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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평점 :
<돌보는
마음>의 제목에서 보듯이 돌봄의 행위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누군가를 잠시라도 돌본 경험이
있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서 우리는 그 때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와, 이거 장난이 아니네?”
엄마는
나이 육십 세에 팔순이 넘은 외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요양사자격증을 땄다. 생전 바깥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착실한 주부였던 엄마는 아빠와 나를 돌보는 것에 더해 이제는 할머니의 마지막 생애까지 돌보기로 마음 먹으신 거다. 분명히 외할머니는 결혼하지 않은 총각 삼촌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돌봄은 떨어져 살고 있는
장녀-엄마에게 넘겨졌다. 서른 넘어 바라보는 엄마의
삶에서 나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엄마처럼 나의 인생은 가족을 돌보다 마감하는 걸까. 결국 그 길 밖엔 없을까..
김유담
작가의 <돌보는 마음>을 읽는 내내 불행과 행복이
교차했다. 불행했던 이유는 피부에 와 닿는 다양한 돌봄의 종류가 필터없이 보여졌기 때문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이유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 돌봄의 세계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바래진 주인공들의 감정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대추>에서 할머니는 손주 영석에 대한 사랑이 당연하지만 영석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대추를 힘들게 구하면서도 서늘하게 할머니가 맛있는 대추를 드시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설
속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는데 그건
놀라서라기 보단 영석이 느끼는 할머니의 사랑이 어떤 불편한 상태로 공존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친할머니도 큰 집 사촌 오빠를 신으로 모시듯 아꼈다. 좋고 예쁜 건 죄다 오빠에게 주면서 명절 때마다
보는 내겐 왜 고추를 달고 나오지 못했냐고 매번 인사처럼 하셨으니 할머니가 사는 세상에서 남자는 말 그대로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그 말에 별로 서운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의 그 말은 나를 싫어해서는 아니고 그저 아들이 없는 우리 집을 진심으로 안타까워신 것처럼 들려서였다.
할머니의 삶에서 아들이 없는
우리 부모님의 삶은 불완전한 형태 그 자체였으니 늘 고추를 바라셨던게 아니었을까.
<돌보는 마음>에서 <내
이웃의 거리>는 단연 최고였다. 집값, 마스크, 맘카페의 익숙한 언어로 이루어진 두 집의 관한 이야기는
모성에 기댄 두 여성의 연대에서 시작하다가 집값 시세 차이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간의 멀어진 거리를 느끼는 게 묘미였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마음에서 비롯된 친절은 결국 무리를 해서 빚을 내 매매를
한 상대의 집값이 10억 시세를 찍었다는 사실에 그 동안 배풀었던 소설 속 내가 지불했던 소소한 비용까지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이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 사실 이런 이런 일은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봐오고 있어 마냥 웃고
넘길 수 있지만 또 마냥 우습지만은 않은 뾰족한 이야기였다.
“정윤은
한 대 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4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도 없다고 엄살을
떠는 혜미가 10억짜리 집을 소유한 자산가라니. 1000원이라도
더 싼 기저귀 핫딜을 찾느라고 밤잠을 설치는 혜미를 궁상맞다고 속으로 비웃었는데 오히려 혜미 입장에서는 마흔이 넘도록 내 집 마련도 하지 못하고
돈을 쉽게 써 대는 자신이 더 우스워 보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 208)
사전에서
돌보다의 의미를 찾아봤더니 <1. 힘써 도와주다. 2. 뒤를
보살펴 주다. 3. 보호하다>였다.
분명 <돌보는 마음> 속 주인공들은 모두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를
돌보는데 헌신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 대상은 남편일 수도, 자식일
수도, 부모일 수도, 아니면 모두 다 일 수도 있지만 정작
돌봄의 대상에서 쏙 빠진 건 ‘나’다. 나를 보호하고 보살피는 대신 그 애쓰는 최선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해야만 한다고 의무로 받아들인 사람에게 분투하는 걸 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나를 돌볼 수 있을 것인지 계속 곱씹게 됐다.
아직까지는, 나는 나를 보호하는데 더 분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