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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ㅣ 걸어본다 16
한은형 지음 / 난다 / 2018년 4월
평점 :
모니카 머론의 <슬픈 짐승>을 읽고, 왠지 베를린의 정서라는 것에 끌려 다음책으로 골랐다.
베를린이 가지는 정치적인 공간성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비극을 양태할 여지가 있는 곳인지라, 우울함과 체념에 가까운 무기력이 과거의 베를린이었다면, 요즘의 베를린은 어떠한가 라는 궁금증.
베를린은 독일 출장 때 정말 잠깐 4시간 정도만 머물러본 도신데(그나마도 일정이 정신없어 그 초역이라는 곳만 어렴풋이 떠오르고 유럽의 도시기는 하지만 어쩐지 동구권의 냄새?가 나기도 했다), 뮌헨 체류 기간이 길어서 였을까 작가가 말했듯 뮌헨의 황금스러운 분위기와는 비교되는 초라한 빈궁의 느낌이랄까.
걸어본다 시리즈는 항상 재밌게 읽지만, 사실 관심 도시가 아니면 잘 안고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소설가 한은형의 베를린은 여러 의미로 내 취향과 맞는 장소와 이야기였다.
더불어 책장에서 언제가는 읽힐 준비를 하고 있는 책들에 대한 환기도 된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와 토마스 만에 대한 의욕을 불러 일으켜줬으니까. 다음 책은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를 읽어야지.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자꾸 미루고만 있는데, 상반기 안에...라고 말하니 다음달이구나.. 세월...
어쨌든 뤼겐이라는 도시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랫만에 어딘가가 가보고 싶어지게 한 독서.:)
상식적이지 않고, 모험심이 별로 없다. 그런 것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도 할 수 있다. ‘했던 것을 다시 한다, 그리고 또다시 한다’가 나의 행동 방식에 가깝다. 가끔 이런 게 지루해져서 뭔가 새로운 걸 해보기도 하지만, 그러기까지는 정말 많은 결심과 독려와 채근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 12
폰타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토마스 만이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뤼벡에 있는 토마스 만 하우스에 갔다가 알았다. 그가 경애했던 작가 여덟 명의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ㅎ인리히 하이네, 프리드리히 니체, 폴 부르제, 테오도르 폰타네, 테오도르 슈토름, 니콜라이 톨스토이, 에밀 졸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들을 제대로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주의자’ 졸라와 ‘교양주의자’ 괴테 말고는. 나는 ‘재미’를 독서(특히나 소설)에서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가장 재미있게 여겨지는 작가 중 하나가 토마스 만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 주저앉아 홀린 듯이 <브란덴브루크 가의 사람들>을 읽었고, <마의 산>은 그로부터 10년쯤 지나 읽게 되는데 그때의 황홀함은 <브란덴브루크 가의 사람들>을 읽을 때의 경험을 압도했다. 나는 토마스 만이 인간을 묘사하고 대화를 시키고 웃게 하는 방식, 산책시키는 방식, 그런 식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오묘한 방식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 107
걸음을 걷기가 어려웠다. 눈을 뗄 수 없었고, 발을 뗄 수 없어서. 심박수 증가, 심장 통증, 무릎 풀림, 현기증 같은 증상이 동반되었고,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게 ‘스탕달 신드롬’인가 싶다. 그림이나 책을 보고 그랬던 적은 있지만 도시를 보고 그런 적은 없었다. 그곳도 이렇게 즉각적이고 강렬한 육체적 반응은. 동행인 c 선생님-더군다나 독문학자-께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런 흥분을 감출 만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그래서 호들갑을 떨었고, 바고 그게 뤼벡에서의 나였다. - 136
2018.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