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식포럼 인사이트 2022 - 글로벌 리더들의 미래 전략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 사무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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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에서 매년 개최하는 세계지식포럼 인사이트는 이제 세계적인 행사가 되었습니다. 지명도 높은 세계적 명사들이 출연하여 국격도 높이고, 함부로 접할 수 없는 인사이트도 제공하여 청중과 독자의 안목도 한층 향상됩니다. 뿐만 아니라 발표의 주제 역시 심층적이어서 그 리스트만 훑어도 바로 지금의 시대정신이 어디를 향하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재 유력정당의 유력 후보가 "기본소득"을 주장하기에 이 역시 아젠다의 하나로서 주목을 끕니다. 물론 이 후보가 처음으로 주창한 것은 아니며 세계적으로 이미 실시하는(혹은 반대에 직면한) 사례가 있기에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참조할 만한 여러 케이스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는 현재 서울 시장이 그 반대당 출신 정치인이기에 이를 둘러싼 논쟁이 더 흥미롭습니다. 행사 발제자 중 하나인 대런 애쓰모글로 MIT 교수 역시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기조이므로 논거의 마련은 더 치밀합니다. 

 

기본소득에 반대한다고 하면 아마 우파적 정책을 지지하는 논자가 아닐까 지레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 교수는 "중산층에게 지급된 기본소득의 경우 대부분을 도로 세금으로 내게 되므로 이는 공공경제학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그러니 이는 모델링상의 허점과 모순을 지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공정"이라는 가치와 관련하여 작년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여자배구 김연경 선수의 발언이 눈에 띕니다. 그녀는 190cm를 훨씬 넘기는 축복 받은 피지컬에다 공수 양면에서 완성된 기술을 구사하는 세계적인 완성형 선수이지만 중학교 때만 해도 작은 키 때문에 진로 고민이 많았던 유망주에 불과했습니다. 벤치에 대기하며 상황에 따라 어떤 전술을 염두에 두고 행동에 나설지 많은 생각을 할 기회가 있었다는 그녀의 고백을 들으며 모든 시련은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예비하는 소중한 기회라는 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AI라고 하면 재미있는 답을 내어놓는 로봇이라든가 청소기라든가, 아니면 원하는 컨텐츠를 검색해 주는 스피커(?)를 떠올리기 쉽지만, 당연하게도 그 본연의 기능과 기대치는 훨씬 난이도 높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이홍락 교수는 신약 개발에 적용되는 초거대 AI에 대해 설명합니다. 테드 서전트 교수는 재료정보학상의 응용을 논하며 시행해야 할 각종 실험을 엄청나게 단축할 수 있는 순기능을 소개합니다. 수천 종류의 소재를 손으로 일일이 실험했던 토머스 에디슨이 지금 활동했다면 아마 지적 자원과 에너지를 엄청 아낄 수 있었겠습니다. "천재를 실현하는 99%의 땀"이란 명언에는 21세기 중으로 큰 수정이 가해질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NFT가 작금의 논의에서 또 빠질 수 없는 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증강현실, 가상 현실 등에 초점이 맞춰지다 이후 메타버스 등으로 지평이 확대되고 다시 NFT 기술이 비디오 게임 등 모든 문화산업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코로나 19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훨씬 이전부터 우리의 삶 곳곳에 침투하여 능률과 만족도를 바꿔 놓을 기술로는 나노 테크놀로지가 있겠는데 나명희 부사장은 이제 "비욘드 나노"를 거론합니다. 이십여년만에 드디어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건지 독자로서 흥미롭게 읽은 주제였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각국에서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채택하고, 관련 산업이 전면 재편되는 등 투자자 입장에서는 격변을 맞이한 게 지난 2020~21년의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유독 이 기간 동안 크게 이익을 봤다느니 반대로 손해를 입었다느니 하는 사람이 많았던 게 다 이 때문이었습니다. 각종 변이가 나타난다고는 하나 여튼 코로나 종식이 어느 정도는 다가온 이 시점, 과연 투자의 분위기에는 저 시기만큼의 변동성과 기회를 만날 수 있을까요? 최희남 씨와 피터 오펜하이머는 대체로 부정적인 전망입니다. 테이퍼링도 축소되는데다 인플레이션을 대비하여 금리가 인상되는 등 이전만한 기회는 서서히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년판에 비해 투자와 산업에 대한 논의가 훨씬 늘었으며, 비대면 위주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려하게, 또 심도 있게 펼쳐진 행사의 무게감이 책을 통해 증명되고 있으나 다만 도판이 예년에 비해 다소 적게 실린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입니다. 여튼 한 해의 마무리, 또 한 해의 시작은 이 책과 함께해야 왠지 구색이 다 갖춰지는 느낌입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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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
강만길 지음 / 역사비평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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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강만길 전 고대교수는 아직도 생존해 계시고 지금 리뷰하는 역비의 이 책은 2003년도판입니다. 아마 최근에 이 책의 개정판, 또 큰글씨판이 새로 출간된 것 같습니다. 


강만길 교수님의 저서들에 대해서는 여태 책좋사의 다른 회원분들이 많은 서평을 카페에 남겼는데 저는 여태 한 권도 책프에 쓰지 않았네요. 또 검색하면 제 글이 안 나오는 걸 봐서 독후감 속에 잠시 언급한 적도 없는가 봅니다. 어렸을 때 강 교수님의 강연회에 간 적 있는데 그때 교수님(당시에도 이미 원로이셨던)이 "김일성의 경우 이제 학문적으로 그 독립운동 행적을 공인할 필요가 있다"고 하시고 그 근거에 대해 정치적인 합의 또 통일이라는 대의를 드시더군요. 저로서는 꽤 충격이었으며 선생의 저서를 읽을 때에는 이 점을 좀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민족유일당 운동은 1920년대 중후반부터 일어났으며 그 성과물이 신간회라는 건 국사 시간에 배워서 다들 아는 바입니다. 단일민족인데 새삼 유일당 말고 무슨 다른 목표가 있을까 싶어도 이때 우리 민족(뿐 아니라 다른 트리컨티넨털에서도)은 심각한 분열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1917년은 1차 대전이 아직 진행 중일 시점이었는데 이때 패퇴를 거듭하던 러시아는 마침내 민생 파탄을 견디지 못하고 제정이 파탄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던 차르의 오백 년 제국이 무너졌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는데 더 놀라운 건 그 나라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다는 뉴스였습니다. 여태 각 나라의 치안 당국은 공산주의자를 그저 무해한 몽상가들 정도로 여겼으나 이제 실체적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일제도 자국(소위 내지)과 식민지의 사회주의자들을 체제 교란 요소로 간주하고 이른바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여 시행했는데 이것이 1925년의 일이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사회주의가 본격 수입됨에 따라 소련으로부터 직접 물적 지원을 받는 단체도 생기고 기존의 민족주의 진영과 명백한 차별점이 생겼습니다. 민족주의 진영은 딱히 후원해 주는 외국이 없었으나(후원은커녕 1920년대까지 열강은 일본과 여전히 같은 입장이었죠) 사회주의자들은 소련, 코민테른 등과 연계를 맺고 보다 실천적인 활동이 가능했습니다. 


1935년 중국에서 민족유일당 운동의 산물로 드디어 이 민족혁명당이 결성되었습니다. 조소앙, 젊은 김원봉,나중에 북한 정권에서 김일성에게 숙청되는 최창익 등이 좌익 계열이었습니다. 또 우익 인사 중에서는 김규식, 지청천 등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두 분은 임정에 합류하여 백범을 돕습니다. 김규식은 임정 5차 개헌 후 부주석을 맡고 지청천 장군은 광복군을 이끕니다. 


이 당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민족유일당 결성이라는 이념이 무색하게 이후 분열상을 또 노출합니다. 그래서 약산 김원봉과 나중에 북한에서 최고위직을 역임하는 한글학자 김두봉이 주도권을 잡고 우익 계열은 탈당하게 됩니다. 김두봉도 소장파였는데 당시 김원봉이 워낙 젊었다 보니 오히려 중진처럼 보입니다. 김두봉은이 무렵 독일에서 총통 자리에 오른 아돌프 히틀러와 동갑이고 약산은 그보다 십 년 정도 더 연하입니다. 김두봉은 출생지가 기장인데 현재 이곳은 부산광역시에 통합되어 요즘은 신도시 건설로 땅값이 한창 오르는 중입니다. 아무튼 저 이후로 이 당은 명칭이 "조선민족혁명당"으로 바뀝니다. 


이후에도 이 당은 의열단 계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김두봉 계열이 주도권을 잡아 정작 창립자 격인 김원봉이 소수파로 전락하기에 이릅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통일 전선"인데, 좌익 계열 입장에서 설령 기본 노선이 다른 민족주의, 우익, 개량주의자라고 해도 일단은 손을 잡고 공동의 적인 파쇼에 맞선 후 식민지의 통치 기반을 붕괴시킨 후, 이후 새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공산주의 중심으로 체제를 재편한다는 유명한 방침입니다. 


조선의용대도 크게 두 갈래로 분열되는데 약산이 이끈 건 조선의용대이며, 김두봉의 조선독립동맹 계열은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되어 이후 팔로군과 합세합니다. 약산은 나중에 백범의 임정에 합류하는 건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며 어쩌면 나이로 약산의 아버지뻘인 백범이 이를 잘 포용하여 두 세력의 연합이 이뤄진 데에서 민족단결의 의의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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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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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랄프 왈도 에머슨(이 책 앞날개)의 영향 하에 젊은 시절 중국과 인도의 철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그 사상의 기반을 다진 철학자라고 나옵니다. 우리 한국 독자들이 유독 그의 저작을 좋아하고 침잠하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가 있겠습니다. 이 책 앞날개에는 소로의 사상 그 진수가 왜 유독 <월든>이란 작품에 잘 녹아 있으며, 또 <시민 불복종>과 함께 읽혀야 하는지 그 이유가 잘 나옵니다. 


 

"나는 낙담을 칭송하는 글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p10)." "나의 숲속 생활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p11)." 이 두 마디로부터 우리 독자들은 <월든>에서의 그의 기조가 어떠할지 미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월든>은 표면상 그의 "숲속 생활"을 다루고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의 이면에는 그의 신조와 확고한 방향성을 잡은 철학이 자리합니다. 숲속 생활에 관심이 있어 책을 고르고 연 독자에게는 당초의 목적이 달성되겠으나, 분명 그 이상이 얻어질 테며 바로 이것이 책과 저자가 그토록 오래 호응을 열렬히 얻는 비결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치품과 인생을 안락하게 하는 많은 편의품은 굳이 없어도 될 뿐 아니라 인류 정신을 고양하는 데는 많은 방해가 된다(p26)." 어느 정도의 불편과 고뇌는 거창하게 "인류 정신"의 각성까지야 가지 않더라도 개인의 성숙, 성찰, 수양에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냥 편하기만 한 정신과 마음가짐 안에서 어떤 심원한 깨달음 같은 게 생길 리가 만무합니다. 이런 작은 깨달음과 반성이 쌓이고 쌓이면 마침내 인류 공의에 대한 비전에 도달하며, 아마도 소로 자신이 그런 경로를 통해 현대에까지 널리 공명되는 작가로 남을 수 있었겠습니다. 


 

우리 한국인들도 오랜 동안,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로 농업으로 생명을 이어 온 민족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나이든 어르신들은 그저 손바닥만한 땅이 보여도 무엇이든 심고 가꾸며 때가 되면 수확하여 스스로 먹거나 장에 내다파는 게 습관이 될 정도입니다. 소로는 p76 이하에서 자신이 직접 지은 농사와 그 수확물, 방법에 대해 자랑스럽게 털어 놓습니다. 이종인 선생의 자연스러운 번역 덕분에 이 부분만 놓고 읽으면 한국의 어느 농부가 쓴 글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자신의 정직한 노력을 투입하여 얻은 소출에 기쁨을 느끼는 순간 농부의 성취감과 자부심은 제왕의 그것이 부럽지 않습니다. 

 

pp.110~111에는 이 판본의 자랑인, 월든의 실제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이 두 컷 실려 있습니다. "서리"는 어엄밀히 말해 절도행위지만 우리네 농촌에서는 어느 정도 허용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소로는 "(어느) 투박한 농부가 야생 능금 몇 개를 슬쩍했으리라 상상"한다는 말을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불쾌한 연상이나 도덕적 첵망 같은 게 바로 떠오르지 않는 건, 애초에 소유의 개념이 없는 원초적 자연 상태 속에, 누구나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노동을 투여하고 필요한 만큼 수확해 가는 자연법적 질서의 향유가 그리워지기 때문입니다. 무심히 적은 듯한 이런 짧은 한 구절 속에도 소로는 촘촘한 주제의식을 투영합니다. 


 

소로의 시대에는 요즘 말로 "제2차 산업혁명"이라 불렸던 거센 움직임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일었으며 철도 건설의 광품도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만들어진 스파게티 웨스턴 <석양의 무법자>에도 철도 건설을 반대하는 여러 풍자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으며 이 저작에도 "콧김을 내뿜는 괴물"에 대해 마치 원시인처럼 거부감을 느끼는 저자의 느낌이 자주 표현됩니다. 철도 사업은 결코 정직한 목적에 봉사할 리 없다는 그의 소신 표명은 마치 에언과도 같이 다가옵니다. 자본은 거의 언제나 민중에 대해 적대적이고 부정직했기 때문입니다. 

 

북미 원주민, 중동의 베두인 족, 심지어 조선인들도 거의 언제나 나그네에 친절했고 이런 환대를 배푸는 풍속을 일종의 자부심으로 유지했습니다. p191에도 방문객들을 정성으로 응대하는 농부들. 또 소로 자신의 당당한 표백이 나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너와 나의 경계는 없고 자본이 옹색하게 가른 소유의 울타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p241에는 왜 이 지역에 "월든"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그 사정에 대한 저자의 짐작이 자세히 나옵니다. 짐작의 결은 그의 두터운 애정에 기반한 방향성을 가집니다. 사랑을 품은 사람의 머리에서는 긍정적인 상상과 추측이 솟아나오고, 그렇지 못하고 어떤 못난 원한이나 이기심(이런 것도 대체로는 선의의 가면을 쓰죠)으로 가득한 마음에서는 비뚤어진 짐작이 솟기 마련입니다. 


 

개미는 사람 못지 않게 동족 간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동물로 알려졌습니다. p303에서 저자는 개미들의 싸움을 묘사하며 이것이 나폴레옹이 크게 관여한 아우스테를리츠나 드레스덴 전투와 맞먹는다고까지 말합니다. 과장이 아니라, 자연의 눈으로 보면 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건곤일척의 전투를 벌인 유럽의 장군들이 전개한 그 숨막히는 혈전이 마치 개미들의 싸움만큼이나 부질없는 헛짓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기지는 영혼의 화약일까요? 기지를 잘 발휘하여 인생의 중요 목적을 달성해 본 사람 입에서는 틀림없이 그런 말이 나올 법합니다. 우리말과 달리 영어의 wit에는 의외로 많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화약을 모르듯 대부분의 사람은 기지를 모른다.(p341)" 그저 나쁜 데 쓰일 뿐인 기지라면 애초에 다들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p428에는 책을 마감하며 소로 자신이 결국 숲을 떠나게 되었음을 적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부분 각주에서는 이종인 선생이 그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데 역시 이런 것도 초심자인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이종인 선생이 자기 번역서에서 자주 드러내는 장기이기도 합니다. "고독은 더 이상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더 이상 가난이 아니며 허약함 역시 그러하다." 초월주의 철학의 핵심이자 달관의 집약입니다.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은 도처에서 사슬에 매였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소로 역시 납세를 거부하다 투옥의 위기에 몰린 적 있습니다. 그때마다 소로는 "국가가 나에게 부당히 강요하는 법보다 나는 더 높은 법을 따르는 자유인"임을 강조합니다. 자유인은 그 자유의 본질을 자연 속에서 확인하고 체득합니다. 이런 올바른 확신을 그는 다시 "소위 문명이라 불리는 곳"에 몸소 내려와 실천합니다. 그 저항은 거룩하고 그 도덕은 천의 무봉의 경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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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재발견 -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500년 고려 역사를 만나다
박종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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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려사를 두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양한 사상이 공존한 다원 사회"였다고 규정합니다. 


현재 K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OO 이O원>를 보면 이성계의 쿠데타가 성공한 후에도 여전히 팔관회가 열린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팔관회가 대략 11월 즈음에 열렸고 위화도 회군이 그해(1388) 6월말경에 있었으므로 시기적으로 무리는 아닙니다. 이처럼 커다란 국가 변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관회가 국가적 후원을 업고 여전히 성황리에 열렸다는 건 재미있는 팩트입니다. 여튼 팔관회는 불교, 토속 신앙, 기타 외국의 영향을 입은 다양한 풍속이 한데 어울린 페스티벌이었으므로 고려의 다원적 성격을 증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 여전히 상업을 중시하던 고려 사회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중요한 장치 중 하나였음도 확인 가능합니다. 국민들의 사기 진작까지 도모했겠음은 당연합니다. 


보통 "공산 전투"라 불리는 팔공산 전투는 아직까지도 이와 관련한 수많은 지명이 현지에 남아 있을 만큼 후삼국 쟁패의 큰 분수령이 된 사건입니다. 고려는 영남 세력이 중심이 되어 세운 나라가 아닌데도 이 지역에 왕건의 큰 고생을 기억하는 지명이 이처럼 많다는 건, 당시 영남 세력이 후백제와 고려 사이의 투쟁을 얼마나 숨죽이며 관찰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려 왕실의 특징 중 하나로 근친혼을 꼽는데 이는 전조인 신라 왕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근친혼 자체를 선호한다거나 하는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왕실의 대통을 여타 가문에 쉽게 넘겨 주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는데 그나마 여의치 않아 경원 이씨 등 대성씨가 수시로 왕실의 권위를 넘보았습니다. 경원 이씨는 이자겸의 난이라는 큰 사건을 겪고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는 가문으로 남았으나 명문 우봉 최씨는 4대 60년의 세도가 몰락한 후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을 만큼 몰락했습니다. 


저자는 고려가 불교를 국교로 삼긴 했으나 풍수지리, 낭가사상도 중시한 만큼 이 점에서도 다원주의 사회였음이 드러난다고 주장합니다. 현대에도 한반도 곳곳에는 "부곡"이란 지명이 광범위하게 남았는데 이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천민 집단이 거주하던 단위의 한 종류를 가리키던 일반명사였습니다. 그러나 부곡 출신으로 재상이 된 이도 있고, 특히 저자 박종기 박사는 부곡 연구로 학위를 획득한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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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머니 - 감염된 경제, 풀린 돈의 역습에 대비하라
KBS 다큐 인사이트 〈팬데믹 머니〉 제작팀.이윤정 지음, 김진일 감수 / 리더스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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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전염병이 전 지구를 강타하여 모두가 큰 고생을 합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들은 확진자, 위중증자, 사망자들이지만 그 다음이라면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이겠습니다. 사람의 이동에 제한이 가해지니 유동인구를 바라보며 생업을 유지하는 이들이 힘들 수밖에 없고 이 부문을 중심으로 경제는 경색됩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이들에게 긴급한 지원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실물의 생산은 (일단) 없이 돈만 (먼저) 풀리게 되어 인플레이션, 물가 상승의 요인이 생깁니다. 생산이 그리 큰 간격을 두지 않고 이내 재개되면 좋겠으나, 코로나가 각종 변이를 만들며 여전히 잠잠해지지 않는 통에 여러 부작용과 구조적 문제가 우려됩니다. 


이 책 p37에서는 영화 <인 타임>의 화폐 체계(허구상의)를 소개합니다. 손목에 시계 같은 걸 새겨 남은 수명을 표시하는데 무엇을 사거나 할 때 돈 대신 이것을 조금씩 떼어 주어 교환 수단으로 삼습니다. 즉 시간이곧 돈이며 돈이 많은 사람이란 곧 살 날이 아직 많이 남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가난한 사람은 자연적인 수명도 적게 남은 법이니 그 점에서는 현실보다 불공정하고 가혹하지만 대신 이런 사회에서는 누가 사람 수명으로 장난을 칠 수는 없으므로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적을 듯합니다(모든 재화, 서비스의 과소 생산이 벌어지면 모를까). 정부 당국에서 관리하는 화폐의 수량이 실물 경제와 항상 적정선에서 일치하게 할 수 없으므로 인플레의 위험은 언제나 있고 요즘처럼 돈이 많이 풀렸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양적 완화"는 특히 과거 그리스 디폴트 위기 당시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가 세계적 디프레션을 막기 위해 단행한 화폐 증발(增發) 조치 때문에 유명해졌습니다. 이 책에서는 p49에서 특히 도널트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500억 달러 긴급 투입"을 뉴스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책에 나온 대로 "한국 GDP의 두 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라는 설명을 들으니 실감이 납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이 달러를 미국 영토 외에 다른 나라로 흘러가게 할 힘이 있습니다. 자국 인플레 압력을 해외로 분산시키는 거죠. 사진을 보면 트럼프도 트럼프지만 펜스 (당시) 부통령의 마치 "그럼, 무제한이고말고"라 말하는 듯한 단호한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돈만 많이 푼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실물의 생산이 반드시 뒤따라줘야 인플레이션이 생기지 않습니다. 요즘 일각의 경제이론에서는 어차피 디지털 분야에서의 혁신이 끝도 없이 이어지므로 화폐가 무제한 늘어난다고 해도 이를 뒷받침할 효용이 그만큼 생기는 셈이라고도 하며 특히 런던 등 대도시의 집값이 끝도 없이 오르는 걸 보면 일리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문의 한계 생산이 일정한 게 아니며 p65의 오건영 신한은행 부부장 같은 분은 이런 화폐 증발, 양적 완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봉합하는 것"이라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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