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더하면
은모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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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든 작가의 [한 사람을 더하면]을 읽었다. 마스크를 한 묶음이 아니라 한 장에 5천원 가까이에 구입한 때가 있었다. 그나마 그것도 없어서 못 살 판국이었으니, 그때 어렴풋이 나마 대공황이나 전쟁과도 같은 무질서한 상황이 펼쳐지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란 두려움이 느껴졌었다. 지긋지긋한 마스크와 어느 정도 이별을 하고 지내는 요즘 팬데믹이 또 다시 찾아온다면 이란 가정은 끔찍할 정도로 그리고 싶지 않은 미래이다. 이번 소설의 배경은 지금과 그리 멀지 않은 20여년 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아니 지금 우리가 우려하고 있는 나쁜 일들이 한꺼번에 다 발생된 것처럼 각박한 삶이 그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소설의 가장 뚜렷하면서도 특이한 가정은 바로 집합 가족이라는 개념이다. 피를 나눈 혈연관계인 가족을 원가족이라 칭하고, 결혼과도 같은 제도로 얽힌 가족이 아니라 그저 철저한 경제적 관념에 의거해 함께 살아가는 가족을 집합 가족이라 칭하고 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심은 가정의학과 의사이지만 경제적 풍요로움은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고 일반 노동자처럼 하루 하루 발생되는 비용과의 피곤한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상태이다. 더군다나 이심은 아직 집합 가족을 정하지 못해 몇 년 동안 혼자 살고 있기에 독신세를 부담해야 해서 더욱 경제적 상황이 열악하진 상태이다. 1인 가족이 점점 늘어가는 작금의 상황에서 혼자 사는 이들이 과중한 독신세를 부담해야 한다는 설정은 독특하면서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양상들을 반영하고 있는 설정이 아닐까 싶다. ‘무도회’라는 이름으로 집합 가족을 찾는 이들의 모임은 독신세의 부담이 엄청나기에 함께 살 사람을 찾아야 하지만, 이왕이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피해를 주지 않고 편하게 지낼 상대를 찾게 될 것이다. 


이심은 가정의학과 의사이지만 공공의료기관에 등록되어 있기에 국가에서 지정한 바우처를 사용하고자 신청한 이들에 한해서만 왕진을 나가 진료를 해준다. 만일 바우처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을 진료했다가는 방지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되니, 과거 공산주의 치하의 전체주의 발상이 고도로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미래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마치 무상 진료를 해주는 것처럼 바우처를 남발하지만 결국 소시민들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충분한 진료를 받지 못하기에 첨단 의학의 발전은 그들에게 무용지물일 뿐이다. 이에 반해, 부자라는 말이 소거된 미래 사회에서는 대신에 자산가라는 말이 통용되며 SNS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게시물이 금지되는 법을 통해 부자들의 세상은 완전히 감춰지게 된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국가에서 통제하는 공공 뉴스 밖에 시청할 수 없는 많은 이들은 유료 뉴스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실제 사건의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심은 무도회를 통해 알게된 샴푸의 요정이 있는 가족과의 삶을 선택하려고 하는 순간에, 어린 로아가 계란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에 무심했던 쌍둥이 형제 훈민에게 실망감을 느끼며 선택을 철회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족에게 관심을 갖게 된 첫 무도회에서 어설픈 실력으로 칵테일을 만들어준 모영과 급속도로 가까워져 함께 집합가족을 이루게 된다. 경총이라는 미래의 독재자와 같은 지도자로 인해서 부자와 일반 시민들의 갭은 더욱 멀어지게 되었고, 부자들이 어떤 감세혜택을 받고 그들만의 세상을 이루며 살아가는지 일반 시민들은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이심은 어느 날 우연히 엄마의 옛 친구에게 초대를 받아 부자들이 사는 곳을 방문하게 되고, 엄마와 함께 그곳으로 넘어올 것을 제안 받는다. 서안이라는 엄마의 친구가 머무는 곳은 집합 가족들이 아등바등 살아가는 대신 온갖 풍요로움을 다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 같은 곳으로 그려졌다. 


서안이 머무는 세계와 이심과 모영이 사는 세계는 어찌하여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는 것인가? 사람들이 흔히 꽤나 넉넉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재물에 욕심을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쉽게 말한다. 누가봐도 충분한 재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것은 돈에도 중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쓰지 않더라도 늘어나는 통장잔고를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희열에 빠진 것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이유는 부디 그냥 망상이길 바라고 싶지만, 특정한 부와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지위를 타인에게 나눠주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을 바라보며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극소수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것에 꽤나 큰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온 방지법을 토대로 비뚤어진 세상이 바로 이렇게 계급화되고 철저히 분리된 이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총을 비롯한 권력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지위를 높여 가는지 설명하는 대목이 비단 소설 속의 한 인물에 대한 묘사만이 아니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씁쓸한 비유를 곱씹어 본다. 

“예컨대 지금도 어느 실험실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유전자조작의 방식부터 경총의 수법까지 무엇이든 명료하게 짚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 우선 단호하게 부정하여 시간을 벌고, 사익을 추구하여 벌인 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공적인 요소가 사건의 본질인 것처럼 호도하며, 적절한 시점에 꼬리를 잘라 책임을 떠넘기고서는 다른 화젯거리를 띄워 관심사를 돌리는 경총의 기술은 가히 예술적이니 한 번쯤 꼼꼼히 살펴보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했다.(89)”


#은모든 #한사람을더하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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