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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ㅣ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평점 :
정세랑 작가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읽었다. 설자은 시리즈 1 권이다. 학생 때 배운 아주 기초적인 국사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삼국시대의 막을 내리고 통일신라라는 어찌보면 첫 번째 통일 국가의 기틀을 다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니, 그것도 설자은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미스테리한 사건들이 해결되는 추리물이라니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지금 중국의 어딘가쯤으로 예상되는 곳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고 혹은 당나라의 인재로 등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어디론가 계속 흘러가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전세계 어느 나라든 사투리라 불리는 방언이 없는 지역이 없다. 땅덩리가 꽤나 크다면 아예 쓰는 언어 자체가 다를 확률도 높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작은 면적을 갖고 있기에 방언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도 서로가 의사소통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얼마 전 한국 전쟁 당시 흥남부두 철수 작전을 통해 살아남은 이들의 소회를 담은 다큐를 보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가까스로 탈출한 이들이 며칠에 걸쳐 도착한 거제도에서 머물 곳이 없자 거제도의 주민들에게 며칠 묶을 수 있기를 청하며 말을 걸었는데, 방송에 등장한 분이 말하기를 거제도 주민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 수 없었다고 한다. 흥남 지역의 사투리와 거제도의 부근의 사투리가 심하게 다르기는 하겠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니 제주도의 방언은 아예 외국어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보다 면적이 넓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삼국 시대 이전의 구려 사람들과 남쪽의 신라, 삼한, 탐라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생김새부터 다르게 보이고, 먹는 음식과 생활 풍습에서도 차이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 언급된 것처럼 통일신라 이후에 구려 사람과 당나라 사람들도 신라에 와서 머물지만 외모로 그들을 구별할 수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망한 백제 사람들은 신라 사람들과 유사하여 티를 내지 않는다면 그대로 젖어들 수 있었던 시대상이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어찌보면 조선시대만큼 충분한 사료가 없기에 신라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왕위 계승 과정에 있어서의 암투와 정치적인 사건들이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에 의해 더욱 생동감있게 그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설자은은 부모를 여의고 형제들이 병고로 죽게 되자, 셋째였다가 첫째가 된 호은의 명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중이던 자은 오라비를 대신해서 남장을 하고 떠나게 된다. 미은이라는 자신의 삶을 죽게 하고, 자은이 된 주인공은 오랜 시간이 지나 고향인 금성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목인곤이라는 백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인곤은 한 눈에 자은이 여자임을 알아채고 배에서 발생된 의문의 살인 사건을 함께 조사하며 가까워지게 된다. 신라의 역사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골품 제도는 철저한 신분 계급 사회의 밑낯을 보여주고 화랑이라 불렸던 낭도는 당시의 어린 남자들이 추구했던 명예로운 삶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주인공인 설자은은 진골 계급이 아니었으나 육두품의 서열 안에 드는, 그래서 왕의 연회에 참석할 수 있는 지배계급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라비가 연정을 품었던 산아의 남편인 진오룡이 자은을 업신여기며 마지막에 매잡이의 죽음을 해결하지 못한 분노를 자은의 말에 채찍질하여 자은이 말에 밟혀 죽게 만들수도 있다는 것을 미루어보아, 진골과 육두품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짐작해 볼 뿐이다.
마치 설록 홈즈가 신라시대에 먼저 등장한 것처럼 설자은은 인곤이라는 짖굿은 듯 하면서도 속내가 깊은 조력자를 옆에 두고 난해한 사건과 문제들을 척척 해결해 나간다. 지금도 그런 일이 있지만, 정당한 재판과 같은 과정이 이루어지기 힘들었더 상황 속에서 때로는 힘을 가진 이들의 막연한 주장으로 인해 엉뚱한 결론이 내려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과거에도 지금도 권력을 가진 이들의 잘못을 비호하기 위해 비겁한 말과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행하는 이들은 약자들의 정당함을 알면서도 그들의 희생을 시대의 잘못으로 치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리즈1 이라고 저자의 말에서도 몇 편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설자은의 이어지는 활약이 기대된다. 첫 번째 시리즈에는 4편의 사건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이야기에 해당되는 ‘월지에 엎드린 죽음’은 귀하디 귀한 흰매를 길들이고 사냥을 담당한 매잡이이의 의문스로운 죽음을 파해치는 내용이다. 표지에 그려진 그림의 정중앙에 흰매의 그림이 놓여 있는 이유를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매와 같은 거대한 새를 직접 보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매가 사냥하는 장면을 연회의 한 코너로 만들어서 청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니,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과거에 행했던 기이한 능력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 묘사된 흰매는 20년도 더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가둬놓고 잘못 길들이려고 하다보면 채 1년도 못 되어서 죽는다고 하니, 매잡이의 특출한 능력이 더욱 돋보일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선대왕때부터 이어져온 흰매의 영특한 사냥 장면은 왕권의 영속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역할까지 맡았으니 그야말로 영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특별한 재능을 가진 매잡이가 음식이 탐닉하고 다른 새를 돌보는 이들에게 배분되는 양식까지 탐내어 몰래 빼돌리는 탐욕스러운 인물로 그려져서 그런지 그가 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 호흡곤란에 호소하다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얕은 월지에 빠져 죽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연회에 참석한 이들의 연민을 자아내지 못하고 만다. 나중에 매잡이가 몹시 미워 목에 뭔가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외면한 이가 매를 다시 불러들이는 장면을 그려보니, 실제로 매 사냥을 목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신비로울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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