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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뒤흔든 열 명의 과학자 ㅣ 초등부터 새롭게 보는 열 명의 위인 3
류화선 지음, 문성연 그림 / 한림출판사 / 2007년 11월
평점 :
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서양의 과학을 쉽게 떠올린다.
퀴리 부인이나,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똑똑한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세계 유수의 과학 수학 대회에 출전하여 높은 성적을 올리는 일이 비단 오늘날의 일 뿐이 아닌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이란 걸 금새 알 수 있다.
화약을 만들어 고려를 왜구로부터 구해 낸 최무선은 숨겨진 화약의 비밀을 찾아내어 실제로 화약 만들기에 성공하기까지 20년의 세월을 바쳤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화약에 일생을 바쳐 고려와 조선의 백성들이 적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게 하였다.
짐승의 가죽이나 얇은 베옷을 입고 추위에 떨던 백성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선사한 목화솜의 문익점은 우리가 흔히 말하듯 목화씨를 붓뚜껑에 숨겨오진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와 재배한 지 60년이 채 안되어 무명이 우리 민족이 입는 가장 대표적인 옷감이 된 걸로 보아 그의 과학적 호기심이 당대의 백성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의 실천력은 또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있다.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천은 고려 시대의 집안의 불운으로 산 속의 절에서 성장하혔으나, 무과에 급제하고 대마도를 정벌하면서 무장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과학적 호기심과 뛰어난 두뇌로 군선을 개조하면서 세종의 눈에 들었다.
금속활자를 개량하고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발명하고, 경복둥의화재 진압 장치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악기를 만들기도 하고 측량기구를 만들고 칼 활 갑옷등을 개량하는 등 필요하면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천재였다. 그의 뛰어난 천재성을 뒷받침하는 또 하난의 사실은 그는 조금이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배우는 데 앞장 섰다는 사실이다. 왜구의 배를 본 떠 군선을 개조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파스퇴르가 한 말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가가 있다."는 말의 증거이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가 장영실이라는 데는 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세종과 더불어 조선 초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장영실은 조선을 통틀어 최고의 천재라고 한다. 그가 만든 시계 자격루는 지금의 과학 기술로도 다시 만들기 힘들다고 한다. 지렛대릐 원리를 이용한 자동 시계인 자격루는 " 흐르는 물이 쇠공을 지렛대 쪽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굴러간 쇠공이 지렛대를 움직여 종과 징, 북을 울려 시간을 알리고 시간을 기록한 나무패를 든 인형이 위로 올라가게 합니다. - 본문 83쪽
조선의 하늘을 사랑한 이순지는 어려서부터 천문에 밝아서 조선의 천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이끌었다. 그는 지도만으로도 서울의 위도를 알아낼 만큼 똑똑했으며, 장영실. 이천과 더불어 우리나라만의 달력을 만드는 데 혼신을 다했다.
양반으로 태어난 신속은 모내기의 방법을 전국에 보급시켜 식량 생산을 늘렸으며, 그가 저술한 <농가집성>은 당대 최고 학자인 송시열이 서문을 써 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의서로 수많은 생명을 구한 허준의 이야기에서는 임진 왜란이 일어나자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선조에 대한 설명 중 이런 말이 나온다.
" 어제까지 나라의 별슬아치로 떵떵거리며 살았으면서도 나라가 어려워지자 제 살 길을 찾아 왕도 나라도 백성도 버리고 도망간 것입니다." -본문 149쪽
이 책을 지은이의 비판적 시각이 보이는 대목이다.
어려운 의학용어를 최대한 쉽게 풀어쓰고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치료법들을 소개한 우리나라 사람을 위한 의학서 <동의보감>의 저술은 허준의 의술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었다. 허준은 사람의 목숨을 죽이고 살리는 의학 지식을 의원이나 한문을 아는 사람들이 독차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지식이라면 많은 사람이 알수록 좋다고 생각해 사람을 치료하는 일만큼이나 책을 쓰는 일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조선이 낳은 천재 수학자 홍성하는 우리 실정의 산학서 <구일집>을 저술하여 그의 업적을 후대에 남겼다.
학자 집안 출신의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지에서 최초의 어류 백과 사전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였으며, 종두법에 평생을 바친 지석영은 한글맞춤법을 통일하는데까지 그 영향을 남겼다. 그러나 지석영의 삶에서 우리는 과학자의 삶이 어떠해야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 열명의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세종 때의 과학자가 세 사람이나 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단지 그 세대에만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종의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종조를 조선의 르네상스기라고 한다. 그런 부흥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