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독서력을 찾아야 할 건 청소년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거의 1년 반을 책 제대로 읽지 못하고 살았다. 뭐 그전에도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독서력이긴 했다만, 그것보다 더 안 읽고 있다는 게 괜한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날씨도 덥고, 다른 생각에 빠져 책표지만 바라본 지 오래다. 저자 김경민의 다른 책을 읽어본 적 있기에, 이 책도 아마 '책을 부르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긴 했다. 솔직히 이 책도 나보다는 조카 때문에 펼쳐 들었던 책인데, 이건 뭐 나이 구분 없이 가까이해야 할 독서 지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읽기 숙제를 내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 수업과 숙제에 학원 수업과 숙제까지, 솔직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책 읽기를 놓지 않아야 하는 건, 숙제인 것도 있지만 책 읽기 하나로 파생하는 장점들이 많다는 걸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직 국어 선생인 엄마와 청소년 아이가 같이 책을 읽고 기록한 독서담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부를 1등 하는 것보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마는, 어디 그게 현실에서 마냥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희한하게 조카들이나 주변의 아이들을 지켜보면, 거의 모든 과목에서 독서력이 바탕이 되는 걸 느꼈다. 모든 과목의 시험에서 문제를 제대로 읽고 파악하면 답을 절반은 맞은 셈이 되었다. 서술형 문제에서도 이미 아는 답을 어떻게 잘 표현하며 쓰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기도 했다. 다른 방식으로 글쓰기를 배울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배워야 한다면 책도 재밌게 읽고 다른 이의 글에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쓰고 표현하는 것까지 습득할 방법이라면, 책 읽기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만. (? 이게 아닌가? 책 읽기가 재미없으니 시험과 상관없다고? 뭐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저자는 게임에 빠진 아들에게 게임 시간을 늘려준다는 당근을 내밀며 같이 책을 읽고 대화하고 기록하기에 이른다. 전에도 아들은 책을 곧잘 읽는 아이였지만, 그놈의 코로나 19’가 문제다. , 이 얘기하니까 정말 숨이 막힐 정도인데, 이 감염병은 대한민국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라는 방식의 새로운 수업 형태를 선사했고, 집중력 저하는 물론이고 집에서 수업 듣다 보니 긴장감이 거의 사라졌다. 주변의 아이들이 이 방식의 수업을 들으면서 흐트러진 것도 있다. 부모는 직장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 듣는다고 세수도 안 한 얼굴로 모니터 앞에 앉아서(바지는 잠옷 차림), 선생님이 틀어준 온라인 영상을 보면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던 시간. ‘코로나 19’ 시기를 잘 활용해서 오히려 성적이 오른 아이도 있다던데, 내 주변의 아이 대부분은 이 시기를 보낸 모습은 비슷했다. 온라인 수업 모니터 아래로 수업 듣는 척 게임 하는 건 비일비재했다. 저자의 아이도 이 시기에 게임 하는 시간이 늘었으니, 단순히 잔소리하고 다그치는 건 먹히는 방법이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게임 시간 늘려준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서로가 덜 피곤한 시간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싶은데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누가 추천해주는 목록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독서 재미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총 24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문학 12, 인문 사회 과학 각 4편씩 구성되어 있다. 책의 초반부에 적힌 목록을 보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중에서 나는 몇 권을 읽었던가 하는 거였다. (다들 나랑 비슷할 걸?) 기세등등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목록 세어보다가 말았다. ~의 안 읽었기에 할 말은 사라지고, 이 책 속의 목록은 청소년이 아니라 나의 목록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어떤 책을 소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목록을 살펴보면 된다. 굳이 어떤 책으로 어떤 얘기를 했다고까지 말하기보다, 나는 이 책이 써진 이유에 더 집중하고 싶어졌다. 소개된 24권의 목록은 누구나 아는 고전도 있고, 기발한 발명의 느낌을 주는 과학도 있다. 사회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도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책도 있다. 그 안에서 발견해야 할 기본적인 게 문해력이 아닐까 싶은데, 이 책의 소개 글에서 언급했던 심각했던 바로 그 문제인 기초 문해력을 쌓는 방법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모르는 문장이나 단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때 어느 정도의 분위기로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안 되면 뜻을 찾아보면서 알아간다. 나는 아이들이 그 과정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 읽기를 권장한다. 단순히 숙제여서, 시험에 나오니까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책을 읽고 내용을 아는 것 이상을 남기는 게 책 읽기의 좋은 효과 중 하나라고 말이다.


개인별로 환경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코로나 19 상황이 장기간 지속하면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디지털 매체 의존이 높아진 것도 사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에서 멀어지는 위험에 빠진 거다. 몰라도 괜찮지만, 알아가는 과정을 놓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책 읽기 숙제에 고통스러워하는 조카들을 봐도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것 같다. 줄임말 표현, 모바일 검색에 영상으로 확인하는 일, 이게 옳은 정보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생략한 채로 습득하는 게 익숙해진 것을 눈앞에서 보고 나니 무서울 정도였다. 책 읽기 숙제를 받으면 검색으로 줄거리 확인부터 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이 책을 직접 읽지 않았으니 그 안의 메시지를 자기가 찾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점점 책 읽기가 어려워지고 싫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말할 수 없어지는 것. 이건 누구 탓도 아니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이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되돌려 놓을 수밖에 없다. 저자가 아이에게 보상처럼 내 건 게임 시간 추가와의 거래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책 읽기 습관을 되찾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며 엄마와의 공동 작업도 완성했으니까 말이다.


단순히 책 읽기에서 멈추지 않고, 읽고 난 후의 독서 토론 같은 시간을 만들어주는 과정이 좋았던 책이다.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느낌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줬다. 내가 읽은 느낌과 다른 이의 생각이 같은 지점에서는 공감하고, 다른 지점에서는 다양한 생각을 흡수하는 기회였으니까. 생각의 가지를 뻗는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그렇다면 책 읽기 시작을 위한 방법도 중요하다. 문해력 욕심에 무조건 유명한 고전이나 어렵고 두꺼운 책을 고를 이유는 없다. 어차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첫 페이지에서부터 덮어두기 쉬우므로, 자기 수준과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읽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배우는 게 독후감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질문이 생겨나는 과정의 중요성을 독후감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면서, 이 과정에서 생각의 확장을 불러온다. 이 질문들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부터 과거의 경험, 미래의 방향까지 고민하게 한다.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공부가 우선이 되는 일상이 맞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게 ?’ 필요한지 알게 된다면 공부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온라인에서 본 얘기가 잊히지 않는다. 어느 부모가 초등 아이와 심청전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단다.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했다는 그 기본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아이가 하는 말은, 그 얘기를 왜 자기에게 하는 거냐고, 심청이가 누구냐고, 그 애가 자길 안다고 하더냐고. 실제인지 웃으라고 만든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얘기가 낯설지 않은 건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거기에 최근에 매체에서 들었던 이야기 하나 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질문이 유행처럼 이어진다고 한다.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가 벌레로 변해 있다면 엄마(아빠)는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 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부모는 선뜻 대답을 못 하기 일쑤였다고. 이 내용이 카프카의 변신이야기라는 건 너무 잘 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용, 이 질문이 왜 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했겠지. 소설 변신속 가족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는데, 그 질문을 여기에서 다시 맞닥뜨리니 다시 들어도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어쨌거나, 아이는 이 질문으로 부모와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고, 벌레로 변한 게 자기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어도 이 질문은 많은 답과 또 다른 질문을 만들 거라는 것을 알게 됐겠지.


책이 단순히 읽는다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고민과 생각, 질문을 만들면서, 점점 더 넓은 시야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일상의 소소한 시간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더 크게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정하는 것까지 관여하고 고민하게 했으면 좋겠다. 덩달아 나도, 읽어야 할 목록이 늘어났다. 필독서처럼 보이는 이 책들을 거의 안 읽었다는 게 너무 익숙해서 이상해. ㅠㅠ







 

 

 


#책읽기는귀찮지만독서는해야하는너에게

#멋진 신세계 #파리대왕 #꽃들에게희망을 #필경사바틀비 #죽이고싶은아이 #한중록 

#피그말리온아이들 #키르케 #맥베스 #오이디푸스왕 #영원한유산 #구운몽 #정의를찾는소녀 

#죽음의수용소에서 #철학자와늑대 #논어,사람의길을열다 #팩트풀니스 #자본주의할래?사회주의할래

#잠깐애덤스미스씨,저녁은누가차려줬어요#선량한차별주의자 #과학이가르쳐준것들 #떨림과울림 

#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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