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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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따뜻하고 아름다운 책.

첫 장을 펼치자마자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담고 있는 책.


책에도 표정이 있다면 과연 이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책은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


아마 개인적으로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를 펼쳐서일까. 누군가의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책의 문장을 타고 넘어와 내 마음에 살랑 바람을 불어 넣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이 첫 프롤로그는 김달님 작가가 이 책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압축해 놓았다.

첫장에서 보이는 구질구질, 문득, 아름답게, 순간. 이 4개의 단어는 인생의 모든 장면을 특별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법같은 주문이자 이 책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따뜻한 메세지다.


분명히, 지금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김달님 작가의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를 읽어보길 바란다.

문득, 아름답게 위로 받을 것이다.

이 책의 부제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처럼 이 책엔 작가가 듣고 건져 올린 소중한 말들이 적혀 있다. 대개 그 말을 전해준 이들은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 p85 이산가족 부부, 환경미화원, 청년 농부, 댄서, 신인배우, 이발사, 여자 야구단, 글쓰는 할머니, 마을신문 기자단, 환경운동가, 식당주인, 간호사, 사회복지사, 동네 통장, 인쇄소 직원, 치어리더, 시니어 바리스타, 과일가게 사장님, 라디오 DU 등... 이 있는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글로 읽히는 직업인 작가덕분에 우리는 그토록 기다렸던 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의도하지 않게 다가와 콕 박히는 말들도 읽을 수 있었다.



P120

이번에는 정말 될 거라 예상했던 공모전에서 최종 탈락했던 날, 그와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과자 한 봉지를 나눠 먹다가 물었다. 혹시 다음에도 안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래도 계속하겠느냐고. 그때 나는 그를 조금은 미련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이날의 대화를 여전히 기억하는 건 뒤에 이어진 그의 대답 때문이었다.

"지금은 되게 하는 것이 나의 몫이야"



우리가 말 한마디에 자극을 받거나 위로를 얻는 건 거창한데서 나오는게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에게서 의외의 말을 듣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말을 머리 속으로 기억했다가 복기하며 가슴으로 저장한다. 누군가는 다이어리에 적어 놓거나 또 누군가는 영상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겠지. 여하튼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의 말들을 건지고 기억하는 일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며, 스스로에게 전하는 진심이기에 이토록 소중하다.

나에겐 '지금은 되게 하는 것이 나의 몫이야'란 말이 큰 울림이 있었다. 쓰고 싶은 글을 게으름 때문에 못 쓰고 있을 때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회사 업무를 꾸역꾸역 하고 있는 지금, 어떻게든 소설을 쓰고 일을 이어하는 게 나의 몫이라고 내게 말할 수 있었고 뭐라도 시작하는데에 힘이 되었다.


김달님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 봤는데 이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만 읽고도 어떤 이야기를 짓고 맺는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따뜻하고 귀를 크게 열어 멀리 있는 사람말고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며, 그 말을 자신만의 온도로 다시 채색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글만으로 이런 결을 느끼게 할 수 없을테니까.

P185-186

"작년 12월에 태어난 아이가 얼마 전에 처음으로 열 걸음을 걸었어요. 그 전까지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이 아이가 과연 걸을 수 있을까? 걷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하루는 아이가 제 손을 놓고서 한 발 한 발 자기 힘으로 걷더라고요. 세어보니 딱 열 걸음. 그 모습을 보는데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열 걸음을 걸었으니 이 아이는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야. 그런 믿음이 생겼어요."



이 문장을 읽고 나선 한동안 다음 문장을 이어가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기 때문인데 아마 우리 부모님도 내가 처음 걸었을 때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어서 자꾸만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의 어린 시절로 뛰어갔다. 또한 내게도 아이가 있었다면, 내가 부모였다면 나의 아이가 처음 걸었던 그 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싶어서. 너무 놀라고 벅찬 마음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그 순간을 목도하며 지나갔을 싶지만 이제 내가 위의 문장을 가슴에 남겼기에 앞으로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만난다면 이 글에 기대어 내 마음을 더 크게 부풀릴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몇 번이나 이 페이지를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다.

김달님작가의 그리운 것들은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책이 되었다.


결국 우리를 키우고 돌보는 것들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즉 한 사람의 세계를 잠시 엿보는 찰나에 이뤄지는 거였다. 그런 모든 순간들이 퍼즐처럼 맞춰져 어느 날의 내 모난 마음에 맞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의 다정한 마음에 들어오기도 한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가 겪은 상실감에서 건져올린 소중한 말들을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에서 읽어 본다면 분명히 허전하고 외로웠던 마음 한 편이 따뜻해질 것이다.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직접 그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고 당장 이 책을 지금 내 주변에서 가장 힘들어하고 있을 친구에게 선물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로 들어서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은 옆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았다. 이것을 계기로 만나서 두 눈을 직접 마주치며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도 좋을 것이다.

그동안 묻어왔던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 받으며 낄낄거리며 또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데 더할나위없이 좋은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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