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
김원석.남궁인.오흥권 외 지음 / 청년의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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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알람에 남궁인이라는 이름만 보고 내용도 살펴보지 않고 주문했다.

그것이 실수....

의사들의 수필문학상 작품집인건 읽어볼까 하고 집어들고 나서였다.

가끔 터무니 없이 성급하게 일처리를 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물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 이야기들은 충분히 읽을만 하지만, 생생한 이미지가 떠올라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산 책은 꼼꼼히 읽는다는 장점도 나에겐 있지. ㅋ

가족들의 지병으로 병원을 정기적으로 자주 다니는 나는 가끔 의사들의 자질에 대해 생각을 안해 볼 수가 없는데, 이 책에 기고를 한 의사들은 (글 뿐일지 모르지만) 참 올바른 사람들.
환자를 차트로 대하지 않으려 고민하고, 실수에 솔직하고, 인간적인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 정말 많아져야, 아니 이렇지 않은 사람들은 의료행위에 몸을 담아서는 안되지 않을까.

그는 (중략) 목표였던 6개월을 다 살아냈다. 그래서 그가 얻은 것은 배뿐만 아닌 전신에서 통증을 느끼는 인생이었고, 그뿐이었다. 이 시간이라도 얻어 냈으니 그 통증이 축복인지, 아니면 또 다른 불행인지는 아무도 이야기해 줄 수 없었다. - 115, 죽음에 관하여, 남궁인

죽음을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이건 혹은 본인이건 간에. 아무도 그런 일을 입에 가볍게 올려서는 안 된다. 고뇌와 고통과 그를 넘어서는 우연이 혼재하는 극적이고 거대한 세계. 그 일부만을 핥으며 공감했다거나, 응당 죽음이 왔어야 했다고 지껄이는 짓거리는, 전부, 미친 짓이다. 스물네 개의 갈비뼈와 폐부가 전부 으스러진 죽음에 관하여, 그리고 전신이 악성 종괴로 죄어드는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그 처참한 시체만이 눈앞에 있을 뿐, 아무것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 죽음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도. - 120, 죽음에 관하여, 남궁인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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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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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그렇게 태어난다 우리는
젖은 채 태어나고 젖으려고 사는 것들
답 없는 질문처럼 꼭 그렇게 - 우산의 고향 중

밤이 되면 누구나 혼자 눕는다 이 익숙한 일을 해내기 위해 아침이면 길고 가는선이 놓이고 하지만 그렇게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윽고 모든 것이 깜깜해지면 - 오늘의 바깥 중

구원은 도처에 있었느나 아무도 줍지 않았다 많은 문장으로 일기를 썼고 그보다 더 많은 문장을 지워갔다 여전히 그만둘 수 없었다 이토록 질긴 것들이 무엇인지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들여다보지 않았으므로 - 그해 겨울 중

이 시집읽던 새벽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너무 좋았다.
다만 2부는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가로막힌 듯한 기분.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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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콜하스 창비세계문학 1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지음, 황종민 옮김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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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법원이 알려온 바에 따르면 콜하스는 상습 소송꾼이다. 융커는 콜하스가 성에 나겨둔 말들을 결코 압류하고 있지 않다. 콜하스는 성으로 사람을 보내어 말들을 찾아가도록 하라. 아니면 말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융커에게 알려주도록 하라. 어떠한 경우에도 이런 소동과 분란으로 총리실을 귀찮게 하지 말도록 하라.” 콜하스는 말 두마리가 아까워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 개 두마리였다 할지라도 똑같이 괴로움을 느꼈을 것이었다 - 콜하스는 이 결정문을 받고 분노로 피가 끓었다. - 29

상습 소송꾼 취급을 받은 말상인 콜하스는 현실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인간의 전형. 분노로 들고 일어나 자신이 일으킨 분란에 대해 큰 저항없이 죄를 받는 모습을 보면 자신에게도 같은 잣대를 대고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다.(사람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좀 더 정의로웠겠지만)
단순히 무력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자라기 보다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적인 매력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인물이라서 다행이다. 무식하게 칼과 불만 휘두르는 인간은 아니어서.
덧붙여 상습 소송꾼이라는 단어를 보니, 전문 시위꾼, 귀족노조 등등의 단어들이 떠오른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눈가리기라도 하듯 등장하는 말도 안되는 단어들.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도 어디 한군데 호소할데 없는 이들에게 당시에도 얼마나 큰 쾌감을 주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제가 인간 사회에서 추방당한게 아니라면, 제가 인간 사회와 벌이고 있는 전쟁은 악행입니다. 추방당했다고!루터가 콜하스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너는 무슨 터무니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느냐? 네가 사는 국가 사회에서 누가 너를 추방했단 말이냐? 국가가 존재하는데, 누가 무엇을 하든 국가에서 추방되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 - 제가 말하는 추방당한 자란, 콜하스는 종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를 뜻합니다!- 56


독일 소설에 대해서는 언제나 늘 조금은 지루하다라는 느낌을 달고 있었는데, 정말 재밌게 읽었고, 볼륨을 생각하면 속도감 있는 독서를 했다. 마치 독일판 홍길동을 보는 듯한 구전문학 스타일의 흥미로움과 쾌감이 있는 이야기다. 물론 중세적인 내용과 그에 걸맞는 마법같은 우연같은 것들이 있어 근현대의 독일 소설과는 결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결말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으나, ‘너희(귀족, 기득권, 금수저 등등)에게 끝끝내 똥을 주고 가겠다’라는 저항정신이 느껴진다. 그리고 끝끝내 성체성사를 거부했던 루터박사의 성체성사는 그를 결국 구원해준다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겠다.

같이 실린 단편들은 여성과 인종에 대한 편견이 어쩔 수 없이 전시 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다라고 위안 삼을 만 했나?(이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심하진 않지, 그래도.... 라는 감상)

o.후작부인, 칠레의 지진, 주워온 자식 도 재밌게 읽음.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다른 책 5권 정도를 장바구니에 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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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책들.

부서진 사월은 독서모임책이라 권수에서 빼고 스무권 읽었음.

부진한가 아닌가의 애매한 경계의 오월.

상반기 안에 읽어야지 했던 책들.... 반도 소화 못함.

유월에 가능할까.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 같이 읽으면 재밌을 책.

오월의 리뷰. :)

2018.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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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자나 2018-06-01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혀~~부진하지 않아요. 20권 대단해요!!

hellas 2018-06-01 09:06   좋아요 0 | URL
그러나 저는 늘 아쉬워요:)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걸어본다 16
한은형 지음 / 난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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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머론의 <슬픈 짐승>을 읽고, 왠지 베를린의 정서라는 것에 끌려 다음책으로 골랐다.

베를린이 가지는 정치적인 공간성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비극을 양태할 여지가 있는 곳인지라, 우울함과 체념에 가까운 무기력이 과거의 베를린이었다면, 요즘의 베를린은 어떠한가 라는 궁금증.

베를린은 독일 출장 때 정말 잠깐 4시간 정도만 머물러본 도신데(그나마도 일정이 정신없어 그 초역이라는 곳만 어렴풋이 떠오르고 유럽의 도시기는 하지만 어쩐지 동구권의 냄새?가 나기도 했다), 뮌헨 체류 기간이 길어서 였을까 작가가 말했듯 뮌헨의 황금스러운 분위기와는 비교되는 초라한 빈궁의 느낌이랄까.

걸어본다 시리즈는 항상 재밌게 읽지만, 사실 관심 도시가 아니면 잘 안고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소설가 한은형의 베를린은 여러 의미로 내 취향과 맞는 장소와 이야기였다.

더불어 책장에서 언제가는 읽힐 준비를 하고 있는 책들에 대한 환기도 된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와 토마스 만에 대한 의욕을 불러 일으켜줬으니까. 다음 책은 클라이스트의 <미하엘 콜하스>를 읽어야지. 토마스 만은 <마의 산>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자꾸 미루고만 있는데, 상반기 안에...라고 말하니 다음달이구나.. 세월...

어쨌든 뤼겐이라는 도시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랫만에 어딘가가 가보고 싶어지게 한 독서.:)

상식적이지 않고, 모험심이 별로 없다. 그런 것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도 할 수 있다. ‘했던 것을 다시 한다, 그리고 또다시 한다’가 나의 행동 방식에 가깝다. 가끔 이런 게 지루해져서 뭔가 새로운 걸 해보기도 하지만, 그러기까지는 정말 많은 결심과 독려와 채근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 12

폰타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토마스 만이 좋아하고 영향을 받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뤼벡에 있는 토마스 만 하우스에 갔다가 알았다. 그가 경애했던 작가 여덟 명의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ㅎ인리히 하이네, 프리드리히 니체, 폴 부르제, 테오도르 폰타네, 테오도르 슈토름, 니콜라이 톨스토이, 에밀 졸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들을 제대로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주의자’ 졸라와 ‘교양주의자’ 괴테 말고는. 나는 ‘재미’를 독서(특히나 소설)에서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가장 재미있게 여겨지는 작가 중 하나가 토마스 만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 주저앉아 홀린 듯이 <브란덴브루크 가의 사람들>을 읽었고, <마의 산>은 그로부터 10년쯤 지나 읽게 되는데 그때의 황홀함은 <브란덴브루크 가의 사람들>을 읽을 때의 경험을 압도했다. 나는 토마스 만이 인간을 묘사하고 대화를 시키고 웃게 하는 방식, 산책시키는 방식, 그런 식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오묘한 방식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 107

걸음을 걷기가 어려웠다. 눈을 뗄 수 없었고, 발을 뗄 수 없어서. 심박수 증가, 심장 통증, 무릎 풀림, 현기증 같은 증상이 동반되었고,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게 ‘스탕달 신드롬’인가 싶다. 그림이나 책을 보고 그랬던 적은 있지만 도시를 보고 그런 적은 없었다. 그곳도 이렇게 즉각적이고 강렬한 육체적 반응은. 동행인 c 선생님-더군다나 독문학자-께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런 흥분을 감출 만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그래서 호들갑을 떨었고, 바고 그게 뤼벡에서의 나였다. - 136

2018.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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