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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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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동네 아이들은 섬진강으로 달려가 멱을 감고 재첩을 잡으며 더위를 식혔다. 물살을 가르는 모래 이랑 사이로 노란 재첩을 소쿠리에 주워 담아 물통에 부었던 기억은 재첩국을 먹을 때마다 씨가 말라버린 섬진강 재첩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 많던 재첩이 자취를 감추고 멱을 감는 아이들도 보이지 않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아련한 향수를 품에 안고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편의성과 효율성을 들어 개발 정책으로 치닫는 시대에 추억 속 공간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예스러운 정취를 풍기고 있던 공간도 변형되어 생경함을 주고 사라진 공간에서는 사위어가는 촛불의 유한함을 떠올리게 된다.

 

   강마른 체구에 깊은 눈으로 응시하는 눈빛이 처연하게 다가오는 저자를 떠올리며 윤대녕 작가의 내밀한 삶의 조각은 유쾌한 것만은 아닌 듯하였다. 생업으로 바쁜 부모와는 떨어져 완고했던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고독한 상황을 감내하게 한 문학은 정신적 방황을 달래며 문학인으로 살아갈 힘을 실어줬다. 유교적 가르침을 들어 좇아야 할 규범을 강조할수록 자신을 옥죄는 질서를 파기하려는 움직임은 백일장 참여로 문학 동아리 회원들과 교유하며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로 삼았다. 일탈의 욕구가 커질수록 정신적 방황은 깊어졌고 어느 새 작가는 또 다른 공간을 찾아 이동하며 잠재되어 있던 방랑벽을 다독거렸다. 손 내밀면 끌어당겨 줄 대상은 피안의 공간으로 자취를 감추고 닿을 수 없는 시간들만 진공 속에 남아 추억으로 공명하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작가를 꿈꾸었던 저자의 집필은 소설가로서의 위상을 굳히며 낯선 공간을 찾아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관찰하며 독립된 존재인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집필하는 자유를 누렸다. 행장을 꾸리고 익숙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땅을 찾아 길 위에 서기를 반복했던 저자는 우리나라의 후미진 공간에서부터 번화한 국제도시로까지 집필 공간을 확장하여 유목민을 연상케 하였다. 그가 머물렀던 조부의 집은 이웃이 없었고 어쩌다 친척들이 찾아와도 곧 떠나버리고 말아 을씨년스럽기만 했던 고독의 공간으로 그곳을 떠나는 순간 버림을 받는다는 점을 알고 떠나야 하는 집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 집은 저자에게 서글픈 꿈을 심어주었고 지난한 시간 속에 발아하여 상상의 산물인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로 열매를 거두게 했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 이동할 때 거쳐 가는 공간을 좋아하는 작가는 휴게소와 역, 공항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하였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소통하며 창작의 질료(質料)로 삼기도 했다. 사라져 버릴 이야기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상상력을 가미하여 구성진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생각은 사라질 수도 있는 기억들을 끌어안아 나갔다.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이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예감을 상쇄하기 위해 제주도에 머무를 때 아들과 함께 낚시하는 작가의 뒷모습은 고독을 치유하며 살아가는 방편처럼 다가왔다. 술집을 드나들며 고통을 잊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평안을 얻었던 공간으로 인생의 허무를 달랬던 시절의 추억은 가슴 저편으로 자리를 내어주었다.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마음을 내어주며 지냈던 음악 감상실은 힘들었던 시절을 동행한 추억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저자는 고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음악으로 위로받으며 즐기는 인생을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길거리를 걷다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연주곡에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했던 아동기의 친구가 떠오르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여 현재의 나이 듦을 보상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한 것인지도 모른다. 휴대폰이 대중화됨으로써 찾아보기 힘든 공중전화 부스를 보면 한 줄로 늘어서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이 내는 소리에 집중했던 청춘 시절이 떠오른다. 소설 당선 소식을 듣고도 기쁜 소식을 알릴 대상이 선뜻 나서지 않아 외로웠던 스물아홉의 저자가 용기 내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언하였을 때 시큰둥한 어머니의 반응은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필연성을 낳았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반전을 거듭한 인생을 살아왔던 이에게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희망의 출구는 가슴 속에 남아 창작의 불을 지피는 꿈결로 피어오른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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