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통해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전홍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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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다는 한마디로 그 감정을 다 설명할 수 없어서 막막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보이는 이 태도를 설명해야 하는데, 참 어렵기만 하다. 나는 예민함이 성격의 한 종류로 여겼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민함에 관해 정신의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불안, 우울, 분노, 트라우마 등 4가지로 나누어 사례를 들려준다.


저자는 전작에서 매우 예민한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그 예민함을 잘 극복한 사람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예민함의 정신의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사례를 들려주면서, 예민함에 관련한 여러 감정의 근원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바꿔보는 실천법을 제시하며,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예민함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니.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기대되기도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를 제거할 수 없다면, 이를 극복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다. 특히 예민함은 대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보니, 나 역시 이 성향을 더 잘 파악하고 장점으로 만드는 방법이 많이 궁금하기도 하다.


특히 사람마다 생각하는 속도의 차이가 있다라는 저자의 말을 많이 생각했다. 아마도 예민함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 속도의 영향은 더 크다.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들 속에서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어떤 상사는 성질이 너무 급해서 내 마음을 쪼그라들게 한다. 나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자 애쓰던 사람에게 찾아온 위기는 또 어떤가. 갑자기 사망한 남편의 빈자리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온몸으로 폭력을 표현하는 남자의 사연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불안, 우울, 분노, 트라우마 4가지 내용이 다 특별했다. 읽으면서 나는 이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예민함인가 찾아보기 바빴다. 감정 기복이 심하지는 않지만, 특히 소리에 민감해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그 소리에 반응하기도 한다. 여러 명이 대화하면서 유독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과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나와 다른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데, 그에 관해 격한 반응을 보이면 감당하기 어렵다. 상대의 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아마 정식으로 진료를 받는다면 어떤 병명이 나올까 두렵기도 하다. 불안과 우울은 어떤 면에서 같은 근원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았기도 했다. 감정의 불안은 점점 우울을 같이 불러오기도 하고, 이는 타인을 의식하는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완화할 수도 있다.


많이 놀라웠던 건 트라우마였다. 혀가 아픈 영주 씨의 이야기는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심한 우울증신체화 장애’,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가 느끼던 육체적 통증은 어딜 가고, 이름마저 낯선 이 병명들 앞에서 혹시 더 깊은 우울증을 겪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영주 씨에게는 큰아들을 잃은 사건이 있었고, 이 충격으로 영주 씨는 마치 아들이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에 이른다. 남편은 이런 영주 씨를 보다 못해 아들의 죽음을 아내 탓으로 돌렸다. 그때부터 영주 씨는 아들을 야단쳤던 자기 혀에 죄책감을 느끼고 혀의 마비 증상이 시작됐다. 이 상태에서 중요한 건 영주 씨의 혀를 마비시키고 통증을 느끼게 한 원인을 제거하는 거였다. 아들의 죽음이 영주 씨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고, 남편과 함께 소통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는 게 치료의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예민함은 그 사람의 단점이 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저 성향의 하나로 인정하고, 예민함이 나의 일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예민함으로 나를 피폐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예민함을 잘 활용해 능력으로 만드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민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된 컴퓨터와 같다고 말한다. 다른 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 때문에, 기발한 생각들도 빛을 발한다고 말이다. 특히 섬세함을 요구하는 부분에서 그 역량을 뽐내기도 한다. 자기가 느끼는 예민한 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을 더 잘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것을 싫어해서 많은 사람과 관계 맺고 함께 해야 하는 조직 생활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남들이 나에게 했을 때 싫은 행동을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하기 싫어지는 것과 같다. 자기의 예민함을 잘 조절한다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가장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이 예민함을 장점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하다고, 트라우마의 원인을 찾아 극복하고, 좋은 생활 리듬을 만들어 무력감에 빠지지 않게, 자꾸만 파고드는 나쁜 기억을 끊어내는 방법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혼자 해결 가능한 시도로 전환을 시킨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 타인의 예민성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의 심각성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민함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무슨 걱정인지도 모를 걱정부터 하면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나의 예민함에 도움이 될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이 책과 관계없는 불안함이 먼저 밀려왔던 거다. 내일부터 시작될 운전면허 시험은 어떻게 할지, 학원 등록해야 하는데 원하는 수업이 없어서 어떻게 상담받아야 할지, 다음 주부터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자꾸 비가 와서 거슬린다는 등 그냥 주어진 대로 하면 되는 일을 걱정부터 한다. 피해갈 수도 없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이 먼저 나에게 달려든다. 오늘 하루 이 책에서 들려주는 나를 안심하게 하는 말들을 되새겨보고 있다. 하나씩 차근차근하면 된다고, 잘못해서 누가 뭐라고 할까 봐 걱정하기보다는 차분하게 하면 된다고. 이제는 예민하다는 성향에 불시로 끼어드는 불안이 문제의 시작이라는 걸 알고 나니, 나를 더 차분하게 하는 생각들을 찾게 된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일 아침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이제 잠을 좀 자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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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누수 일지
김신회 지음 / 여름사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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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집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이 한 마디로 이미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 , . 누군가 내는 소음은 아니었다. 살펴보니 갑자기 거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이미 젖어서 내려앉은 천장 벽지와 바닥은 적신 물 때문에 받쳐놓은 그릇. 한밤중에 발견한 게 문제라면 문제다. 나는 이미 이 상황에서 저자에게 빙의되었다. 잠을 잘 수 없는 건 당연했고,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머리카락이 줄줄 빠지기 시작했다.


밤이라는 시간이 문제다. 이걸 발견했을 때 바로 문제 해결의 시작을 달려야 하는데, 이 늦은 시간에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부터 문제였고, 밤새 물 떨어지는 걸 보고 그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다. 아파트 같은 경우 천장에서 물이 샐 때 거의 윗집의 문제인데, 윗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이미 아는 상황에서 말도 섞고 싶지 않을 때 더 큰 문제가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저자 역시 윗집이 이사 왔을 때부터 안 좋은 대면을 했고, 그러다가 누수까지 발생했으니 더 껄끄러웠을 테다. , 저절로 상상된다. 안 그래도 엘리베이터에서조차 마주치기 싫은 사람과 이 민감한 문제로 얼굴 보고 대화해야 한다는 게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도대체 얘네는 뭘 했기에, 어디에서 이렇게 물이 줄줄 떨어지게 하는 거야!


고요한 일상에 일어난 이 일은 단순히 누수라는, 물이 새니까 안 새게 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누수를 발견한 순간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이게 해결될 때까지 몸과 마음이 불편해야 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난다.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 일단 해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저자의 위층은 이미 이사 오기 전부터 갈등을 일으켰던 관계라 원만한 대화가 되지 않았다. 우리 집 천장이 샌다고 말했는데도, ‘그래서 뭐?’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과 좋은 대화가 될 리 없다. 적어도, 우리 집 때문에 다른 집에 피해가 생겼다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먼저 아닌가. ‘그래, 네가 하는 말 알아들었어. 그러니까 가 봐.’ 뭐 이런 분위기로 말하는 상대와 계속 마주하는 사람이 있을까? 피해자는, 피곤하다. 원래대로 되기 전까지 집에서 매일 그 피해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게 스트레스다. 빨리 마무리 짓고 이 문제를 더 생각할 일이 없어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이걸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피해를 준 이가 해결해줘야 하는 거다. 그래, 이게 문제였구나. 내가 아니라 누군가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더 짜증이 나는 거였구나.


,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저자의 집에 생긴 누수가 해결되긴 했지만, 그 해결 과정에서 겪었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인간의 심리도 알게 되었고, 원만하게 해결이 되지 않을 때 어떤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 시간 동안 자기를 발견하는 의미도 있었다. 난데없는 누수가 일상을, 삶을 확 바꿔놓은 거다.


몇 년 전부터 SNS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 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조금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알고 싶지 않았던 걸 알게 될 때, 이제껏 모르고 살았던 걸 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쌓여 연륜이 된다. 어쩌면 이번에야 비로소 나는 어른이 되는 중인지도 모른다. (105페이지)


골치가 아픈 일에 일상이 평온하지 못했을 텐데, 성난 파도가 밀려와 물을 한 바가지 퍼붓고 가듯 다 젖어있던 순간에 새로운 생각이 파고든다. 글을 쓰는 이가 글을 쓰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사건은 발생했다. 일상의 위기는 쓰지 못하던 날들에 불을 붙인다. 아마 분노의 순간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나중에 더 크게 당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매일 시끄러웠던 누수의 과정을 기록한다. 마음이 급해 두서없이 써 내려가도 그걸 확인할 사이도 없었다.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 모든 상황과 사람에게 화가 났을 테니까. 하지만 윗집과의 누수 분쟁을 해결하는 동안 깨닫는다. 윗집을 탓하던 모든 순간을 돌이켜본다. 내가 꼭 좋은 이웃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내가 정말 피해자인가, 하는 물음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나를 마주하게 한다.


누수로 시작된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일로 변하면서, 오늘을 사는 한 사람의 또 다른 일상이야기가 된다. 글을 쓰는 게 좋아서 업으로 삼고 먹고 살아왔는데 쓰지 못하던 시간을 힘들어했던 순간은 잊힌 듯하다. 신경 쓰이는 누수 문제에 전투적인 자세로 변하고 자판을 두드리게 된 게, 오히려 글 쓰는 일상으로 전환된 거다. 누수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일상의 모든 순간을 불러온다. 혼자 사는 여성 가구여서 과거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이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까지 생각이 퍼진다. 반려견을 돌보며 살기에 누수 문제는 저자 혼자만을 위한 일이 아닌 게 된다. 말 그대로, 집에 누수가 되면 인생이 누수된다는 저자의 외침이 글 곳곳에 묻어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이 물에 젖고 축 처져 있을 것 같은데, 피식 웃음이 나는 건 왜냔 말이지.


저자가 아니라 읽는 내가 전투적으로 되어버렸다. 성격 탓인지 속이 좁아서 그런지, 만약 내가 사는 집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좋은 말 안 나간다. 그래, 나 예민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자체부터 처리 과정, 마무리되었어도 가라앉지 않을 짜증이 내 마음에 가득하다. 혼자 사는 단독주택에 누수가 생겼어도,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주인이었어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인데, 누군가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저자가 내용증명까지 보내던 순간에는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피해자의 피폐해진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해자에게 더는 대화할 의지가 생기지 않으니, 서로 얼굴 보면서 언짢은 말 오고 갈 필요 없이, 그래, 법으로 해결하자, 싶었다.


아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런지, 그렇게 외치던 법만으로는 마음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곳곳에서 끼어든 생각들은 그동안의 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돈 때문에 힘들었는데, 돈이 생기고 집을 마련하고 보니 이 변화에 안심하지 못하는 인간이, ‘였던 거다.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생기는 걱정을 놓지 못하고 살게 된 것을, 살면서 점점 선택의 순간이 많아지는 것을, 그때마다 얼마나 잘 선택(?)하고 옳게만 살아왔는지 되짚는다.


나이가 들수록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경험과 시간이 쌓일수록 직관에 따르는 게 뒤탈이 없다. ‘해야 할 것 같은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면, ‘마음의 소리는 직관적인 선택이다.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이 세상이라면, 직관적인 선택의 기준은 ’. 내가 이제껏 쌓아온 경험과 시간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일은 고집이나 뒤처짐이 아니다. 살면서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온 과학을 존중하는 것이다. (178페이지)


앞으로 사는 동안, 지금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마주할 거고 그때마다 해결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 모르면 모른 채로 살아가는 인생도 좋긴 하다만, 뭔가를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저자의 이야기로 새삼 확인한다.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그게 아니니까 고민이 생기고 갈등이 일어나는 거겠지. 그때마다 또 생각하게 될 테다. 이게 맞는 건지, 이 마음을 향해 가는 게 옳은 건지.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은 건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애써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선택을 나무라지는 말자. 누구의 선택이든, 왜 그랬냐고 핀잔을 주지도 말자고.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고, 당신은 언제나 피해자였다고, 당신의 인생은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싶어서 말이다. 어떤 순간은 내가 선택해서일 수 있고, 어떤 인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놓여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얼마나 나이를 더 먹고 많은 일을 겪어야 어른이 되는 건지, 인생의 매 순간 다 잘하는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이 의문은 지금보다 어렸을 적에도 있었고, 지금도 가끔 나를 멍 때리게 하는 생각인데, 이제 확실히 알았다. 내가 앞으로 더 많은 일을 어떤 식으로 겪는다고 해도, 언제나 다 잘하는인간이 될 수 없을 거고, 항상 옳은선택만 하지도 못할 거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튀어나와 나의 인생에 누수를 만드는지 모른다는 거다. 몰라도 되는 삶은 안락할 수 있지만, 그게 꼭 만족스럽고 부러운 인생이 아닐 수도 있다. 일상이 너무 순조로운 것도 마냥 좋은 인생은 아닐 것만 같은 이 이상한 느낌은 뭔지. 아버지의 병원 생활 몇 년은 다음에 이어지던 엄마의 병원 생활에 당황하지 않게 해줬다. 몇 년의 병원 생활과 그로 인해 처리해야 했던 많은 일을 발품 팔아가며 해결하다 보니, 처리 담당자보다 더 많이 알게 되어 오히려 내가 그 직원에게 알려주는 웃픈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시골집의 오래된 땅 문제로 골치가 아팠는데, 그 문제 역시 여기저기 확인하며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이 나의 인생 경험치를 ‘+1’ 해줬다.


오래 묵었거나 갑자기든 튀어나와 일상을 지치게 했던 이런저런 일들, 피해갈 수도 없고 마주쳐야만 했던 일을 또 그렇게 해결하면서 하나씩 건너가다 보니, 적어도 이제 같은 일에는 더 당황하지 않게 되겠지 싶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짜증은 가라앉고, 순서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래, 그거면 됐지.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도 없다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더 있겠어 하는 마음. ‘몰랐던 걸 하나하나 깨치며 단단해지는 어른’(105페이지)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금도 겪고 있다. 이러다가는 죽기 전에는 어른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겠나, 어른이 되겠다고 계속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또 그렇게 살아가야지 뭐.


뭐든 의심부터 하고 나의 피로함을 앞세워 날을 세웠던 것을 누그러뜨리게 하는 이야기에 내 일상이 얼마나 각박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세상을, 사람을 조금은 더 믿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살아가고 싶어지게 하는 글이었다. ‘누수 때문에 죽을 것 같았는데, 누수 때문에 결국 살았다라는 작가의 마음을, 딱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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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누수체험기 #나도알고싶지않았습니다 #어른은어떻게되는가 #죽기전에는어른안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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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독서력을 찾아야 할 건 청소년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거의 1년 반을 책 제대로 읽지 못하고 살았다. 뭐 그전에도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독서력이긴 했다만, 그것보다 더 안 읽고 있다는 게 괜한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날씨도 덥고, 다른 생각에 빠져 책표지만 바라본 지 오래다. 저자 김경민의 다른 책을 읽어본 적 있기에, 이 책도 아마 '책을 부르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긴 했다. 솔직히 이 책도 나보다는 조카 때문에 펼쳐 들었던 책인데, 이건 뭐 나이 구분 없이 가까이해야 할 독서 지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읽기 숙제를 내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 수업과 숙제에 학원 수업과 숙제까지, 솔직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책 읽기를 놓지 않아야 하는 건, 숙제인 것도 있지만 책 읽기 하나로 파생하는 장점들이 많다는 걸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직 국어 선생인 엄마와 청소년 아이가 같이 책을 읽고 기록한 독서담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부를 1등 하는 것보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마는, 어디 그게 현실에서 마냥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희한하게 조카들이나 주변의 아이들을 지켜보면, 거의 모든 과목에서 독서력이 바탕이 되는 걸 느꼈다. 모든 과목의 시험에서 문제를 제대로 읽고 파악하면 답을 절반은 맞은 셈이 되었다. 서술형 문제에서도 이미 아는 답을 어떻게 잘 표현하며 쓰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기도 했다. 다른 방식으로 글쓰기를 배울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배워야 한다면 책도 재밌게 읽고 다른 이의 글에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쓰고 표현하는 것까지 습득할 방법이라면, 책 읽기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만. (? 이게 아닌가? 책 읽기가 재미없으니 시험과 상관없다고? 뭐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저자는 게임에 빠진 아들에게 게임 시간을 늘려준다는 당근을 내밀며 같이 책을 읽고 대화하고 기록하기에 이른다. 전에도 아들은 책을 곧잘 읽는 아이였지만, 그놈의 코로나 19’가 문제다. , 이 얘기하니까 정말 숨이 막힐 정도인데, 이 감염병은 대한민국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라는 방식의 새로운 수업 형태를 선사했고, 집중력 저하는 물론이고 집에서 수업 듣다 보니 긴장감이 거의 사라졌다. 주변의 아이들이 이 방식의 수업을 들으면서 흐트러진 것도 있다. 부모는 직장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 듣는다고 세수도 안 한 얼굴로 모니터 앞에 앉아서(바지는 잠옷 차림), 선생님이 틀어준 온라인 영상을 보면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던 시간. ‘코로나 19’ 시기를 잘 활용해서 오히려 성적이 오른 아이도 있다던데, 내 주변의 아이 대부분은 이 시기를 보낸 모습은 비슷했다. 온라인 수업 모니터 아래로 수업 듣는 척 게임 하는 건 비일비재했다. 저자의 아이도 이 시기에 게임 하는 시간이 늘었으니, 단순히 잔소리하고 다그치는 건 먹히는 방법이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게임 시간 늘려준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서로가 덜 피곤한 시간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싶은데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누가 추천해주는 목록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독서 재미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총 24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문학 12, 인문 사회 과학 각 4편씩 구성되어 있다. 책의 초반부에 적힌 목록을 보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중에서 나는 몇 권을 읽었던가 하는 거였다. (다들 나랑 비슷할 걸?) 기세등등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목록 세어보다가 말았다. ~의 안 읽었기에 할 말은 사라지고, 이 책 속의 목록은 청소년이 아니라 나의 목록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어떤 책을 소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목록을 살펴보면 된다. 굳이 어떤 책으로 어떤 얘기를 했다고까지 말하기보다, 나는 이 책이 써진 이유에 더 집중하고 싶어졌다. 소개된 24권의 목록은 누구나 아는 고전도 있고, 기발한 발명의 느낌을 주는 과학도 있다. 사회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도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책도 있다. 그 안에서 발견해야 할 기본적인 게 문해력이 아닐까 싶은데, 이 책의 소개 글에서 언급했던 심각했던 바로 그 문제인 기초 문해력을 쌓는 방법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모르는 문장이나 단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때 어느 정도의 분위기로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안 되면 뜻을 찾아보면서 알아간다. 나는 아이들이 그 과정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 읽기를 권장한다. 단순히 숙제여서, 시험에 나오니까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책을 읽고 내용을 아는 것 이상을 남기는 게 책 읽기의 좋은 효과 중 하나라고 말이다.


개인별로 환경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코로나 19 상황이 장기간 지속하면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디지털 매체 의존이 높아진 것도 사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에서 멀어지는 위험에 빠진 거다. 몰라도 괜찮지만, 알아가는 과정을 놓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책 읽기 숙제에 고통스러워하는 조카들을 봐도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것 같다. 줄임말 표현, 모바일 검색에 영상으로 확인하는 일, 이게 옳은 정보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생략한 채로 습득하는 게 익숙해진 것을 눈앞에서 보고 나니 무서울 정도였다. 책 읽기 숙제를 받으면 검색으로 줄거리 확인부터 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이 책을 직접 읽지 않았으니 그 안의 메시지를 자기가 찾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점점 책 읽기가 어려워지고 싫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말할 수 없어지는 것. 이건 누구 탓도 아니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이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되돌려 놓을 수밖에 없다. 저자가 아이에게 보상처럼 내 건 게임 시간 추가와의 거래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책 읽기 습관을 되찾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며 엄마와의 공동 작업도 완성했으니까 말이다.


단순히 책 읽기에서 멈추지 않고, 읽고 난 후의 독서 토론 같은 시간을 만들어주는 과정이 좋았던 책이다.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느낌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줬다. 내가 읽은 느낌과 다른 이의 생각이 같은 지점에서는 공감하고, 다른 지점에서는 다양한 생각을 흡수하는 기회였으니까. 생각의 가지를 뻗는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그렇다면 책 읽기 시작을 위한 방법도 중요하다. 문해력 욕심에 무조건 유명한 고전이나 어렵고 두꺼운 책을 고를 이유는 없다. 어차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첫 페이지에서부터 덮어두기 쉬우므로, 자기 수준과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읽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배우는 게 독후감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질문이 생겨나는 과정의 중요성을 독후감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면서, 이 과정에서 생각의 확장을 불러온다. 이 질문들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부터 과거의 경험, 미래의 방향까지 고민하게 한다.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공부가 우선이 되는 일상이 맞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게 ?’ 필요한지 알게 된다면 공부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온라인에서 본 얘기가 잊히지 않는다. 어느 부모가 초등 아이와 심청전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단다.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했다는 그 기본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아이가 하는 말은, 그 얘기를 왜 자기에게 하는 거냐고, 심청이가 누구냐고, 그 애가 자길 안다고 하더냐고. 실제인지 웃으라고 만든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얘기가 낯설지 않은 건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거기에 최근에 매체에서 들었던 이야기 하나 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질문이 유행처럼 이어진다고 한다.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가 벌레로 변해 있다면 엄마(아빠)는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 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부모는 선뜻 대답을 못 하기 일쑤였다고. 이 내용이 카프카의 변신이야기라는 건 너무 잘 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용, 이 질문이 왜 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했겠지. 소설 변신속 가족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는데, 그 질문을 여기에서 다시 맞닥뜨리니 다시 들어도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어쨌거나, 아이는 이 질문으로 부모와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고, 벌레로 변한 게 자기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어도 이 질문은 많은 답과 또 다른 질문을 만들 거라는 것을 알게 됐겠지.


책이 단순히 읽는다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고민과 생각, 질문을 만들면서, 점점 더 넓은 시야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일상의 소소한 시간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더 크게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정하는 것까지 관여하고 고민하게 했으면 좋겠다. 덩달아 나도, 읽어야 할 목록이 늘어났다. 필독서처럼 보이는 이 책들을 거의 안 읽었다는 게 너무 익숙해서 이상해. ㅠㅠ







 

 

 


#책읽기는귀찮지만독서는해야하는너에게

#멋진 신세계 #파리대왕 #꽃들에게희망을 #필경사바틀비 #죽이고싶은아이 #한중록 

#피그말리온아이들 #키르케 #맥베스 #오이디푸스왕 #영원한유산 #구운몽 #정의를찾는소녀 

#죽음의수용소에서 #철학자와늑대 #논어,사람의길을열다 #팩트풀니스 #자본주의할래?사회주의할래

#잠깐애덤스미스씨,저녁은누가차려줬어요#선량한차별주의자 #과학이가르쳐준것들 #떨림과울림 

#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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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10 - 기후위기 탈출로 가는 작지만 놀라운 실천들
박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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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일 오늘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 환경과 자연보호를 위해 스페인의 국제 환경단체 가이아가 제안해 만들어진 날이라고 한다. 오늘 하루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다행히(?) 일회용 봉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건, 일회용 비닐봉투보다 더한 낭비를 한 것 같아서 말이다. 주방 뒤쪽에 분리수거를 위해 공간을 마련해두었는데, 큰 비닐에 대충 담아두다 보니 지저분해 보이던 걸 참고 있었다. 나름 정리한다고 선택한 게, 분리수거함을 주문하는 거였다. 이것도 나중에 필요 없어지면 버리게 되고, 또 쓰레기가 될 텐데. 쓰레기를 버리겠다고 쓰레기가 될 물건을 사버렸다. 이런 반복이 지구를 죽이는 일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까먹고 반복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미 이 책의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우리의 지구가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이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해야 할 일을 말한다. , 솔직히 말하면 몰라서 못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알면서도 귀찮아서 안 하는 경우가 많고, 또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해서 환경문제 해결에 더디게 다가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기발한생각에 더 눈길이 간다. 이미 우리가 아는 방법으로 환경문제 해결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더 나은, 더 기발한 그 생각에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것도 있고 기발한 다짐으로 약속을 지키는 방법도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보이는 것보다 마음을 더 보게 하는 선물 포장에, 물건 재활용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 오래된 도시의 방치가 아니라 재생에 관심 두고, 생태 도시와 생태 환경 만들기에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다. 전자폐기물 늘리기에 힘쓰지 말고, 공정무역 등장의 의미를 새기고, 친환경 경제로 가치 소비에 참여해야 한다. 탄소 중립 사회에 더 관심 두고 우리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게 당연한 과제였다. 듣고 보니 어려운 말은 아니다. 너무 많이 들어와서 귀에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더욱더 기발한 생각에 빠져들어야 하는 이유에 오늘 날씨가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 한 해가 다르게 더워지는 여름과 이런 추위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던 한파를 기억한다. 혹은 이게 겨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포근해서 한겨울에 벌레와 해충이 자주 보이던 때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뚜렷한 4계절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 뭔가 많이 변했다는 건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니 저자의 설명과 공동의 과제처럼 주어진 다짐이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소비 행동이, 귀찮음으로 생긴 습관이 우리의 지구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몇 번을 들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개해준 여러 가지 현상과 방식이 다 중요하지만, 두 번째 장에서 들려준 포장지 없는 가게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천연 수세미나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같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알맹 상점. 개인 용기를 가져와서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담아서 사가는 시스템이 좋았다. 번거롭긴 하지만 쓰레기를 줄이는 확실한 방법이다. 요즘에 음식 포장하러 갈 때 일부러 집에 있는 밀폐 용기를 가져갈 때가 있다. 처음에는 포장 용기 값을 따로 받는 매장이어서 돈을 아끼려고 가지고 다녔는데, 그렇게 개인 포장 용기 가지고 다니니 내가 분리수거할 때 버리는 쓰레기도 줄어서 편해졌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음식 포장하러 갈 때 포장 용기 챙기는 일이 번거로워서 그냥 가면 그 후에 생기는 쓰레기는 앞에서 편했던 내 몸을 뒤에 불편하게 하는 일이 되니 똑같은 거 아닌가. 게다가 쓰레기가 생기니 지구가 병드는 속도에 내가 한몫하는 게 된다. 별 것 아닌데, 이게 습관이 된다면 일거양득이 되는 건 당연한 결과인 듯하다.


특히 포장지 없는 가게 이야기에서 더 반성하게 되는 건,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자는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가 보내는 경고를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 19 영향으로 음식 배달과 택배의 증가로, 쓰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겠다고 쓰레기를 늘린 셈이다. 그래서 더 각성하게 된다. 제로웨이스트숍이 익숙해지고, 뉴질랜드 기업의 식용 그릇(먹을 수 있는 컵)이나 독일의 리컵시스템 등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가게로 포장지를 되돌려주는 방식이 생기기까지 했다. 우유 팩을 재활용해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만들고, 폭탄을 재활용하여 액세서리도 만든다. 생각하지도 못한 것에서 우리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생활용품들이 많아서 놀랐다. 찾아보고 생각하고 노력하면 되는 일을 왜 이렇게 안 하고, 모른 척하고 살아왔는지 반성의 시간이 참, 깊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환경문제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일상의 불편함이 지구를 살리는 아이디어로 변한다는 게 이 책이 전하는 놀라움이다. 사실 아는 것도 있었지만 몰랐던 것도 많았기에,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기업이나 나라의 방법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으로 지구의 쓰레기를 줄이는 참신한 방법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친환경 소비 생활, 재활용으로 쓰레기가 예술이 되는 놀라움과 상상력, 늘어나는 전자폐기물에서 광물을 뽑아내 재활용하는 방법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방치된 산업시설을 도시재생으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생태여행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배우게 한다. 세계 환경문제를 우리 공동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걸 설명하면서, 일단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게 우리의 과제임을 말한다.


며칠 전에는 비 오는 날씨에 꿉꿉함을 견디지 못해서 신상 제습기를 주문했다. 몇 년 동안 고민하다가 이제 겨우 주문했으니 충동 구매가 아니라고 정당화하면서, 몇 시간 틀어놨다고 방안이 뽀송뽀송해지는 걸 경험하고 신세계에 빠진 듯했다. 이걸 왜 이제야 샀을까 하며 신났었는데, 이 책 읽다 보니 진짜 내가 편해지자고 샀던 이런 제품들이 지구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 비가 오고 날씨 흐리고 겨울의 흐린 날씨에 잘 사용할 것 같아서 좋더라만,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옷장을 열고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하는 건 이제 금지어가 됐고, 예쁜 그릇에 눈길이 가면 그냥 남의 것 보는 것으로 만족, 일회용 물티슈가 아니라 걸레를 빨아서 청소하는, 작은 습관들이 나를 살린다는 교훈을 오늘 머릿속에 새겨 넣는다. 내가 조금 불편하면 되는 일이 지구를 구한다.


#지구를살리는기발한생각10 #박경화 #한겨레출판 #지구를살리는일 #환경살리기

#리사이클 #재활용 #생태도시 #미니멀라이프 #탄소중립 #포장지없는가게 #환경문제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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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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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제들은 요양병원에 모셨어. 매달 돈 걷어 병원비 내고 시간표 짜서 주말마다 들르고. 간병이란 게 그렇잖아. 해도 해도 티도 안 나고. 누가 혼자 독박 쓰다간 화병 나고 말지. 화병뿐이야? 집안이 다 작살나는데. 그래서 우린 딱 엔분의 일로 해.”

예순 살 반장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명주는 협동이 잘되는 반장 형제들이 부러웠다.

말이 그렇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집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 자기들 먹고살기 힘들다고 부모고 형제고 외면하는 세상에.”

맞아. 병원비는 별도로 하고 하루 간병인 쓰는 것만도 10만 원, 11만 원 하는데, 거기에 기저귓값 삼사십 들지, 잘 봐달라고 간병인한테 몇만 원씩 찔러줘야지. 웬만한 벌이로는 요양병원도 못 보내요.” (87페이지)


이 책을 읽다가 본문의 이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가족을 돌보는 일, 그것도 부모를 돌보는 일이 당연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몸도 힘들고 내 시간이 없고, 무엇보다 끝을 모를 일에 마음이 더 지쳐갔다. 사람이 뭔가를 할 때 결과를 기대하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어떤 결과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도대체 어떤 결과를 기대해야 옳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게 있다. 내 몸이 그래도 좀 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 꼬박꼬박 병원비가 나가고, 시간 내서 병원에 가봐야 하고, 환자가 아니라 돌보는 이들을 위한 간식도 들고 가고. 마음은 여전히 지친 상태였는데, 돈까지 들어가는 시간을 견디기 힘든 게,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주변에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이들도 있었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는 친구네는 집안에 가스레인지 사용도 안 하고 있던 정도였다. 가족을 돌본다는 건 이런 불편함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여겼다가 금방 후회했다. 머지않은 시간에 그 돌봄의 역할을 내가 하고 있었으니까. 오래된 아파트에 살면서 치매에 걸린 친정엄마를 돌보는 50대의 명주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린 20대 청년 준성의 현재에 미래를 생각하는 건 사치였다. 그런데도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고 싶은 건, 오늘의 절망이 절망으로만 남아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준성이 치매 걸린 아버지를 돌보며 야간에 대리운전하고,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물리치료 자격증을 준비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대로 머물러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아버지를 돌보는 게 준성의 몫이라면, 더 안정된 환경에서 아버지와 준성 둘 모두가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만드는 게 좋을 테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오늘을 살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언제나 돈이 필요했다. 먹고 자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아픈 부모를 돌보는 일에도 돈을 필수인데, 돌봄을 하고 있으면 돈을 누가 버나?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하는데 연금이 있었다. 명주에게는 엄마의 연금이 엄마의 병원비며 이들의 생활비가 되었고, 준성에게는 대리운전과 아버지의 연금이 생활비를 채워줬다. 외출에서 돌아온 명주가 죽은 엄마를 발견했을 때, 간병의 고단함과 함께 그녀의 삶도 더 유지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 끝내려고 했다.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녀는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죽은 엄마를 미라로 만들고, 엄마의 공식적인 삶을 끝내지 않은 채로 연금을 받는다. 화상 때문에 통증을 이기지 못하는 그녀가 일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이 비밀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던 그때, 옆집 청년 준성에게도 명주에게 일어났던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명주와 준성, 이들은 같은 경험과 고통에 공감할 수밖에 없던 관계이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자기 인생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이들이었다.


언젠가 뉴스에서도 봤던 이야기가 이 소설에 등장한다. 부모가 죽은 것을 숨긴 채로 부모의 연금을 꾸준히 받아왔던 자녀의 이야기 말이다. 글쎄, 그 뉴스의 주인공과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얼마나 같은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이들이 부모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부모의 연금을 계속 받아야만 했던 순간의 선택이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하나. 모든 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고, 돌봄이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남겨진 이가 살아가고자 발버둥을 치던 모습이 눈에 그려질 정도다. 간병은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시작되고, 끝이 없는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이 되고, 그 터널의 끝에서 마주하는 게 행복만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돌봄의 대상이 되었던 이가 죽거나,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생계를 위해 불법적인 선택을 하거나, 오랜 시간 빚에 시달리다가 인생이 끝나거나. , 그런 결말이 저절로 그려지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테다.


현대 사회의 문제를 개인에게만 부담하는 구조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한꺼번에 바꾸지 못하는 것도 모르지 않기에 답답하게 읽히기도 했다. 그렇게 두 주인공에게 한없이 감정을 이입하며 읽다가도, 심장 쫄깃해지는 긴장감 또한 놓치지 않게 그려내는 소설이기도 하다. 명주가 관을 사다가 엄마의 시신을 숨기기 시작했을 때, 한겨울에도 에어컨을 틀어 공기를 건조하게 하고 수시로 방을 소독하며 시신의 부패를 늦추려는 노력을 볼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누군가는 알아채지 않을까? 생활 흔적이 없으면 의심하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생기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들이 있다. 명주도 몰랐던 엄마의 남자친구 진천할아버지, 오랜 세월 연락도 없이 살다가 엄마의 인생을 갉아먹으려 나타난 딸 은진. 수시로 엄마의 안부를 묻는 진천할아버지는 호의가 가득했지만, 명주의 딸 은진은 이 소설의 빌런이다. 어쨌거나 명주에게 이들은 이 순간 예상하지 않았던 복병들이다. 방법은 하나, 방안에 둔 엄마의 시신을 이제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만 한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이 어땠으리라는 건 짐작되기에, 명주와 준성의 행동과 선택에 누가 돌을 던지며 욕할 수 있을까 싶다만.


눈이 쏟아지던 고속도로를 지나는 이들의 내일은 어떨까. 겨울이 이렇게 지나고 있으니 좀 괜찮아지지는 않을까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다지 밝아 보이지만은 않지만, 그런대로 또 살아가면서 오늘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명주와 준성이 연대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간병도 각자의 몫이고, 남겨진 이의 삶도 다 자기가 꾸려나가야 하니까. 그런데도 이들이 느끼는 공포나 죄책감이 더는 이들을 감싸지 않기를 소망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오늘 즐거웠으면 좋겠다. 간병을 단순하게 돌보는 일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이 소설에 많은 이가 관심 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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