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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결핍에 익숙해져 문명의 이기와는 거리를 두고 지내야 했던 십대에 별이 빛나는 밤에프로그램을 애청하며 청취자들이 보낸 사연에 울고 웃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라디오만이 유일한 문화생활을 가능케 하였다. 주파수를 맞추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몸을 맡기며 흔들거리던 시절 프로그램 진행자는 상상하는 세상 속으로 이끄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하여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며 꿈을 키워주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느티나무 아래로 몰려든 동네 아이들은 장기자랑으로 무료함을 달래며 라디오 방송국에 경쟁적으로 엽서를 보냈다. 사연이 당첨되면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 내기를 걸고는 정성을 다해 엽서를 꾸미고 깨알 같은 글씨로 사연을 담아 신청곡이 방송을 타면 환호했던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 <<마술 라디오>>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소소한 행복을 전하여 준다

   

    책을 즐겨 읽고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가슴 속에는 각박한 세상을 살게 하는 활기가 묻어난다. 가슴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은 욕망에 불을 지펴 온 라디오 프로그램 PD로 쉽게 범접하기 힘든 사상적 가치를 지니고 살아온 이들을 만나 그들이 창조하는 세상을 전하는 목소리는 명징한 깨달음을 준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의 본질을 찾아 떠난 길에서 만난 사연의 주인공들의 질박하면서도 정성이 묻어나는 삶은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표류하는 인생이 아니었는지 성찰케 하였다. 다양한 모습으로 삶의 무늬를 아로새기는 이들의 일상 속에는 소중한 씨앗이 자리하여 귀한 열매를 맺고 있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공명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일상은 더 넓은 세계로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저자의 말은 소통의 영역을 확장해준다.

 

 

 

   연간 소득에 관심을 보이며 봉급이 많은 직장을 찾아 욕망하는 세상에 높은 소득에 걸맞은 소비를 통한 지출은 생활인들의 관심사로 모아졌다. 윤택한 생활 소비자로 살고 싶었던 일상에 제동을 걸어 준 인터뷰 속 주인공들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지 성찰케 하였다. 라디오 피디로 수많은 삶의 형태를 전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삶의 좌표가 될 만한 방송을 진행하는 일이 지금까지 저자가 걸어온 길의 총체였다. 저자는 처세에 능하지 않는 사람들의 진솔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방송으로 사연을 전달함으로써 칙칙한 세상을 밝게 만드는 힘을 주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일희일비하는 인생에 존재 방식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 속 여백에 새로운 의미를 각주로 붙이는 마술 라디오의 매혹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도 지킬 것을 지키는 늙은 어부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했다는 대목에서는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으며 살아가려는 강한 집념이 자리한 것처럼 보였다. 자폐아를 둘이나 둔 빠삐용 아버지는 세상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은 없다며 오히려 자신이 아들을 핑계로 삼을 수 있음을 경계하며 자식이 아니어도 인생은 힘든 것이라고 말할 때 콧잔등은 시큰해졌다. 히로시마 원전 폭파의 후손으로 피해가 대물림되는 원치 않은 인생의 굴레로 빠져들었지만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책무를 다하려 했던 청년의 이야기는 평화를 사랑하며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움직임으로 비춰졌다.

 

   사랑하던 여인을 떠나보내고 난 뒤 상실감에 무작정 떠난 도시에서 동행한 군인과 들른 식당에서 사랑의 어려움을 겪은 이들에게 특별한 요리로 대접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식당을 연 남성의 일화는 쇠진하여 가는 한 인간을 살게 한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라디오가 좋아.’라는 유언을 남긴 아버지의 유품인 라디오는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유족들에게는 아버지를 추억하는 매개물로 작용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상상하며 그것을 무한히 사랑할 때 환상 속의 현실이 마술을 부린 듯 현실화되는 일이 흙집에 살고 있는 장승 깎는 노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에서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안타까운 사연에 공명하며 마음의 문을 열고 살아가는 일은 외롭고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데 위로를 받는다. 낚시를 좋아하는 제주 이민자가 들려주는 부부의 균형 잡힌 삶은 서로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것으로 버려진 나무로 유일한 찌를 만들어 선물하는 지혜가 발현되어 나왔다.

 

   영상으로 효율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송 매체보다 라디오는 인간의 청각에 의존하는 방송으로 진행에 어려움이 있는 만큼 그 한계가 있다. 수단과 목적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음울한 사회적 병리를 걷어내고 희망의 빛을 투사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진행자의 노력은 우리가 사로잡고 있는 것을 갈망하게 하고 동경하게 만들어 새로운 변화를 이끈다. 소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상상하며 현재적 삶에 믿음을 가지고 살 만한 세상이라고 믿으며 희망을 버리지 않을 때 마술을 부린 듯 살고 싶은 마음이 들끓는 세상으로 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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