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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너프 -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다니엘 S. 밀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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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있어 언제나 '과잉'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다니엘 S. 밀로의 굿 이너프 이론이다. 게다가 인터넷 사이트 '투머치www.TooMuch.Us'를 운영한다고 한다. 궁금해서 찾아가 봤다.
TOO MUCH: Live Multilingual Museum – “Your Image for My Words” (Daniel S. Milo)
아우 깜짝이야.
굿 이너프 이론에 대한 설명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하면서 발견(?)했던 갈라파고스 섬의 핀치새에 대해서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또는 다윈과 그의 추종자들이 숨기고 싶었던 진화론의 이면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기존에 기린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사람과 목뼈의 개수가 같지만 매우 길게 진화했다고 배웠다. 그래서 높이 있는 나뭇잎을 먹으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어쩌면 이 설명에 목이 짧은 기린은 열성인자에 속한다는 뉘앙스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자연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는 열성이고, 적응해서 인간과 함께 존재하고 또는 먹이가 되는 건 우성이라고.
하지만 밀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연 선택은 최고만 선택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훌륭한' 개체들도 '그럭저럭 버텨나갈 만큼' 생존을 허용한다.
적자생존은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이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솔직하게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다. 생존이 비교급이라고? 죽느냐 사느냐에? 자연은 개체들에게 너그럽고 포괄적인 기준을 가졌다는 말과 같이 들린다.
토머스 쿤이 패러다임 전환 개념을 만드는 데 영감을 준 루드비크 플레츠크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드는 사람은 한 가지 생각에만 빠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해야만 한다. 다윈이 그랬다. 진화론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다른 반대의 증거들은 모두 외면했다고 한다. 내가 배운 진화론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건 이론이다. 다윈도 이론이고, 밀로도 이론이다.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밤새도록 토론을 해도 좋은 주제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진화론이 그 진화론이 맞는지 생각해 봐야...
자연 도태 이론은 은유와 주관성의 벼랑에서 뒤로 물러나, 심지어 환경 조건이 허락하는 곳에서는 해로운 변이도 살아남고, 조건이 허락하지 않는 곳에서는 이로운 변이도 제거된다고 주장한다. 선택받은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은 자가 살아남는다.
최적화는 품종 개량의 심장이다. 품종 개량가들이 자연을 인간의 변덕에 맞춰 왜곡하기 이전에는 생물의 유일한 목적은 자신의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었다. 품종 개량의 맥락에서는 생물의 목적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애호박 생각이 났다. 인간이 정해준 사이즈로 자라기 위해 규격화된 비닐 안에서 빈 공간 하나 없이 딱 맞춰 자라는 애호박. 기다란 동그라미로 매끈하게 잘 빠진 애호박만이 살아남는다. 못생긴 건 헐값에 팔려 나간다. 더 못생긴 건 수확되지 못한다. 버림받는다.
독립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종과 무력한 상태로 태어나는 종 사이의 이러한 차이를 오늘날에는 조성성과 만성성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조성성 종의 새끼는 태어날 때부터 혼자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반면, 만성성 종의 새끼는 자궁 밖에서 발달 과정 중 상당 부분이 진행된다.
인간은 만성성으로도 다 표현하기가 어려워 여기서 더 나아가 아주 손이 많이 간다는 의미로 '2차 만성성'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 정도로 미완성의 상태로 태어나 대략 13년의 적극 돌봄을 필요로 한다. 생존에 있어서 13년이지 사실은 20년이 될 수도 있고, 30년이 될 수도 있다.
굿 이너프 이론은 복지는 우연과 과잉 편향, 자연 도태의 체제하에서 진화한 산물의 한 가지 속성이기 때문에 표준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뇌의 상상력은 너무나도 위대하여 인류는 다른 동물들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 자연은 매우 관대하지만, 사회는 그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 사회는 지금까지 등장한 것 중 가장 관대한 복지 체계를 제공해 대다수 개인에게 생존에 필수적인 과제를 거의 다 면제시켜 준다.
그러니까.
그래서 13년이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나누는 것인가 보다. 당사자는 면제받았지만 그 부모가 그 과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는 또 부모가 되어 다음 세대가 면제받은 과제를, 또는 본인이 면제받았던 과제를 꾸역꾸역 해 나갈 것이다. 인류는 그렇게 계속된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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