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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 나무가 구름을 만들고 지렁이가 멧돼지를 조종하는 방법
페터 볼레벤 지음, 강영옥 옮김 / 더숲 / 2018년 4월
평점 :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2023.3.5.(일)
철골과 시멘트, 유리로 만든 고층에 사니 앞뒤로 보이는 것은 주상복합 건물과 청사건물, 아파트뿐이다. 자연은 출퇴근이나 산책길에서나 만날 수 있다. 아니, 출퇴근길조차도 보도블록과 우레탄으로 꾸민 세종시 둘레길이니 자연을 만나는 건 산에 가야 가능하다.
4년 전에 사두고 읽지 못한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는 숲은 거대한 에너지 창고이고, 숲 밖에 사는 사람들은 숲속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전제 아래 독일 산림관의 전문적 이야기를 다룬다. 자연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조절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려고 저자의 생활무대인 독일과 미 서부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여러 연구물을 섞어 써낸 글이다.
16개의 소주제가 독립된 숲 이야기이지만 각각의 주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첫 주제는 ‘늑대가 돌아왔다’다. 최상의 포식자의 유무가 생태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한다고 알려 준다.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독일 늑대 복원사업에 근거한 이야기다. 가축에게 피해를 준다고 늑대를 포획하거나 일제 강점기 호랑이를 한반도에서 멸종시킨 일은 자연 네트워크를 끊어 놓은 인간의 실수다. 인간이 생태계에서 손을 뗄수록 원상태로 복귀될 가능성이 크다.
‘연어가 숲을 떠도는 법’에서는 연어로 인해 덕을 보는 것은 나무뿐만 아니라 여우, 조류, 곤충은 연어로 배를 채우고, 연어의 사체는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된다. 많은 조류가 연어의 덕을 본다. 강 연안 식생 질소의 70%가 연어에서 유래한다. 이 질소는 나무 생장을 촉진한다는 거다. 자연의 힘은 일종의 분배 장치인 셈이고 대표적인 예가 물이다.
지하에도 완벽한 생태계가 존재한다. 최근 셰일 오일의 추출과 관련해 지하수에 가장 위험한 것은 ‘수압파쇄법’이다. 모닝 커피잔 속으로 들어온 작은 미생물이란 표현으로 자연의 순환을 설명한다.
노루와 스라소니는 평생을 혼자 산단다. 간벌은 햇빛을 받는 토양에서 약초와 풀이 자랄 수 있어 초식동물에게 유익하다. 울창한 숲에서는 초식동물이 먹을 영양가 높은 식물이 없기 때문이란다. 초식동물은 고열량을 좋아한다.
숲에서 개미의 역할을 ‘숲의 경찰관이자 은밀한 정복자’라고 표현한다. 해충을 잡아먹고 사체들까지 처리하기 때문이다. 개미, 진딧물, 비단벌레, 바구미, 무당벌레, 꽃등에, 깍지벌레 나무좀이 얽힌 자연을 신비롭게 그려준다. 독자에게 상상력이 필요하다. 단일 수종의 인공조림은 숲 공동체 전체를 사라지게 한다고 지적한다.
나무좀은 숲속의 악당이라면서도 숲의 건강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며 선입견을 깨라 한다. 나무좀은 병든 나무에만 피해를 주는 나약한 기생충에 불과하단다. 나무좀이 건강한 나무에서 번식하는 경우는 계획적 조림이나 기후 변화를 초래한 유해물질 방출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자연의 미세한 균형을 깨뜨리는 존재는 나무좀이 아니라 인간이다.
‘동물들의 장례식 만찬’이란 주제로 생태계에서 덩어리가 큰 시체를 먹고 사는 동물을 소개한다. 동물의 사체가 부식토로 변하는 과정을 이끄는 존재로 곰, 새, 까마귀, 늑대, 독수리, 솔개가 있다. 쥐와 곰, 붉은 머리 파리는 뼈를 먹는다. 송장벌레는 쥐의 사체를 처리한다. 쥐의 놀라운 번식력(태어난 지 2주 만에 생식능력을 갖추고, 임신 2주 후 약 10마리 새끼를 낳고, 암수 한 쌍이 영양 생장기 동안 총 5세대가 태어난다)을 소개한다.
‘깊은 밤 숲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야행성 나비(밤나비라는 나방)는 달빛에 의지해 길을 찾는다. 인공조명은 생태계의 민감한 균형을 깨뜨린다. 밤나비는 가로등을 달이라고 착각해 헤맨다. 반딧불이의 야간 불빛 쇼는 사랑을 얻기 위한 것이다. 반딧불이가 유충에서 성충으로 자라는 기간은 3년이고 성년이 된 반딧불이는 단 며칠 동안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수컷은 짝짓기한 다음, 암컷은 알을 낳은 다음 바로 죽는다. LED 램프는 넓게 퍼지지 않고 아래로만 향해 다른 램프에 비해 빛의 집중도가 높다.
자연 상태에서 활엽수림은 침엽수림보다 불에 잘 타지 않는다. 참나무는 유칼립투스 나무나 소나무보다 생장 속도가 느리며 돼지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산불 위험도 급격히 감소시킨다. 조류에게 겨울 먹이 주기가 철새의 이동 경로를 바꾼 사례(스페인에서 영국으로)를 제시한다.
성충은 –30도까지 견디지만, 날이 추우면 유충의 입과 호흡기관 속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가 죽는다. “너도밤나무와 참나무의 열매는 매년 가을이 아니라 3~5년 주기로 열린다. 이는 야생 멧돼지, 노루, 사슴, 조류, 굶주린 곤충무리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전략인 셈이다.” 사냥꾼이 동물 먹이를 대량으로 주는 것은 생태계에 마음대로 끼어드는 일이다. 이는 개체 수 조절 메커니즘을 작동하지 않게 한다. 지렁이를 먹는 야생 멧돼지는 지렁이를 따라 들어온 우폐충이 기관지를 공격해 염증이나 출혈을 일으킨다. 결국, 우폐충이 멧돼지 개체 수의 조절자인 셈이다.
독일에서 청솔모의 활동량이 많아지면 겨울이 춥다는 속설은 사실이 아니란다. 자연의 도토리의 공급량에 따라 수집하는 걸 볼 뿐이다. 숲속의 둥지는 딱따구리-까마귀-부엉이-들쥐-갈색거저리라는 세입자들이 교체되면 사용한다.
유럽의 서안해양성기후(Cfb)에서 침엽수림은 활엽수림보다 물을 아껴 사용해 잎의 색이 더 짙다. 침엽수림의 짙은 수관이 공기를 덥혀주기 때문에 더 빨리 봄맞이 준비를 할 수 있다. 나무가 성장하려면 여름에 덥다가 겨울에는 추워야 한다.
송진과 탄화수소는 침엽수림이 가진 위험한 가연성 물질이다. 이를 자연 재생 프로세스로 주장하는 설이 있다. 활엽수림에는 쉽게 불이 붙지 않는다. “거대 초식동물 이론”을 설명하나 수용하기 쉽지 않고, 인간이 일으킨 기후 변화가 숲에 심각한 영향을 끼침을 설명하고 있다. 독일에서 겨울이 늦어지고 8월에 찾아오던 진짜 더위가 9월 중순으로 늦춰졌다.
인간도 자연 네트워크의 일부이다. 인류는 자연에 적응하면서 살 것이고, 자연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조절한다. 키 작은 수목으로 구성된 산림을 ‘왜생림(矮生林)’이라고 부른다는 걸 배운다. (矮)는 키 작을 왜 자다. 왜구(矮軀)는 키가 작은 체구, 왜구(倭寇)는 우리가 말하는 일본 해적이다.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를 읽어가며 자연이나 환경을 다룬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동기생 김준태의 「나무의 말이 좋아서, 김영사, 2019」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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