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본사 -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 2,000년 인류사
이희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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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마음으로 읽은 인류 본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소화할까 생각한다. 학교에서 서구중심 세계사를 배우고 가르쳤기에 첫째, 세계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보기, 둘째, 알고 있던 내용에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기, 셋째,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을 언급하여 더 깊게 배울 방향 찾기에 중점을 둔다. 끝으로, 인류 본사가 가진 의미를 찾는다.

 

1: 아나톨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 1만 년의 역사

첫째, 세계사를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보기는 서구중심 세계사와 비교한다.

그리스 문화로 배워온 지식이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중동 일대에서 일어난 문명(오늘날 튀르키에)의 소산이다. 헤로도토스, 호메로스, 히포크라테스, 밀레투스 3대 철학자인 탈레스,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만드로스도 아나톨리아 문명이 길러낸 인물이다. 성서고고학 측면에서 아라라트산은 노아의 방주가 걸렸다고 추정되는 산이고, 에덴동산, 아브라함의 활동 무대였던 하란, 사도 바울의 생가, 초대 7대 교회와 산타클로스의 실제 무대인 성 니콜라스 주교 성당이 아나톨리아반도 문명에 속한다. 12천 년 전 신전도시 쾨베클리 테베’, 트로이, 히타이트, 황금 손을 가진 프리기아의 미다스 왕, ‘고르디우스의 매듭같은 신화와 전설이 넘쳐난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대항해시대, 종교개혁,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19세기 과학의 시대, 20세기, 2차 대전을 치르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 우리가 배워왔던 세계사, 특히 서양사의 큰 줄기다. 저자는 그리스-로마 문명은 인류 문명이 뿌리이자 모태인 오리엔트에서 뻗어 나간 줄기 문명이라고 본다. 왜곡하거나 가볍게 취급한 아카드,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트로이, 프리기아, 아시리아, 우라르투, 메디아,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 압바스 제국, 사파비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관점을 인류본사에서 시도한다.

아나톨리아 전역에서 체계적인 고고학 발굴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아나톨리아는 해 뜨는 곳(anatole)’이란 의미다. 쾨베클리 테베 발굴로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 혁명을 정착 생활의 시작으로 보았으나, 농경 이전의 수렵과 채집이 주된 구석기시대에서 대규모 도시 공동체와 문명이 존재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헬레니즘이란 알렉산더의 동방 침략 이후 이 지역에 전해진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나 융합적 요소에 갖다 붙인 지극히 그리스적인, 나아가 서양 중심적인 표현이다.”(p. 211)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저자는 알렉산더가 1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광대한 페르시아를 발아래 두었다고 헬레니즘의 승리로 주장함은 지나치다고 본다. 알렉산더가 그리스 문화를 이식하여 오리엔트를 변화시켰다는 주장은 유럽 중심적인 오만함에서 비롯된 과장(p.212)이다. 저자는 오리엔트에 세운 그리스계 후계국가들이 오리엔트 지역의 문화에 동화되어 점차 소멸한 점에 유념하자고 말한다. 노엄 촘스키도 같은 맥락에서 유럽 중심적 시각은 미국 자본주의가 20세기에 만든 프로파간다라고 한다. 알렉산더는 동방 원정에 그리스 학자들을 대동하고 다녔고, 이를 토대로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했다고 배우고 가르쳐왔다. 알렉산더의 유명세는 플루타르코스를 비롯한 그리스-로마 작가들 덕분이다. 고대문자의 해독과 고대 문헌을 이해하게 되면서 동서양 역사 인식이 균형을 잡아가고 있지만, 중동에서, 저자는 알렉산더의 동방 침략을 13년 동안에 벌어진 인류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침략전쟁이자 약탈 전이었다.”(P.224)라고 평가한다.

 

둘째,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던 내용에 새로운 지식을 보탠다.

1986년 사세휘가 쓴 세계사를 서양인의 눈으로 보지 말고 동양인의 눈으로 보자는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가 아닌 '일본인의 안목으로 본 세계사'에 관한 책으로 지적 호기심을 일으킨 첫 책이었다. 정수일의 이슬람 문명, 타임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이븐 할둔의 역사 서설은 오리엔트-중동에 관한 이해를 돕는 책으로 유익했다. 이를 통해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소화하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 조항 중 부부관계에 관한 내용은 놀랍다. “아내가 남편과 잠자리를 거부할 경우 그 배경과 전후 사정을 조사해 아내는 정절을 지키고 과오가 없는 반면 남편은 외출이 잦고 평소 아내를 크게 멸시했다면, 아내를 나무랄 수 없다. 그러면 아내는 자기 재산을 가지고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p.79) “빚 때문에 노예가 된 경우 채권자의 집에서 3년 동안 노예로 일하게 한 뒤에는 풀어줘야 한다.”는 조항으로 보아 노예는 중세 농노보다 처지가 나은 듯하다. 저자는 신이 함무라비 왕에게 통치권을 주고 주문한 두 가지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5 공화국이 떠오르는지…….)할 것과 약자가 고통받지 않는 국가 운영이라고 본다. 서구인들이 게르만인은 모두가 자유롭고, 라틴인은 일부가 자유로우며, 오리엔트에서는 한 사람만 자유롭다며 절대권력 체제가 오리엔트의 특징"이라고 강조한 편견을 바로잡아야 한다.

기원전 59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치드키야 왕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키루스 2(21세기에도 이란에서 존경받는다)바빌론으로 끌려와 노역하던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함으로써 성경과 유럽 역사서에서 성인으로 추앙한다.

바빌로니아인들이 남긴 길가메시 서사시>B.C. 2,000년 경의 작품으로 일리아스오디세이아보다 1,500년 앞선 것이다. B.C.1274년 철기와 전차 3,500대를 사용한 히타이트와 청동 무기로 무장한 이집트 간 전쟁을 '카데시 전투'라 한다.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두 문명, 철기와 청동기 문명이 충돌한 대륙 간문명 간 전쟁이었다. 두 나라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이집트-히타이트 평화조약(카데시 조약)을 맺는다. 양국 국경선 인정, 상호불가침, 호혜·평등의 원칙을 확인한 전문 12개 조로 인류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이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B.C. 550~B.C. 330)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은 키루스가 외할아버지를 살해하고 모반해 세웠다. 나라 이름을 메디나에서 페르시아로 바꿨으나 언어, 지배계층, 문화는 연장되었다. 키루스가 제국을 통치한 대원칙은 다문화 정책과 관용정책이다. 중앙정부에 정치적으로 복속하고 조세를 내고 군사적 통제를 받는 조건으로 개별 국가나 군소 공동체에 일정한 자치와 자율권을 부여했다. 이런 전통은 초기 이슬람 시대를 거쳐 오스만제국 시대까지 이어졌다. 키루스는 유대인이 바빌로니아에서 고향으로 귀환을 허락하며 수만 명 유대인의 노임을 계산해 챙겨주고 신전을 지을 비용까지 대주었다. (에스라서 1:1~4) ‘키루스 원통이라는 도기에 새긴 쐐기문자는 인권선언문이다. 이는 세계인권선언의 효시로 여겨진다. 키루스 무덤 주변은 관개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데 페르시아어로 갇힌 정원이란 의미의 파라다이아로 불렸고, 여기서 오늘날 ' 파라다이스(Paradise)’란 말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p. 167)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팔레비 이란 국왕, 이스라엘 건국자 벤구리온, 아테네 출신 역사가 크세노폰(그리스 역사를 지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리스 전기 역사이고, 크세노폰의 그리스 역사는 그리스 후기 역사다)은 키루스를 예찬했다.

 

페르시아의 왕의 길을 벤치마킹한 로마는 역전제와 아피아 가도를 고안했다. 페르시아의 국교는 조로아스터교이고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조로아스터교의 고대 페르시아식 발음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이원론적 세계로 우주와 인간 세상이 대결구도 속에 진행된다. 인간은 내면에 선과 악 이란 상반된 속성을 품고 있으며, 미리 정해진 운명이란 없고 타고난 이성과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이 선순환하는 생활철학이 교리의 중심이다. 조로아스터교 사제를 라틴어로 마구스(Magus)’라고 하는데, 페르시아어에서 라틴어,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 magicmagician가 됐다. 유향과 몰약을 들고 마구간에 찾아온 동방박사 세 사람은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다(p. 196) 초상화나 인물이 포함된 상상화, 상징물을 제작하는 행위를 우상숭배로 배격했다.

 

영화 ‘300’에서 묘사된 그리스-페르시아 간 전쟁은 지나친 왜곡이다. 2세기 로마 제정 시대 문학가 루키아노스는 헤로도토스를 거짓말쟁이로 혹평한다. 그리스 작가들이 묘사한 페르시아 전쟁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반세기 동안 11차례 공략했으나 최종적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고, 마라톤 전투에서는 패했다. 이란에서 마라톤은 인기가 없단다. 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유래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단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B.C. 330년 알렉산더에게 패하며 220년 역사를 끝냈다.

 

연꽃은 B.C. 3,000년 경 이집트에서 페르시아, 간다라와 중국을 거쳐 6세기에 한반도 불교문화로 전해졌다.

 

파르티아(안식국) (B.C. 247~224)

우리 교과서에서 나라 이름 정도만 언급되었으나 파르티아는 500년간 로마에 맞선 대제국이었다. 유프라테스강을 경계로 오늘날 동쪽의 튀르키예 일부, 이라크, 이란을 포함하는 오리엔트 핵심지역을 장악하고 로마와 경쟁 또는 협력하며 471년간 존속했다. 로마와 중국, 동아시아 간 중계무역으로 경제를 다졌다. 파르티아는 로마와 300여 년간 전쟁을 치렀다. 아르메니아 지역이 실크로드의 전략적 요충지로 로마와 파르티아가 승리와 패배를 반복한 지역이다. 아우구스투스 이래로 로마는 파르티아를 공격하지 않는다(서로 지친 탓에)는 불문율이 있었기에 유프라테스강을 경계로 하였다. (역사지도를 펼치면 이해가 쉽다) 파르티아가 중국이나 로마에 군사적으로 굴복하지 않았던 것은 중앙아시아의 말을 이용해 끊임없이 기병을 양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레 전투는 세계 전쟁사에서 유명한 결전이었던 로마와 파르티아 간 전투로 마지막 결전에서 로마의 크라수스가 전사한다. (P. 247) 로마와의 긴 전쟁은 파르티아의 중앙 권력을 약화하기에 충분했다. 파르티아의 주류 신앙은 이란 동부에 뿌리내린 미트라교였다. 미트라교는 조로아스터교의 분파로 보기도 했으나, 최근 연구자들은 조로아스터교 이전부터이란, 인도 지방에 존재한 독립된 신앙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한다. 미트라교가 로마로 건너가 미트라가 로마의 군신이 되고,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로마 상층부의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로마인 스스로 미트라교를 페르시아 밀교라 칭했으니 페르시아 신앙과 관련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로마와 500년 가까이 전쟁과 교역을 통해 접촉과 교류를 했던 파르티아를 떼어 놓고 로마 시대의 역사를 설명하기 어렵다.

 

신국론을 쓴 아우구스티누스가 마니교(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기독교 교리와 불교의 내세관이 가미된 종교로 4세기 초 로마,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 위구르, 티베트 불교에 영향을 끼침)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마니교의 교리를 가지고 기독교 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정립한다. 천국과 지옥, 이생과 전생, 천사와 사탄, 최고신에 대항하는 악신 등 조로아스터교 신앙의 이원론적 변증법이 기독교 교리 완성에 작동했다고 본다. (P.274)

 

저자는 인류 최초의 대제국이었던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후예로 선조들이 이룩한 제국의 거버넌스를 계승한 파르티아는 로마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와 문화적 실체를 조망해야 한다고 본다.

 

사산조 페르시아(224~651)

사산조 페르시아는 B.C. 6세기부터 1,200년간 서아시아에 페르시아 문명을 꽃피운 거대한 제국 중 하나로 마지막을 장식한 나라였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 3개 도시에 아카데미가 있었고, 5세기 설립된 군데샤푸르의 아카데미는 6~7세기 당대 최고의 학문의 전당이었다.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아테네의 아카데미를 폐쇄하자 아테네에서 쫓겨난 그리스 철학자와 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정통에서 이단으로 봄) 학자들이 아카데미 교수진을 형성했다. 인도의 천문학과 점성술, 수학과 의학, 중국의 전통의학이 소개되고 각 지역의 의학 지식이 집대성되어 치유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번역하고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조너선 라이언스가 지은 지혜의 집은 더욱 상세하게 기술한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문화와 예술은 입수쌍조(가운데 나무가 있고 양옆으로 새가 쌍을 이루고 서 있는 양식) 디자인, 아라베스크 무늬, 건축양식 이완(책으로는 알 수 없어 더 공부해야 할 듯) 등은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 아나톨리아, 발칸반도, 이집트, 이베리아반도까지 퍼졌다. 타지마할과 알함브라 궁전 양식에 드러난다.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랍에 멸망하면서 몇몇 왕족과 귀족이 아랍군을 피해 동방으로 도망하다가 당나라에 정착하기도 했다. 구당서에 기록이 있고, 사산조 왕족의 후예가 후일 신라로 망명하여 살았다는 내용의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가 발견되었다. (p.309)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으로 오리엔트 세계는 이란 민족에서 아랍 민족으로 주인공이 바뀌게 된다. 1,200년간 축적된 페르시아 문화는 문화적 토대가 축적되지 않은 아라비아반도 중심의 아랍 정치 세력을 문명화한 세상으로 이끈 촉매제 역할을 했다. 페르시아 문명이 안내한 길을 따라간 이슬람은 중앙아시아에서 티무르 제국을 건설했고, 티무르 제국왕실의 후예는 인도에서 무굴제국을 세웠다.

 

셋째,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은 더 깊게 배울 방향을 찾는 소재로 삼는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세 문명은 독립적이지 않고 이미 5천 년 전부터 광범위한 접촉과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현대 고고학이 밝혀냈다. 저자는 에게해에 있는 산토리니섬이 대폭발한 사건은 지중해를 둘러싼 미케네, 크레타, 트로이, 프리기아, 히타이트, 페니키아, 이집트의 고대 역사와 연결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토대로 가설을 제시한다. 고고학과 역사학의 진전을 기대한다.

 

로마와 500여 년간 경쟁과 협력했던 파르티아는 다언어, 다문화 사회였음에도 뚜렷하게 문자로 기록된 자료를 남기지 못했다. 다만 파르티아 왕실은 음유시인들의 창작을 장려해 수많은 서사시의 전통을 남겨 후대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 서사시의 놀라운 발전을 가능케 했다. 파르티아의 주류 신앙인 미트라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가 불교와 습합(習合, 절충한다는 의미)하여 미륵불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P. 273) 저자는 12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정한 것도 미트라 전통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P. 298)

 

P.S. 이완(iwan (페르시아어 : ایوان eyvān, 아랍어 : إيوان Iwan, 철자가있는 ivan, 터키어 : eyvan)은 일반적으로 한 쪽 끝이 완전히 열리는 3면에서 벽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홀 또는 공간입니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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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 독일 최고의 과학 저널리스트가 밝혀낸 휴식의 놀라운 효과
울리히 슈나벨 지음, 김희상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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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부모가 짜 준 일정대로 살며 공부하던 모범생이 대학생이 되어 방황하다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유품 정리사의 조언은 목표에만 매달려 살지 말고, 우울증이 오면 작은 일이라도 매일 해야 할 일을 거르지 말고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직장 동료들은 나더러 맨탈이 강하다고 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힘껏 살아온 내게는 운이 좋았는지 대부분 한두 번 실패하면 극복하고 목표를 이루었다. 우울증이 내게 올 틈을 주지 않고 살았다. 늦게 시작해 나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른 아내도 번 아웃이 오지 않았지만, 몇 번씩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라고 한 적이 있다. 잘 극복해 주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 예전에 읽었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을 공유한다. 혹시라도 삶에 지쳐있다는 느낌이 온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며…….

2024.2.26.()

 

2017.8.9.()에 쓴 글이다.

책을 덮고 이틀이 지나 독서 노트를 쓴다. 전체 흐름을 연결할 수 없다. 목차를 다시 본다. 메모와 밑줄 친 문장도 다시 본다.

김정운은 추천 글에서 우리는 바쁠수록 스스로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간다, ‘독일 사람들은 78월이면 죄다 어디론가 떠나 도시는 텅텅 빈다라고 한다. ‘그래도 독일은 안 망한다.’, ‘죽도록 일하는 우리와 비교해 여름 내내 놀다 오는 독일의 생산성이 훨씬 높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쉬어도 된다. ‘휴식은 창조적 과정의 일부다라고 말한다.

저자 울리히 슈나벨은 휴식이란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르지 않고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활동으로 자기만의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우리는 왜 날마다 바쁜가에서 우리가 시간을 얻게 만드는 새로운 기술은 그게 어떤 것이든 우리 활동의 리듬과 흐름을 가속한다. 결국, 새 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일거리만 더욱 부풀린다라는 제레미 레프킨의 말을 인용한다. 기술의 발달로 순수 근무시간(평생에 걸쳐 합산한 것)이 줄어든 대신 학습에 들어가는 시간은 수직으로 상승해 여가는 거의 변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파킨슨은 우리가 기술로 시간을 절약하는 그만큼, 우리의 욕구와 요구는 증가한다라고 한다. 휴식을 누리는 기술은 자유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달린 게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첫째, “우리는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업무량의 정도보다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게 더욱 우리를 힘들게 만들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비교적 일로부터 스트레스를 덜 받는 명백한 이유의 근거다. 둘째, 선택의 폭이 크면 클수록 구매를 자극하기보다는 기회비용만 커지고 오히려 의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스트레스만 치솟게 한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아내를 따라다니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로 체감할 수 있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더 나은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정보 홍수에 휩쓸리지 않는 법에서 디지털 네트워크, 잡담, 전화는 업무 시간을 단절시킨다. 특히 디지털 네트워크와 오프라인의 균형을 잡으라 한다.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 작업기업과 장기기억을 설명하며 작업 기억을 향상하려면 일의 우순 순위를 정하고 일과 상관없는 뭔가 중요한 생각이 떠오르거든, 나중에 알아볼 수 있게 메모해두고 하던 일을 하라. BC 5세기경에 글쓰기를 두고 소크라테스가 기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소홀하게 하고 외부의 도움에만 의존하게 한다고 비판했으며,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대해 지배층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성인의 게으름만 키울 뿐이고 결국 인간의 정신을 허약하게 만들 것이라 비난했다. 독서얼마나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레퍼토리이며, 상상력의 왕국이다라는 울프의 말로 정보의 홍수에서 벗어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가치에서 우리는 잠을 자면서도 배운다라고 한다. 수면의 단계를 설명하며 수업시간을 8시에서 9시로 늦추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한다. ‘낮잠은 창의성을 높여 주는 힘이 있음과 명상은 잡념을 사라지게 하는 기적을 만든다라고 말한다. ‘비워야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디폴트 네트워크(공회전 네트워크)에 대해 아무런 목표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많은 두뇌 영역을 활발히 활동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번쩍하는 깨달음을 설명하는 결정적 실마리를 준다.”라고 한다. 나도 이 문장을 읽으며, 잠을 자려고 누우면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나 메모하기 귀찮아 놓친 것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우리를 몰아붙이는 가속화의 세계에서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야심이라고 지적한다. 시계 발명을 증기기관의 발명보다 비중 있게 판단하고 우리가 사는 정신없이 바쁜 사회를 만든 핵심 기제로 보는 시각을 소개한다. 풍요를 추구할수록 커지는 불안은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

 

가속화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에서는 서두르는 습관과 불안감을 인정하고, ‘낯선 문화로 여행을 떠난 보는 일은 시간과 휴식을 다루는 다른 방식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푸른 자연에서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정을 추가하며, 몰입의 순간이 주는 행복도 경험해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일상에서 더 많은 휴식을 누리는 기술에서 휴식을 누리기 위한 태도 세 가지를 메모한다. 첫째, 내외적인 저항을 감지하고 알아내라. 둘째, 거절하는 법을 배워 실천하라, 셋째, 내 인생의 나침반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깨달아라. 그리고 자주 걸어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은 가나출판사에서 20167월에 초판을 내놓았고, 20173월 초판 5, 본문 331쪽 분량을 읽은 거다. 책을 읽었지만 그래도 일이 있는 게, 비중 있는 일을 해낸다는 게 의미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https://brunch.co.kr/@grhill/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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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시민을 위한 동물지리와 환경 이야기
한준호 외 지음 / 롤러코스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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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

2024.2.24.()

 

chatGPT가 책을 읽으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 이바지하면서 심오하고 다면적일 수 있다고 답한다. 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는 자연환경과 동물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감성을 일깨우며 문화적 이해를 깊고 넓게 한다. 읽는 시간 동안 스트레스가 없음은 덤이다.

 

서문과 목차를 보고 어떤 책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동물이 행위 주체로 생태환경을 만들어간다.’ ‘인간 문명 발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거나 희생된 동물이 있다.’ ‘인간과 동물이 함께 지구 생태계를 만들어갈 대안적 비전은 무엇일까?’ 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생태시민이란 키워드를 끌어낸다. 여섯 명의 지리 전공 선생님이 힘을 합쳐 낸 글이지만, 결이 달라 어색한 점은 눈에 띄지 않아 쉽게 소화할 수 있다. 윤문과 퇴고에 정성을 기울였음을 본다.

330쪽 분량의 본문에 텍스트, 사진, 지도, 그래프, 도표 등을 알맞게 배치해 지루하지 않다. 장마다 담은 내용이 자연환경과 동물을 배경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니 형이상학적인 글이 아니다. 지리적 지식, 기후 환경의 변화와 함께 육지와 바다의 동물을 다루니 공간 범위가 좁지 않다. 다른 나라에 살아 보기 어려운 여러 동물과 왜가리, 돼지, 반달가슴곰 같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보는 동물이 등장한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청어가 조선 시대 국민 생선이었고, 과메기가 청어라는 토막상식도 있다. 어떻게 조선 시대 청어는 국민 생선이 될 수 있었는지? ‘사막의 배로 불리는 낙타는 기원이 북아메리카였음을 알고 있었는지? 사자를 동물의 왕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유럽인은 사자를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배설물이 항문 주변이 묻어 구더기가 끼는 것을 막으려고 새끼 양의 항문 주위 피부를 도려낸다(뮬싱)고요?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쉬지 않고 날아가는 것은 비행기가 아니고 큰뒷부리도요라는 새가 있다니! 캥거루 고기 먹어 보셨나요? 마지막으로 가축화한 동물은 무엇일까? 어떤 애완견보다 라쿤의 눈동자와 얼굴이 귀엽더라. 등 여러 선생님이 18가지 동물의 다루며 질문하고 답하니 재미있다.

 

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가 재미만 주지 않고, 홍학 보전과 리튬 개발을 통한 이윤확보라는 딜레마를 던진다. 고기를 많이 먹는 식문화는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니 채식주의자에게 식습관을 옹호하는 근거를 준다.

 

학자의 탐구력를 만나고 세상을 바르게 해석하는 방법도 생각하게 한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이주에서 소빙기의 매커니즘을 찾아낸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외에도 상상의 지리 imagned geograpies’로 세상을 해석한다. 어떤 장소가 텍스트나 사진, 그림 등에 의해 특정한 형태의 공간으로 생산되는 것을 상상의 지리라 한다. 케냐나 탄자니아 지역이 초원이고 야생 동물의 낙원이라는 인식은 유럽인이 재현해 상상의 지리가 만든 공간이다.

 

소빙기에 경신대기근(1670~1671)이 발생했고, 강릉 앞바다는 얼어붙었다니 기록을 찾아보게 한다.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따라서 Chasing Coral>를 보게 하니 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독자를 행동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책을 읽은 덕분에 두루미, 황새, 왜가리, 백로를 견줄 사진을 보았으니 세종시 천변 산책길에서 만나는 왜가리를 보고 백로라 말하지 않을 수 있다.

 

생태 시민을 위한 동물 지리와 환경 이야기는 재미있고, 딜레마를 겪게 하며, 세상을 해석하는 눈을 뜨게 하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알게 하고 행동하게 한다. 독자의 행동은 생태 시민이 되려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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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세상, 길을 만납니다 - 숲꽃에서 만나는 치유의 삶
김준태 지음 / 책과나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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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를 땐 그냥 땅만 보지 마시고요. 주변에 풀 나무와 인사하고, 숲새 노래 바람 소리에도 귀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으뜸으로 요청하는 문장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관찰(觀察)과 경험(經驗)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야 한다는 믿어 과학을 강조하였다. 이후 인류는 과학의 발달과 산업화를 이루어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 일찍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약소국을 착취했고, 20세기에 화학이 자연에 끼친 폐해가 밝혀져 인류의 생활방식이 완벽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으로 문을 열고 앨 고어, 크레타 툰베리로 이어지는 환경 보호 움직임은 자연은 인간의 정복 대상이 아니라는 사고를 확산하였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은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고 위험하다는 충고다.

 

관찰과 경험으로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를 냄으로써 작가는 헤겔 논리학의 고유한 체계인 변증법, 정반합(正反合)에서 합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실천한다. 작가의 합에는 생물학과 인문학이 함께하여 통섭을 지향한다.

작가는 산에 오른다는 표현을 숲에 간다고 한다.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도시에서 살거나 경쟁 사회에서 살다 보니 자연에 눈길을 보내고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산에 오르는 일은 체력을 측정하는 수단이란 역할을 한다. 숲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이야기로 꾸민 책에서 숲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숲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야기를 담았다. 50 개의 숲꽃을 사진과 글로 풀어낸 이야기를 읽어가며 자신의 삶 방식과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점검해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독자라면 프롤로그에서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아챌 수 있다.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를 통해 작가는 숲꽃에서 의지, 배려를 찾아 소개한다. 문장으로 만나기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고, 알 수 없던 지혜다.

 

서로의 삶터를 존중하고 꽃 피는 시기를 달리해 경쟁을 피합니다. 작은 꽃들은 함께 뭉쳐 큰 꽃을 이루고 서로 의지하면서 역경을 함께 헤쳐 갑니다. 꽃에 형형색색 무늬도 만들고 냄새도 풍겨 곤충이 잘 찾아오도록 배려합니다. 암술 수술 길이를 다르게 하고, 꽃가루 익는 시기와 암술머리 열리는 시기도 달리하여 다른 개체와 화합합니다. 수정이 끝나면 꽃색을 바꾸고 꽃잎도 떨어뜨리지요. 미처 짝짓지 못한 이웃들에게 곤충이 집중할 수 있도록, 자기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을 펼치면 숲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은 봄, 여름, 가을 순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과 글로 만난다. 여러해살이풀과 한해살이풀은 무엇이 다른가? 처녀치마란 숲꽃은 땅에 납작 붙어 피는데 왜 그럴까? 두 가지 물음은 뿌리와 씨앗, 지구복사에너지로 답한다. 꽃이 피고 난 후에 잎이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새봄을 알리는 주역이랄 만한 꽃은 제비꽃이다. 현호색에 관한 작가의 해석(혼자로는 연약하니 여럿이 뭉쳐 큰 덩치를 흉내 낸. 큰 변고가 생겨 작은 꽃 몇 개가 손상을 입더라도, 남아 있는 꽃으로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에 수긍하게 된다. 대부분 꽃은 꽃잎이 앞으로 젖혀지는데 꽃잎이 뒤로 활짝 젖혀져 있는 얼레지는 꽃말이 바람나 처녀란다. 그럴듯하다. 산을 오를 때 내려오는 마음으로 오르자는 뜻은 성취적인 삶의 태도를 보인 사람에게 주는 조언이다. 소나무가 독야청청할 수 있는 여건에는 송진과 같은 화학 성분이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타감작용으로 풀어간다. 모데미풀로 우리 식물 이름에 일제 강점기의 상처가 있음을 알아채고 안타까워한다. 꽃며느리밥풀, 동자꽃, 쑥부쟁이에 담긴 슬픈 사연에 코끝이 찡하다. 제우스의 유혹을 견뎌낸 시녀에게 헤라가 준 선물로 무지개 여신이라 불리는 아이리스는 붓꽃이다.

 

다음은 작가가 오랜 기간 소백산, 점봉산, 덕유산, 지리산, 계룡산 등 전국 숲을 관찰한 경험과 지식이 만든 문장들일 것이다.

 

까치수영은 꽃이 아래부터 차례차례 피고 지기 때문에 여름철 내내 볼 수 있는 꽃이다. 한꺼번에 피지 않고 왜 이렇게 꽃이 피는 것일까? 작가는 자연재해에서 한꺼번에 모두 잃는 참사를 피하려는 전략이다. 숲꽃은 하얀색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빨강과 노랑이 많이 보인다. 파랑에서 보라꽃이 상대적으로 드문데, 이들이 가을에 많이 보인다

 

20242월 신간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를 추천한다. 2019년 출간된 나무의 말이 좋아서도 좋은 책이다.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산을 숲으로 여기게 하고 숲으로 오라는 입문서 격이라 볼 때,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는 한 걸음 숲에 다가선 책이다.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나 김준태의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는 통섭(統攝)을 시도한다. 이런 부류의 책을 읽을 수 있음은 작가가 진테제(synthesis)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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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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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은 하루에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을 같지 않아 다르다.

하루를 공간으로 보면 아침과 저녁은 같은 공간에 있고, 시간으로 보면 다른 시간이다.

 

소설의 주인공 요한네스의 아버지 올라이가 아내의 진통과 요한네스의 출산을 지켜보는 과정은 신의 은총과 사탄의 악을 동시에 느끼는 불확실 상황이다. 이분법적 사고와 생각한다라는 술어를 반복하며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요한네스의 출산은 성공한다.

 

주인공 요한네스의 등장이 할아버지인지 아들인지는 읽어가면서 알게 된다. 아버지 올라이가 살던 외딴 섬에서 덜 외로울 수 있는 부두로 나와 바다를 배경으로 삶을 이끌어간다. 친구 페테르, 구두 수선공 요제프, 막내딸 싱네, 요한네스가 좋아했던 여인 등 지극히 적은 사람이 등장한다. 요한네스의 관점에서 주변 인물과 가족, 친구를 평한다.

바다에서 육지의 삶으로, 생산자에서 연금생활자의 삶으로 변화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드러내며, 루어(낚시에 쓰는 인조미끼)가 일 미터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일은 바다가 더 요한네스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은유한다.

 

소설이 초반을 지나며 이분법은 사라지고 삶과 죽음이 나뉘지 않고 함께 존재함을 서술하려 한다. 주인공이 던진 돌은 친구인 페테르, 망자의 몸을 통과한다. 망자와 대화하고 거닐고 추억한다. 막내딸 싱네가 매일 들렀던 아버지의 방문이 없자 요한네스가 누운 채로 삶에서 죽음의 세계로 떠난 것은 발견하고 요한네스는 이 과정을 살펴본다. 친구 페테르가 머리칼을 길레 늘어뜨리고 요한네스를 찾아온 것은 죽음으로 데려가려는 뜻이다.

 

죽음은 두렵지 않고 멀리 있지도 않으며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만이 있는 곳이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나는 곳이라며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은, 이분법을 벗어난 죽음을 그린다. 사람은 가고 사물만 남을 뿐이다.

 

삶과 죽음은 아침 그리고 저녁처럼 함께 존재한다. 아침에 저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처럼 삶은 죽음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아침 그리고 저녁202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기법이 독특한 것이지 진한 감동을 기대할 수는 없으나 초연한 삶의 자세를 본다.

 

P.S. 모탕(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 받쳐놓는 나무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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