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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소통하고 교유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 친구들과의 모임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아릿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그들이 진행하는 빨간 책방 방송을 들으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의 너울을 가라앉히며 안으로 천착하는 시간 속 내면을
응시하였다.
영화 평론가와
소설가가 진행하는 책 이야기는 일반적인 눈으로 읽어 내리느라 놓치고 말았던 행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여 곱씹어 보게
하였다.
팔팔 끓는 물에
데쳐 낸 푸성귀를 찬물에 헹궈 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뒤 들깨가루를 넣어 고소함을 곁들인 나물의 별미에 처져 있던 미각은 살아나는 것처럼
흑임자와 적임자의 구성진 입담은 청중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빨간 책방 방송을
들으면서 그들의 말을 놓칠세라 메모하며 들을 때면 기억력의 한계에 스스로를 꾸짖을 때도 있었다.
애청자들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동안 방송한 분량 중 감각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만한 가치들을 제재로 삼아 한데
묶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에 무게를 실어두는 창작자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작가가 만들어내는 우주와 일맥상통한다.
과거로 회귀하여
어떤 일을 상정하며 경우의 수를 던지는 작법을 즐겨 쓰는 하루키는 인생의 분기점마다 시간이라는 선을 바라보는 지점과 세상을 응시하는 다양한
시선으로 창작활동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완벽한 공동체를
꿈꾸며 교유하던 이들과의 균열이 간극을 만들고 간극은 불화의 골을 깊게 만들어 인연의 매듭을 끊어버려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 시절
친구들을 찾아 이유를 듣기 위해 길을 나선 스쿠루의 행보가 담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소설 속 다양한
인물의 행동은 되풀이되는 우연으로 필연을 만들어내서는 서사적 흐름에 의미를 담는다.
통찰력 있는 시선을
견지하고 동일한 소설을 정밀하게 읽고 재해석하는 과정 속에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고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감동의 깊이는
더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지기 십상인
5교시 수업 시작 전 한 녀석은 중학교 다닐
때 인상 깊게 읽은 소설<<호밀밭의 파수꾼>>을 소개하겠다고
나섰다.
예모를 갖추고
학생답게 행동하며 학업에 몰두하여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일을 최고로 여기며 강변하는 교사들을 향해 학생은 콜필드의 입장에서 힘든 점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성적 향상으로
안정적인 자리에 올라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교육 환경에 반기를 드는 그의 행동은 기성세대를 혐오하지만 순수함이
남아 있는 아이들을 이상적으로 여긴 데서 기인하였음을 관통하였다.
‘센트럴 파크에
연못이 있는데 겨울이 되면 거기에 있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추위로 얼어붙은 연못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 오리에게 연못은 상시적인 삶의 공간이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 콜필드의 상태와 비슷함을 밝히는 대목에서는 성인으로 자리하는 과정의
통과의례처럼 방황하는 청소년의 면모 속에 수용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인생의 조각 속에 끼어든 인간
군상의 모습은 유한한 삶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는 가운데 원하는 인생을 머릿속에 그리며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이론으로 습득하여
해결할 수 없는 돌연한 일들을 겪으며 문제를 해결하여 나갈 때도 소설 속 인물은 크고 작은 방향을 열어두고 생각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길러준다.
대비되는 삶의
무게를 나란히 놓고 네 인물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
우연과 운명 등을
다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작가의 코멘트를 따라 읽으며 철학적
사유를 더하는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니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짚어준다.
본의 아니게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오해의 불씨는 누군가의 마음을 상상해보지 못한 데서 발화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브리오니의 상상력이
자아낸 오해로 수감 생활을 해야 했던 로비,
로비를 마음에 품고
사랑으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은 세실리아의 운명은 부박한 인생의 단면으로 여겨진다.
죽음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로비와 세실리아의 영혼을 달래주려는 소설 쓰기로 부리오니는 속죄하려 했지만 제목에 붙여진 <<속죄>>가 어떤 윤리적 책임을 띠게 될는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내일 일어날
일을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도
묻지 않죠.
내게 중요한 일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랍니다.’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며 살아왔던 시절을 떠올리며 회의에 젖게 하는 구절이다.
자신이 투자한
탄광이 무너져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도 춤을 추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조르바에게서는 인간의 욕망조차도 붙들고 살아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음을
드러냈다.
그는 빈털터리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순간,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졌음을 산투르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육화된 언어로 물욕에 찌들어 지내는 이들을 각성시킨다.
성과를 내고
인정받기 위해 바동거리며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을 냉소하는 조르바의 호탕한 웃음은 하고 싶은 일을 유예하고 가슴속에 자리하는 잠재적 소망을
이성적으로 짓누르며 살아왔던 삶을 전환하는 동인으로 기능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공명함으로써 일상의 틀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일로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날 크레타 섬으로 향하는 길에 <<그리스인 조르바>>는 함께 할 것이다.
‘상반되는 것 중
최악은 권태와 공포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파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인상 깊게 본 구절에서는
밋밋한 생활에 권태를 느끼며 지내다가도 돌발적인 공포 앞에 평온한 일상을 그리워하며 사는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아버지는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동물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가려다 난파당하여 태평양에서 227일을 표류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렸다.
죽음과 맞서
생존하기 위한 시간적 고립을 절절이 담은 소설에 반해 이안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서는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망망대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간적인 고립감을 담아 매체가 갖는 본질을 살렸다.
혼란의 카오스에서
질서의 코스모스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종교적 특성을 저자의 소설쓰기와 상통하다고 본 진행자는 불가해한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하는지 고민하게 해 생각의 지평을 넓혔다.
반평생을 살아온 지금 인생의
2막을 새롭게 구상하고 유의미한 일상을 위해
소소한 기쁨을 즐거움으로 치환하며 살아가기 위해 움직인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생각한 대로 실천하며 1인칭 화자로 내밀한 경험을 융해하여 자신과
친밀해지는 인생의 주연으로 통념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총체적인 무력감으로
귀결되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소설에서 넌지시
일깨워 준 한 가정의 범죄가 가족이 서로 방관하고 방조하는 가운데 40년 후까지 이어졌다니 가족 구성원들 간의
바람직한 관계 형성의 의미는 자못 커 보인다.
두 진행자가 다룬
많은 작품 중 엄선하여 묶은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상상하지도 못하였던 작품 속의 세계로
이끌어 허무함으로 규정짓고 말았던 지난한 시간 속에 담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여 현재적 삶에 충실하여야 할 당위성을 묻고 또 다른 세계를
동경하게 만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