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 걸지 마
수작가 글.사진, 임선영 그림 / 별글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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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친구들과 노트에 누가 더 이쁘게 정리하는지 경쟁 아닌 경쟁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손글씨가 꽤나 유행이었고, 편지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추억을 회상한다거나 그런 일이 아니고 당연히 평범한 일이었던 시절이었다. 나의 노트는 조금 인기가 있어서 친구들이 수업을 마치면 항상 자주 빌려가곤 했었다. 물론 여기서 공부를 잘해서 필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는 중간인데, 왜, 필기를 잘하는 아이들이 있지 않았는가? 나도 그 중의 한 아이였다. 그때 닮고 싶은 글씨체가 이 책의 작가의 글씨체였다. 반듯하면서도 귀여움이 느껴지는 글씨체 말이다.


오랜만에 한 권의 책에서 빽빽히 들어찬 활자보다, 이미지가 많고 글씨가 적은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인 수작가가 직접 찍고 적었다는 적은 글들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위로해 준다. 아, 여기서 사진은 카메라로 찍은 것이 아닌, 폰카로 찍은 사진들이라고 하니 뭔가 좀 더 정감이 가는 것 같다.

 

책을 낼 목적으로 찍은 사진과 글이 아닌, 저자 개인적으로 하루 하루 찍은 사진들과 글들의 모음을 나중에 내게 된 책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느낌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저자가 책의 초입에 말했듯이, 누군가는 이런 짧은 글을 누가 읽는다고?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여유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런 소리를 하지 않을까? 수작가의 사진과 여백이 느껴지는 글들이 마음을 움직인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작은 것들에도 마음을 부여하는 글들이 곳곳에 담겨져 있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수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위치에서 누구나 부여하고 적용시킬 수 있는 우리들만의 이야기. 그래서 더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기적을 선물하기 위해 그림을 찍고, 그 위에 자신의 글귀를 남기는 일을 했다는 작가. 생각해 보니 사랑에 관한 글이 많았던 것 같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읽고 본다면, 그 마음이 젖어들 것이고, 이별을 한 사람들에게는 더 다독여줄 글과 그림들이다. 행복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잘 받았습니다. 때로는 평범한 글들이 시처럼 다가올 순간에 다시 펼쳐보겠습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수작 걸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담아 외쳤다. 바로 이 책을 펼쳤을 '모든 당신' 에게 내 글과 사진으로 수작을 걸고 싶다는 것. 누군가는 뭐 이런 사진, 이런 글이 다 있어, 라고 욕하며 나를 뻥 차 버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웃음 머금은 표정으로 따뜻하게 고백을 받아줄 수도 있다. 당신이 어떤 반응을 하든, 나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래도 이왕이면 따뜻하게 받아 주었으면, 내 사진과 글을 행복하게 읽어 주었으면 참 좋겠다.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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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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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40여 개국 출간과 2014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를 당당히 꿰찬 역시나 보무 당당한 기욤 뮈소의 장편소설. '센트럴 파크'이다. 표지마저 책의 내용을 알기도 전에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허리 잘록한 웨이브 진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 그리고 왼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다. 표지를 보면 예감할 수 있듯이 스릴러 물이다. 기욤 뮈소가 쓴 스릴러 물은 처음 읽는지라 어떨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파리 경찰청 소속 강력계 팀장인 알리스는 눈을 떠보니, 숲 속에서 한 남자와 같은 수갑을 낀 채, 벤치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여기서 추측으로 알리스가 표지의 그녀인 줄 알겠다. 그녀는 전날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시고 난 다음날 집으로 가는 차를 탄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로는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는 자신을 가브리엘이라고 소개하고 미국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수갑을 함께 낀 채, 그것도 파리가 아닌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있는 것일까?


첫 장부터 강한 궁금증을 가진 채 읽어 내려간 책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었다. 스릴러물을 읽을 때 반전이 거듭되면, 이건, 너무 심하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도 있었는데, 기욤 뮈소의 스릴러물은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보여주어도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그 이유는 그 안에 사랑과 감동이 포함되어 있어서일까라고 생각된다. 주인공 알리스는 많은 시련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부모는 이혼을 하였고, 형제들로부터는 왕따를 당한다. 그녀가 심각한 수술대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어도 형제들은 그녀를 찾지 않았다. 아버지는 비리 경찰로 전략해 감옥을 갔다 왔고, 강력계 팀장인 그녀는 연쇄 살인마를 잡다가 남편과 아기를 잃고 거기에다 심각한 불치병을 앓고 있다.


이렇게 한꺼번에 나쁜 일들이 닥쳐올 수 있을까? 삶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의 일들이 생기는 것이냐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 보이는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누군가 한 사람은 당신 편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알리스에게도 그녀를 사랑해준 아버지와 직장동료 세이무르가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그들은 알리스의 곁을 지켜주었고, 모든 불운을 견뎌낸 알리스는 다시 삶을 시작해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기욤 뮈소의 스릴러물,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준 장편소설로 추천해드리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부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소설이라고 하는데, 끝까지 긴장감의 끈을 놓치지 않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알리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숨죽여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해드리고 싶다.




우리의 생에는 하나의 문이 열리며 환한 빛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는 순간이 있다. 당신의 마음을 굳게 걸어 잠갔던 빗장이 풀리는 순간이 있다. 당신은 무중력 상태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존재로 거듭난다. 당신의 생은 한동안 장애물이 없는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선택은 분명해지고, 대답이 질문을 대체하고, 두려움은 사랑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우리의 생에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p.87)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이 존재한다. 나는 시련을 다 극복하지는 못 했지만 살아남는다.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나를 질식시키고 있었지만 나를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람들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폴과 아기가 죽고 나서 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는 건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그 대신 막연하긴 해도 아직 삶이 나에게 원하는 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서서히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한다. (p.251)


하루 온종일 힘겨운 치료를 견뎌야 하는 날도 있겠지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언제나 당당하고 용감하게 싸움터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뼛속까지 두렵고 가슴이 조여오더라도 살아야겠다는 집념을 무기 삼아 용기 있게 맞서야 하겠지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운명과 싸워 얻어낸 이 모든 순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이었다고 말입니다. 아무도 그 소중한 순간들을 당신에게서 빼앗아 갈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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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 왕비,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에 서다
윤정란 지음 / 이가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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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녀자들은 문자를 알고 있어서 정사에 참여하여 나라를 그르치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동방은 부녀자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므로 정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진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윗 글은 <세종실록> 79권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던진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일반 서민들이 글을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인데, 그 조차도 조선의 여성들을 문자를 알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반 서민들이 글을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 했지만, 거기에 여성은 제외된다는 말인가? 이럴수가...


그만큼 조선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떠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여자는 집 밖으로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었고, 가정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나라의 분위기가 그러했는데, 구중궁궐 안에 있는 왕비들은 얼마나 갖혀 사는 삶을 살았을까. 보지 않아도 뻔할것만 같다. 하지만 그 시대의 여성들 모두가 시대적 상황에 순종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로울수 없었던 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용기를 낸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치열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총 30여명의 왕비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녀들의 삶은 정말 치열했으리라. 여성의 위치에서 정치권력의 중심에 섰던 왕비도 있었고, 모든 것을 순응하며 살아냈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친정쪽 가족들과 친척들이 몰살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그 자리를 지켜낸 왕비들도 있었다. 여성들이 최고의 정치권력을 가진 것은 국정에 참여했던 수렴청정이었다. 그 주인공은 정희왕후 윤씨. 어린 성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한 그녀는 그 당시 어떤 기분이었을까? 대신들에게 나서기 위해 몸치장을 한 책 속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총30명의 왕비들은 4조로 나누어 등장한다. 조선의 기반확립을 위해 희생양이 된 왕비들. 유교이념을 철저하게 실행한 왕비들, 하지만 그녀들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조선이 안정되어 가면서 왕비들이 정치세력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보여주는 왕비들. 국정을 완벽하게 주도한 왕비들의 활동들. 이렇게 총 4개로 나뉘어 소개되어 진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조선의 여성들, 왕비들을 만날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책의 중간중간에 왕이 쓴 글씨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명필에 감동받았다. 조선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았던 그녀들이었지만, 그만큼 마음고생도 심했고,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들에게 후손으로서 아련한 마음으로 읽은 책이었다. 요즘은 이래 살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있다.




한씨는 나라가 흥하고 망하고는 남자들의 사리분별에도 달려있지만, 이들을 내조하는 여성들의 역할 또한 만만치가 않음을 다시 한번 크게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원래부터 심성이 착하지만 성인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귀하게 된다면 자연스럽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마치 원숭이가 갓을 쓰고 있는 모습 혹은 담장을 대면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여겼다. 따라서 사람은 반드시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 몸가짐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p.116)


인형왕후 민씨는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으나 선천적으로 허약한 데다 6년 간 궁궐 밖에서 생활한 탓에 병이 깊어져 하루가 멀다 하고 누워 지냈다. 자리보전을 한 채 시름시름 앓던 민씨는 복위된 지 7년 만인 숙종 27년 8월 14일, 3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능은 현재 서오릉에 숙종과 동혈이분으로 안장되어 있다. 그 후 민씨의 희비가 엇갈린 생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 궁녀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로 쓴 책이 바로 <인현왕후전>이다.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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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스티브 포브스 & 엘리자베스 에임스 지음, 권오열 옮김 / 비즈파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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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공부를 2년동안 할때, 경제학을 처음 공부하면서 그때 그나마 경제 관련 용어들과 생소했던 것들을 공부해놓았던게 그 이후에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자주 읽지 않는 책이라 경제관련 책은 나를 어렵게 했다. 이 책 또한 나에겐 상당히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르고, 씹고, 넘긴 책이었다. 나는 경제에 좀 무딘 사람인걸까? 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세계의 대표 금융 전문가라 일컫는 이 책의 저자는 스티브 포브스다. 경제관련에 문외한이신 분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그가 미국의 통화정책과 그에 따른 금융시장에서 일으키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요즘, 연말정산 기간인데 이것 때문에 말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연말정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는데, 이해보다 불신이 깊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환불 해야 되는 금액이 많아지자 국민들은 정부탓만 하는 것이 아닌가? 2014년에 낸 세금이 2013년보다 월등히 적어서(우리집만해도 2013년의 3분의 1수준이었따) 2015년 연말정산이 환급이 많을수밖에 없었다. 물론 바뀐 법부분도 그에 한몫했지만. 아무튼, 정부를 불신하는 것 또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이다.


돈이 어떻게 해서 세계의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함께 일하고, 거래를 이루게 하는지, 제2장에서는 돈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돈의 안정성을 최고로 강조한다. 그리고 통화의 위기가 가져오는 것들.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화폐의 밀당이 아닌 건전화폐를 통해서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제6장에서는 21세기 세계 경제를 구할 방책을 마련하고, 불안정한 화폐로부터 내 재산을 지키는 몇가지 방법들을 7장에 소개해 놓았다.


'맞벌이는 경제의 붕괴때문이다.' 라고 말한 저자의 이 부분에서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 말에 완전 수긍했기 때문이다. 경제가 불안정해지고 물가가 높아지자 가정에서 외벌이로는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맞벌이 가정이 생겨나는. 하지만 맞벌이 가정이 외벌이 가정을 대체했음에도 중산층 가정은 형편이 나아지질 않고, 외벌이 가정은 더 살림살이가 빠듯해진다. 그러고 보면, 여성의 지위가 상승해 맞벌이 가정이 늘어난 이유도 한몫하지만, 경제 때문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완전 공감가는 이야기. 나에게 이 책은 조금 어려웠지만, 경제에 한발짝 더 다가가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불안정 화폐는 일산화탄소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가 너무 늦은 뒤에야 불안정 화폐의 폐해를 깨닫는다. 일반적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질 때 사람들은 실물 상품과 유형자산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부를 지키려고 한다. 주택, 식품, 연료 같은 물품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고, 우리는 대부분 뒤늦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챈다. (p.41)


금본위제는 완벽하지 않다. 어떤 체제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안정화폐는 유동적인 화폐가 야기하는,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어놓는 금융 및 통화 위기를 일으킨 적이 결코 없다. 우리가 도전에 맞서고 오늘날 우리 앞을 가로막는 위기를 피하고자 한다면 금이야말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희망이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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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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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박경리 선생님의 책을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가웠다. 선생님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은데, 이렇게 또 소설 한편이 나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토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이 책 <은하>는 1960년 4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대구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라 한다. 이렇게 박경리 선생님의 글을 만나게 해주셔서 마로니에북스에 감사드리고 싶다.


<은하>의 시대적 배경은 한국전쟁 기간으로 거슬러 간다. 그 시대에 대학생들에게는 징집 보류라는 특혜가 있었다. 그러니까, 대학생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징집 기피자가 늘어남에 따라(그 당시 5만 명) 정부에서는 1956년에 징집 보류 제도를 폐지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한꺼번에 많은 대학생들이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소설은 그 시대상황 속에서 방황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인희의 대학교 단짝 친구 은옥의 남자친구 이정식이 이런 경우이다. 그는 징집 보류가 해제되고 난 후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나온다. 그는 군법을 어긴 자신의 행동은 정당하다며 여자친구의 집인 은옥에게 얹혀살다가 끝내는 헌병에게 잡혀가 폐병에 걸리고 나서야 군대에서 벗어나게 된다.


상당히 보수적인 인희는 은옥의 상황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 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청춘 남녀가 같이 산다는 것에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친구에게 책임감을 안겨주는 이정식이 못나 보였다. 하지만 인희의 인생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그녀의 은옥에 대한 생각은 바뀌어간다. 인희를 좋아한다며 줄곧 따라다녔던 송건수가 미국으로 간 뒤 몇 개월 동안이나 소식이 없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자취집에 한 남자가 찾아와 송건수의 결혼 소식을 알리며,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인희는 상실감을 안고 아버지의 편지 한 장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왜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소극적이었나? 오랫동안 자신의 집에서 일했던 할멈이 새어머니에게 쫓겨나 살고 있는 사위의 집엘 찾아가 오십만 환을 할멈에게 건네면서 할멈도 이제 정신을 차리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했던 그녀가 왜 정작 자신의 삶에는 희망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인지. 누가 나를 구하여 줄 수는 없을까? 나를 여기서 구해줄 사람은 없을까.라며 우물 속 달에게 아무리 말을 건네봐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힘을 갖지 않았다. 자신보다 은옥이 옳았다고. 그녀의 사랑은 진솔하다며 은희는 말한다. 시대상황이 그렇다 해도, 스스로 얼마든지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할멈과 은옥,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조언을 해도 은희는 그들의 말을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였다. 어쩌면,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경리 선생님의 책들 중 가장 선정적인 글이 많았던 책이었으나 은희의 삶에 대한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다.


송건수에게 배반당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 애정에 배반을 당한 여자에게 진정 행복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회의에 찼던 그녀가 서글퍼 보였다. 자, 얼마든지 우리는 운명에 거부할 수 있다고, 순응하지 말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박경리 선생님의 책. 너무 좋았다..




괴로웠던 어젯밤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어려운 일들 그러나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다 합쳐도 그 비중을 뛰어넘는 것은 사랑의 즐거움이다. 부자연스러운 이런 사랑의 행각에 부수될 무거운 부채를 염려함보다 순간의 환희를 더 값비싸게 생각하는 그들의 행동, 은옥은 그들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괴로움쯤은 마땅히 지불되어야 할 부채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참 묘한 것이다.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볼 때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듯이 같은 불행자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모양이고 자기가 처해 있는 불행과 비교해보는 때문이리라. 그래서 자기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견디어보자는 힘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p.24)


사람들이란 돈이 생김으로써 마음이 더 인색해지고 기득 이권을 위하여 무정한 수단과 책략을 쓸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것을 먹어보겠다고 그야말로 야차같이 날뛰는 세상에서 가난은 나라도 못 당한다는 조용한 체념 속에서 자기의 푼수를 지키며 사는 할멈. 인희는 보잘 것 없는 남의 집 하인살이를 한 할멈에게 뭔지도 모르게 인간의 귀중한 선의 본질을 본 듯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들을 착하다고 칭송하기보다 못나고 천하다는 말로 대하여주고 벌레처럼 인간의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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