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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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손원평 작가하면 '아몬드'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인 그 책을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려볼까도 했고, 사서 읽을까 싶어 장바구니에도 넣어 봤지만 아직 연이 닿지 않았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번 튜브를 읽고 나서 바로 아몬드를 주문했다.



'아, 이런 스타일의 작가님이시구나'

'이런 글을 쓰시는 거구나'싶었던 《튜브》는 절망으로 시작해서 절망으로 끝나는, 그러나 그 절망을 품고 있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희망은 아주 작고 작은 '변화'에서부터 출발한다.


김성곤은 영양제나 수액을 맞듯 일정하게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았고 실제로 그런 것들은 잠깐이나마 그에게 불끈 힘을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삶을 뒤로하고 한강에 뛰어내리려 했던 김성곤은 어쩐지 죽음마저도 자유롭지 못했다. 산다는 게 지겹고, 이미 아내와 딸은 그를 버렸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살아보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사실 나는 희망보다는 절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절망에서 아등바등 희망으로 가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노력과 좌절, 그렇지만 또 해보는 그런 이야기들이 결국 나와 비슷해서 공감이 간달까.


김성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잘 살아보고 싶어서 꿈을 향한 집념을 행동으로 옮겼고 그게 잘 안 됐을 뿐이다.


운도 없었고, 그 자신의 성격도 문제였고, 안 되려면 다 안 되는 이유가 있는 상황.

절망에 절망에 또 절망까지 이르다보면 그 누구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랴.



김성곤은 작은 결심을 다졌다. 자세를 바르게 하는 걸 지상과제로 삼기로. 모든 걸 다 잊고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목표로 삼겠다고 말이다. 그 시시한 다짐이 결과적으로 과감한 여정의 첫발자국이라는 걸 그로선 아직 알 길이 없었다.



정말 사소하고 작은 다짐. 자세교정을 시작으로 김성곤이 인생은 조금씩 그전과 다르게 흘러간다.


우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모든 건 김성곤의 '마음'에서 달라진 이야기이고 결국 마음을 고쳐 먹으면 생각 > 태도 > 행동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읽는 내내 별 볼 일 없던 김성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조차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던 긍정의 프레임에 대해 바뀔 수 있었으니,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겠지.



성장소설답게 이 책의 상당수 문장은 어른으로 잘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조언들이 숨겨져 있다.


아니 대놓고 드러나 있는 부분도 많으니

-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

- 시작이 무서운 사람들

- 용기가 없어 무조건적인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소설의 형식으로 내 마음을 자극하는 걸 더 좋아하는데 책 속 인물들이 실제 내 옆에 있는 사람같기도 하고, 그래서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기분만으로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책이 너무 좋아서 모든 이야기를 이곳에 쓰고 싶지만 다 풀어 놓으면 이 포스팅을 읽고 찾아볼 독자들에게 미안해지니 스포는 여기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치원 차량을 도와주시는 아저씨에 대해서는 일절 금하겠음!)


다만, 이곳에 쓰지 못한 인생에 대한 문장들을 곳곳에서 발견하시고 지금 무기력한 분들이 있다면 설렁설렁 읽어도 좋으니 옅은 희망을 품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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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 예찬 -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
김지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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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작가의 이전 책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참 좋게 읽었다. 여러 에피소드가 공감됐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꺼리들을 던져주어 지금도 휴대폰 e-book에 저장해 놓고 가끔씩 읽고 있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읽는 일! 너무 좋잖아! 


<내밀 예찬>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내밀함에 관한 책이고 이 내밀함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의미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책 중에서 '작가의 말'이 참 잘 쓰여진 책을 보면 호감도가 더 상승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랬다.


p8

'내밀한'이 내가 가진 것, 즉 나의 마음, 나의 시간, 나의 이야기 등을 수식할 때, 이 단어는 타인가 나 사이에 널널한 거리를 만든다.


반면 '내밀한'이 관계성을 품은 단어와 함께 사용될 때, 이를 테면 '내밀한 대화'라거나 '내밀한 사이'라는 말에서 나와 각별한 타인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아진다.



이렇듯 '내밀한'의 단어에는 타인과의 거리와 친밀이 적절하게 쓰일 수 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이 숨어 있고 우리는 이 <내밀 예찬>을 통해 작가가 수줍게 보이는 '내밀'의 다양성을 즐기면 된다.


직장인분들!

점심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각자 먹나요?

아님 같이 먹는 멤버가 있나요?

식사 후에는 뭘 하시나요?


나는 회사에서 점심이 나와서 다행히 메뉴 걱정은 하지 않고 즐겁게 먹은 다음에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에어팟을 끼고 유튜브를 본다. 주로 재밌는 예능 콘텐츠인데 이 시간 만큼은 사무실에 모든 팀원이 함께 있어도 서로 말을 걸지도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즉, 점심시간 만큼은 철저히 서로의 시간을 배려해주지만 모든 직장인이 이런 형태의 시간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밀 예찬>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 [점심이탈자] 에피소드가 가장 좋았다.


작가가 던진 <내밀 예찬> 중에서는 [무표정의 아름다움]도 들어간다. 표정관리, 즉 억지로 미소지어야 할 때도 무표정으로 일관할 수 있는 용기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으면 든든한 아이템이다.


나는 이 표정관리가 잘 안 되는 직장인의 한 명으로 상사에게 혼나면 뿔이난 눈과 볼, 입이 투명하게 보이고 기분이 좋으면 그 표정대로 또 다 내보이는 하수 중의 하수. 그래서 늘 마음을 되뇌이는 직장 철칙 중 하나가 '일희일비 하지 말자'다. 



그러려면 이 무표정의 기술을 좀 배워야 하는데 영 쉽지가 않다.

이런 표정 관리에 능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그는 결단코 혼자만의 시간을 단단히 구축해 둔 덕분일 것이다. 그 시간동안 본인이 좋아하는 일, 어려워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다양한 경험과 데이터를 쌓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있게 혹은 마음 속 여유는 없지만 표정만큼은 여유있게 내보일 수 있는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나도 내향적인 편에 속해서인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홀로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고 슬그머니 내보는 용기의 횟수도 더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스스로 다독이는 다짐이 큰 결심으로 이어지는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의 무표정의 아름다움은 홀로 있는 책에서, 홀로 보는 영화에서, 혹은 홀로 쓰는 글에서 이뤄질 확률이 높겠지.


언젠가는 나도 여유롭고 우아하게 무표정으로 다정할 수 있길 바란다.


<내밀 예찬>의 부제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을 가장 잘 표현한 에피소드는 바로 [숨고 싶지만 돈은 벌어야겠고]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어느 연예인 못지않게 대중을 이끌어가는 일반인 셀럽이 있다. 인스타그램이 매우 활발해지면서 마치 연예인을 보듯 내가 팔로우한 힘있는 셀럽의 일상을 보며 그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모든 것들을 따라하고 열망하는 시대다.


즉, 누구나 마음 먹으면 내가 셀럽이 될 수도 있는 세상. 아니 그렇게 되라고 만드는 세상에서 내향인들은 고민한다.


"아무도 날 못 알아봤으면 좋겠지만 팔로워 수는 10만이 넘고 싶다고요"

성향과 생존의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걸까.


이 책은 세상 모든 I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물론 E라고 해서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가끔은 '혼자인 편'을 더 자주 선택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는 사람들이 보내는 다정한 거리감을 알아주면 좋겠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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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서울 지망생입니다 - ‘나만의 온탕’ 같은 안락한 소도시를 선택한 새내기 지방러 14명의 조언
김미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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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서울인 나도 서울에서 살아본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때 부천에서 금천구로 이사간 뒤 중학교를 졸업했고, 다시 경기도 평촌과 수원으로 경기도민으로 지낸다.


늘 위로 이사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만 이건 진심이 아니다. 그냥 푸념인 정도이지 경기도민이 서울시민으로 넘어가려면 돈, 돈, 돈. 돈이 문제다.


처음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를 하니포터 서평단에서 신청했을 땐 순전히 제목에 끌려서였다. 나와 정반대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

가능하면 인서울을 꿈꾸는 나와 탈서울을 꿈꾸는 지망생 사이의 어떤 간극이 있는걸까 하고.


p11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제부턴가 서울에 산다는 것이 무척 고단한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원했던 서울살이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30대 중반에 길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왜 다른 삶을 꿈꾸는지 고민하는 과정을 적기 시작했다. 탈서울을 원하면서도 쉽사리 결정할 수 없던 나는 먼저 결정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의 첫 독립은 한국만큼이나 월세가 비싸다는 영국의 런던이었다. 첫 직장에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이것저것 다 싫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퇴사 후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처음 구한 집은 런던 중심가에서 떨어진 3존이었고(도심은 1존) 왕거미와 함께 동거를 해야 하는 낡은 방 한 칸이 월 110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그때는 엄연히 학생자격으로 간 것이었고, 그곳에서 일하거나 뿌리를 내릴 생각보다는 여행의 개념이 커서 '주'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크지 않았지만 현재 내가 서울에서 이 월급을 받으며 월세 100만원을 내고 산다면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 눈 앞까지 닥쳐올 듯 싶다.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작가도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방을 넓혀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버텼지만 15년간 서울에 살면서 여러 자취방을 옮긴 결과는 다 거기서 거기. 원룸에서 1.5룸, 허름한 빌라의 투룸으로 넓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마어마한 돈이 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서울의 집값이었다.



p19

좁은 방을 벗어나 인간답게 살려면 지방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지방에 가면, 열심히 일해 모은 내 저축액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집들이 있었다. (중략)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숨통 트이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 그것 말고는 없었다. 신선한 공기나 깨끗한 자연 같은 건 두 번째 문제였다.



나도 선뜻 서울로 갈 수 없는 건 집값이다. 2~3억 가지고는 턱도 없는 서울의 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엄청난 대출로 전세를 마련한다해도 30년 동안 빚을 갚는 동안 아끼고 또 아끼는 생활을 잘 버틸 수 있을지 자신도 없다. 아이가 없어 교육의 목적도 없고 경기도 외곽이라 어쨌든 지하철로 서울을 오갈 수 있으니(2시간 걸리지만..) 적극적으로 서울행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반면에 이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탈서울행을 시도하는 것도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이 용기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의 심정에 이어 과감히 탈서울을 감행한 사람들의 인터뷰로 넘어간다. 그래서 정말 진지하게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바꿔볼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용한 조언들이 펼쳐진다.


서울이 가진 뚜렷한 장점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다면 지방에서의 생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입을 모으는데 그 뚜렷한 강점이 꽤나 커서 더욱 치열한 계획과 고민이 필요하다.



p89

역시 일이 문제였다.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시 서울로 유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탈서울의 핵심은 지방에서 일자리를 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역시나 '일' 생계다. 먹고 사는 일 앞에서 우리의 주거지는 수시로 변동한다. 일자리가 많은 서울. 비교적 일만한 일을 구하기 어려운 지방소도시에서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는 일은 도전 주의 도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방으로 간다고 하면 제일 먼저 귀촌/귀농을 선택한 것인지, 프리랜서인지, 창업을 하는지 물어보는 것 같다. 이 책에서도 실제 위와 같은 세 가지의 옵션이 지방으로 거처를 옮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라고 하는 걸 보면 직업에 대한 다양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 또한 탈서울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떠나 지방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인터뷰에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키워드가 이어졌다. 일단 '집'이 해결되었으니(더 넓은 공간의 자가 마련) 늘 쫒기며 살던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이 여유는 삶을 질을 더욱 윤택하게 흘러가게 했으며 서울에서 관계맺던 사람들도 다양하게 유지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가족들도 인프라가 잘 구성된 지방 도시에서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는 특히 이 인터뷰가 매우 중요하다.

실제 탈서울을 경험한 사람들의 살아있는 이야기와 진지한 조언들을 책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심지어 나는 탈서울 계획도 없는데 꽤 유용한 정보들을 건졌다.


일이 됐든, 거주지가 됐든... 무서워서 못 했던 것들이 막상 겪고 나면 사소한 것들로 바뀌거든요. 이건 어떡하지? 저건 어떡하지? 했던 것들,

막상 자연스럽게 해결되거나 오히려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인터뷰 중




요즘은 <의식주> 중에서도 '주'가 큰 문제인 사회인 것 같다. 어느 정치당이든 집값안정을 목소리 높여 말하고 대중매체에서는 몇 십억 짜리 집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나온다. 연예인의 한강 보이는 집을 부러워하고 그 집이 매스컴을 타서 더 오르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이뤄지는 마당에 평범하다 못해 월 200만원도 간신히 버는 청년들에게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얼마나 많은 포기와 희생과 눈물이 더해져야 하는 걸까.


여러 이유로 탈서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탈서울 지망생입니다>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더없는 현실 조언을 건넨다. 그리고 탈서울 후 다시 인서울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감없이 더해져 이 책은 작금의 시대의 '집'이란 무엇인가, '집과 함께 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직설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그런 게 이 이야기의 강점이다. 

무조건 행복하게 끝나는 결말의 이야기는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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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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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의 제목에서 보듯이 돌봄의 행위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를 잠시라도 돌본 경험이 있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서 우리는 그 때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와, 이거 장난이 아니네?



엄마는 나이 육십 세에 팔순이 넘은 외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요양사자격증을 땄다. 생전 바깥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착실한 주부였던 엄마는 아빠와 나를 돌보는 것에 더해 이제는 할머니의 마지막 생애까지 돌보기로 마음 먹으신 거다. 분명히 외할머니는 결혼하지 않은 총각 삼촌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돌봄은 떨어져 살고 있는 장녀-엄마에게 넘겨졌다. 서른 넘어 바라보는 엄마의 삶에서 나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엄마처럼 나의 인생은 가족을 돌보다 마감하는 걸까. 결국 그 길 밖엔 없을까..




김유담 작가의 <돌보는 마음>을 읽는 내내 불행과 행복이 교차했다. 불행했던 이유는 피부에 와 닿는 다양한 돌봄의 종류가 필터없이 보여졌기 때문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이유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 돌봄의 세계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바래진 주인공들의 감정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대추>에서 할머니는 손주 영석에 대한 사랑이 당연하지만 영석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대추를 힘들게 구하면서도 서늘하게 할머니가 맛있는 대추를 드시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설 속 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는데 그건 놀라서라기 보단 영석이 느끼는 할머니의 사랑이 어떤 불편한 상태로 공존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친할머니도 큰 집 사촌 오빠를 신으로 모시듯 아꼈다. 좋고 예쁜 건 죄다 오빠에게 주면서 명절 때마다 보는 내겐 왜 고추를 달고 나오지 못했냐고 매번 인사처럼 하셨으니 할머니가 사는 세상에서 남자는 말 그대로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그 말에 별로 서운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의 그 말은 나를 싫어해서는 아니고 그저 아들이 없는 우리 집을 진심으로 안타까워신 것처럼 들려서였다

할머니의 삶에서 아들이 없는 우리 부모님의 삶은 불완전한 형태 그 자체였으니 늘 고추를 바라셨던게 아니었을까. 




<돌보는 마음>에서 <내 이웃의 거리>는 단연 최고였다. 집값, 마스크, 맘카페의 익숙한 언어로 이루어진 두 집의 관한 이야기는 모성에 기댄 두 여성의 연대에서 시작하다가 집값 시세 차이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간의 멀어진 거리를 느끼는 게 묘미였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마음에서 비롯된 친절은 결국 무리를 해서 빚을 내 매매를 한 상대의 집값이 10억 시세를 찍었다는 사실에 그 동안 배풀었던 소설 속 내가 지불했던 소소한 비용까지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이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 사실 이런 이런 일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봐오고 있어 마냥 웃고 넘길 수 있지만 또 마냥 우습지만은 않은 뾰족한 이야기였다.





정윤은 한 대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4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도 없다고 엄살을 떠는 혜미가 10억짜리 집을 소유한 자산가라니. 1000원이라도 더 싼 기저귀 핫딜을 찾느라고 밤잠을 설치는 혜미를 궁상맞다고 속으로 비웃었는데 오히려 혜미 입장에서는 마흔이 넘도록 내 집 마련도 하지 못하고 돈을 쉽게 써 대는 자신이 더 우스워 보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08)


사전에서 돌보다의 의미를 찾아봤더니 <1. 힘써 도와주다. 2. 뒤를 보살펴 주다. 3. 보호하다>였다.




분명 <돌보는 마음> 속 주인공들은 모두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를 돌보는데 헌신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 대상은 남편일 수도, 자식일 수도, 부모일 수도, 아니면 모두 다 일 수도 있지만 정작 돌봄의 대상에서 쏙 빠진 건 . 나를 보호하고 보살피는 대신 그 애쓰는 최선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해야만 한다고 의무로 받아들인 사람에게 분투하는 걸 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나를 돌볼 수 있을 것인지 계속 곱씹게 됐다.




아직까지는, 나는 나를 보호하는데 더 분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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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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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차분한 채도를 가진 책을 읽었다.

소설 <영의 자리>는 무채색에 가까운 이야기에 아주 조금씩 채도가 높은 색깔로 덧칠되지만 멀리서 보면 결국 처음보다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은 그런 색깔의 이야기다.


'나'는 20대에 해고를 당하고 급하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겨우 1년이 넘기고 폐업을 당한 백수이자 취준생이다. 딱히 무얼 하고 싶지도, 그렇지만 뭘 하지 않기도 애매해 어느 약국의 전산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대뜸 약사는 "유령이 또 왔네"라는 말을 남기지만 처음에 '나'는 그 말이 의미인지 몰랐다. 같이 일하는 조부장은 몇 년 째 약국에서 일한 경력이 있고 그런 삶에 익숙한 듯 유령임을 자처하는데...


p032-033

유령이 되기로 했다. 유령이라고 하니까. 믿음 앞에서 논리는 무용했다. 사람들은 사실을 근거로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할 뿐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전히 '생'의 기분에 젖어 있었던 듯했다. 상실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유령이 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영의 자리>에서 영은 숫자 '0'을 말한다.

참 신비하고 오묘한 숫자인 0

더할 때나 뺄 때, 곱할 때, 나눌 때 옆 자리 수에 상관없이 존재할 것 같지만 실로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숫자다. 특히 곱셈에서 0은 어떤 수를 갖다 대더라도 모든 수를 아무것도 없음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조부장의 도움을 받으며 약국일을 배운다. 처방전을 입력하고 조제약을 확인하고 약사를 도와 조제까지 돕는다.


<영의 자리>를 읽다 보면 작가님이 직접 약국 아르바이트를 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꽤 자세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가령 향정신성의약품은 보건소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따로 모아두고 실재고를 맞춰놔야 한다든가 제약사 영업사원들이 오는 장면이나 의약분업의 일화, 약국에서는 치료가 이뤄지면 안 된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재밌게 읽었다. 소설을 읽으며 몰랐던 지식을 얻는 것도 생각지 못한 큰 기쁨일지도 :)

아! 후시딘과 마데카솔 효능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다면?

<영의 자리>에서 아주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무기력한 채로 약국의 전산원 아르바이트생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끔 약국에서 먹는 식빵이나 퇴근 후 집에서 시켜 먹는 단맛으로 삶의 달콤함을 맛보지만 어디까지나 그뿐일 뿐, 소수점을 하나씩 넘는 숫자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이는 '나'의 의욕이 삶을 크게 이끌지도 않고 버려두지도 않은, 수많은 0의 소수점 세계에 잠시 안착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소설 <영의 자리>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조' '약사' '약사 어머니' 등 유령이 된 존재가 많다. 그 말은 유령은 우리 곁에 얼마든지 있으며 그들의 존재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채도가 낮은 모습을 하고 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의지보단 살아낼 뿐이라는 수동적인 모습에서 우리 모두는 유령을 닮았지만 어쨌든 0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거운 셈을 치루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다행히 이 책은 결국 아주 작은 희망에 결말을 슬쩍 기대어 본다.

숫자 0은 얼마든지 변모할 수 있고 달라질 수 있는 대단한 수이니까.


정말 갑자기 그리고 우연히, 아니면 필연적으로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밤이 깊도록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력서를 작성한다.

이처럼 인생은 갑자기 어떤 또렷한 계기가 없이도 어떠한 연쇄작용으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곳으로 가닿아 있기도 한다.

아마 이렇게까지 되는 이유는 1에 가기 위한 마음과 노력 덕분이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점을 밟지 않고 더 높은 숫자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인다. 결국 우리들은,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건 이 무수한 0의 자리에서 맴돌며 삶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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