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습 - 김승옥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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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 P220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 P221

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었던 것이다. - P223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었다. - P224

마침내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어져버렸다. 사이렌만이 세상에 남았다. 그 소리도 마침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계속할 것 같았다. 그때 소리가 갑자기 힘을 잃으면서 꺾였고 길게 신음하며 사라졌다. - P242

나는 어둠 속에서 담배를 피웠다. 나는 우울한 유령들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벽에 걸린 하얀 옷들을 흘겨보고 있었다. 나는 담뱃재를 머리맡의 적당한 곳에 털었다. 내일 아침 걸레도 닦아내면 될 어는 곳에. - P243

그러나 그의 얼굴은 그 바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바쁘다. 자랑스러워할 틈도 없이 바쁘다. 그것은 서울에서의 나였다. 그만큼 여기는 생활한다는 것에 서투를 수 있다고나 할까? 바쁘다는 것도 서투르게 바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서투르다는 것은, 그것이 무슨 일인든지 설령 도둑질이라고 할지라도 서투르다는 것은 보기에 딱하고 보는 사람을 신경질나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미끈하게 일을 처리해버린다는 건 우선 우리를 안심시켜준다. - P247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 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 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리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 P255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것입니다. - P256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놓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였듯이 당신을 햇볕 속으로 끌어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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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읽은 책 리스트


1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토지 18- 5부 3권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13,500원 → 12,150원(10%할인) / 마일리지 6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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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토지 17- 5부 2권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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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토지 16- 5부 1권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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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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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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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의 이지은이 소설에선 ‘구‘가 되었다. 가슴시린 현실을 아주 느릿하고 건조한 문체로 썼는데, 약간 졸린 듯도 하고. 가슴은 답답한데 사회적인 표출보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요즘 여성이 대부분인 한국소설의 트렌드를 고대로 보여주는 듯. 썩 권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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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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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 P23

누나는 내가 참고 있는 것들을 물음표의꼬챙이로 거듭 낚았다. - P94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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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 Mr. Know 세계문학 60 Mr. Know 세계문학 60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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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은 너덜너덜하여, 이제는 영혼만 남아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P21

친구나 친지들에게 좋은 일을 결코 하지 않으면서, 천성적으로 자기 이익만 챙기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런 선행은 억지로 부과된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런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해 줌으로써 자존심을 충족시킨다. 애정의 원이 자신에게 가까울수록 그들은 덜 사랑하고, 그 원이 자신에게서 먼 반경을 그릴수록 더욱 친절하게 군다. 본질적으로 역겹고 거짓되고 밋발스런 이 두 가지 본성을 보케 부인은 다 지닌 것 같았다. - P33

마지막으로 여기에 일일이 다 밝혀 봐야 소용없는 숱한 상황들, 이런 것이 그의 출세욕을 키우다 못해 남다르게 되고 싶다는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영혼들이 흔히 그렇듯, 그는 오로지 자신의 장점만을 밑천으로 삼고 싶었다. - P42

다음 날 라스티냐크는 아주 멋지게 차려입고 오후 3시쯤 레스토 부인 집으로 갔다. 가는 동안 그는, 흔히 청년들이 그러듯 부푼 감정으로 삶을 아름답게만 보게 만드는 엉뚱하고 정신 나간 희망에 자신을 내맡긴 채 붕 떠 있었다. 이럴 때 젊은이들은 어떤 장애나 어떤 위험도 계산하지 않고 매사에 성공만을 상상하며 자기 존재를 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미친 듯한 욕망 속에서만 존재했던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 불행히지거나 슬퍼지는 것이다. - P66

사람의 모든 감정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예요. 우리의 마음은 보물이죠. 그것을 단번에 비워 버리면 파산하고 말아요. 또 어떤 사람이 수중에 한 푼도 없다는 것이 용서 못 할 일이듯이, 감정을 송두리째 다 내보여 준다는 것도 용서 못 할 일이지요. - P93

우리에게 불행이 닥치면 여지없이 그걸 말해 주러 올 준비가 된 친구 하나쯤은 늘 있게 마련이죠. 와서는 우리의 가슴을 비수로 후벼내는데, 어찌나 솜씨가 좋은지 우린 그 짓을 당하면서도 칼자루가 멋지다고 감탄을 하고 말죠. 그쯤 되면 벌써 풍자에다 조롱이 나오게 마련이죠. 아! 내가 나 자신을 방어해야지! - P94

참을성 많고 활동적이며 정력적이고 꾸준하고 실행이 빠른 그는, 독수리 같은 시선을 던지며 모든 것을 앞질렀고 예견했으며 모든 것을 파악하고 교묘히 감추었다. 일을 구상하는데는 외교관 같고, 전진하는 데는 군인 같았다. - P104

사상이 깃들면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는, 본성이 연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철통같이 강하게 무장된 성격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성벽 같은 머리통에 타인의 의지가 부딪히면 마치 벽에 부딪힌 총탄처럼 납작 찌그러져 떨어져 버리는 법이다. 또한 솜 같은 본성을 지닌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 마치 포탄이 각면보의 무른 흙 속에 들어가면 속도가 느려지듯이 남의 생각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 들어오면 맥을 못 추게 쫙 빨아들여 마침내 소멸시키는 것이다. - P119

이 바닥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길을 뚫어 나가는지 자넨 아는가? 반짝반짝하는 천재로 뜨든가, 그걸 못 하면 재주 좋게 타락의 길로 들어서는 거지. 마치 대포의 포탄처럼 이 수많은 군중 속에 강력히 파고들어 가거나 아니면 몹쓸 역병처럼 슬그머니 그 대열에 스며드는 것이지. - P129

자, 자네의 결론을 이끌어 내보게나. 이게 바로 진짜 인생의 모습인 거야. 부엌보다 더 멋질 것도 없고 부엌만큼이나 고약한 냄새도 많이 나지. 음식을 훔쳐 먹고 싶으면 손을 더럽혀야 하는 거야. 단지 손을 잘 씻는 법은 알아두게. 우리 시대의 도덕은 이게 전부라네. - P130

도덕군자들은 절대 세상을 바꾸지 못해.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야. 때로는 어느 정도 위선적이고 말이야. 그런데 순진한 얼간이들은 풍속이 바르다느니 아니라느니 하고 떠들어 대지. 나는 민중 편 든답시고 부자들을 비난하지 않에. 위에 있으나 밑에 있으나 중간에 있으나 사람은 다 똑같다네. - P130

원칙이란 없고, 다만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을 뿐. 법칙이란 없고, 다만 상황들이 있을 뿐이야. 뛰어난 사람은 사건과 상황에 착착 맞추어 처신하면서 그것들을 주도해 간다네. 만약 고정불변의 원칙과 법칙이 있다면 사람들이 왜 우리가 셔츠를 갈아입듯 수시로 변하겠는가 말이야. 한 사람이 나라 전체보다 더 지혜로울 수는 없는 일이야. - P135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한재산을 이루는 비밀은 바로 사람들 뇌리에서 잊히는 범죄라네. 왜냐하면 하도 감쪽같이 이루어지니까 그렇지. - P136

사람의 애정이란 무한한 반경 속에서나 가장 작은 원 안에서나 똑같이 가득 채워지는 것이라네. 나폴레옹이라고 저녁 식사를 두 번 했겠나. - P162

남편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남편에게 자신을 파는 여인들도 있지만, 적어도 나, 나는 자유로운 여자라고요!
.....(중략).....
돈에 감정을 섞는 것, 그건 끔찍하지 않아요? - P173

은밀히 선행을 하는 건 신을 믿는 사람들밖에 없다. - P177

부자건 가난하건, 살면서 꼭 필요한 곳에 쓸 돈은 절대 부족하지만,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쓸 돈은 언제나 찾아내게 마련이다. 외상으로 얻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돈을 펑펑 쓰지만, 그때 당장 지불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낭비함으로써 지금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복수하는 것 같이 보인다. - P180

아버지는 왜 딸들의 결혼을 막지 않으셨을까요? 우리를 위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 아버지가 할 일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알겠어요. 아버지도 우리만큼 고통받으신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아버지를 위로한다고요? 우리가 무얼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체념하면 차라리 우리가 비난하고 한탄하는 것보다 아버지는 더욱더 괴로워하셨을거예요. 사노라면 모든 게 쓰디쓰기만 한 그런 상황들이 있지요. - P289

그는 세 가지 사회 모습을 보았었다. 복종, 투쟁, 저항, 즉 가족, 세계, 보트랭이었다. 그는 어느 편도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복종이란 따분한 것이고, 저항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투쟁은 불확실했다. - P298

잘 준비된 열정은, 열정을 죽이는 요소 즉 향략에 의해 더욱 커졌다. 이 여자를 소유하게 되면서 외젠은 지금까지는 그저 이 여자를 갈망해 왔을 따름임을 알게 되었다. 행복을 맛본 다음 날에야 비로소 그는 이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랑이란 어쩌면 쾌락이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할 따름인지도 모른다. - P299

그는 델핀을 정당화할 살인적 논리들을 자꾸 쌓아 갔다. - P298

창자까지 다 열어 보여 주던 내 습관 탓에 그 애들에겐 내가 해준 모든 일이 값어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가야...(중략)...사람은 항상 자기 가치를 생색내야 하는 법인데...딸들의 자식들이 내 복수를 해주겠지.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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