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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평점 :
지난봄 제주도 올레 길을 걸으며 파도에 부서지는 포말을 말없이 바라보며 유한한 인생도 어느 순간 스러져 자연으로 순환하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외로움이 더한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해안선을 따라 걷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은 줄어듦을 알아차리게 된다. 거문도 섬에서 나고 자라 작가를 직업으로 삼아 뱃사람이라면 으레 행할 일련의 일들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이로 바다를 배경으로 질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인심 좋은 작가가 건네는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며 일상의 일을 전하며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일상이 융해되어 있다.
섬을 여행하다 보면 육지에서 보던 풍광과는 다른 고독이 묻어난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처럼 바람이 불고 비가 거세게 내리면 한정된 공간에 고립되어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독과 친해지는 법을 배우며 사는 이들이다. 변방의 섬과 겨울 바다의 강요로 배가 묶일 때는 하는 일 없이 술과 더 친해지는 풍경이 되풀이 된다. 갈치 배를 타던 형의 푸념은 어획량보다 인건비가 더 들어가는 것뿐 아니라 나이 들어가면서 험한 뱃일을 계속 할 수 있을는지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니 글을 읽는 동안에도 어부의 헛헛한 마음에 짠해졌다.
바람이 바뀌고 찾아오는 어종에 따라 변하는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이들은 바다의 주기를 시간으로 삼아 움직인다. 작가가 거문도로 들어와 살기까지 생업뿐 아니라 활동 영역을 확장해 생활해 온 터전인 여수, 부산, 서울 등에서 경험한 일은 창작의 질료로 쓰여 행간과 줄글 사이에 녹아 있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 쉽지 않은 시대에 작가는 이들과 가까이에서 음식을 나누고 대화하는 가운데 만난 사람들이 소개된다. 속인의 눈으로는 특별할 게 없는 생활인들이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띠는 독특함으로 살아났다.
자신과 인연을 맺고 사는 이들에 대한 애정은 삶을 관조하며 쓴 글 곳곳에서 묻어난다. 가까이 지낸 생활인들부터 문단의 거목들과 교유하고 소통하는 현장을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담아 평범함이 변주한 또 다른 삶의 진수를 보여준다. 음식 솜씨가 좋은 방이 이모가 고향으로 돌아와 식당을 열고 주린 돈벌이보다는 배고픈 이들의 배를 채워줌으로써 가출한 아들이 어디에서든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모정은 선업을 쌓게 하였다.
‘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진정성은 감동으로 돌아오는 것이라 일깨워주기라도 하는 듯 그 아들은 한식 조리사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개척해보고 싶었다고 말하였다니 부모 의존형인 청춘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술과 낚시를 좋아하던 방이 이모부와의 소통은 일상 속 의미를 찾아가는 즐김으로 섬 생활에 윤기를 더하였다.
결핍을 견디며 사는 법을 터득한 이들은 필요 이상을 소비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음을 안다. 권력의 중심 ‧ 과잉된 욕망의 도시와는 떨어져 지내지만 더딘 변화를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항구 주변에 깃들어 사는 이들의 삶은 질박한 사람들의 실재하는 풍경으로 꿈틀거렸다. 끝도 모를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며 침묵을 견디고 거대한 파도와 강풍을 감내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고립할 수 있는 근간이 있어야 섬에서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익명의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섬에 왔다가 며칠을 보내다 밀려드는 고독을 달랠 길이 없어 도심으로 회귀하는 이들이 흔하다. 섬으로 들어왔다 섬을 떠나는 사람, 평생 섬을 지키며 사는 사람, 욕망을 찾아 도시로 나갔다가 섬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의 일상성이 갖는 비문학적 삶 하나하나가 문학을 키우는 질료라는 말에 공감하며 경험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욕 안 듣고 살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하던 중 예술가를 떠올렸던 작가는 그 중에서도 타자를 이해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며 서술하는 소설가를 생각하고는 좋고 감동적인 것을 잘 쓰면 되겠다고 토로했다. 글 쓰는 기교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리하며 시선을 주변인들에게 돌렸는지도 모른다. 가난과 추위가 시인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유용주는 시로써 자신을 구원하고자 했던 것을 넘어 상처 입고 살아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물질적인 산술적 잣대를 대지 않는 교원대 졸업생을 아내로 맞은 시인의 지난한 삶은 신산함을 넘어선다. 무력감에 젖은 청년에게 ‘관촌 수필’로 살아갈 힘을 줘 힘들 때마다 꺼내어 읽는다는 조문객의 일화는 누군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밖에도 문단에서 교유하며 살아가는 이들과의 인연은 숨겨진 시간 속에 녹아 빛을 발하였다. 여전히 저자는 거문도에서 글을 쓰고 틈틈이 낚시를 하여 회를 떠 술을 곁들이다 충동적인 섬 여행에 동참하는 이들을 반기며 그들의 이야기에 길을 기울이며 지낼 것이다.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빈 자리에는 바람이 불어 그들의 영혼을 불러내고 침묵 속에 느리게 움직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사는 곳 한 바퀴를 돌며 걸어가는 작가의 뒷모습은 고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할 섬사람들의 숙명이 더께처럼 어깨에 내려앉아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