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 - 모든 사람은 한 편의 드라마다
이언주 지음 / 비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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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작가의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었다. 부제는 “모든 사람은 한 편의 드라마다”이다. 하루종일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편하게 얘기할 대상이 생기면 방언이 터진 것처럼 폭풍 수다를 떨게 되는 때가 늘어가는 것만 같다. 샤워기에 떨어지는 물에 머리를 적실 때면 내가 왜 그렇게 주저리 주저리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을까 이불킥 같은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인생의 경험의 장고를 떠나서 떠나서 사람은 자기 얘기를 누군가 들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가끔은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만으로도 어떤 특별한 치료제를 찾은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상대방이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기도 한다. 


유퀴즈라는 TV프로그램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갑작스러운 인터뷰에 응한 일반시민들이 처음에는 장난치듯이 말하며 어색해하다가도 어느 순간 내면의 가장 깊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털어놓는다는 사실이다. 이게 촬영이 되고 편집이 되어 어느 날에 방송이 된다면 그 이야기를 온 국민이 다 알게 될 수도 있을텐데, 그리고 그 방송을 본 지인이 바로 연락을 할 수 있을텐데도 사람들은 용기내어 이야기를 한다. 아니 어쩌면 용기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지금까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지. 생각해보면 정말 진중하게 나의 삶에 대한 질문을 받아보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걸까. 별로 특별하지 않은 질문에 응답한 솔직한 답변은 엄청난 감동을 선사한다. 존재의 우연성을 여실히 드러내듯이 지금까지 내가 듣고 싶어하던 말을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길을 걷다 만난 MC에게 낱낱이 털어놓는다. 


지금은 물론 코로나 사태 이후로 실내에서 진행되기에 프로그램의 초기처럼 우연히 마주치는 만남이 가져오는 감동을 엿볼수는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이후 섭외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우연한 만남과는 다른 무게의 감동과 놀라움이 전해지는 듯 하다. 유퀴즈의 전편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본방을, 어쩌다 재방을 보다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출연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매번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세상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놀라움이다. 종교의 세속화와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린 개인화로 탈바꿈된 사회에서 더 이상 따듯한 온정과 다정함을 찾기 어렵지 않을까란 단정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는 출연자들의 인내와 꾸준함의 발자취는 매 순간 감격스럽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다른 토크 프로그램보다 눈물 흘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출연자도 아마 예상치 못한 감정의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MC들 또한 경청하는 가운데 감동받지 않을 재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눈물의 발로에는 바로 이런 의아함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세상에서 사람들을 가장 많이 놀래키고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천재적인 재능이나 현란한 말쏨씨나 눈이 부실 정도의 멋진 외모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거저받은 것이 아니라, 아무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장구한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발자국을 우연히 누군가가 발견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견뎌온 시간을 추앙하게 된다. 그 발자국을 뒤따라 가면 나에게도 그런 힘이 생겨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외환위기로 모든 힘들던 1998년, 아빠가 20년을 다닌 증권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살림밖에 안 해본 아내와 대학생 딸 둘을 감당해야 했던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꼬박 한 달이나 숨겼다. 엄마에게 들키기 전까지 매일 아침 출근하듯 집을 나서서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 시간에 돌아왔다. 당시 아빠 나이는 지금 나보다 적었다. 아빠는 어디에 머물렀을까. 끼니는 잘 챙겨 먹었을까. 해가 뜨고 질 때까지의 기나긴 시간을 무슨 생각을 하며 보냈을까. 시공간을 초월해 어딘가로 갈 수 있다면, 나보다 어린 아빠가 시간을 보내던 집도 회사도 아닌 어딘가로 가고 싶다. 그곳에 가서 아빠를 찾으면 손을 잡고 말할 거다. 나중에 작은딸이 다 호강시켜드릴테니, 걱정 말고 함께 집에 돌아가자고.(178)”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꺼내놓는 그의 눈에 순수한 슬픔이 드러났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는 순수한 동정심. ‘동정’, 그러니까 그는 부모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아이를 찾겠다는 부모의 마음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기에 포기할 수 없던 것이다. 슬프게도 생은 빠르고 현실은 메말라 있기에, 망각은 편리하고 외면은 간편하기에, 기억하려는 사람은 외롭다.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를, 상처를, 슬픔을 잊고 일상을 살아간다. 실종자 가족과 이건수처럼 기억하는 쪽은 더욱 외로워진다. 그들의 시간은, 아무것도 지우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기 때문이다.(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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