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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일의 겨울 ㅣ 사거리의 거북이 10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동찬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2월
평점 :
153일. 어떤 의미의 숫자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이였다.
첫장은 너무나 낯설은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갑자기 어두운곳이나 너무 밝은 곳으로 가면 적응이 안되는 시력은 한참을 헤매듯 배경을 그려내는데는 한참 더듬거려야 했다.
몽골의 그 풍경을 나름대로 그려냈다는 즐거움을 채 누리기도 전에 갈샨(손녀)이 미친늙은이(할아버지 바이타르)와 함께 153일을 지내야 하는 낯선땅 차궁의 추위는 상상 그 이상의 혹독함이고 두려움이였다.
갈샨은 둘째를 임신한 엄마와 지내고 있고 아버지는 괴물트럭 우랄을 타고 먼곳까지 일을 하러 가서 자주 집을 비운다. 엄마는 벌써 몇번째 유산을 겪은뒤라 이번만큼은 안정을 취해 꼭 둘째를 보려한다. 집이 좁아서 둘째가 태어날때까지 이모가 엄마 수발을 들어주고 갈샨은 그동안 한손에 꼽을 만큼 몇번 보지도 못한 할아버지 댁에 가 있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엄마, 아빠의 결혼을 반대했다. 영어 선생님인 엄마는 몽골아낙네들이 할수있는건 하나도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며느리였고 설상가상으로 갈샨은 거친 몽골의 운명을 이어받기엔 부적합한 계집아이였기에 등지고 살았었다. 153일의 동거라는 불공평한 계약에서 갈샨이 할수 있는것이라곤 눈물반, 협박반을 쏟아낸후 숙응하는것 뿐이였다.
손녀딸 입에서 할아버지를 대신한 미친늙은이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때 앞으로 둘이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낼까 나름 상상해봤다. 처음에야 티격태격하다가 어느 시간쯤에 받아줄테지..이야기는 늘 그러니까 ........하지만 몽골의 추위가 내게 낯설었듯 할아버지의 손녀딸 응대는 상상 이상의 태도였고 몽골의 칼바람을 닮아 있었다. 너무 견디기 어려워 눈이 감기고 심장도 멎을것같은 그 순간에 얼음을 녹이는 훈풍이 불어오듯 할아버지의 눈빛, 냄새, 몸짓은 어느새 몽골 차궁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혹독한 자연을 이겨내듯 할아버지만의 방식에 적응하면서 대대로 내려온 남자들만의 영역인 검독수리 길들이기도 성공한다. 아들 리함에게 전수하려했지만 검독수리가 누리는 그 자유를, 고도를, 비행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포기해야만 했었다. 함께 하면서 갈샨은 어느새 할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갈샨을 공유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땅에 붙이면 죽는 땅, 두 발로 서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가혹한 땅, 그곳에는 상상도 할 수없는 죽음의 흰가루라 불리는 매서운 추위 쭈트가 있었고, 바람과 추위 맹수들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질것같은 게르가 있고, 적자생존의 논리에 익숙할것같지만 나눔과 공생을 가르쳐주는 검독수리가 있었고, 모두를 변하게 한 153일이 있었다.
153일은 갈샨의 동생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해주었고,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손녀딸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고, 쿠다야 검독수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153일의 시간은 갈샨이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주었다.
할아버지는 왜 갈샨과의 동행을 거부하고 차궁에서의 힘겨운 생활을 택했을까?
검독수리가 아무리 추워도 손쉽게 주는 먹이를 받아 먹기보다는 되도록이면 상승기류를 타고 멀리 높이 날아 먹이감을 찾고 싶어하듯, 할아버지 또한 차궁의 자연속에서 더 자유롭다는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53일의 겨울은 자연앞에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견뎌내면서 더 성장하고 더 강해지면서 진정한 자연인이 되는 시간이였다.
나도 의미있는 나만의 시간을 되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