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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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가"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덴마크 베스트셀러 저자의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스벤 브링크만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서 생각해보니까 전작 <스탠드펌>을 쓴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책의 분야를 크게 가리지 않아서 자기계발서도 읽어보는 편인데 다른 책들을 읽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소설 작가나 인문학자 중에서 자기계발서를 경멸하는 사람도 꽤 많다.

자기계발서는 한번씩 마음가짐을 다잡거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읽다보면 어떤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데 뻔하디 뻔한 말, 또는 다른 자기계발서나 통계, 실험의 부분을 그대로 옮겨온 책들도 많다는 게 흠이다.

<스탠드펌>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이라는 책과 함께 유명한 '안티-자기계발서' 책인데 일부러 자기계발서를 풍자해 7가지 꼭지로 목차를 짠 것이 정말 기발했다.

이렇게 넘치고 넘치는 자기계발의 홍수 속에서 스벤 브링크만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삶'이라는 부제로 <스탠드펌>을 내서 되게 통쾌했다.

스벤 브링크만의 신작, <철학이 필요한 순간>도 본인만의 줏대와 잣대가 느껴져서 생각할 거리를 마구 던져주는 책이다.

영제 'Standpoints'라는 말처럼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굳건하고 단단히 서 있을 관점들을 제시해주는데 책이 던지는 10가지 의미를 천천히 따라가보면 정말 재밌다.

목차와 함께 시작하는 글에 있는 작가의 생각들을 조합해보았다.

목차 X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10가지 생각'

1강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 우리에게 있는가_아리스토텔레스의 선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선이다'

2강 쓸모없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 목적의 왕국_칸트의 존엄성

-'존엄성은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

3강 지키지 못한 것들에 왜 죄책감을 느끼는가_니체의 약속

-'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다'

4강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_키르케고르의 자기

-'자기란 관계 그 자체와 관계하는 관계다'

5강 불확실한 세상에서 신뢰를 쌓는 방법_아렌트의 진실

-'진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진실할 수 있다'

6강 타인에 대한 나의 영향력을 점검하라_로이스트루프 책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의 삶 무언가를 손에 쥐는 일이다'

7강 내가 아닌 존재에 어떻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_머독의 사랑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

8강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것_데리다의 용서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

9강 어떤 순간에도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가_카뮈의 자유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10강 내 삶의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_몽테뉴의 죽음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

 

 

 

 

-어쩌면 의미는 삶의 외부, 이를테면 물리학자의 관점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닐까요? 우리가 시를 감상할 때 시집의 무게를 재거나 잉크의 성분을 분석하지는 않으니까요. 이처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바깥에서 삶을 관찰하기보다는 오히려 삶 속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삶의 의미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얻기 위핸 도구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과 그 자체를 위해 몰두하는 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지, 우디 앨런처럼 천문학적으로 먼 거리에서 삶을 관찰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제가 이 강의를 통해 다루려는 '태도 또는 관점 standpoints' 입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불확실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있을 만한 단단한 토대를 제공하지요.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기본적인 전제 가운데 하나는 역설입니다. 그러니까 인문학을 포함해서 많은 학문은 바로 그 쓸모없음 덕택에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가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서는 쓸모만 따져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 깊은 의미에서, 더 실존적인 의미에서 쓸모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과 놀이, 사랑, 윤리 같은 가치는 쓸모없을 때, 그러니까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쓰이지 않고 그 자체로 목적일 때 가장 쓸모가 있습니다.

이 책의 43쪽까지는 책을 시작하는 서문으로 할당되어 있는데 다른 책에 비해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만큼 중요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 다 들어있달까!

주로 나오는 말은 목적, 수단, 도구, 쓸모... 우리가 흔히 따지는 가성비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관점들에 경종을 울리며 우리는 쓸모없음 덕택에 쓸모가 생기는 다소 역설적이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을 말해주고 있다.

요즘 핫한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라는 배스트셀러에서도 바로 그 점들을 언급해주고 있다.

우리가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역사'가 우리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무엇보다 쓸모있는 것들이 되어주고, 삶이라는 문제에 있어 완벽한 해설서가 되어준다는 통찰이다.

알기 쉬운 예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김부석의 <삼국사기>의 이야기 중 민간 설화나 쓸모없다고 빠져버린 바로 그 이야기들을 묶어서 이렇게 오래토록 전해오는 유의미한 자료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퇴근 후 가게 되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었는데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그거 왜 해?", "그거 한다고 바로 업무에 써먹을 수도 없어"이다. (사실 이것보단 더 장황하게 들었지만 요지는 그랬다.)

참 어이가 없어서 말문을 잃었으나 나름 유하게 답을 하고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때 "왜 당신은 철학을 왜 공부하나요? 인문은 왜 공부하죠?" 라고 역질문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다!

나만 해도 거창하지 않은 이 공부를 가지고 주변에서 난리인데 이런 '쓸모없음'에 온 생애를 걸고 사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라고 웃어넘기기엔 하기엔 내가 아직 편협한가보다.

그래서 저자가 계속 팩트폭력하는 것도 바로 이 사실이다.

그 어떤 학문이나 관점도 철학보다 쓸모없지 않고, 그래서 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라는 것.

우리는 너무 쉽게 지나쳐버리거나 남용했던 '철학'이라는 말을 다시 깊숙이 깊숙이 들어가보고 쪼개보고 들여다봐야한다.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도구화에 저항하는 최전선에서 우리를 지키고 이끌어줍니다. 쓸모없는 것이란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들이지요.

우리는 그런 쓸모없는 활동에 시간을 쓰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요즘처럼 도구화된 시대에서는 그런 쓸모없는 활동이야말로 삶의 진짜 의미를 되찾아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쓸모없는 일을 하세요. 쓸모없음이야말로 최고의 선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연습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건 별 뜻 없이 중얼대는 말이 아닙니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주관이나 취향도 아니고, 도구화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도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말이니까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에는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선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의 읨를 되새길 수 있고, 선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우리 삶을 이끄는 관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빙고! 내가 그동안 생각하고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거였다.

왜 사람들은 당장 눈 앞에 이익만 따지면서 근시안적으로 살까, 남을 헤칠까. 그렇게 살아서 그러면 더 행복해지고 넉넉해졌을까?

하지만 지혜와 덕이 부족해서 이렇게 멋들어진 말을 하지 못했는데 내가 살면서 느낀 것들이 녹아있었다.

만약 이렇게 철학하면서 살 수 있다면 나는 쓸모를 따지는 사람보다 불행하더라도 더 행복할 것 같다.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

-아이리스 머독

 

 

-사르트르가 삶의 관점을 선택하거나 창조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머독은 관점이 선택될 때보다 주어질 때가 많다고 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주어진 것을 인식하고 발견하는 일이지요. 머독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우리 주변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충분히 관심을 가진다면, 별다른 문제없이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러 관점을 통해 무슨 일이 옳은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머독은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실존주의가 말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따지고 선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그리고 다양한 상황에 따르는 사람들의 행동에, 그리고 주된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관점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라는 문장 뒤에는 이런 구절이 이어집니다. "예술과 도덕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발견이다."

-머독은 사랑을 말할 때 느낌이 아닌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사랑은 특정하 감정이나 느낌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그렇게만 설명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너무나도 가볍고 가변적인 것이 됩니다. 사랑을 그렇게 정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자기애를 넘어 지속적인 관심을 다른 이에게 꾸준히 쏟는 것으로 여겨야만 합니다. 그래야 사랑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머독의 말에서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발견을 배울 수 있었다.

나 살기 바쁜 이 세상에서 우리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 자체가 사랑이라고 정의했고, 순간 순간의 발견들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쏟는 관심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쏟는 관심이자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곱씹을수록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 말들의 무게를 그 자체로 목적이되는 사랑, 용서, 관용, 선, 자유, 죽음... 과 같은 수많은 철학들을 연관해서 살고 싶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

-미셸 드 몽테뉴

-"철학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위한 준비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합니다."철학에 정통한 사람들의 공부라는 게 죽음에 대한 탐구일 뿐이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보이는 것 같네." 또한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올바르게 철학하는 사람들은 죽어가는 일을 위해 수련 중이고, 따라서 죽음을 누구보다 덜 두려워한다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설과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이 죽음을 위한 수련이며, 철학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죽음을 덜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한 사업가가 <뉴옥타임스>에 쓴 <더 행복해지려면 죽음을 더 많이 생각하라>라는 글에서 더 분명한 사례를 마주했습니다. 저라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네요. "아니예요. 우리가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요.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죽음을 생각해서 행복해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런 생각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이번에 계속되는 의미와 쓸모와 도구에 관한 이야기.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죽는걸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걸까. 이런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던지다보면 결국 삶이란 죽음을 위한 수련이며, 죽음을 위한 연습이고, 더 잘 죽기 위한 거라는 믿음이 확실해진다.

가끔 '메멘토모리', 즉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우리나라에서 보통 번역되는 이 말을 쓸모의 관점에서 끼워맞추는 사람들에게 또 한번 뼈 때리는 말을 날린다.

그래요. 아니예요. 죽음은 그것이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에요.

 

 

"불안과 허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도구화란 목적보다 수단을 중시함으로써 수단이 목적으로 변질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런 현상에 맞서 제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 활동을 삶의 지침이자 토대가 될 관점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활동은 실용성의 관점에서 보면 쓸모없는 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무척 쓸모 있는 형태의 쓸모없음입니다. 저는 이 강의를 통해 철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바로 철학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삶의 도구화에 맞서는 길이라는 생각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여기서 제가 철학을 도구화화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저는 가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철학적 삶은 의미를 향한 수단인 동시에 그 자체로 목적이지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선으로 여긴 행복을 묘사할 때 했던 말과 같습니다.

결국 <철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철학을 통해 그 자체로 의미있는 삶을 살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같다.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거나 바꿀 수 없는 가치들을 요즘 팽배하는 수단이나 목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에 관해 쓸모없음의 역설을 가르쳐준다.

누굴 만나고 어떤 것을 배우고 이걸 하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따지기 전에 내 안의 질문들이 숙성되어 자신만의 관점으로 살아갈 힘을 준다.

누구나 철학은 필요하다.

근데 그 철학이 왜 필요하고 의미가 있는지 이 책에서 계속 계속 던져주는 철학적 물음들을 따라가면서 쓸모와 무쓸모에 관해 생각해봐도 좋겠다.

말하듯이 흘러가면서 중요한 의미들을 얘기해주는 강연식의 책이 참 좋다.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 <담론>, 그리고 박웅현 CD의 <여덟 단어>, <책은 도끼다> 처럼 이 책도 내가 좋아하는 리스트에 꼭 넣어야겠다.

*이 글은 다산초당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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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좀 빼고 삽시다 - 아픔을 끌어안고 사는 우리들에게
명진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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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좀 빼고 삽시다>의 저자는 무려 50년 간 수행하고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하신 명진 스님이다.

영성 지능에 관심이 많아서 특정 종교나 분야에 상관없이 오랫동안 수련하신 분들의 책은 꼭 읽는 편인데,

이 <힘 좀 빼고 삽시다> 책은 그동안 명진 스님이 겪어오신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인생, 그리고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는 기분이다.

근데 어투는 어찌나 거침없고 빵빵터지시는지 울다가 웃다가 한 편의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같고 예능 같기도 하고...

아무튼 겉 잡을 수 없는 분위기에 압도되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음공부를 하는 초심자나 젊은 친구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싶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다.

부제인 '아픔을 끌어안고 사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일침이 정말 힘들거나 아플 때 읽으면 더더욱 위로받는 기분이다.

명진 스님이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고, 스물다섯 살 때 하나뿐인 남동생을 군 사고로 잃었다.

그리고 수많은 전학을 하고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우연히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무주 관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후 불교에 귀의하셨는데 그 마저도 평탄치 않았다.

누군가의 삶이 평범하다면 명진 스님의 삶은 정말 기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항상 질문하고 깨어있는 삶을 사셨나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는 누구보다 치열한 시간이 있었다.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도대체 죽는 게 뭔지, 사는 게 뭔지, 나는 누구인지를 간절하게 물었을 뿐이다."

 

 

-"왜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까? 남들은 부모와 같이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왜 친척집으로 떠돌아다녀야 합니까? 어째서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한 겁니까?"

-그때 누가 "생자필멸이요 회자정리라,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해주었다면 내가 조금 덜 괴로웠을까? 우리들 각자의 삶이 모두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더라면 조금 덜 불행했을까? 인생이란 것이 고통의 바다이며 본디 무상하다는 것을 어린 나이의 내가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힘든 시절, 때로는 책과 노래에 위로받았다. 어쩌면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더 많이 '나는 왜 살까?' 하고 물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알게 모르게 부처님이 손바닥 위를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

"예."

"무엇이 '예'라고 대답했소? '예'라고 대답한 놈이 뭐요?"

-남악 회양이 선종의 육대 조사인 혜능을 찾아갔다. 그가 엎드려 절을 하고 법을 물으려고 하는 순간 혜능 선사가 먼저 물었다.

"어떠한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너는 누구인가?'하고 물은 것이다. 회양 스님은 그 물음에 앞뒤가 꽉 막혔다. 물어보려던 질문도 잊은 채 돌아갔다. 그리고 팔 년 동안 '그때 뭐라고 대답을 했어야 할까'를 화두로 삼아 공부했다.

-나는 스님께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이야기,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뭇엇인지 고민하던 것,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그러고 나서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겁니까?"

"내가 나를 알아야 돼. 다른 일은 전부 다 그다음 일이지. 나는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가는 공부를 하는 게 바로 불교야."

내 인생을 바꿔 놓은 말씀이었다.

젊은 날의 명진 스님을 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보통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아마 청년기 때는 주먹 깨나 쓰셨을 것 같다.

그만큼 불의를 보면 못 참고, 세상과 인생을 비관하며 삐딱하게 바라보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아마 운명인지 필연인지 책과 음악, 그리고 교리로 그 에너지를 바꿨다.

'내가 누구인가.'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자 가장 쉬이 잊어버리는 질문인 듯하다.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그 말에서 중심이 느껴지는데 결국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리송해지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 평생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그 클리셰를 잊고 살았다.

나도 그 화두로 시작해서 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알고 싶다.

 

 

 

 

-복을 구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복은 누군가에게 빌어서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과란 것이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분명한지, 우리가 한 생각 한 생각 마음 쓰는 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똑똑히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복을 짓고 좋은 일 하는 것은 남이 하는 게 아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극락도 내 발로 찾아가고 지옥도 내 발로 기어든다. 그것을 자작자수라고 한다. 나의 무엇이 그렇게 하게 하는가? 내 행동, 내 말 한마디, 내 마음 씀씀이가 복도 짓고 화도 부른다.

-불행한 일이 잇따라 일어나는 내 삶이 괴로웠다. 그 괴로움 때문에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다. 어릴 때는 참 내가 박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누구인지 묻기 위해 그 시절을 지나온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그 고통의 세월이 나라는 사람의 운명 속에 감춰진 또 다른 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계속 쌈박질을 해댔다면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나이만 먹었을 것이다. 나는 고통스럽더라도 다음 생에도 어려운 환경에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다가 부처님 법을 만나는 게 소원이다.

-힘을 빼면 우리가 집착하고 욕망하는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생애 사람 몸 받고 더없이 수승한 부처님을 만났으니 부지런히 수행해 묶여 있는 모든 업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생사가 끊어진 대자유, 해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뿐이다.

삶은 참 불공평하다.

그리고 평범하다는 건 어찌보면 가장 예외적이고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것을 꽤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던 것 같다.

명진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건 정말 몸소 경험하고 체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셀럽 같은 유명인이 단지 공부를 많이 해서, 운이 좋아서, 본인이 노력이라고 생각해서 배운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서 배운 이 날 것의 생생함이 더 좋다.

그리고 인과응보라는 말을 당연하게 믿고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인과응보라는 말도 한 줌의 재처럼, 신기루처럼 먼 나라 이야기로 느껴지게 되었다.

악한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착한 사람들이 더 힘든 그런 반해피엔딩 이야기가 어른이 되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까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살려고 해봐도 도저히 천성인지 운명인지 되지도 않을 뿐더러 찝찝하고 불행해졌다.

명진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또 한번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비록 내가 마음처럼 큰 일을 당장 해낼 수는 없더라도, 지금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의 최선의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남에게 해나 폐를 끼치지 말고 되도록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오늘도 소망한다.

우연히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 나는 사춘기 때 다가왔던 그 순수한 물음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죽을 때까지 사춘기로 살고 싶다."

-누구나 살다 보면 사춘기를 겪게 된다. 반항하고 대들고, 못된 짓, 엉뚱한 짓을 도맡아 하는 시기가 그때일 것이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가장 순수한 물음은 바로 그 사춘기 때 본능적으로 다가온다. 유년기에서 어른으로 가는 그 시기에 '왜 살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이름이 남으면 뭐하고 남들이 알아주면 뭐하나? 나는 무엇일까?' 하는 아득한 물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사실 사춘기 때 불현듯 나오는 그 물음만큼 순수한 게 없다. 자기를 향한 순수한 물음, 그것은 어린 새가 허공을 향해 날아가는 날갯짓과도 같다.

-사춘기 때 처음 다가왔던 물음으로 돌아가는 것, 나를 향한 물음으로 끝없이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 바로 도를 향해 가는 것이다. 순수한 물음에 욕심이 붙어버리면 이미 그것은 아닌 게 되어버린다. 욕망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다. 도를 구하려는 욕심 또한 그렇다. 도를 구하고 자비를 베풀겠다는 욕심은 좋은 욕심이기 때문에 버리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욕심 또한 모두 버린 상태여야 사춘기 시절의 순수한 물음에 다다를 수 있다. 구하거나 바라거나 얻고자 하는 것이 없는 상태, 버리고 버린 상태가 수행의 자리다.

나는 사춘기 때 다가왔던 그 순수한 물음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죽을 때까지 사춘기로 살고 싶다.

피카소는 평생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살기를 바랐고,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이 천재임을 자부하는 진짜 어린아이와 유아틱함을 왔다갔다하면서 살았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인간의 삶과 정신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나누며 궁극적으로는 어린아이처럼 살 것을 말한다.

명진 스님의 말씀에도 우리가 왜 다시 순수함을 가진 때로 돌아가야하는지 철학적인 질문을 훅훅 던지신다.

나에 대한 질문과 자기를 향한 순수한 물음. 그때로 회기해서 살아야 하고, 스님도 그렇게 살고싶어 하신다.

과거의 나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다. 그래서 과거의 그 감정을 붙들고 아직도 놓아주지 못하는 후회와 집착들도 생기나보다.

그때 느꼈던 순수한 물음만을 남긴 채 다시 살아봐야겠다.

 

 

 

 

 

"절하되 자연스러워야 한다. 마음에 힘을 빼고 쉽고 편안하게 하라."

 

-정성을 다해 수행하면 꼭 그 결과가 나타난다. 한 생각 한 생각 속에 지극한 정성이 깃들어 있을 때 그 정성스러움으로 기도가 이루어지고 수행에도 진전이 있다.

-노파는 물과 물방울이 둘이 아닌 것처럼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알았다. 나고 죽는 문제, 존재의 문제에 대해 한 생각이 바뀜으로써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고 생사가 끄달리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식의 죽음으로 인해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를 물었으니 그 물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했겠는가. 그런 절절함을 바탕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게 수행의 핵심이다.

-공부를 하다 보면 '아, 내가 공부가 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잘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공부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나도 공부가 조금 되었던 것에 집착하여 오히려 공부가 안되었던 것이다.

...

일체 구하는 마음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흙탕물에 빠뜨린 구슬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구슬을 찾겠다는 급한 마음에 연못에 들어가 이리저리 뒤적거리면 흙탕물이 더 뿌옇게 일어나 도저히 구슬을 찾을 수가 없다. 가만히 기다렸다가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아졌을 때 구슬을 찾아 집어내면 된다.

공부를 잘해보겠다는 치구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공부가 안된다. 공부는 억지로 용을 써서 되는 게 아니다. 간절하되 자연스러워야 한다. 마음에 힘을 빼고 쉽고 편안하게 하라. 공부가 좀 되었다고 좋아하지도 말고 공부를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에 억지를 쓰지도 말고 그저 알 수 없는 그 자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그게 공부다.

이번에는 수련과 공부에 대한 말씀들.

어쩌면 가장 쉬우면서 어려운 게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집착에 모두 벗어나지 못했다.그게 더 잘 살고, 잘 하고, 잘 만들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는 열정이라는 이름의 가면으로 나를 속이기 때문에 이러면 나만 힘들다는 것을 알아도 쉽게 놓지를 못했다.

힘을 빼고 집착을 버리고 그저 묵묵히 할 일을 했을 때 실제로 결과는 좋게 나온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겸손에 대한 말씀도 참 좋았다.

이건 진짜 공부를 치열하게 해본 사람만이 느껴보는 감정이다. 또는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라는 결과의 운이 좋았거나.

어느 순간 내가 상위권인 것 같고 잘하는 것 같고 실제로도 이쯤해도 될 것 같다고 느껴질 때

오히려 무리를 하고 지치고 재미가 없어졌던 것 같다.

사람은 끝없이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내가 나를 물을 때 부처가 온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면 마음에서 힘을 빼야 한다. 힘이 들어가면 틀 속에 갇히게 되고 틀 속에 갇히면 선입견에 눈이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사는 건 무엇이고 죽는 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이런 물음을 치열하게 물으면 몸과 마음의 힘이 자연스레 빠진다. 그러면 세상이 거울에 비추듯 나에게 비춰진다.

-힘을 빼면 생각이 바뀐다

'마음에서 힘을 빼라!'

마음에서 히을 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모른다. 그 알 수 없는 물음 속으로 끝없이 몰입하다 보면 자연히 힘이 빠진다. '안다'라는 생각이 모두 비워지면 내가 정말 '모른다'라는 생각만 오롯이 남게 된다.

모든 앎이 끊어지고 완전히 힘이 빠진 그 자리, 그 완벽한 비어짐의 자리가 진정한 자유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뭘까? 같은 질문 없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대로 대학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삶이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질문 그 자체가 중요하다. 질문의 크기가 사람의 크기를 만든다. 질문이 깊을수록 생각도 깊어진다. 답이 없는 아득한 질문, 그것이 우리를 무한의 사유로 이끈다. 그 알 수 없는 세계, 무한의 세계가 궁극의 깨달음이다.

그렇기에 "내가 나를 물을 때 부처가 온다."하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물을 때, 그 막막하고 알 수 없는 물음의 자리에 설 때 우리는 부처가 된다. 그 어떤 것도 끄달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 부처다. 부처가 오더라도 따를 일이 없다.

마음 수행은 그런 것이다. 내가 나를 바로 알면 내 길을 가면 된다. 남 따라 살 필요도 세상의 요구를 쫓을 필요도 없다,

'나는 누구인가?' 끊임없이 물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안다'라는 그릇된 생각을 내려놓고 몸에서 힘을 빼듯 마음에서 힘을 빼고 살면 더없는 자유가, 무한한 행복이 거기 있다.

<힘 좀 뺴고 삽시다> 책을 읽다가 후반부쯤 가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내 속에 질문이 된다.

'스님,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겁니까?', '나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나를 아직 모르고, 어떻게 해야 잘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행이 스님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화두를 놓지 말고, 깨어있으라 말씀해주시면서 정작 '모른다'라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위로해주신다.

한 세 번 넘게 반복되는 것 같다. 위의 저 말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정진하면 자연스럽게 힘이 빠지고 무한한 자유가 있고 행복이 있다.

정말 그런지 나는 정말 알고 싶고, 그래서 계속 한다.

*이 글은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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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제 탓인가요? - 당신이 화가 나는 진짜 이유
로베르트 베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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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타인이 아니라 매일 자기 자신과 다투고 있다." _본문 중에서

제목인 <또 제 탓인가요?>를 곰곰히 생각하고 파고들다보면 이 책이 어떤 얘기를 해줄지 궁금해진다.

민감한 사람들이 자기 탓으로 돌리면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는걸까, 아니면 탓탓탓! 제목과는 다르게 반전으로 제 탓이 아닌 남 탓하는 투덜이들에게 보내는 일침의 내용인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문제와 해결에 대한 내용인걸까!

책을 조금만 더 들쳐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저자인 '로베르트 베츠'는 독일의 유명 심리학자인데 이 책은 누적 390주 동안 슈피겔 베스트셀러가 됐고, 독일 아마존 심리분야 1위를 석권했다.

이 책의 독일 원제는 '더 이상 못 참아!'로 '분노, 짜증, 압박감 등 나쁜 감정을 새로운 관점으로 분석하여 긍정적인 힘으로 바꿔주는 비법을 알려준다'고 한다.

내 감정은 나 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니다.

순간 순간 느끼는 기분과 감정에 대해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의 기술이 담겨 있었다.

 

 

-나를 욱하게 만든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과 감옥, 자신이 만들어낸 깊은 불화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고통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내면의 평화와 만족, 기쁨, 충만함과 성취감을 스스로 망쳤다는 사실을 직시할 생각이 없다면 당장 이 책을 내려놔도 된다. 이 책은 당신의 자아상과 인간관계,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바꿔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분노를 위한 분노는 이제 그만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외부세계에 대한 내면세계의 반응, 즉 분노의 소리를 집중하여 듣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삶이 평화롭기만을 바란다.

나를 화나게 하고 헐크로 만든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내 탓'으로 돌릴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마다 만나는 '분노 유발자'들을 도저히 그냥 봐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마인드로 살면 저 따위 매너가 나오는 것인가!

거의 뭐 70%의 확률로 (그렇다면 10일 중 7일이나 그렇다는거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화가 나고 다시 이어폰을 꼽고 내 갈길을 가고 기분을 풀고 잊어 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이것은 물이다>라는 책에는 깨어 있는 삶으로 진정한 인문학적 의미를 찾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책 중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우리가 퇴근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식료품점에 가서 그 긴 줄을 기다려서 장을 보는데 얼마나 지치겠는지.

그러다... 아니다, 좋은 책의 밑줄 긋는 문장들을 통으로 인용해야겠다.

-교통마비와 붐비는 상점 통로, 계산대 앞의 기나긴 줄 덕분에, 나는 생각할 시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나의 태생적인 디폴트세팅은 이런 상황 속에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이지요. 내가 배고프다는 사실, 내가 고단하다는 사실, 내가 무엇보다도 간절하게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 그렇지만 대부분의 일상에서 자기 자신에게 선택권을 줄 만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막 계산대 줄에서 자기 아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육중한 몸매에 멍한 눈, 짙은 화장까지 한 여성을 좀 다른 눈으로 보겠노라고 작정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이런 모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골수암으로 죽어가는 남편의 손을 붙잡고 사흘 밤을 한숨도 못 자고 꼬박 새웠는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바로 이 여자야말로 어제 악몽같은 서류 절차 때문에 고생하던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에게 자그마한 관료적 친절을 베풀어 난관을 모면하게 해준 운전면허과 직원, 저임금 직급이 속하는 그 여직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진실이 무엇인지를, 또한 누가 그리고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확신한다면 -자신의 디폴트세팅을 작동시키길 원한다면- 내가 그러하듯이, 아마도 여러분은 부질없고 성가시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따위는 별로 고려할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생각하는 법, 주의를 기울여 사물을 관찰하는 법을 진실로 배웠다면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터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의 자유, 정서적 안정을 성취하는 배움의 자유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즉, 무엇이 의미 있는 일이고 무엇이 무의미한 일인가를 여러분 자신이 자각적으로 결정하는 자유 말입니다.

좀 길지만 나는 이 소중하고도 진리인 인생의 클리셰를 한동안 잊고 살았다.

<또 제 탓인가요?>에도 내가 잊고 살았던, 그리고 일상에서 꼭 기억해야 할 의미있는 클리셰들이 가득했다.

이미 일어난 상황을 내가 바꿀 수는 없지만 내 감정과 자신을 바라보는 틀과 세상은 디폴트 셋팅이 아니라 내 선택으로 고를 수 있다.

<또 제 탓인가요?>에는 되게 재밌는 개념이 하나 나온다.

그것은 '또라이 천사'.

또라이 천사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의 감정 버튼을 눌러대면서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삶의 기쁨을 막거나 좋은 기분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런 사람들'을 또라이 천사라고 저자는 부른다.

그냥 또라이나 상또라이가 아니라 +천사 라는 아름다운 칭호를 붙여준 이유는 이 사람들이 나에게 크고 대단히 값진 선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또라이 속에 숨어 있는 천사를 발견하고 행복화 평화를 찾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나도 찾고 싶다.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

 

-세상에 멍청이들과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는 당신이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면 앞으로도 그런 '멍청이'나 '나쁜 사람'들을 계속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나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생각은 자신이 창조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매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창조자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자신을 생각하고 대하는 대로 주변 사람들 중 일부도 그렇게 대한다.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감정을 억압하고 맞서 싸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 외에는 감정에 대처할 다른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없이, 삶에 대한 특별한 기쁨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또한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인생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는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행복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생각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된다니.

허무맹랑한 끌어당김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이 이끄는대로 결과와 현실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어떤 날은 잊지도 않은 불행을 저 기억 너머 저편까지 가서 끌고와서 없는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럴 때 '또 제 탓인가요?'를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내가 만나는 또라이 천사(이것은 사람일수도 있고, 동물일수도 있고, 무생물인 상황이나 일이 될 수도 있다)와 잘 한번 지내봐야지.

어차피 평생 피할 수 없는 것은 진리가 아닌가.

그리고 피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피하고 싶지도 않다.

그 또라이 천사가 돌아 돌아서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고 행복을 준다니 말이다.

'또라이' 천사가 또라이 '천사'가 되는 그 날까지. 내 인생의 방점은 내가 정해야겠다.

*이 글은 동양북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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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쓰리 - 균형보다 더 좋은 편향의 힘
랜디 저커버그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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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쓰리>의 저자는 '저커버그'라는 이젠 너무나 유명한 이름의 랜디 저커버그!

그렇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의 친 누나 되시겠다.

책 중간 중간에도 나오지만,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스타트업인 페이스북을 만들어냈으며 케이티 페리, 오바마 등이 활용한 '페이스북 라이브방송' 솔루션도 직접 개발했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도전으로 페이스북을 떠나 '저커버그 미디어'의 CEO이자 시리우스XM 라디오의 호스트, 그리고 출판 및 강연도 하면서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면서도 지치지 않는 비결이 뭘까. 그리고 잘 해내는 비결은?

모든 것을 다 하면서, 몇 개만 선택하는 놀라운 선택과 집중의 힘인 픽 쓰리가 여기 있었다.

그런데 책을 열자마자 이상한 것이 있다.

제목은 분명 '픽 쓰리', 즉 3가지를 콕콕 찝어서 고르라는건데 책 날개의 맨 뒷편에는 이렇게 5가지가 적혀 있었다.

일: 시간을 투자한 대가로 가치를 얻는 모든 활동. 돈, 열정, 의미, 공헌, 장기적 목표를 위한 디딤돌 등 다양한 형태

수면: 하루의 30퍼센트를 차지하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

가족: 타고난 가족, 선택한 가족 모두를 의미한다. 생물학적 가족일 필요도 없다. 어떤 정의의 가족이든 우선순위에 두는 것

건강: 더 폭넓은 자기 관리, 신체적, 정신적 건강, 감정적 안녕, 마음챙김, 스트레스 관리, 건강한 식습관 등을 추구하는 것

친구: 단순히 인간관계뿐 아니라 즐거워서 하는 모든 일. 흥미를 느끼는 분야나 취미에 집중하는 것

아하! 알고 보니 매일 5가지 중 내가 집중할 수 있는 3가지를 택해서 행동하라는 뜻이다.

랜디 저커버그가 이리저리 인생의 시소를 타는 것이 이 책에 담겨있었다.

 

 

 

"일, 수면, 가족, 건강, 친구 중 픽 쓰리"

-'지루함 보다는 열정으로 죽는 편을 택하겠다.' -빈센트 반 고흐

-나는 더는 모든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맹세했다. 늘 완벽하지 못한 면, 입을 옷도 없고 몸매도 별로인 상태, 글루텐 과다 섭취, 커피 중독, 괜한 투자나 위험한 사업 결정, 메일에 답을 못했다는 죄책감, 부족한 엄마, 부족한 아내이자 부족한 친구라는 그 모든 죄책감을 말이다.

이런저런 일들을 안타까워하며 짧고 소중하 삶을 어처구니없이 낭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결국 이 모든 죄책감은 모든 것을 잘 해내야 하고, 모든 게 되어야 하고, 모두를 가져야 한다는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일, 가족, 건강, 열정, 새로운 프로젝트, 사회생활, 그 무엇에서든 뛰어나고 싶다면, 계속해서, 쉼 없이, 끊임없이 먼저 우선순위의 꼭대기에 올려야 한다.

균형 잡힌 삶, 나는 그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

-'무엇도 포기할 필요는 없어! 균형을 잡지 말고 시소처럼 한쪽에 집중하자. 날마다 다 해내려고 하지 말고 삶의 커다란 덩어리들(일, 수면, 가족, 건강, 친구) 중 세 가지만 골라 매일 집중하는 거야! 오늘은 그 세 가지를 잘 해내고, 내일은 또 다른 세 가지를 잘 해내는 거지. 그럼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쉬는 시간도 보장되고 건강도 챙기고 성공도 하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을 거야!'

-균형은 집어치워라. 재미있게 살자! 다르게 살자!

처음부터 잘 해내는 사람은 없다.

<픽 쓰리>의 랜디 저커버그도 모든 것을 다 잘 해내려는 강박관념에 결국 스트레스와 좌절감이 들다가 하버드 입학 상담실에서 바로 이 '픽 쓰리', 인생의 진리이자 만트라를 발견했다.

'균형을 집어치워라'는 재밌는 발상과 함께 매일 매일 내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는 놀라운 힘.

나도 멀티플레이어처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짧은 시간 동안 다 해내고 싶은 욕심이 참 많다.

그래서 이것저것 일을 벌려놓지만 정작 잘한 것 보다는 못하고 아쉽고 부족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서 없는 스트레스도 만들어내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은 'T자형 인재'라는 말처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동시에 타 분야도 두루두루 섭렵하는 통찰력의 뎁스까지도 중요하다.

이러다 A형, B헝, C형... Z형에 A-1형까지 나오는 건 아닐지.

바로 여기서 3가지를 고르는 편향의 힘이 빛을 바랜다.

중간에 '시소 타기로 균형 잡기' 부분에는 알랭 드 보통의 말이 인용되는데,

'일과 삶 사이에 균형은 없다. 공들여 얻어야 할 것이라면 무엇이든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또 다시 재밌는 발상이 나온다.

그래, 균형이나 슈퍼히어로급 만능인은 없다.

심지어 마블이나 DC의 히어로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들 어딘가 부족하고 결핍된 부분이 분명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냥 Just Do it! 세 가지를 골라! 로 간다.

 

 

 

 

"혁신, 충분한 잠이 더 경제적인 선택이다"

 

"혁신, 충분한 잠이 더 경제적인 선택이다"

-"그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정해진 수면 시간이 없었고 그게 문제였죠. 수면은 할 일 목록에서 늘 마지막에, 마지막이 아니라도 아주 아래쪽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을 충분히 자다 보니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훨씬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생산성도 높아졌고 늘 깨어있을 수 있게 되었죠."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 포스트>, 스라이브 글로벌 설립자

-그렇다면 수면 혁명은 아리아나의 개인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생했다고 말했다. 바로 더 나은 삶이다. 그녀에게 더 나은 삶이란 구체적인 업적이 아니라, 쓰러지기 직전의 좀비 같은 상태로 버티는 것이 아닌 온전히 충실하게 사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을 위해 잠을 포기한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깨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일까? 아리아나는 분주함에 대한 집착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 기술 발전이 초래한 급속도의 변화다. 그 같은 속도감의 증가로 우리는 자신의 삶조차 따라 잡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4당 5락, 즉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지금보면 구시대적 사고 방식이 내가 공부할 때는 유행이었다.

수능이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하루에 15시간 이상은 공부해야 붙는다는 거다.

뭐 유명 연예인도 "잠은 죽어서도 잘 수 있다"는 독기어린 말을 내뱉으며 실제로 자신의 성공 비법을 말했다.

지금은 수면과 건강, 그리고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을 토대로 '수면' 이라는 게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꼭 필요하고 전략적으로 보충해야 할 것임을 밝혀냈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잠을 줄이고 또 줄여서 그 시간에 뭔가를 한다는 성취감을 가졌고, 부족한 잠은 주말이나 프로젝트가 끝나고 몰아서 자곤 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저녁 늦게 돌아오면 잡고 있는 책을 끝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에 평일에도 새벽 3~4시까지 읽다가 3시간도 채 못자고 일어나기도 한다.

사간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 주어지는 선물인데 평생 읽어야 할 책과 볼 것, 들을 것, 놀 것은 많아서 너무 너무 너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잠이라는 친구는 어느새 우선순위 저 뒷편에 자리 잡는다.

여기 인용된 '아리아나 허핑턴'의 <수면 혁명>도 읽어봤는데 일과 잠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읽어보면 좋겠다싶은 부분이 많다.

'허핑턴 포스트' 창립자인 아리아나 허핑턴이 잠 잘 시간도 없이 일하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었고

책상에 광대뼈를 부딪치는 바람에 깨어나보니 온통 피로 흥건했다는 그 무서운 이야기!

그 후로 허핑턴은 더이상 잠을 줄이기 않고 자신의 적정 수면 시간을 지키게 되었고 오히려 업무의 효율과 퀄리티 늘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이다.

머리와 마음으로는 알고 있으나 정작 실천하기는 어려운 '잠을 줄이지 않기'는 내가 계속 고민하고 있는 주제다.

잠을 자면 하루가 끝나는 것 같아서 아쉬운 이 마음을 졸려운 눈을 억지로 뜨고 커피를 하루에 5~6잔 들이부어가며 소생시키고 있었는데

마감기한 때문에 밤새는 것이 아니라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책의 서평을 써야해서 저녁 12시 전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봤는데 의외로 하루가 개운했다.

당분간 나의 픽쓰리는 '수면'을 필수로 골라봐야겠다.

 

"할 일 목록을 해낸 일 목록으로 만들기"

 

 

-기억하라. 다섯 가지를 매일 선택하려고 하다가는 며칠 만에 지쳐 떨어질 것이다. 완벽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어쩌면 음주, 쇼핑, 감적적 문자 보내기, 초콜릿 케이크 하나 다 먹어치우기 등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당신이 유능한 인간이라는 건 알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멀티테스킹에 형편없다. 믿기지 않는가? 과학적 증거는 넘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사람들은 짧은 시간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일을 할 때 훨씬 행복하다.

'픽 쓰리'의 5가지 중요성을 듣고 나면 이제 직접 체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 파트는 '픽쓰리 내재화하기' 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5가지의 조합을 모두 나열해줬는데 그리 많지 않고 딱 적당한 10개가 나온다.

-일, 수면, 건강

일, 수면, 가족

일, 수면, 친구

일, 건강, 가족

일, 건강, 친구

일, 가족, 친구

수면, 건강, 가족

수면, 건강, 친구

수면, 가족, 친구

건강, 가족, 친구

매일 3가지를 골라서 실천하다 보면 내가 어느 영역을 중요시 생각하는지, 어느 부분은 그다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러니 균형보다 좋은 편향이라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매일 매일 3가지라니! 솔직히 말해서 매일 5가지, 10가지씩 다 해내고 싶은 욕심이 또 생기지만 책을 읽고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단 오늘은 손가락 3개를 펴고, 강렬한 빨간색 책 표지같은 나만의 3가지를 콕콕 골라본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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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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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은 히틀러를 낳았고 금융위기 10년은 트럼프를 낳았다."

이번 <붕괴> 책은 경제사 연구학자이자 외교/정치 분야의 권위있는 사상가 '애덤 투즈'의 신간이다.

정성스러운 한국어판 서문, 그리고 미니북까지 함께 들어있어서 이해를 곁들이는데 분량은 960여 쪽에 달하지만 읽고 나면 분명 내가 몰랐던 세상을 깨우쳐주는 도구가 된다.

전공과 관련 있지만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부족함이 많아서 <붕괴>를 오늘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읽고, 읽고 또 읽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주는 책!

그럼 애덤 투즈는 2008년 금융위기는 왜 일어났고, 그 후 1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어판 서문

-나는 한국의 독자들이 <붕괴>를 단순히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는 한국처럼 고도로 국제화된 국가들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지정학적 측면에서 세계화의 물결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2009년 이후부터 한국이 보여준 경제성장은 괄목할 만한 수준이며 한국의 연구 개발 분야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화는 오늘날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런 성장과 변화가 가능했던 건 <붕괴> 후반부에서 주로 설명하는 서구사회의 정치적 대격변을 한국이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포퓰리즘이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한국과 독일 같은 유럽의 성공 사례를 한번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러한 역사적 규모의 변화를 환기시키는 건 오랜 과거의 환영을 다시 불러들이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한반도를 20세기 중반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한 곳으로 만들었던 그런 충돌의 시대를 돌이키자는 의도도 물론 아니다. 다만 지난 10년 동안의 불안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 <붕괴>를 읽고 국내 질서는 물론 국제 질서가 어느 날 갑자기 흔들릴 수도 있는 작금의 세계 상황에서 스스로 살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얻었으면 하는 것이 지은이로서의 작은 바람이다.

한국은 여러모로 특이 케이스가 많다. 열심히 하는 근성의 DNA와 함께,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빨리 빨리의 습관과 행동으로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고 책이나 뉴스, 그리고 어르신들이 입이 닳도록 얘기한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한 만큼 복지나 시민의식, 정치도 동반 성장하지는 못하여 OECD 최하위 또는 부정적인 이슈는 언제나 최상위권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다. 이럴거면 OECD 왜 가입했냐는 소리도 참 많이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2008년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휘청휘청~을 넘어 와르르 붕괴하고 있을 때 꿋꿋히 악착같이 현상 유지 이상으로 버텨왔던 것 같다. 그래서 저자도 서구사회의 대격변을 잘 피해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와 반대로 미국의 가장 큰 문제점을 포퓰리즘이라 뽑았는데 정치에 관심이 많고 의견이 자유로울수록 선동어나 분위기에 휩쓸리기 좋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퓰리즘의 정의부터 다시 짚고 넘어가려고 찾아봤는데 네이버 백과사전에 검색해본 결과,

포퓰리즘(populism)은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 및 활동이라 한다.

어원은 인민이나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를 따왔고, 대중주의, 민중주의, 인민주의로도 불린다.

포퓰리즘은 반적으로 대중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사상 및 활동을 가리키며,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에 상대하는 개념으로 간주된다.

듣기 좋고 입에 발린 말 보다 실제로 실행 가능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합리적 제도가 기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잘 모르겠다. 이어서 읽어보면서 애덤 투즈 교수님의 사상들을 배워본다.

 

 

 

 

 

-달러는 한물간 퇴물일까

-2007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위기 징후가 감지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달러화의 향방에 주목했다.

...만약 유로화가 새로운 스타라면 달러는 정말로 한물간 퇴물이 되는 것일까?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 1년 전인 2007년 여름, 폴 크루그먼은 자신이 "와일 E. 코요테의 순간"이라고 묘사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해외 투자자들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사들이는 방법 외에는 달러화의 가치를 끌어올릴 만한 다른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 그렇지만 폴 크루그먼은 미국이 지고 있는 대부분의 부채는 그 자체가 미국의 화폐인 달러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달러화 폭락에도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독자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같은 국가와는 사정이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였지만 만일 미연준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갑작스럽게 올리면 미국은 대단히 심각한 경제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었다. "결코 웃을 상황이 아니다." 폴 크루그먼의 결론은 이랬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과 고위층의 문제점으로 '잘못된 위기'에 집중하고 있음을 꼬집어 말하면서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를 중국의 달러화 매도와 미국의 달러 약세 영향이 아닌 서구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뽑았다.

뒤에 이어서 나오지만 '서브프라임 대출로 인한 부실 저당 증권으로 월스트리트의 붕괴' 그리고 그로 인해 '다시 유럽이 위협과 타격'을 받았다는 연쇄 작용 효과를 콕 찝어 말해주었다.

여기서 나온 와일 E. 코요테가 어떤 만화 캐릭터인고 하니 루니툰에 나오는 익살스러운 바로 이 친구!

늘 절벽에서 떨어져서 두 다리를 휘잉휘잉~ 휘젓는 사고뭉치로 나오는 모양이다.

와일 E. 코요테는 귀엽지만 우리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 절벽에서 떨어져 놓고 아무런 대안 없이 우왕좌왕 팔 다리만 휘젓지 말고 과거를 알고 현재를 공부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루니툰의 와일 E. 코요테

 

 

 

 

 

 

 

 

"글로벌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

-미국의 증권화 시장의 일부 부문에서 일어난 완전한 유동성 증발로 인해 일부 자산에 대해서 그 실제 품질이나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자산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면 담보로서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 담보가 없으면 단 한 푼도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 그리고 자금을 조달할 수 없으면 부동산 관련 투자 규모가 크든 작든 은행들은 모두 어려워진다. 이렇게 유동성 동결이 발생하면 엄청난 뱅크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보통이며 그러면 어떤 은행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리먼브라더스는 베어스턴스와 마찬가지로 월스트리트의 주류 금융업체가 되기 위해 부동산에 엄청난 승부를 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사업 부문을 모기지 대출 증권화 과정과 완전히 합쳤던 것이다. 2008년이 시작되면서 리먼브라더스의 주식 가치는 73퍼센트나 폭락했다.

... 리먼브라더스를 벼랑으로 내몬 건 불안해하는 대출업체들의 추가 담보 요구였다.

...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의 경우는 방만한 경영이 문제였다. 극심한 경쟁 압박 속에서 두 회사는 모기지 증권화 사업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도박을 걸었다. 그렇지만 과연 두 회사 뿐이었을까?

-지난 1941년 이후 우리는 100년 동안 이런 질문을 던져왔다. 2008년의 사태와 그 여파에 대한 질문이 앞선 질문과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런 질문이야 말로 발전을 뒤따라온 거대한 위기들과 떼레야 뗄 수 없는 것들이므로.

은행 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혹시라도 내 원금+이자를 잃지는 않을까, 예금이 모조리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지금 있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Run, Run, Run! 은행으로 달려가는 바로 그 '뱅크런'이 터졌다.

마치 역사 책 읽는 듯이 흐름에 따라 도미노가 무너지듯 탄탄해 보이던 글로벌 기업들이 무너지는 사태를 알기 쉽게 설명해줘서 그래프와 함께 이해를 도왔다.

부동산이 터지고 베어와 리먼이 터지고, 그리고 이후에는 대형 보험회사인 AIG까지 줄줄이 터진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쟁을 빼고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속도로 '긴급 구제금융'.

이와 관련하여 '미국 우파 붕괴'까지 오바마 대통령 당선 전 이야기들도 속사포로 쏟아졌다.

미국을 기점으로 발생한 2008년 금융위기는 분명 전 세계를 뒤흔들 엄청나게 전무후무한 사건이지만

우리나라가 직접 겪고 타격을 정통으로 맞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비교하면 체감상 피부로 와닿는 차이는 비교적 적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 이런 엄청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니.

알면 알수록 정치 드라마 보다 더 정치스럽고, 삼국지 보다 더 전쟁스러우며,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후반부에는 기념비적인 년도, 2014년을 추가로 비교하는데 그 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지 100주년이 되는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2014년에서 바라보는 질문과 의문들이 2008년에 갖는 것과 놀랍도록 유사점이 있고,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지 10년 후인 2018년에도 또 다시 이 질문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완전하게 새로운 것은 없으며, 사람은 행동과 습관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듯 위기와 책임과 기회는 계속 되고 있다.

사람들이 '도람푸'라고 놀려대지만 2019년을 사는 트럼프의 빅픽처는 무엇일지 또 한번 그의 행보를 궁금해하며

수 많은 케이스 스터디에서 보고 배우듯이 금융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이 있을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아카넷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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