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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겨울 열기구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떠다니며 터키 중앙의 고원지대인 카파도키아의 바위 굴 곳곳을 내려다보며 미미한 인간의 능력 이상을 만들어낸 자연신 앞에 탄성을 뿜었다. 종교적 탄압을 피해 곳곳에 벌어진 버섯 모양의 동굴 속에 깃들어 살았던 현지인들의 신앙생활을 떠올리며 인간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여러 의미를 띠겠지만 각자 처해진 환경에서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2008년 아내 팻 캐바나를 뇌종양으로 떠나보낸 뒤 상실의 아픔을 달래며 지내야 했다. 그동안 부인과 함께 했던 추억을 곱씹으며 날실과 씨실로 엮인 인연의 끈이 물리적으로는 끊어졌지만 마음속에 들어있는 그녀를 향한 마음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는 책에 담아 그녀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을 절제하며 담아냈다.

 

   열의 힘으로 하늘 높이 올라 둥둥 떠다니는 열기구를 사랑했던 그는 주입한 가스가 다하면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듯 부인과의 정해진 시간이 다하여 숙명처럼 부부는 이별해야 했다. 보헤미안적 기질에 열기구를 사랑하는 프레드 버나비 대령은 여러 극에 출연하고 있던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 서로를 향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구심점을 찾지 못한 사랑은 표류하는 한 척의 배처럼 쉽사리 길을 찾지 못하였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였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로 잇지 못하고 영원히 결별하는 수순을 밟았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음을 향해 가게 되지만 우리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생각지 않고 지내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목도했을 때 비탄에 젖어 지낼 때가 많다. 숱한 죽음의 예는 예고 없이 올 때가 많아 살아남은 자들에게 아무런 인사도 못한 채 급작스레 세상을 뜨는 죽음의 경우 상실감이 주는 고통만큼이나 자신의 죽음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 무심함으로 비춰져 헤어나기 힘든 허무감을 더한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라고 반스는 지금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는 없지만 가슴속에 강하게 똬리를 틀고 앉은 아내를 잃은 상실감은 커 보인다. 아내에게 말을 걸며 내밀한 감정을 이어가고 싶은 바람을 행하는 반스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은 어쩌면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오선지 위에 낮은 음으로 변주되어 음울함을 더한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아차릴 때마다 애도하는 말 역시 죽음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과정으로 상실의 아픔에 젖어 지내는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못한다고 여길 때가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스스로 상실의 아픔을 달래는 사이 숨통을 옥죄던 고통도 조금씩 엷어진다. 반스 역시 아내가 떠난 지 4년째가 되는 해부터 상처를 치유하며 조금씩 나아졌다.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를 반목하며 살던 부부도 배우자의 사별이 주는 아픔은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심연 속으로 몰고 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하나의 숙제로 자리하는 경우를 목격할 때가 있다. 생전에 잘해주지 못한 점을 뉘우치고 회한에 젖는 경우도 있을 테고 이제는 지상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절대고독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비탄에 젖어 지내는 일보다는 살아 있을 때 정성을 들이며 상대를 사랑하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현재적 삶에 정성을 쏟고 싶은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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