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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김준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평점 :
김준일 님의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를 읽었다. 응급이라는 말만 들어도 갑자기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며 손에 응근한 땀에 베어드는 느낌이 든다. 요란한 비상벨소리를 울리며 황급히 움직이는 구급차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위급한 상황을 맞이했구나 라는 찰나의 연민의 마음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멀쩡히 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감사하는 이기적인 안도의 한숨 또한 뱉어낸다. 예전에는 그렇게 엠블런스를 탈 정도로 위급한 일은 마치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딴 나라의 얘기처럼 생각하고 지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금까지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한 기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번 느꼈다. 저자가 응급구조사로서 맞이했던 상황의 묘사가 너무나도 상세해서 마치 눈앞에 그 끔찍한 장면들이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더이상 이어지는 장면을 따라갈 용기가 나지 않고, 그냥 예전의 어리숙한 생각처럼 그런 일은 나와는 무관하다고 외면하고만 싶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을 자신의 온 몸으로 체험한 저자와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루 하루를 견디며 자신만의 삶을 일구어 갈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그들의 삶에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저자가 들려주는 내용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의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곧 트라우마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높아졌다. 그러다보니 응급구조사들이 현장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충격과 스트레스는 아마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사고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사람의 형체와 피로 범벅된 현장에서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아마도 시시때때로 불현듯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재생될 것이다. 아마도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자주 심각한 충격에 자주 노출되는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응급구조사를 선택하고 자신의 온 삶을 타인의 위급한 상황을 위해서 헌신하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아주 특별한 은총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믿음의 유무를 떠나서 신의 손길이 머물다 간 것이라 생각되는 장면이 묘사가 있다. 도저히 어떤 절대적 힘의 개입이 없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사람들은 억세가 운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혹자는 강철멘탈을 소유한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라는 부연 설명이 붙을지 모르겠지만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에 절대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에게는 분명 특별한 힘을 하느님께서 주셨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캐나다라는 복지 국가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분명 우리보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그곳 또한 삶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과거의 인물들이 있었고 여전히 생계를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이들이 있음을. 특히나 저자가 가족들과 이민을 떠나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해 가슴 졸인 시간들에 대한 회상은 그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갖은 채 차 안에서 혼자 눈물을 삼켰을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결국은 수많은 응급 호출에 익숙해지며 능숙한 파라메딕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우리가 삶의 마지막을 잘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마주했던 수많은 노년의 병을 앓고 있던 이들의 집에는 그들의 과거를 떠올 수 있는 지난날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액자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을 누렸던 그 누구도 언젠가는 내 몸 하나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며,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배설물을 뒤짚어 쓴 채 전혀 모르는 응급구조사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삶의 마지막이 너무나도 비참하고 쓸쓸하게 느껴지지만 결국 먼지에 불과한 존재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함을 하루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여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간다면 죽음 또한 잘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이 많아지면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픈 환자를 자주 접하다 보니 건강하게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돈이 많아도, 몸이 건강해도 결국 삶의 종착점이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면 잘 사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나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제일 중요한 생활인인지라 그런 일로 마냥 우울해할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그 생각이 문득문득 치밀어 올라올 때면 답도 안 나오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다시 잠깐 잊었다가 묻기를 되풀이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질문 하나. '내 삶의 끝을 알게 되면 지금이,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 더 행복해질까?'(229)"
"우리는 저마다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갖기 위해, 혹은 더 갖거나 뺏기지 않기 위해 애쓰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분명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인정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저 열심히 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짜 중요한 것들을 챙기며 사는 법은 잊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우리는 다 똑같이 죽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까닭에 쉽게 느끼지 못할 뿐 죽음은 삶과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우리 인생길 바로 옆에서 함께 조용히 걷고 있을 뿐이지요. 따라서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며, 잘 죽는 것은 우리 삶의 마침표를 잘 찍는 것과 같습니다.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들을 잘 가꾸어 살다 보면 언젠가 다가올 죽음 또한 잘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도 애쓰며 사는 우리들의 수고를 더 가치 있게, 그리고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을 더 풍성하게 해줄 것이며, 그런 것들이 모여 결국 죽음까지 포함한 우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5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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