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로 보는 조선왕조 - 왕비,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에 서다
윤정란 지음 / 이가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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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녀자들은 문자를 알고 있어서 정사에 참여하여 나라를 그르치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동방은 부녀자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므로 정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진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윗 글은 <세종실록> 79권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던진 말이라고 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일반 서민들이 글을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인데, 그 조차도 조선의 여성들을 문자를 알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반 서민들이 글을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 했지만, 거기에 여성은 제외된다는 말인가? 이럴수가...


그만큼 조선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떠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여자는 집 밖으로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었고, 가정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나라의 분위기가 그러했는데, 구중궁궐 안에 있는 왕비들은 얼마나 갖혀 사는 삶을 살았을까. 보지 않아도 뻔할것만 같다. 하지만 그 시대의 여성들 모두가 시대적 상황에 순종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로울수 없었던 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용기를 낸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치열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총 30여명의 왕비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녀들의 삶은 정말 치열했으리라. 여성의 위치에서 정치권력의 중심에 섰던 왕비도 있었고, 모든 것을 순응하며 살아냈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친정쪽 가족들과 친척들이 몰살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그 자리를 지켜낸 왕비들도 있었다. 여성들이 최고의 정치권력을 가진 것은 국정에 참여했던 수렴청정이었다. 그 주인공은 정희왕후 윤씨. 어린 성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한 그녀는 그 당시 어떤 기분이었을까? 대신들에게 나서기 위해 몸치장을 한 책 속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총30명의 왕비들은 4조로 나누어 등장한다. 조선의 기반확립을 위해 희생양이 된 왕비들. 유교이념을 철저하게 실행한 왕비들, 하지만 그녀들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조선이 안정되어 가면서 왕비들이 정치세력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보여주는 왕비들. 국정을 완벽하게 주도한 왕비들의 활동들. 이렇게 총 4개로 나뉘어 소개되어 진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조선의 여성들, 왕비들을 만날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책의 중간중간에 왕이 쓴 글씨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명필에 감동받았다. 조선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았던 그녀들이었지만, 그만큼 마음고생도 심했고,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들에게 후손으로서 아련한 마음으로 읽은 책이었다. 요즘은 이래 살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있다.




한씨는 나라가 흥하고 망하고는 남자들의 사리분별에도 달려있지만, 이들을 내조하는 여성들의 역할 또한 만만치가 않음을 다시 한번 크게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원래부터 심성이 착하지만 성인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귀하게 된다면 자연스럽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마치 원숭이가 갓을 쓰고 있는 모습 혹은 담장을 대면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여겼다. 따라서 사람은 반드시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 몸가짐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p.116)


인형왕후 민씨는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으나 선천적으로 허약한 데다 6년 간 궁궐 밖에서 생활한 탓에 병이 깊어져 하루가 멀다 하고 누워 지냈다. 자리보전을 한 채 시름시름 앓던 민씨는 복위된 지 7년 만인 숙종 27년 8월 14일, 3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능은 현재 서오릉에 숙종과 동혈이분으로 안장되어 있다. 그 후 민씨의 희비가 엇갈린 생을 옆에서 지켜보던 한 궁녀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로 쓴 책이 바로 <인현왕후전>이다.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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