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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남자의 물건? 이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전에 내가 근무하는 회사와 계속 거래를 하고 있는 인쇄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해당 보고서를 발주처에 납품하기 위해 나는 보고서를 제본하기 위해 인쇄소에 들린 적이 있었다. 거기에 나를 아주 반갑게 반겨주시는 사장님, 그 사장님은 참고로 연세가 60이 이미 훌쩍 넘은 여사님이다. 내가 <남자의 물건>이란 서적을 들고 가니 순간 놀라면서 나에게 이렇게 했다.
“이 책 나 사려고 했는데, 너무 야한 것 같아서 안 샀다. 손님들이 여기 와서 이 책이 있으면 이상하게 여길까봐”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전혀 야하지 않다고 했다. 물론 내용 중에서 야한 내용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책 내용 자체만으로 야하다고 보기에는 많음 무리수가 있었다. 가령 그것은 프로이트가 남자는 성욕에 눈이 먼 동물이라고 하여 그가 저술한 <꿈의 해석>과 <정신분석입문>과 같은 도서가 야하다고 볼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인간이란 존재가 무의식 세계의 리비도 즉 성적 에너지를 담아 그것을 표출하려는 본능은 숨기지 못할 요소는 분명하다. 그런다고 하여 그렇게 인간의 성적 무의식 본능을 연구한다고 해서 야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의 야한 것에 대한 것을 제대로 알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운 교수가 이번에 내놓았던 <남자의 물건>은 정말 그런 식의 느낌일까?
보통 어른이라면 남자의 물건이라면 가수 박상민씨가 부르던 “무기들아 잘 있거라” 내지 혹은 이 노래 제목을 패러디한 어느 팬의 말처럼 “무기 없이 못살아”라는 무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물이라는 물건이다. 즉 인간의 신체구조 상의 기관이 아니라 우리가 주변에 볼 수 있거나 혹은 볼 수 없을 만한 사물들이란 점이다. 인간이 아닌 물체 즉 하나의 도구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왜 남자의 물건인가? 예전에 김정운 교수에 대해 잘은 몰랐으나, 그가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라는 점은 알았다. TV는 시청하지 않은 본인으로서 매스컴의 영향보다는 매스컴 이외의 인터넷과 서적으로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한다. 오히려 일방통행로적인 사고방식은 대중문화의 특성중의 일원화적인 사고와 이원화적인 가치구조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알게 된 김정운 교수는 예전에 내가 만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코스튬플레이와 같은 하위문화(下位文化) 즉 Sub-culture라는 것을 연구할 때 처음으로 알게 된 문화심리학자이다. 일단 하위문화라는 것이 일반인들에 대해 잘 노출되지 않고 비공개적이고 드러나지 않은 그런 문화들이다. 물론 만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코스프레만이 아니라 락, 재즈, 블루스, 헤비메탈과 같은 비주류의 음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하위문화에 대한 나의 시선은 대중문화에 대하여 비교해보면 다른 세계에서 바라보는 점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하위문화라고 하여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고, 잘 알 수 없으며, 보통 사람들이 접하기 어렵고 다가가는 것이 어려워서 많이 낯설어 하고 많이 배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한국과 같이 배타적인 문화 관념을 지닌 국가로서는 이런 것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런 하위문화가 배타적인 국내 문화 관념을 지닌 사람들에게 하나의 적대의식으로 표출되기 좋은 문화이다.
또한 본인 자체가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 만화, 애니메이션이 국산 작품보다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 유입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많은 만화, 애니메이션 콘텐츠상품들은 미국보다는 일본에서 많이 들어온다.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우며, 언어자체가 한자어가 같이 사용하기에 한국어와 일본어 자체로는 다소 많은 차이감이 들지 모르나, 단어 사용에서 한자어의 사용에서는 분명히 한국인으로서 영문으로 이루어진 미국 문화보다 한자 단어가 들어간 일본어가 훨씬 이해하기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을 이해하고 생각해본다는 것은 단순히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안에 담론하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 그 자체에 대한 문화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볼 만한 것이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항상 뭔가 멀리 느껴지는 나라, 게다가 직접 옆에서 보면 한국인과 다른 용모나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구인들이 보면 비슷해 보이는 종족이다.
또한 과거 한국의 선조들이 일본에 건너갔다는 말도 있고, 일본의 국화인 벚나무가 일본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막상 수목의 원산지는 한국이라고 한다. 그러면 일본의 국화를 상징하는 이른바 사쿠라라는 것이 과연 일본이라고 외치기도 난해하게 보이는 상황이다. 어째든 친하면 친하게 지낼 수 있지만, 이와 반대로 대하기가 어려우면 어려운 게 일본이다. 아니 일본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일본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인지하고 있을까? 그런 문제에 대해 김정운 교수는 <일본열광>이란 책을 저술했다. 문화심리학자가 보는 일본과 일본인이다. 여기서 그의 일본이란 나라는 상당히 특이한 곳으로 보였다. 뭔가 억압된 공간이고, 뭔가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환타지, 남성이 감수해야할 사회와 압박, 거기에서 피어나는 남자들의 어리광, 서양은 아니나 오히려 서양 같은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의 세계, 일본이란 뭔가 엄청나게 잘 뭉쳐져 있는 것 같기도 한편으로 무척이나 분산되어 있다.
아니 아주 작은 분산덩어리가 여기저기 조합되어 하나의 그룹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일본을 다룬 김정운 교수가 이제는 한국을 다루려고 한다. 일본으로 통해 일본인을 알고 그 후에 한국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보게 하여 우리 자신의 현재를 물었다면,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이 정석이 아닌가? 이번의 남자의 물건, 정말 남자의 물건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대략적으로 나는 이 책에 대해 조금의 선입관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김정운 교수가 일본열광에서 남자의 세계로 통해 본 일본문화라고 하나 단순히 일본남자만의 문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일본남자의 문화에서 보이는 남자들의 몰락을 다룬 것이다. 남자가 몰락하니 여자가 힘이 세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여자가 세진다고 하여 남자와 대등하게 되었다고 하여 남자만 이때까지 누렸던 것을 이제는 여자가 누리지 말라고 하는 법은 없다.
단지 조금 아쉬운 점은 남자는 여자가 누리던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열광이나 남자의 물건이나 비슷하고 기본명제를 깔고 가는 주제가 있다. 그것은 남자의 몰락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남자가 몰락한다고 해서 여자가 반대로 올라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남자가 떨어지는 만큼 여자 역시 떨어질 수 있다. 모두 그런 것이 아니다. 남자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과거가 좋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상실해가면서 남자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남자는 평생 혼자서 짐을 지고 가야 할 동물이다.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그리스신화 오이디푸스왕을 아는가? 자신의 아버지 라이오스왕을 죽이고, 그의 아내요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라는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한 그 비운의 왕을 말이다. 오이디푸스는 친부살해와 동시에 모친근친상간이라는 인간의 윤리와 가치를 배반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진실로 그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남자는 바로 이 오이디푸스와 같다. 세상도 그러나 오히려 신화의 세계에서 멀어진 지금이야 말로 신화의 제거인 계몽을 넘어 새로운 억압이 우리 남자들을 오이디푸스로 만들어버린다. 집에 가면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이 책에서 김정운 교수는 큰 아들이 자라나면서 처음에는 약한 존재로 보았으나 지금은 키도 자기보다 크고 덩치도 좋다고 한다.
순간 아들이 화를 내면 거기에 대적하기 힘들고, 길가는 고교생 무리를 보면 기가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거기서 누가 부른다. “아버지!”라고 말이다. 그 두려운 무리의 존재 중에서 아들이란 혈육이 있다. 아버지란 존재는 언제 자신을 앞서 나갈지 모를 아들에게 위협적인 부담을 느끼고, 자신 앞에 있었던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방황한다. 언젠가는 그 사람이 결국 내가 된다는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남자의 허망함을 깊고 넓은 한탄으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회사가면 직장 상사와 밑에 후배들의 눈치를 본다. 물론 그 상사와 후배 역시 또 다른 상사와 후배들에게 눈치를 본다. 남자라는 존재는 사회에서 보이지 않은 뭔가의 긴장감을 타고 있다. 항상 긴장을 하고 눈치를 보고 거기에 눌려 산다. 사회라는 것은 다양한 존재가 살아가는 또 다른 아버지이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면서 억압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언어를 아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들에게 사회적인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을 부여한다.
하지만 언어로 통해 권력과 지식을 서로 공유하고 생산하므로 언어를 사용하고 살아가야할 인간에게 언어를 사용할 때 새로운 지식과 더불어 권력에 눌려 살아야 한다. 언어라는 것은 자연적이 못한 인위적인 억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자의 공간을 어디로 두어야 하는가? 직장이라는 공간은 남자에게 하나의 권력세계를 의미하는 바이므로 거기에 자신의 마음을 둘 수 없다.
오로지 여기에 반대되던 공간일 뿐이다. 그나마 젊어서는 와이프가 같이 젊기에 서로 열정적인 사랑도 나눌 수 있겠으나, 얼마 후 자녀가 태어나고, 부모들은 서로를 보기보단 자녀들을 더 본다고 한다. 그런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겠으나, 적어도 내 주변에 애를 키우고 있는 직장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내 보는 재미보단 혹은 남편 보는 재미보단 애와 같이 보고 지내는 시간으로 만족한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자녀라고 하여도 언제까지 부모의 그늘 아래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 모두 자녀들이 서로 자기의 품을 떠나 그들만의 사회와 세계에 머물고 있을 때면 자신의 존재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해진다. 그나마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서로 친하게 지내지만, 남자는 쉽게 지낼 수 없다. 나이 들면 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이는 반면 남자들은 그렇게 모이기도 어려우나 모여도 그렇게 화기애애하지 않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사회에서 싸워나가야 할 존재다. 프로이트는 남자들이 태어나면서 리비도로 통해 성적인 욕망과 더불어 폭력적인 투쟁의식을 가진다고 하나, 이와 반면에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남자는 원래 난폭한 것이 아니라 난폭해지도록 살아야 하는 문화 공간 속에서 난폭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다르지만, 적어도 남자는 항상 싸움과 피할 수 없는 존재임만은 분명하다.
그런 그들이기에 그들은 자신을 좋아하거나 혹은 좋아하는 것이 모자랄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하여 남자는 프로이트적으로 리비도의 동물로 성적욕망만 표출할 수 없다. 때로는 새로운 것으로 승화하여 에로스적인 영역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흔히 문학에서 세계를 창조하거나 예술로서 형상화시키거나 이미지로 도출해낼지도 모른다. 예술이 이성의 세계만이 아닌 감성과 무의식 세계라는 눈에 보이지 않은 것 역시 보이게 하는 마법이 있으니깐.
그러나 이것만으로 남자가 과연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뭔가 남자들이 집착하고 거기에 얽매이고 싶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물욕적인 페티시즘이 깊숙이 들어갈지 모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나 한국남자에게 뭔가 좋아하는 게 있냐고 물어보면 어떨까? 나이 먹어 한국남자들이 하는 일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것이 생각난다. 낚시와 등산이라고, 아니면 TV보기 정도?
어떻게 보면 상당히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게다가 낚시와 등산은 여러 명에서 같이 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혼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취미생활이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로 남자들이 위안을 삼아야 하는가? 너무 평범하고 일방적이고 범주가 좁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아닌 다른 것들도 같이 생각하여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남자의 물건에서 김정운 교수는 이런 한국남자에게 존재확인을 위한 탐사가 시작된다. 그것은 자신부터 먼저 보여준다. 김정운의 모습에서 그의 일반적인 복장에서 만년필을 자신의 입에 살짝 대는 장면이다. 한국의 저명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바로 만년필을 좋아한다. 만년필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만년필이 아니라 상당히 고가에 명품인 만년필을 좋아한다. 몇 십 만원에 모자라 어느 유서 깊은 만년필은 백만 원을 초과한다고 한다.
펜 한 대에 거금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계속 모우고 또 모운다. 새로운 물건을 산다는 것에서 그 산 물건들을 보는 것에서 또 다른 물건들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말이다. 한국남자들에게 이런 기대감 내지 편안함 기분을 주는 행동이란 있을까? 내가 볼 때는 거의 없다. 그런 남자들에게 필요한 물건! 그것은 바로 그 남자들이 의지하고 싶은 물건들이다. 자신만의 세계이며, 자신만의 공간이며, 자신만의 위안이 되는 그 남자의 물건 말이다. 김정운이 확인하는 한국남자의 존재란 바로 남자들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그런 물체에 대한 고찰이다.
왜 고찰을 하는가? 남자들은 나이 먹어가면서 정작 자신을 돌아볼 공간이나 기회조차 없다. 오로지 앞만 보다가 달리다가 뒤돌아보는 순간은 이미 늦은지라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이란 점이다. 확실히 그렇다. 아니 30대 지금 내가 봐도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바라보면서 주변 남자들에게 주말에 무엇을 하느냐? 아니면 좋아하거나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없다.
그저 컴퓨터로 영화 보다가 TV로 드라마 보다가 이다. 남자들의 대화의 단골손님이며,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군대이야기와 축구이야기, 그 절묘한 콤비네이션인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내가 살아있다는 존재감 확인을 해줄 수 있는 하나의 자위욕구가 아닌가 싶다. 자위라는 것이 반드시 성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다고 성적인 영역 역시 무시하지 못한다. 항상 억압된 것은 인간의 무의식적 세계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성적욕망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들은 단순히 억압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내어 자기 자신을 위안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남자의 물건, 그것은 단순히 남자들이 취미나 취향으로 모우거나 집착하거나 즐기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란 존재가 하나의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한 삶의 증명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는 본인이나 다른 누군가, 또는 이 글을 보는 어느 누구라도 그런 것으로 생각 한번 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