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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평점 :
우연이었다.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어쩌다 어른>을 통해 설민석의 강의를 보게 되었다. 이렇게 역사 강의가 재미있다니! 쉽고 재미나게 설명하는 입담에 금세 빠져들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어찌나 아쉽던지, 여운은 꽤나 오래 남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한동안 이 책은 베스트셀러를 점령하고 있었다.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을만큼 독자를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고,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연말연시를 의미 있게 보낸다.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자 역시 역사가 어려운 사람 중 하나였는데, 성인이 된 이후 역사가 새롭게 다가왔다고 한다. 지금 역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저는 여러분에게 한국사란 '미래를 대비하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현재를 마주할 수 있게 하는 한국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인식하고 있어야 할 삶의 밑거름인 것이지요. (프롤로그 中)
이 책에는 27명의 조선왕 이야기가 담겨있다. 차례를 보면 1대부터 27대 왕까지 특성이 한 마디로 정리되어 있다. 이빨 빠진 호랑이 태조, 무늬만 호랑이 정종, 진짜 호랑이 태종, 위대한 호랑이 세종, 피곤한 호랑이 문종, 어린 호랑이 단종, 무서운 호랑이 세조, 단명한 호랑이 예종, 모범생 호랑이 성종, 미친 호랑이 연산군, 변덕쟁이 호랑이 중종, 9개월만 호랑이 인종, 엄마가 호랑이 명종, 도망간 고양이 선조, 억울한 호랑이 광해군, 무릎 꿇은 호랑이 인조. 와신상담 호랑이 효종, 힘없는 호랑이 현종, 금수저 호랑이 숙종, 병약한 호랑이 경종, 최장수 호랑이 영조, 완벽한 호랑이 정조, 무능한 호랑이 순조, 최연소 호랑이 헌종, 신데렐라 호랑이 철종, 비운의 호랑이 고종, 나라 뺏긴 고양이 순종 등 호랑이 혹은 고양이로 비유한 모습에서 무릎을 탁 치며 유쾌한 웃음을 날릴 수 있다. 특징을 잘 잡아서 꾹꾹 찔러주니 명쾌하게 역사 이야깃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각 왕의 앞에는 그 왕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한 페이지에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강의를 하는 듯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다보면 어느덧 음성지원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강의를 듣는 듯 생생하다. 전체적으로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잘 구성된 점도 특징이다. 그림, 도표 등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여 시각적인 효과를 누리도록 했다. 각 왕의 마지막 장에는 마인드 맵을 통해 한 눈에 들어오게 정리해놓았다. 시간이 지나도 그 부분만 살펴보면 읽었던 내용이 속속들이 기억날 것이다.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접했던 역사도 이 책을 통해 읽어나가니 흥미롭게 빠져든다. 특히 모르고 넘어갈 뻔 했던 왕들, 잘 알려지지 않은 왕들도 특징을 잘 짚어주니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대한제국 제1대 황제였던 26대 고종, 대한제국 제2대 황제였던 순종의 이야기는 잘 알지 못했기에 이번 기회에 정리해둔다.
조선 왕조가 무너져가고 있을 때, 왕이 된 고종에 대한 평가는 망국의 군주였다는 게 지배적이지요. 그로 인해 결국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우며 조선왕조를 부흥시키려 했으며, 을사조약과 같은 외교침탈의 문서에 승낙하지 않았다는 점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요. 고종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481쪽)
고종과 순종이 함께 커피를 마신 일화도 충격적이다.
1898년에 러시아 역관 김홍륙이 고종을 독살하기 위해 고종이 즐겨 마시던 커피에 독약을 넣어요. 당시 커피 맛이 이상하다고 느낀 고종은 바로 뱉어버렸지만, 순종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끝까지 마십니다. 아마도 커피광이었던 아버지 고종은 커피 맛의 변화를 금세 눈치를 챘지만, 순종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요. 김홍륙의 독차사건으로 순종은 이가 다 빠져 틀니를 끼고 살아야 했고, 혈변을 자주 누는 등 몸이 극도로 안 좋아져요. 결국 이 때문에 순종의 몸과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요. (489~490쪽)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가장 마지막 장인 순종실록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몰랐는데, 한일병합조약의 내용으로 마무리된다는 글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현재보다는 나은 모습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역사 공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점에서든 교훈을 주기 때문에,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 역사의 변화를 통해 배신, 감동, 사랑 등 다양한 인생의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에 어떻게 나아갈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인생에 있어서 어떤 점을 염두에 두며 타산지석으로 삼을지 생각해본다.
이 책은 쪽집게 과외같은 느낌을 준다. 설명을 쉽게 잘 하고 쏙쏙 들어오게 만들며, 핵심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 직접 읽어보니 온라인 서점이나 북카페 등지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조선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단 한 권의 친절한 책,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