계와 존재를 통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 역시 발견했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확신도 없이 어디에서든 속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불안한 인간. 그래서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좀 더 나은 세계를 찾아보자고 결심하고 뛰쳐나가게 되지만 그곳 역시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다. 이렇게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가듯이 불안한 마음으로 양쪽 세계에 발을 담그지만 한 곳에만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또 다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찾아 헤맨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이도 저도 아닌 단절을 택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숙명이라면 받아들이자.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말이다. 결국 세상을 연결하는 것도 닫아버리는 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라면 덴고처럼 끊임없이 타인과 혹은 낯선 세계와 조우하리라. 그리하여 언젠가 진짜 나의 세계를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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