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의 쐐기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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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찰서에 38구경 권총을 가방에 숨기고 들어온 한 여자의 경찰관인질극.
허술하게 인질로 잡혀버린 건장한 형사들의 진땀나는 심리전과는 대조적으로 그 여자의 목표물이었던 카렐라는 자살로 보이는 부호의 사망현장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외근 중인 상황의 에피소드.

엉뚱한 복수심이 불러온 사건이지만, 은근 경찰서 안과 밖의 이야기가 블랙유머로 묘사되어 즐겁게 읽었다.
물론 부상자는 안타깝다.

그리고 카렐라와 테디는 부모가 된다.

- 범죄는 범죄였고, 범죄의 악을 합리화하려는 87분서 형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 125

- 나는 정당한 일을 하는 거야.
꼭 해야만 하는 일이야.
그녀는 간단한 공식이라고 생각했다. 목숨에는 목숨.
내 프랭크의 목숨에 대한 대가로 카렐라의 목숨, 그것이 공평한 것이다. - 195

- “레비였어. 폭발물 처리반에 있는 친구. 누가 그 친구에게 병을 줬나?”
“그래.” 호스가 대답했다.
“음, 그 병에 대해 보고하는 전화였어.”
호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렐라에게 다가갔다. “뭐래?”
“그렇다는데.”
“그렇다니?”
“그 친구들이 폭파 시험을 해 봤는데, 시청을 날려 버릴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는군.”
“그랬군.” 호스가 억양없이 말했다.
“그래.” 카렐라가 타이프라이터에 보고서 용지를 집어넣으며 건성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니트로글리세린.” 호스가 디젤 기관차에 치인 사람 같은 표정으로 대답하며 책상 근처에 있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오, 참 대단한 날이었어!” 카렐라가 말했다.
그는 미친 듯이 타이프를 치기 시작했다. - 240

2023. apr.

#살의의쐐기 #에드맥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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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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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늘 대신 울고 대신 미안하고 대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유전자가 따로 있는건지...

유나는 어려서부터 사회의 위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한번 느끼면 절대 백스텝 밟아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감각이다. 그 예민함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나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었을지.
그것만 짐작해보더라도 그의 죽음이 얼마나 아픈 선택이었는지.

이 소설에는 방산 비리와, 환경파괴, 광주에 대한 감정, 노동자의 연대 등 많은 이야기가 부자연스럽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번에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나의 아버지 정근이 꼿꼿하고 존심세우는 사람에서 점점 되돌아보고 파고드는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은 뒤늦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 정근은 놀랍도록 차분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을 떼 버린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냉정함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지숙이 이성을 잃고 흥분할수록, 슬픔에 젖어 무력감에 빠질수록 자신은 더욱 냉정해지리라 마음먹었다. 유나가 죽었을 뿐이었다. 왜 죽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 16

- 과거에도 그랬지만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고,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늘 유나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혜진을 친 사람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활보할 것이다. 회사는 그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이 그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그를 정직 처분했다. 과거 대령은 영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그 모든 일을 유나가 뒤집어쓰고 대신 사과하는 것 같았다. - 88

- 담임은 그런 것치고는 성적도 꽤 좋구나, 하면서 다시 물었죠. 하교가 왜 싫은데? 나는 체육 시간 말고는 특별히 싫었던 것도 없었어요. 그냥 선생님들이 다 우리를 개돼지 취급하는 게 보여서 짜증 나요. 담임은 내 손을 잡고 말했어요. 난 너희를 개돼지 취급하지 않아. 언제나 노력하고 있어. 너도 교사가 돼서 네가 그토록 싫어했던 교사들이랑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어때?
지금에서야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실감해요. 언제나 노력하고 있어. 선생님의 그 말과 다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115

- 아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줄 수조차 없죠. - 123

- 나는 더 이상 공동체라는 말에 어떤 기쁨도 위안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요. - 133

- 그 후 몇 년간은 자신에게 대들던 유나가 떠올라서 분노가 치밀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밥상머리에서 앉아, 하며 똥군기를 잡던 자신이 먼저 떠올라 수치스러워지곤 했다. - 171

- 유나가 죽고 나니 모든 게 복잡해졌다. 정근은 유나가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지 이제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아빠, 아직도 몰라요? 아빠가 잘못한 거예요. 윤 대령 아저씨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요. - 189

- 아버지에게 배운 수많은 것들 중 가장 고마운 것도 그런 것이었다. 상대가 아픈 이야기를 할 때 쓸데없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지 않는 것. 주한은 아버지로부터 그걸 배웠다고 생각해 왔다. - 193

2023. may.

#미스플라이트 #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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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이동윤 옮김 / 검은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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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분서 시리즈의 36번째 이야기.

스물 다섯의 여성 무용수가 귀가길에 살해를 당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약과 연결된 이번 케이스는 솔직히 크게 흥미를 느끼진 못했지만, 사이드 스토리로 전개되는 클링과 아일린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그 둘이 어떻게 관계를 발전시킬지 다음편이 궁금하지만.... 번역이 되려나.

쭉 다른 출판사의 버전으로 읽어와서 그 정도 분량에 익숙했는데, 87분서 시리즈의 중후반은 원래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지는 건가? 하는 궁금증도. 길면 재미도 기니까 좋다는 얘기임. ㅋㅋ

- 제발 미치광이가 저지른 일이 아니기를, 카렐라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살인범은 지극히 이성적인 동기로 두 사람을 죽인 분별 있는 인간이기를. - 160

- “말했잖아. 세상에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마이어가 말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아마도 정의가 존재할지도 몰랐다. - 526

2023. apr.

#아이스 #에드맥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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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민음의 시 308
김경미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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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지만 쓸쓸하고 외로운 감각이 차올랐다.

- 맨정신인 날씨 속 파국을 각오하면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 시인의 말

- 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 말해 버렸는데

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잡지를 펼치니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그 위험물 없이도 나는
여전히 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하지만

당신의 세계는
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오래도록 바라보는 바다를 취급하는지 - 취급이라면 중

- 사업가 체질 아니니 하지 마세요
소리를 듣고도

이건 사업이 아니라 상업이에요
인간은 원래 상업하는 존재인걸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가 상업인걸요 - 호모 커머스 중

2023. may.

#당신의세계는아직도바다와빗소리와작약을취급하는지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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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일기
김지승 지음 / 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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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장들에 공감하며 읽었다.

몇 개월 지나 다시 훑다보니, 만연한 문장이 조금 어지럽다.
첫 느낌과 지금 느낌의 차이는 뭘까. 나는 그다지 달라진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 제 힘으로 울기.
거기서부터 세계의 진입이다.

- 간간이 솟는 일말의 불안만 어떻게 하면 이 평화로움을 반나절 정도는 유지할 수 있다. 희망이라든가 사랑 같은 건 오늘 나와 만날 수 업쇼다. 어차피 나와 만나기 전까지는 없는 것들, 거기 어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게 없으니 아예 없는 것들이라는 믿음은 잔잔한 하루를 지키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 - 30

- 오늘은 내내 이유 없이 미움받는 기분이야.
걱정 마, 이유는 늘 있어. - 39

-그래도 애써봐. 괜찮은 인간은 애써보는 인간이야.
애쓰고 있다. 나도 모르는 걸 내가 쓰면서 나를 따라가는 일, 나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걸음걸음에. - 47

- 나이는 네가 매해 겪는 가장 나쁜 사건이다. 더 곤란한 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 232

- 중력, 중력, 중력, 중력, 중력...... 뜻밖에도 휘발된다. 너무 많은 말을 한 날이다. 내가 참 시시하다. 시시하지만 살던 거는 마저 살기로 한다. - 297

2022. nov.

#짐승일기 #김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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