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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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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과 송경동을 동시에 알아가면서 느낀 것은 부끄러움과 죄책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적은 글을 읽으면서 여러번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이 나라가 이렇게 컸던가 싶을 만큼 그들과 내가 마주 선 거리는 멀고 멀었다. 그러는 중에 김진숙이 크레인에서 내려 오고 희망버스를 기획했던 송경동 시인이 수감되는 소식을 접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수감이 되었을까 미처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그의 책이 출간되었다. 감옥에서 작가의 말을 대신하는 그의 심정을 내가 어찌 알까.

 

구로 노동자문학회원이었다는 말에 부랴 부랴 옛날 시집을 뒤져 보니 문학회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낸 시집 <왜 딸려!>(갈무리, 1998)에 그의 시가 세 편 실려 있다. 오래전 그의 시는 찍 소리도 못한 채 살아온 소년이 노동자가 되어서도 찍 소리도 못한 채 “똥누다 말고 작은 소리로나마 찍, 해본다/누구도 이젠 나를 치지 않는데/마음에 찡하니 젖어오는 슬픔 한줄기”(<찍소리> 중에서)를 품고 살면서, 비 오는 날 아욱국을 끓이기 위해 외상 장부에 외상 일기(<외상 일기>를 쓰는 노동자의 하루치 일기를 쓰고 있다. 힘든 노동의 뒤에 맛보는 삼 사십분의 눈 붙임을 위해 남은 그늘을 찾아 비실 비실 옮겨 다니는 순한 일꾼(<꿀잠>)들이 그의 시에 들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삶은 한결같다. 그게 굉장히 슬픈 일이라는 것은 그의 산문집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그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어보면 세상은 참 많이 변했지만 또 전혀 변하지 않거나 더 나빠졌다. 오죽하면 다같이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자가 잡혀가는 세상이 되었겠는가.

달라지지 않는 세상을 사는 동안 그는 대추리, 기륭전자, 용산, 콜트 콜텍, 85호 크레인, 희망버스와 함께 살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감옥에 가고 나오는 동안 노동자, 가진 것 없는 자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말대로 이 나라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그렇지만 또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인정 많고 눈물 많고 사연 많고 착한 사람들인지. 그저 순리대로 살자고 그렇게 살면 언젠가는 좀 번듯하게, 혹은 사우나 정도는 남에게 미안해 하지 않고 갈 수 있지 않겠나 하고 사는 사람들인데 시인의 눈으로 대신 가본 그곳에서는 그게 참 어렵고 힘들어 보인다.

 

순간 순간 미안함과 죄스러움으로 눈물이 나오는데 그러다가 그의 글을 거의 다 읽을 무렵에는 내가 한심해져서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 죄스러움도 미안함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깨지고 부러지면서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그와 그들은 얼마나 강한 사람들이란 말인가. 그러니 300일이 넘도록 공중에 매달려 지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김진숙에게 더 이상 미안함을 가질 수 없었다.

 

제 발로 걸어간 경찰서에서 우습게도 수감이 된 송경동 시인은 그 안에서 조차 “내 안에 도사린 어떤 역사와 진보에 대한 패배 의식”을 반성하면서 자신을 질책한다.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오르는 꿈을 꾸”(<작가의 말>에서)는 그에게 죄책감을 갖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다.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나는 그렇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나는 그들보다 낫다는 못난 여유와 안도감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좌절하고 비겁해 질 수 있는지 잘 안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감옥 조차 억압하지 못하는 자유로운 영혼과 강한 신념을 가진 그들을 그저 한없이 존경할 뿐이다.

 

책을 덮고 이런 저런 생각으로 나를 못살게 구는 사이, 송경동과 정진우는 보석허가를 받고 석방되었다. 쌍용차로, 콜트 콜텍 현장으로 또 냅다 달려가리라.

 

나는 앞으로도 이런 핑계 저런 이유로 희망 버스를 타는 용기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또 다시 촛불이 광장을 뒤덮을 때도 맨 나중에나 겨우 몸을 움직일 것이다. 그러다가 때를 놓치고는 비겁하게 안도를 하거나.

 

진저리를 치며 그래도 할 수 없이 나는 나의 논리와 나의 이유로 그들과 함께 이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다만 그의 현장과 나의 이유가 함께 버스를 타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말했던 것 처럼 그 버스를 타지 않은 사람들을 원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몸과 마음은 이토록 멀고 같이 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관계임을 그는 알 것 같다. 그는 나보다 백 배는 힘이 쎈 사람이니 말이다. 그의 육체적 고난과 고통은 몹시 아프다. 그렇기는 해도 가진자가 승리하는 역사에 맞서 없는 자도 승리하는 새 역사를 살고자 하는 그가 (미안하지만) 진심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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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3-0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저는 이제 이 책에 관련된 리뷰만 보아도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김진숙 님의, 이소선 어머님의 사진만 보아도 눈물이 나려고 해요.
덕분에 다른일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어요.
에세이 평가단을 하고나서 가장 흡족했던 시간들이었어요 ^_^

수수꽃다리 2012-03-02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을까 몰라도 이 책을 받고 나서 나는 소이진씨를 걱정했었어요. 감당할 수있을까 해서. 가장 흡족했던 시간들이었다니 괜한 걱정을 했군요. 다행이예요. 그리고 고마워요. 같이 읽어주어서. 그리고 미안해요. 어른들이 이래서 ^-^ 그래도 훌륭한 어른들이 더 많으니 실망하지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