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스 플라이트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평점 :
세상엔 늘 대신 울고 대신 미안하고 대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유전자가 따로 있는건지...
유나는 어려서부터 사회의 위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한번 느끼면 절대 백스텝 밟아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감각이다. 그 예민함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나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었을지.
그것만 짐작해보더라도 그의 죽음이 얼마나 아픈 선택이었는지.
이 소설에는 방산 비리와, 환경파괴, 광주에 대한 감정, 노동자의 연대 등 많은 이야기가 부자연스럽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번에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나의 아버지 정근이 꼿꼿하고 존심세우는 사람에서 점점 되돌아보고 파고드는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은 뒤늦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 정근은 놀랍도록 차분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을 떼 버린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냉정함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지숙이 이성을 잃고 흥분할수록, 슬픔에 젖어 무력감에 빠질수록 자신은 더욱 냉정해지리라 마음먹었다. 유나가 죽었을 뿐이었다. 왜 죽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 16
- 과거에도 그랬지만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고,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늘 유나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혜진을 친 사람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활보할 것이다. 회사는 그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이 그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그를 정직 처분했다. 과거 대령은 영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그 모든 일을 유나가 뒤집어쓰고 대신 사과하는 것 같았다. - 88
- 담임은 그런 것치고는 성적도 꽤 좋구나, 하면서 다시 물었죠. 하교가 왜 싫은데? 나는 체육 시간 말고는 특별히 싫었던 것도 없었어요. 그냥 선생님들이 다 우리를 개돼지 취급하는 게 보여서 짜증 나요. 담임은 내 손을 잡고 말했어요. 난 너희를 개돼지 취급하지 않아. 언제나 노력하고 있어. 너도 교사가 돼서 네가 그토록 싫어했던 교사들이랑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어때?
지금에서야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실감해요. 언제나 노력하고 있어. 선생님의 그 말과 다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115
- 아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줄 수조차 없죠. - 123
- 나는 더 이상 공동체라는 말에 어떤 기쁨도 위안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요. - 133
- 그 후 몇 년간은 자신에게 대들던 유나가 떠올라서 분노가 치밀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밥상머리에서 앉아, 하며 똥군기를 잡던 자신이 먼저 떠올라 수치스러워지곤 했다. - 171
- 유나가 죽고 나니 모든 게 복잡해졌다. 정근은 유나가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지 이제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아빠, 아직도 몰라요? 아빠가 잘못한 거예요. 윤 대령 아저씨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요. - 189
- 아버지에게 배운 수많은 것들 중 가장 고마운 것도 그런 것이었다. 상대가 아픈 이야기를 할 때 쓸데없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지 않는 것. 주한은 아버지로부터 그걸 배웠다고 생각해 왔다. - 193
2023. may.
#미스플라이트 #박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