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서 1,2] 이야기의 힘을 믿나요?

영웅의 서 1 ㅣ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이 책의 저자 미야베 미유키는 내가 좋아하는 일본작가 중 한 명이지만 아직 그녀의 책을 모두 읽어보지는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야 국내에 출간된 그녀의 책들을 금방 취할 수 있겠지만 왠지 나는 서서히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아껴(?)읽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베스트로 뽑는 그녀의 책들이 참으로 각양각색이고 그 이유도 다양하다. 한 두권의 책으로 집중되기 보다는 고루고루 작품들이 사랑받는 걸 보면 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필력과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그녀의 전작은 [크로스 파이어]였다. 악을 처벌하기 위해 또 다른 악을 행하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건가를 고민하게 했던 책이었는데 그때에도 염력방화라는 초능력을 사용해서 미스터리 스릴러의 묘미를 한껏 자랑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나에게 그동안 어필해왔던 그녀의 책들과는 좀 많이 달라보였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책과 이야기라는 생소한 소재를 가지고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한 이 책은 끝까지 힘겹게 읽어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통해서도 항상 사회의 어두운 면, 사회정의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주고는 했는데 이 작품은 그간 읽어왔던 전작들에 비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건지 뚜렷하게 부각되지를 않는다.

히로키가 저지른 살인사건의 배후에 왕따문제가 숨겨져 있기도 하고 봉인에 풀린 사악한 힘과 영웅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콕 집어서 이거다라고 말하기는 좀 힘들다.

다만 책이라는 사물을 의인화시켜 이 엄청난 이야기를 끌어온 저력은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가를 새삼 확인시켜 주기는 했다. 책 속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힘을 가진 진정한 능력자가 그녀는 아니었을까하고 재미난 상상을 계속 하게 만들었으니까.

책은 이 책의 주인공인 유리코의 오빠 히로키가 동급생을 칼로 찌르고 자취를 감춘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히로키를 찾기 위한 온 가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유리코는 오빠가 없는 빈 방에서 책과 대화를 나누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오빠가 사라진 저 쪽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직접 찾으러 떠나는데...

11살 소녀의 모험기라고 하기엔 서사적 이야기의 깊이와 방대함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11살의 어린 소녀를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운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이미 성장해버린 어른들은 자신의 세계에 콱 틀어박혀 남의 이야기는 좀처럼 들으려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도 잘 하려 하지 않기에 작가는 어린 소녀를 통해 좀 더 유연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려 했는지 모른다. 혹은 사악한 힘을 가진 영웅에게 맞설 수 있는 자는 물리적 힘이 센 어른이 아닌 순수한 감성 그 자체의 어린 아이임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하는 또 다른 생각도 든다.

아무튼 다른 건 몰라도 2권의 책을 통해 미야베 미유키가 구성해가는 이야기의 힘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좀 엉뚱한 감상이 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