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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평점 :
김지선 작가의 이전 책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참 좋게 읽었다. 여러 에피소드가 공감됐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꺼리들을 던져주어 지금도 휴대폰 e-book에 저장해 놓고 가끔씩 읽고 있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읽는 일! 너무 좋잖아!
<내밀 예찬>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내밀함에 관한 책이고 이 내밀함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의미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책 중에서 '작가의 말'이 참 잘 쓰여진 책을 보면 호감도가 더 상승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랬다.
p8
'내밀한'이 내가 가진 것, 즉 나의 마음, 나의 시간, 나의 이야기 등을 수식할 때, 이 단어는 타인가 나 사이에 널널한 거리를 만든다.
반면 '내밀한'이 관계성을 품은 단어와 함께 사용될 때, 이를 테면 '내밀한 대화'라거나 '내밀한 사이'라는 말에서 나와 각별한 타인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아진다.
이렇듯 '내밀한'의 단어에는 타인과의 거리와 친밀이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이 숨어 있고 우리는 이 <내밀 예찬>을 통해 작가가 수줍게 보이는 '내밀'의 다양성을 즐기면 된다.
직장인분들!
점심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각자 먹나요?
아님 같이 먹는 멤버가 있나요?
식사 후에는 뭘 하시나요?
나는 회사에서 점심이 나와서 다행히 메뉴 걱정은 하지 않고 즐겁게 먹은 다음에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에어팟을 끼고 유튜브를 본다. 주로 재밌는 예능 콘텐츠인데 이 시간 만큼은 사무실에 모든 팀원이 함께 있어도 서로 말을 걸지도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즉, 점심시간 만큼은 철저히 서로의 시간을 배려해주지만 모든 직장인이 이런 형태의 시간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밀 예찬>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 [점심이탈자] 에피소드가 가장 좋았다.
작가가 던진 <내밀 예찬> 중에서는 [무표정의 아름다움]도 들어간다. 표정관리, 즉 억지로 미소지어야 할 때도 무표정으로 일관할 수 있는 용기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으면 든든한 아이템이다.
나는 이 표정관리가 잘 안 되는 직장인의 한 명으로 상사에게 혼나면 뿔이난 눈과 볼, 입이 투명하게 보이고 기분이 좋으면 그 표정대로 또 다 내보이는 하수 중의 하수. 그래서 늘 마음을 되뇌이는 직장 철칙 중 하나가 '일희일비 하지 말자'다.
그러려면 이 무표정의 기술을 좀 배워야 하는데 영 쉽지가 않다.
이런 표정 관리에 능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그는 결단코 혼자만의 시간을 단단히 구축해 둔 덕분일 것이다. 그 시간동안 본인이 좋아하는 일, 어려워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다양한 경험과 데이터를 쌓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있게 혹은 마음 속 여유는 없지만 표정만큼은 여유있게 내보일 수 있는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나도 내향적인 편에 속해서인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홀로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고 슬그머니 내보는 용기의 횟수도 더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다독이는 다짐이 큰 결심으로 이어지는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의 무표정의 아름다움은 홀로 있는 책에서, 홀로 보는 영화에서, 혹은 홀로 쓰는 글에서 이뤄질 확률이 높겠지.
언젠가는 나도 여유롭고 우아하게 무표정으로 다정할 수 있길 바란다.
<내밀 예찬>의 부제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을 가장 잘 표현한 에피소드는 바로 [숨고 싶지만 돈은 벌어야겠고]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어느 연예인 못지않게 대중을 이끌어가는 일반인 셀럽이 있다. 인스타그램이 매우 활발해지면서 마치 연예인을 보듯 내가 팔로우한 힘있는 셀럽의 일상을 보며 그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모든 것들을 따라하고 열망하는 시대다.
즉, 누구나 마음 먹으면 내가 셀럽이 될 수도 있는 세상. 아니 그렇게 되라고 만드는 세상에서 내향인들은 고민한다.
"아무도 날 못 알아봤으면 좋겠지만 팔로워 수는 10만이 넘고 싶다고요"
성향과 생존의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걸까.
이 책은 세상 모든 I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물론 E라고 해서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가끔은 '혼자인 편'을 더 자주 선택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는 사람들이 보내는 다정한 거리감을 알아주면 좋겠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