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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처음 애도하는 사람이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는 그저 흔하디 흔한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지레 짐작했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연인을 잊지 못하는 이가 가슴절절이 그 아픔을 표출해내는 그런 작품이겠거니 하면서 책을 펼쳤는데 실제내용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니,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청년의 이야기. 그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시즈토, 애도하는 사람이었다.
엊그제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사거리 앞에서 무심히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니 커다란 표지판에 하얀 숫자가 눈에 띄었다.
오늘의 교통사고 사망자 7명,
부상자 35명...
갑자기 차디찬 바람이 가슴팍을 휙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더니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오늘도 누군가는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생을 달리했구나. 그 가족들은 지금쯤 허망하게 떠나보낸 망자(亡者)를 부여잡고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전혀 생면부지의 사람임에도 경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인물이 시즈토였다.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걸까?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이 책의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밑도 끝도 없이 누군가가 죽은 장소를 찾아가 그를 애도하며 전국을 떠돌아 다닌다는 남자는 자신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의 주위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자책감을 떨치려고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인지 그리하여 그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졌는지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죽은 이들의 수만큼 그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이 세상에 살다 어찌어찌 죽어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 사연들에 귀 기울이고 있자면 어느 새 그들은 전혀 낯선 이들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손재주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좋아했다거나 마음의 병이 깊게 있었던 여린 소년이 있었다거나 혹은 책을 좋아해 도서위원으로 활동했다던가 하는 파릇파릇한 청춘의 소녀 등...점점 그들이 만들어 갔을 삶의 조각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기쁨이었고 하늘의 축복이었다. 설혹 남에게 해를 끼치며 망나니처럼 살아갔던 망가진 인생이었다 하더라도그들을 사랑하고 고마워한 누군가가 반드시 있었던 것이다.
시즈토는 그런 연유로 그들의 사연을 듣고자 했고 죽은 이들을 사랑했던 혹은 그들이 사랑했을 인물들이 되어 애도를 하려 애썼던 건 아니었을까? 그 애도 속에는 더 이상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은 없다. 오로지 당신과 그 사이에 있었을 인연(因緣)에 대한 순결한 감사의 마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생의 시간은 다 했을지 모르나 인연의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그 숭고한 애도의 마음을 시즈토는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삶의 의미마저도 쉽게 퇴색해버리고 가볍게 취급되는 지금.
지금 우리에게 이 애도하는 이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정말로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