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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공포 그 자체다.
하지만 괴물이나 귀신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살기위해서는 남을 반드시 죽이고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아야한다는 서바이벌 생존기이기 때문이다.
내용도 살벌하기 그지없지만 책의 소재 자체도 충격적이어서 역시 일본소설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들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싶을 정도로 무한한 것 같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일본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더 이상 정부에서 그들을 지원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고 각종 사회문제가 유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실버배틀이라는 엄청난 계획을 실행한다. 어느 한 구역을 정해 70세 이상의 노인들은 정해진 기간 안에 이 실버배틀에 해당하는 자를 죽여야 한다. 게다가 기간이 지났는데 1명 이상의 생존자가 있으면 무조건 처형을 당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게 말이 돼? 라고 자문하면서도 자꾸만 머릿속에서 최단기간 고령화 시대 진입, 국민연금 고갈, 사회문제 심각...요런 단어가 떠올라서 소설이 소설 자체로만 읽히지 않았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젊은 자식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부양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런데 그런 이념과 교육이 이 책에서는 깡그리 사라져 버린다. 책 내용 자체가 파격적이고 살벌한 것도 있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는 거잖아?라는 가능성이 스멀스멀 생겨나게 되어 그 순간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저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살아가는 그런 행동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건 아니다. 내가 눈여겨 본 건 그 과정들이었다. 이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여기에서 인간본성이 어떻고 살인에 따른 죄책감이 어떻고 하는 건 이차적인 문제일 뿐. 내가 살려면 너를 죽여야만 한다는 간단한 사실만 남게 된다. 이를 수행하는 동안 그들이 보여준 궁극의 이기심과 비열함, 잔혹함 속에서 나는 추악한 인간군상들을 또 만나게 된 것이다. 마치 내 눈앞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듯 보이는 이 늙은 살인마들을 우리가 정의하는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긴.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늙어간다는 것이고 이는 자연의 이치이니 어쩔 수 없음에도 환경적 요인에 의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슬프게 다가온다.
물론 이 책에도 효자가 등장한다. 연로하고 병약한 부모일지라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런 자식들. 이런 인물들을 단지 한명이라도 등장시켜준 작가에게 무한한 인간애를 느끼면서도 이 인물로 인해 더욱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게 그려진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가 읽은 최고의 반전은 이 책의 작가에 있다. 이미 이 소설은 예전에 생각해두고 있었음에도 여론을 의식해 작가 자신이 70대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표했다고 하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노작가의 완벽한 승리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