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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 - 야생의 순례자 시턴이 기록한 북극의 자연과 사람들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성훈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캐나다 중부 지역의 자연 환경을 상상하는 일은 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어려운 일이다. 세계지로를 펼쳐 놓고 한 눈에 들여다봐도 지리적 공간을 상상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의 속도와 도구를 버리고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시턴의 북극 탐험에 동반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잠깐의 낯섦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시턴의 카누에 속도를 맞추게 된다. 동물학자로 알았던 그의 이력에 에세이스트라는 작가에 가까운 호칭이 붙는지 금새 이해가 된다. 그의 탐험 기록은 정확하고 생생하고 유머가 넘치며 재미있다.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은 그의 나이 사십대 중반(시턴은 1860년에 태어났고 이 탐험은 1907년에 이루어졌다), 도보로 캐나다 북서쪽 끝을 탐험한 기록이다. 탐험 기간은 약 6개월이며, 이 기록은 그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몇 년 후에 작성되었다.
북극이라고는 하지만 에스키모나 얼음집이 곧바로 떠오는 극지방이 아니라 캐나다 중부 지역의 대초원지대다.
탐험 목적은 순록을 관찰하고 개체수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지만 그의 말마따나 온갖 종류의 자연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호수를 관찰하여 지도를 마무리하고, 다른 호수도 탐사한다. 앞에서 밝혔듯이 온전히 걷거나 카누를 타고 진행된다.
모든 여행이나 탐험이 그렇듯이 목표와 목적지는 분명하되 이런 이야기가 독자의 흥미를 끄는 이유는 과정이 주는 재미일 것이다. 특히 쉽게 가보지 못할 곳이거나 처음 발견되는 곳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행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런 탐험 기록을 읽는 특별한 맛이다.
시턴의 북극 여행은 그런 욕구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다.
동물학자로서 시턴을 상상할 때, 나는 그가 당연히 동물을 죽이거나 식용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박제를 만들어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그는 여러 종류의 동물을 죽인다. 식용을 위해 동물을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목적 이외에는 동물을 죽이거나 잡지 않는다.
탐험의 길목마다 현지 안내인을 고용하는데, 그들은 인디언들이다. 이 탐험 기록에는 꽤 여러명의 인디언이 등장한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독자에게 100여 년전 그들의 모습은 시턴의 말처럼 ‘혼혈’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미국대륙에서 인디언들이 자신의 땅을 백인들에게 내주고 보호구역에서 살아야 했던 것처럼 비극적인 인디언 역사는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턴은 ‘혼혈’이라는 말로 인디언을 자주 표현하는데 북아메리카 인디언들 역시 미국 인디언의 역사와 다르지 않았음을 상상해 볼 뿐이다. 그렇게 백인과 섞여 살면서 여행자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인디언들은 착하기도 하고 게으르기도 하고 부지런하기도 하고 뻔뻔하기도 하다. 아무튼 시턴을 돕기도 하고 골치를 썩히기도 하면서 함께 탐험을 하는 인디언에 대해서도 시턴은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시턴은 그림을 잘 그렸던 모양이다. 부모는 그를 화가로 키우고 싶었으나 동물과 식물을 너무 사랑한 시턴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화가로서 그의 장점이 탐험하는 동안 유감없이 발휘된다. 사진도 찍지만 그는 탐험의 기록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박물학자인 그에게 커다란 축복이었을 것 같다. 이 책에도 여러 장의 그림이 실려 있다.
시턴은 걷거나 카누를 타고 6개월 동안 탐험한 것들을 탐험 기간 동안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이 엄청난데, 살펴보면, “600쪽에 달하는 지질학, 식물학, 동물학 관련 관찰과 발견의 기록들, 그리고 500방이 넘는 그림, 온갖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꼼꼼히 기록한 값진 것들, 아름다운 나이얼링 강에서 발견한 것들과 컴퍼스 측량 기록들, 두 개의 거대한 북쪽 호수를 컴퍼스 측량한 기록들, 북쪽의 큰 강 두 개와 많은 호수를 발견한 기록들, 그리고 남들에게는 흥밋거리이고 나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수천 가지 발견의 기록들”을 세 권의 일기장으로 남겼다. 그 발견의 대상들은 박제가 되어 후에 미국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고 그가 오랫동안 글을 쓰는 자료가 되는데 자칫하면 시턴은 빈 손으로 돌아올 뻔 했다. 이 모든 기록들이 돌아오는 길에 사라질 뻔했던 것이다. 이번 탐험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엄청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 기록을 찾기 위해 함께 탐험하던 대원들이 이리뛰고 저리뛰던 모습을 따라 독자도 함께 동분서주 했다면 에이 설마하겠지만 사실이 그런 것을.
시턴의 <아주 오래된 북극>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한 것은 그의 글 솜씨다. 생긴 것 처럼 말쑥한 글쓰기도 호감이 갔지만 군데 군데 묻어나는 유머가 매력적이다. 사이 사이 그림이 있다고는 하지만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시간의 한계와 공간의 거리를 좁히고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글이 주는 힘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의 36장 ‘북극 대초원과 최북단 지역’은 가장 인상적인 글로써, 언어가 시공간을 이처럼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동물과 식물을 관찰하는 박물학자로서 시턴은 그의 눈과 귀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 시턴은 눈과 귀를 비롯해 온몸으로 자연을 읽고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하지 않고서야 똥무더기를 헤집고 쥐똥 알갱이의 모양이나 색깔을 보고 그 똥이 겨울형인지 어찌 알아낸다는 말인가.
미국의 버펄로가 대량학살된 것을 두고 미국의 대초원을 욕보였다고 말하는 그의 시선이 그가 박물학자로서 훌륭한 학자였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한 세기의 시간이 흐른 지금 시턴이 걸어서 탐험했던 그곳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의 걱정대로 많은 동식물이 사라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중 몇 몇은 멸종의 위기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불과 100여 년 전에는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 불현듯 낯설게 다가온다. 물론 지금도 그런 곳이 있겠지만 시턴을 따라 북극을 탐험하는 동안 그것이 너무나 빨리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주 오래된 북극>의 기록은 시턴이 여행에서 돌아오고 4년 후의 기록이다. 그리고 시턴은 그 몇 년전의 시간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독자는 그야말로 아주 오래된 북극의 기록을 읽으며 시턴과 같은 마음이 된다. 원시 그대로의 자연에 대한 감동과 그리움, 그리고 자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시턴과 내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