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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만지다 - 삶이 물리학을 만나는 순간들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9월
평점 :
우주?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리키는 저 멀리 어디쯤?
그런데 바로 그 우주를 만진다고?
이럴 수가, 이 책을 읽고나니 어렴풋이 우주를 만진 느낌이에요.
눈 감고 더듬더듬... 그래도 우주 속의 나, 내 안의 우주를 아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이 책은 '우주'를 주제로 이야기하지만 딱딱하고 지루한 과학 수업은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 쉽게 과학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서, 뭔가 모르면서도 아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워낙 과학 분야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서 일반인에게는 그 벽이 높게만 느껴졌는데, 이 책 덕분에 그 벽이 와르르 허물어진 것 같아요.
그 벽의 실체는 마음의 거리였나봐요. 벽이 높아서 넘어가지 못한 게 아니라 스스로 벽을 쌓고 무심했던 게 아닌가라는.
아무래도 저자가 쓴 시들이 한몫을 한 것 같아요. 물리학자의 감성으로 우주를 노래하다!
아내의 뒷면
달의 뒷면
안 보인다고 없으랴
나쁜 놈의 예쁜 뒷면
착한 놈의 미운 뒷면
입자인 빛도 가끔은 파동이고
파동인 빛도 가끔은 입자이고
요즈음 들어 자꾸
짜증만 늘어가는 아내
달의 뒷면처럼
내가 몰랐던
아내의 뒷면
(159p)
우주는 저 머나먼 세계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가 머무는 시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어요.
이 세상 만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 원자가 무엇이며, 얼마나 작은지는 잘 몰라요.
원자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요. 모양도 색깔도 감촉도 없는 원자를 상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다만 원자들이 무리 지어 있는 물체의 특성은 경험할 수 있어요. 그건 마치 군중들의 모습만 보이고 각 사람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요.
이런 원자가 궁금한가요? 만져보고 싶나요? 저자는 묻고 있어요.
과학자들은 이런 원자를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이에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서 온다는 걸, 과학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탐구하고 있는 거예요. 과학에서는 사물의 존재는 확실한 것이고 이보다 더 확실한 존재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그 생각이 달라졌어요. 특히 양자역학은 뭔가 신비주의적 생각을 닮았어요. 재미있는 건 양자역학의 토대를 만든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가장 핵심인 불확정성원리, 양자중첩, 양자얽힘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거예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특이한 양자 현상을 반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낸 가상실험이에요. 상자 속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독가스통이 1분 이내에 터질 확률이 2분의 1이라고 하면, 1분이 되었을 때 고양이는 살았을까, 아니면 죽었을까? 라는 것이 문제예요. 이 문제는 확률이 아니라 고양이의 실제 상태가 무엇이겠냐는 거예요. 양자역학에서는 고양이가 반은 죽어 있고 반은 살아 있다고 주장해요. 이미 여러 번 들어 본 실험인데도 아리송해요. 슈뢰딩거는 이 가상실험을 통해 그런 상태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주장했지만 오히려 물리학자들은 양자중첩을 설명하는 아주 좋은 예화로 여겼고, 일반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더욱 유명해지는 결과가 되었어요. 양자중첩 현상은 여러 물리적 형태가 서로 섞여 있는 것을 의미하며, 자연 현상은 관측하기 전에는 다양한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관찰을 하는 순간 그중 하나의 상태로 나타난다고 해요. 이해가 되나요? 음, 확인할 수 없고 상상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거의 판타지 소설 같아요.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이 불확정성을 믿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인데, 아무리 아인슈타인이라고 아닌 건 아니라고.
현재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굳건한 버팀목이 되었고, 이를 믿지 않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고 하네요.
사실 우리의 삶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원자나 전자, 인간뿐 아니라 우주까지 우리가 아는 건 극히 일부라서, 앞으로 알아가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해요. 고정불변의 세계보다 언제든지 다양하게 변화하는 세계가 더 흥미로워요. 우주가 품은 어마어마한 비밀의 존재를 알고나니 과학이 좀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네요.
"... 우주에는 세 가지 종류의 물질이 있다.
일상에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물질, 암흑물질 그리고 암흑에너지가 그것이다.
... 놀라운 것은 이 우주에서 우리가 아는 물질은 겨우 5퍼센트 정도이고, 25퍼센트는 암흑물질, 70퍼센트는 암흑에너지라고 한다.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많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우주는 거의 대부분 보이지 않는 물질로 되어 있고, 아주 조금 보이는 물질이 있다.
과학자들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 전혀 모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원자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저 먼 우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방 안에도 있다.
바로 내 눈앞에, 아니 내 눈 속에도 있지만 결코 볼 수는 없다." (146-149p)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 온다.
보이는 것은 허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실상이다.
보이지 않는 원자, 하지만 모든 보이는 것을 가능케 하는 원자!
그 원자보다 어마어마하게 작은 세상, 그런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무슨 재미로 침침한 실험실에 처박혀 있는지 이해가 가는가?" (31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