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책의 원제를 보니 [All the Beauty in the World]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은 완전히 다르게 정한 것은 아무래도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라는 평이한 제목보다는 메트포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라는 말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저자의 범상치 않은 신상의 변화는 과연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일까란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미술관이라는 더군다나 가보지 않아서 규모가 짐작되지는 않지만 경비원만 해도 600명이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하니, 아마도 엄청난 크기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모나리자’와 같은 세계적으로 가장 알라진 명화를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명성을 갖춘 이들의 그림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유명한 단 하나의 그림을 너무 무방비 상태로 진열해 놓은 것이 아닐까란 염려이다. 경비원도 항상 주시하고 있고, 그림과 어느 정도 떨어져 감상할 수 있도록 안전띠와 같은 것이 놓여 있기는 하지만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작품을 손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이다. 만일 모든 그림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유리관 안에 넣어서 관람할 수 있도록 진열한다면 웬만큼 강력한 도구와 방법이 아니라면 작품을 손상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투명한 유리관에 넣어놓는다고해도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만족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림의 제대로된 질감을 느낄 수 없고 작가가 의도한 바를 해석하기에도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측에서는 과감하게 작품을 노출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이 완전 무결한 곳에 고이 모셔진 채 보관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조금씩 손상된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의해서 쉼없이 연주되는 것이 악기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아마도 미술관에 소장된 위대한 작품들을 그리고 만든 이들은 먼 훗날 자신의 작품이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을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주목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꽤나 잘나가는 아주 젊은 뉴요커의 삶을 내려놓고 스스로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어 10년이란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의 친형이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믿고 의지하고 존경했던 형의 부제는 저자의 삶에 너무나도 큰 구멍을 만들었고, 형의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에 중요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다시는 치열하게 세상의 것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저자는 아주 오랜 시간 인류의 조상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예술작품의 세계로 자신의 몸을 던져 머물고자 결심한다.
가족 중 누군가를 잃게 된 후 서서히 퍼지는 상실의 아픔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이나 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상 받듯이 누리라는 권유나 슬픔을 잊지 위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라는 조언도 아주 잠깐 동안은 아픔을 치유하는 듯하지만, 혼자라는 고독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어김없이 심장의 한 복판에 어퍼컷을 날린다. 아직 잊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듯. 어쩌면 저자가 선택한 미술관 경비원의 시간은 이렇게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심연의 고통을 적절히 어루만질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그리고 일상적인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 중에 보낼수도, 동료들과 시답잖은 얘기를 끊임없이 나눌 수도 있다는 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원히 메워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의 구멍을 조금씩 채워갈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매일 매일 위대한 걸작들을 건네는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수천 년에 걸친 삶의 흔적들을 막연히 상상하다보면 결국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기쁨, 슬픔, 고통이 반복되는 시간이었을 것이고, 거의 모두가 그렇게 하루를 살다가 흔적도 없이 떠나게 되는 것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누구나 머리속으로는 알고 있는 이 사실이 나에게도 당연히 해당됨을 받아들이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저자의 책을 읽으며 우리가 모두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슬픔의 시간을 마주하고 견뎌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딘가 나만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같은 곳을 찾으라는 권유가 아닐까 싶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부를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가뿐하게 계단을 내려오고자 하는 기운을 되찾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테니 말이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입원해 있는 톰을 방문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던 때를 기억한다. 누구라도 심술을 부리거나, 실수로 부딪힌 다른 승객에게 쏘아붙이면 그게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고 무지해 보였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는데도 말이다.(153)”
“그러나 안젤리코 수사가 묘사한 것은 예수의 몸뿐만이 아니다. 그는 십자가의 발치에 뒤죽박죽으로 모여 있는 구경꾼 한 무리를 상상했다. 옷을 잘 갖춰 입은 사람, 말을 타고 있는 사람 등등 꽤 많은 구경꾼들의 얼굴에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반응과 감정들이 떠올라 있다. 침통해하는 사람들,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 지루해하는 사람들, 심지어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는 사람들도 있다. 옛 거장들의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리얼리즘이다. W.H.오든의 시 <뮤제 데 보자르>에도 나와 있듯 ‘끔찍한 순교’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창문을 열고, 별생각 없이 그 옆을 걸어간다’. 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319-320)”
#패트릭브링리 #나는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경비원입니다 #Allthebeautyintheworld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