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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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버리면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고, 아무것도 꿈꿀 수 없다 - P16

공무원이 영혼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아마도 공무원들이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P21

대통령은 결과를 명령할 수 없다. 대통령은 과정만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명령한 과정을 결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 명령의 결과가 생각과 다를 때 깊은 상처를 받는다. - P138

감동은 대상에 대한 애정과 디테일이 만났을 때 가능하다. -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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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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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빅터 프랭클이라는 정신분석학 박사가 쓴 자신의 체험수기이자, 자신의 정신분석연구 테마인 로고테라피에 대한 설명서이다.

나는 로고테라피라는 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었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프로이트와 함께 두 번째로 손 꼽히는 정신분석학 학문이라고 한다.


책은 세 가지 파트로 되어있다.

1부에서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에 대한 이야기가, 2부에서는 로고테라피에 대한 기본 개념이, 3부에서는 비극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삶에 대한 태도가 담겨 있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은데, 빅터 프랭클 박사가 나치 수용소로 가게 된 이유가 참 아이러니하다.

독일이 오스트리아 침범이 예상되는 시기에 오스트리아에 있던 미국 대사관에서 프랭클 박사에게 미국 이주를 허락하니 빨리 미국으로 가라고 말했다. 평소 나치에 반대되는 말을 해온 유대인인 박사는 오스트리아에 그대로 있으면 필시 수용소행이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프랭클 박사는 고뇌에 빠졌다. 범인들 같으면 고뇌에 빠질 이유가 없는 사안이지만, 박사가 고뇌에 잠긴 이유는 연로하신 두 부모님 때문이었다. 그들은 미국에 같이 갈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임신한 아내와 프랭클 박사만이라도 떠나라고 독촉했다. 그때 우연히 프랭클 박사 눈에 들어온 조각 하나. 그 조각에는 십계명의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박사는 미국행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에 남았다. 그리고 부모님, 아내와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참, 아이러니한 게 나치 수용소에서 부모님과 아내는 모두 죽었고 박사 본인은 살아남았다. 그때 아내와 미국으로 떠났더라면, 아내라도 생존했을 텐데.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을까?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고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나라면, 둘이라도 떠났을 것 같다. 부모님은 그렇게 떠나는 자식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을 것 같다.


책의 유명세에 비하여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신파적인 요소가 배제된, 학자들이 썼을 법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수용소에서의 삶이 지옥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그 어떤 자극적 단어와 신파적 문장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안네 프랑크의 일기'처럼 가슴 저미는 글을 기대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그만큼 책에는 진정성이 더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빅터 프랭클이 주창한 로고테라피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정의한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184쪽)

빅터 프랭클에 따르면,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는 나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빅터 프랭클은 자아실현이란, 목표를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며 자아실현을 갈구할수록 목표에서 멀어진다고 하였다.


한동안 우리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진리인 것 같은 세상에 살았다. 세상이 뭐라 하든 나만 좋으면 된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작은 것이라고 그만이라고 하는 말들이 넘쳐났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나는 나일 뿐,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치유의 심리학이 난무하는 세상이었다. 아니, 지금도 그런 세상이다.


그런데, 빅터 프랭크의 말은 다르다. 나 안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아실현은 목표를 이룰 수 없고, 사람은 나 말고 세상을 향해 바라보고 살아야 하며,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일도 많이 하면서, 닥쳐오는 시련을 피하지 말고 부딪혀 견뎌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빅터 프랭클의 말이 많이 부분 동감한다. 나는 평소에도 늘 하던 것만 하면 만족을 못 하는 타입이었다. 어떤 과업을 필요로 했고 과업을 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는 사람이었다. 세상이 소확행과 내면을 이야기할 때 선뜻 동의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자꾸 편한 길로만 가려는 것 같고 미디어가 그 자리에 머무르라고 종용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나에게 이 책에서 한 빅터 프랭클의 말은 나에게 근거를 가져다준 것 같았다.

'그래, 사람은 시련을 견디고 성장하고 책임감 있게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존재인 거야, 그렇지!'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얻으려고 책을 읽기보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근거와 동조감을 확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더니, 이 논리가 맞다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에게 근거를 대준 책이 되겠다.

빅터 프랭클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 봐주는 것은 그 사람을 타락시킨다. 그 사람이 되어야 할 모습으로 바라 봐주어야 한다. 사람은 충분히 그것을 할 수 있는데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것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사람은 그가 되어야 할 모습으로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발전이 있는 것이다."


약간은 지루했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내가 되어야 할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발전할 내 미래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그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시련의 파도가 나에게 닥쳐올까?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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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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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이다. - P51

마지막 남아 있던 피하지방층이 사라지고, 몸이 해골에 가죽과 넝마를 씌워 놓은 것 같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P67

외부 사람들 중에는 강제수용소에 예술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뿐만 아니라 유머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더 놀랄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아주 희미하고,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만 지속되지만,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 P86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 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88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쳤ㅈ만, 결국 자신의 정해진 운명을 확인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 P105

오토.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아직 살아있나? 우리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자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자네 아내를 다시 만났나? 그리고 기억하나? 자네가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자네에게 내 유언을 한마다 한마디 외우게 했던 것을. - P105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 P120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 P121

수면 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 P121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물론 그에게는 창조적인 삶과 향락적인 삶도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 P122

당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중략)...한 저명한 연구전문 심리학자는 강제수용소의 이런 삶은 ‘일시적인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 마디 더 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127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 P127

삶이 날아간 것 같은 이런 느낌은 다른 요인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갇혀 있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과, 갇혀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 P129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중략)...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예외적으로 어려운 외형적 상황일 뿐이며,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서의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고걱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 P130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 - P131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미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긍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 P138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에서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 P139

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가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고 견뎌낼 수 있다. - P142

긍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 P181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중략)...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 P183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 P184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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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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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두 번이나 읽게 되었다.

처음은 그냥 줄거리만 따라 읽었는데, 우리 정서와 동떨어진 그저 유명한 소설일 뿐이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더 읽게 되었다. 토론을 하기 위해서 앞번보다 더 글자를 곱씹어가며, 인물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천천히 읽었다.

정성을 들여 책을 읽으니, 책은 내게 더 깊이 들어왔다. 영미권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평론가는 이 책을 두고 여성판 '허클베리 핀'이라고도 하였다.

6살에서 9살에 이르는 시기 동안 미국 남부 앨러바마주 메이콤이라는 마을에 사는 어느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경제공황 무렵인 1932년 경의 세상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 '앵무새 죽이기'이다.

주인공 진 루이스 핀치, 일명 스카웃은 오빠 젬과 사이좋은 오누이 사이다. 스카웃과 젬은 여름 방학마다 놀러 온 스카웃과 동갑 내기 남학생 딜과 함께 메이콤의 단조로운 일상을 놀이와 호기심과 모험으로 가득 채워 나날이 새로운 날들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소설의 화자가 꼬마 소녀 스카웃이기에, 같은 여성으로서 나는 어느 평론가의 여성판 '허클베리 핀'이라는 평가에 동의하는 바이다. 아주 좋아하는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보다 나는 스카웃의 모험과 호기심에 더 공감을 많이 느꼈다. 아마 동성으로서 내 유년 시절을 연상하며 스카웃에게 감정이입이 되었으리라.

스카웃과 젬의 아버지는 애티커스 핀치라는 오십 줄에 들어선 남자인데 직업은 변호사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생소하면서도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이 바로 이 애티커스 핀치라는 남자였다. 아, 애티커스가 변호사여서거나 명사수라서가 아니다. 내가 감명받았던 것의 애티커스 핀치의 자녀 교육법이었다.

인간의 생애 중에서 가장 에너제틱하고 하루 중 걸음 수가 제일 많을 시기가 6살 무렵 무터 12살 무렵까지이다. 애터커스는 두 자녀를 두었는데 두 명이 다 이 시기에 해당되었고 게다가 아빠 애티커스는 이 에너제틱 한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티커스는 아이들을 너무나 잘 양육하고 있었다!

스카웃과 젬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애티커스에게 야단을 맞은 적도 많지만 단 한 번도 아빠에게 맞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스카웃도 젬은 아빠가 때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스카웃과 젬이 옆집에 사는 은둔의 부 래들리 아저씨를 밖으로 끄집어 내려는 짓궂은 여러 시도를 들켰을 때에도, 학교 친구 월터 커닝햄과 치고받는 싸움을 벌여 학교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에도, 이웃에 사는 듀보스 할머니에게 버릇없는 말대꾸를 하였을 때에도, 애티커스는 고함을 치거나 바닥을 손을 때리거나 가슴을 치는 일 없이 조곤조곤 말로 아이들을 설득시켰다. 아이들이 설득되지 않더라도 손이나 매로 아이들을 때리는 법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설득되지 않으면 설득되지 않는 대로, 가정의 규칙을 들어가며 '안되는 건 안된다'라는 것을 강조하였고 가족의 일원으로 동참하려면 그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또 스카웃과 젬이 어른들의 세계-힘과 권력이 우선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관행이 우선되며 위선의 예절이 난무하는-에 반발하며 반항과 질문을 계속할 때에도 애티커스는 인내를 갖고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며 아이들에게 어른의 세상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흔히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고 맞다고 생각하는 그 교육법을 행하고 있는 부모가 바로 애티커스였다.

'앵무새 죽이기'는 작가 하퍼 리의 자전적 소설인데 어쩌면 소설 속 애티커스 핀치가 실존 인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하퍼 리는 정말 행운아가 아닌가!

게다가 애티커스는 강간죄의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는 흑인 톰 로빈슨을 변호하는 변호사인데, 여전히 흑백의 이분법이 만연하던 시절, 흑인을 변호한다는 것은 동네에서 왕따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나팔을 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을 걱정하는 스카웃과 젬에게 애티커스는 이런 말로써 그의 임무를 정당화하였다.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앵무새 죽이기'를 번역한 김욱동은 책의 말미 '작품 해설'에서 '앵무새 죽이기'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넘치는 작품이라고 하였다.

소설에서 사회적 약자라 하면, 은둔의 부 래들리, 누명 쓴 흑인 톰 래들리, 백인의 창고를 교회로 개조하여 예배를 드리는 메이콤 마을의 흑인 주민들, 백인이면서 흑인과 더 친하게 지내는 돌퍼스 레이먼스 아저씨 등이 있는데, 스카웃과 젬과 딜 그리고 애티커스는 이들 모두에게 그들의 친구와 같이 대하여 일체의 편견 없는 동일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이들에 대하여 선입견을 갖고 삐딱한 시선을 보내며 불친절한 행동을 드러낼 때, 우리의 주인공들은 상대가 부 래들리이든, 레이먼드 아저씨이든, 톰 로빈슨이든 간에, 눈에서 나오는 빛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손끝에서 전해지는 행동이 늘 따뜻하고 온화하고 부드럽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애티커스가 한 말과 행동을 스카웃과 젬이 그대로 보고 배운 결과일 터이다.

딜이 만약 결이 다른 아이였다면, 스카웃과 젬과 친구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 딜이 스카웃과 젬과 친한 친구가 된 걸 보면 딜 역시 사람과 세상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큰 사람이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되어도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부르며 좋아하는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읽히는 시점에 따라, 읽히는 시공간의 다름에 따라 각기 다른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인다.

나는 이번에 읽는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이 구절이 유독 눈에 걸렸다.


아빠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자업자득이란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우선 첫째, 용감한 메이콤 시민들은 재판에 관심이 없지. 둘째, 걱정도 되지. 그러니 그들은..."


톰 로빈슨의 재판이 열리고, 길머 검사와 애티커스 변호사는 배심원과 테일러 판사님 앞에서 동네 주민들이 꽉 들어찬 재판정에서 각각 증인 심문을 진행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증거와 증언과 논리는 톰 로빈슨이 무죄이며, 톰을 고발한 백인인 동네 양아치 밥 유얼과 그의 딸 메이엘라 유얼이 톰을 모함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서 다른 재판과 달리, 배심원들은 오랜 토론을 가졌다. 하지만 재판의 결과는 의심만으로도 흑인은 유죄 판결이 내려져야 하는 시절이었고, 아무리 잘못된 고발과 기소라 하더라도, 고발인이 모두가(백인이든 흑인이든) 인정하는 양아치 백수건달이라 하더라도, 백인이 재판의 의뢰인이라면 그 의뢰인은 당연히 승리를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잘못된 재판 결과를 보고, 스카웃과 젬이 아빠에게 물었다.

왜 우리나 모디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 배심원이 될 수는 없는 거예요?

이 질문에 대한 애티커스의 대답이 내가 이번에 이 책에서 유독 눈에 걸리는 구절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1932년 당시 미국 남부 메이콤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둔 대가로 죄 없는 흑인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 후 몇 십 년의 투쟁과 몇몇의 희생이 담보가 되어 현재 미국은 그보다는 나은 세상이 되었다. (흑백 차별에 한해서는)

나는 내가 제법 높은 수준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의 배심원 자리(지도자)에는 내 수준에조차 전혀 미치지 못하는 얄팍한 사람이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애티커스 말이,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가진다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배심원 자리에 있는 사람이 우리의 현재 수준인 건가?

재판을 지고 나온 애티커스의 답답한 심정과 명백한 진실을 감추는 어른들을 보고 절망을 느낀 스카웃과 젬의 마음이 그 구절을 읽는 나에게 한치의 공백도 없이 고대로 시공간을 넘어 전달되었다. 내 마음은 답답하고 절망적이다.

지금 우리의 배심원 격인 자리에 계시는 분이 아랍에미리트에 가서 '아랍에미리트의 적이 이란이다'라는 말을 공개 석상에 하였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자칫하다간 호르무즈 해협도 못 쓰고 원유 대금 8조의 향방도 안갯 속이라고 한다.

내 마음은 언제까지 답답하고 절망적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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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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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성경책은 누군가......아 그렇지, 네 아빠가 손에 쥐고 있는 위스키보다 더 나쁘기도 하단다. - P93

언젠가 아빠는 내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 P119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 P149

"난 네가 뒷마당에 나가 깡통아니 쏘았으면 좋겠구나. 하지마 새들도 쏘게 되겠지. 맞힐 수만 있다면 쏘고 싶은 만큼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돈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여쭤 봤습니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 P174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 P200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리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겨우 45킬로그램도 안 되는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그 어떤 것, 그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여태껏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단다. - P213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할 필요는 없지. 그건 숙녀답지 못한 거고..... 둘째로,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올바른 말을 한다고 해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어. 그들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 - P237

" 사람들 중에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살마들도 잇거든. 그들에게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더러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니?
난 그들에게 구실을 주려는 거야. 사람들은 구실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지. 내가 아주 어쩌다 읍내에 나올 때, 조금 비틀거리며 이 봉지에 든 뭔가를 미시면, 사람들은 돌퍼스 레이먼드가 술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는 거야.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아저씨, 그건 정직하지 않잖아요. 지금보다도 아저씨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데다기 이미...."
"물론 정직하지는 않다만 사람들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거든." - P372

아빠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자업자득이란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우선 첫째, 용감한 메이콤 시민들은 재판에 관심이 없지. 둘째, 걱정도 되지. 그러니 그들은..."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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