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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편견이라는 단어가 지닌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며 책을 읽기 시작한 뒤 오래지 않아 편견은 일상 속 다양한 생각을 담은 통찰로 비춰졌다. 중앙지에 기고하던 글들 중 추려 뽑은 단상들 속에 융해된 편견은 양심에 걸맞은 소리를 내는 용기로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는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긍정적인 행동으로 집약되었다.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 2부 선량한 물음, 3부 바느질 소리, 4부 다정한 편견이라는 소제목 아래 실린 A4한 페이지 분량의 글은 쉽게 읽히지만 깊은 생각으로 이끈다. 역사의 발전은 퇴조하여 극우 보수 세력들이 활개를 치는 시대에 진보적인 언행으로 사회적 제약을 받을 수도 있는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설정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세상을 바르게 살피며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희망적이다. 무너져야 할 것들이 여전히 버티고 서있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할 때도 있지만 억압에 맞서 저항해 나갈 때 불복종의 힘은 발휘될 것이다. 진리라고 여기며 살았던 가치들이 산산이 부서져 명맥만 유지된 채 이 사회에 존재하는 현실을 직면할 때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외치며 거리로 몰려들었던 독재 정권을 복원한 듯한 시대로 회귀한 것 같아 음울해진다. 감상적인 울분을 토로하며 소시민적 삶을 탈피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비애를 안으로 삭이며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벽촌에서 나고 자란 유년 시절의 소소한 기억들을 융해하여 서술한 대목에서는 동시대를 살아온 옹색한 살림살이가 떠올라 서로를 연민하며 다독거리는 행색을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내리 사랑의 진수를 보이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을 줄 알았던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O자로 굳어진 다리로 어정쩡하게 걷는 노모의 모습을 연상케 하여 처연해진다. 살갑지 않은 태도로 데면데면하게 지내온 모녀 지간이라 손을 마주 잡고 걸어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성년 이전의 과도기라 불릴 만한 청소년기부터 도회로 나가 새로운 문물을 접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며 지내는 사이 강퍅한 서울에서의 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엄연히 존재하였던 모양이다.
“왜 사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살 이유를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며 눈을 내리깔고 앉은 고2 아들의 힘없는 소리에 흠씬 놀라 생명체로 태어나 스러질 때까지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할 당위성을 지닌 존엄한 개체임을 강조해 보지만 아들은 시큰둥했다. 치열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이 뿜어내는 냉소는 곳곳에서 묻어났다. 헛된 욕망을 좇다 절망 속에 죽어가는 일보다는 스스로 삶의 가치를 일깨우며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절실한 요즘이다. 파킨슨병을 앓는 구순의 소설가가 형형한 눈빛으로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적절히 타협하고 안일하게 지내온 것은 반추하는 시간은 순연한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난한 자들 곁에 머물면서 의술을 베풀다 떠난 고 장기려 박사가 남긴 유품은 행동하는 실천가로 우리들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아 소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다.
‘삶이란 그처럼 낯선 사람과 풍경 속으로 자신의 길을 내는 것이 아니던가.’ (112쪽)
인생이라는 긴 항해를 계속하면서 돌연한 일들로 쉽지 않은 생활을 잇다가도 또 다른 변수로 그럭저럭 살아온 삶이 일상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와 자아가 서로 조응하지 않을 때에도 다른 시선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역사를 새기며 살아간다. 다음 생을 약속하며 현재에 회한을 남기기보다는 지금 행할 일을 실천하며 나답게 살아가는 일이 긴요함을 알아차리며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의 마중물을 붓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