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전 - 반체제 인사의 리더에서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공자 이야기
시라카와 시즈카 지음, 장원철.정영실 옮김 / 펄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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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전-시라카와 시즈카

작년 말부터 시작된 동양철학 관련 책 읽기가 한 고비를 넘긴 기분이다. 1기를 끝내고 다시 2기로 들어선 느낌이라고 할까. '동양철학 1기 독서'는 동양철학에 무지했던 한 인간이 허겁지겁 동양철학에 관련된 지적인 양분을 섭취했던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것이 없으니 책에 나오는 대로 허겁지겁 받아들이며 동양철학에 관한 기초체력을 형성하는 단계로서. 논어에서 시작해 맹자,노자,장자,묵자,순자,한비자를 거친 1기 독서는 손자와 오기라는 '병가'에 관련 책들에 이르러 그 마무리를 지었다.

2기 독서는 나도 모르게 선택된 논어 관련된 책들로서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책들을 읽었는데, 그게 2기 독서의 시작이 됐다고 해야하나. 오구라 기조의 <새로 읽는 논어>에서 시작된 2기 독서는 시라카와 시즈카의 <공자전>으로 이어진다. <공자전>을 읽는데 아는 것들이 나오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읽은 것들을 복습하는 느낌으로서. 아는 것들을 다시 둘러보니 새삼 '복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한계가 있고, 기억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복습이라고 한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2기 독서는 내 기억력의 한계를 넘어서서 나의 뇌속에 장기기억으로서 동양철학의 많은 요소들을 심어두려는 몸부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읽고 또 읽으며 동양철학은 내 삶속에, 내 정신속에 알알이 틀어박혀서 나도 모르게 나의 일부가 될 것이다. 거기에 <공자전>을 읽는 이유가, 2기 독서를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2기 독서의 시작을 알린 두 권이 다 일본인 저자의 책이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두 권 다 기존에 내가 읽었던 동양철학 관련 책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책들이다. <새로 읽는 논어>는 <논어>에 관련된 가장 독특한 주장을 하는 책이라는 사실이 과장이 아니고, <공자전>의 경우에도 1972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새롭다. 일본인 저자 두 명의 주장이 새롭다는 사실이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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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 읽은 건 아니라서 종합적인 평가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읽다가 드문드문 떠오른 생각들을 파편적으로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중국 최고의 <손자병법> 전문가라는 리링의 손자병법 관련 책 두 권을 먼저 읽었습니다. <유일한 규칙>과 <전쟁은 속임수다>. 그래서였을까요? <손자병법 교양 강의>라는 책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네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중언부언해서 읽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리링의 책에 비해 쉽게 <손자병법>을 이야기한 것은 이 책의 미덕입니다. '교양 강의'라는 제목에 내용이 잘 부합합니다. 또하나 제가 주목한 건, <손자병법>을 읽는다고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지 않는다는 점을 저자가 잘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을 읽은 중국인들이 유목민들에게 패배한 이야기를 하며 저자는 전쟁에서는 <손자병법>이라는 책을 읽냐 안 읽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적용이 더 중요하며, <손자병법>이 중요한 건 병법의 기본을 만든 책으로서 하나의 병법적 이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제자백가에 속한 '병가'라는 사상적 흐름의 대표적인 책으로서 <손자병법>은 철학적 이상이자 병법적 이상으로서의 병법의 모습을 책속에서 그려냅니다. 현실에서 따라하기는 힘들지만 따라해야하는 당위적인 모습으로서.

마지막으로 왜 손자가 '전쟁은 속임수다'라는 말을 했을까에 대한 힌트 같은 것을 제시한 부분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요, 아직 정리가 안 됐고 책도 다 읽지 않아서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에 관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쓸 글을 생각하며 그럼 이제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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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11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적을 속이면 적은 방심하게 될 거고, 이때를 틈 타 공격하면 적을 쓰러뜨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전쟁은 ‘속임수’인 것 같아요. 서로가 속임수를 쓰고, 그것을 간파하면서 전쟁을 하니까요. ^^

짜라투스트라 2019-03-11 13:02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묵자2> 이후로 서평 이어쓰기를 시도하려고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서글프기도 하지만 익숙해서 별다른 감정은 없다.

어찌보면 좌절감과 실패감을 느껴야 하는 것도 맞으나,

자기합리화의 일환으로 좌절감과 실패감 따위는 멀리 날려보냈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어떻게 서평을 계속 이어쓸 수 있을까?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봐야 할 듯.

언젠가는 그 해답을 찾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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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9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32.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레나타 살레츨

33.법가,절대권력의 기술-정위안 푸

34.개와 하모니카-에쿠니 가오리

35.제0호-움베르토 에코

36.노변의 피크닉-스트루가츠키 형제

37.렛 잇 블리드-이언 랜킨

38.장자,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나카지마 다카히로

39.긴축-마크 블라이스

40.한비자-신동준

41.묵자2-묵적

42.논어를 읽다-양자

43.한비자-김예호

44.순자,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임건순

45.오기,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 이야기-임건순

46.러시아 혁명(1917~1929)-E.H. 카

 

내가 뽑은 2월의 책

오기,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이야기-임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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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2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25
묵적 지음, 윤무학 옮김 / 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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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2-묵적(윤무학 옮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도대체 몇 번이나 고쳐 썼는지 모르겠다. 고치고 또 고치고. 여러번 고친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고치다가 여러번 미루는 것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미루고 또 미루고. 고치다가 미루고 미루다가 고치고. 언제나처럼 <묵자2>에 대한 서평도 미루고 고치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다른 글들처럼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오기라고 해야할까, 분노라고 해야할까, 집념이라고 해야할까. 뭐라고 말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들이 마음 속에서 치솟았다. '이번만은 포기하지 않겠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반드시 글을 완성하겠다'는 생각과 감정들이 내 마음 속에서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언제나 포기했던 내가, 이렇게 '포기' 따위는 발로 차버리고 다시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무적이었다. 고무된 마음에 따라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어느새 진정된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니 내 모습이 보인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다리가 삐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집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하고, 마음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다리 아픈 것 때문에 쉴 수 있어 좋기도 하고. 여러가지 모순된 감정들이 떠오른다. 나를 바라보는 또다른 나가 있어 내 모습을 다면적으로 비추는 상황에 가깝다고 할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마음 편하기도 하고, 마음 불편하기도 한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에 휩싸여 자기 자신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워 하는 나에 비하면, <묵자2>에 나오는 '묵자와 그의 제자들의 목소리'는 명확하고 확실하다.

어지렵고 힘겨운 삶이 지속되는 춘추전국시대라는 '난세'에 '묵자와 그의 제자들'은 차별 없는 사랑,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랑의 삶의 형태인 '겸애'를 주장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면 동양철학이나 고전을 다룬 요약본이나 입문서에 나오는 묵자에 대한 설명과 똑같다. 그러니 길 출판사본 <묵자1,2>를 다 읽은 사람으로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서 써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 이제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이루기 위한 글이 나와야 하는데...

나와야 하는데... 나오기가 쉽지 않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개념에 의탁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묵자>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아이러니다. 아이러니라고? 맞다. 그 아이러니. 모순,역설로 표현될 수 있는 그 아이러니. 나는 <묵자>에서 강렬한 아이러니의 냄새를 맡는다.

우선, 난세 속에서 힘겨워하고 고생하는 평민들을 위해서 '겸애'라는 사상을 주장한 '묵자와 그의 무리들은' '겸애'를 이루기 위해서 강력한 왕에 의한 정치를 주장한다. 엥? 서민과 백성들을 위해서 겸애를 주장하는 이들이 왕에 의한 정치를 주장한다고? 맞다. 서양에서 태어나고 발전하여 현대를 지배하는 현대적인 인권 사상이나 근대적 사고관을 지니지 못했던 중국 고대의 사상가 집단 묵자는, 겸애라는 자신들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존재로 평범한 서민이나 백성이 아니라, 겸애라는 이상을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왕과 그 왕을 따라서 겸애를 현실로 실천하는 묵가적인 생각을 가진 신하와 관료들을 내세운다. 누구나 차별하지 않는 겸애를 실천하기 위해서,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왕과 신하들을 내세우는 정치적 아이러니. 거기서부터 나는 묵자의 사상이 아이러니로 휩싸여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근대적 사고관을 가지지 못했던 고대사상인 묵가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고대사상인 묵가가 평등을 위채 내세울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덧붙이면, 여러 나라의 군주나 정치 엘리트들에게 유세해서 등용되어야 했던 현실 속에서 묵가가 왕을 내세우는 정치를 주장한 건 어쩌면, 자신이 군주나 정치 엘리트들에게 어필하는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두번째 아이러니는 비공이라는 장에서 잘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묵가는 전쟁에 반대한다. 서민의 삶에 최악의 영향을 끼치고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하면서. 하지만 묵가는 전쟁에 반대한다면서 무기력한 비폭력에 기대지 않는다. 전쟁과 폭력이 일상화되고 그것이 몇백년의 세월에 걸쳐서 쭉 이어진 춘추전국시대의 일상에 전쟁에 반대하는 비폭력이란 얼마나 쓸모없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을 묵자는 전쟁을 위한 전쟁, 공격을 위한 전쟁에 맞서서 '방어'를 위한 전쟁을 강조한다. 적이 눈앞에 나타나서 쳐들어오고 있는데 전쟁을 하지 말자는 것은 적에게 목숨을 내어놓는 다를 바 없어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 이 얼마나 아이이러니인가. <묵가2>에는 방어를 위한 전쟁을 하는 묵가가 제시하는 병법들이 꼼꼼하고도 세밀하게 적혀 있다.

세번째 아이러니는 귀신과 하늘에 대한 부분과 관련되어 있다. 묵자는 자신의 겸애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로서 하늘을 제시하고 있다. 묵자는, 왕과 신하들,백성들이 겸애를 따라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고 이루기만 하면 세상을 평화롭고 이롭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늘이 겸애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마치 기독교 신앙의 인격신 개념처럼, 묵자가 말하는 '천'은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맞추려고 한다. 이건 유가나 도가가 말하는 천과 다르다. 유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천'은 자연스럽게 세상을 이루어나가고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에 배어들어 자연과 인간을 구성하면서 하나가 되어 인간과 공존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묵자가 말하는 천은 묵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인위적인 개념으로서 볼 수 있다. 이론적 최종근거로서의 하늘, 이상의 버팀목으로서의 하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외부의 억압적 요소로서의 하늘은 도덕과 미덕의 최종근거로서의 신, 벌을 내리고 자신을 믿는 이들을 지키고 그들을 돕는 신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어찌되었든 하늘에 근거해서 겸애를 주장하는 묵자는 그것의 연장으로서의 귀신을 이야기한다. 귀신이 인간을 지켜보고 벌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고 겸애를 이루어야 한다면서. 하늘과 귀신에 대한 부분을 보면 묵자가 확실히 고대 사상이라는 게 느껴진다. 고대인들이 가진 종교적이고 미신적인 부분에 의탁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이루어나기 때문에. 그런데 <묵자2>의 앞부분인 '묵경' 파트는 묵자에 깊게 스며 있는 고대 종교와 미신의 향기를 흩뜨러뜨린다. 청나라 말기에 서양에 의한 충격으로 자신들의 사상을 새롭게 살피기 시작한 제자학 연구자들이 가장 주목한 부분인 '묵경'답게, '묵경'은 과학과 기술, 수학에 대한 증명이 가득하다. 고대의 기술자나 엔지니어들이 하나의 주축을 이루었던 묵가 답게 '묵경', 부분은 과학과 기술, 수학에 대한 논리적인 증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늘과 귀신을 이야기하는데 과학과 기술, 수학에 대한 증명을 한다고? 역시 이것도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것도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당대에 같이 경쟁했던 유가,도가,명가,종횡가 같은 학파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논파하는 '논변'의 목소리가 담긴 <묵자> 텍스트가 논리적인 증명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과 하늘, 과학과 기술이 공존하는 모습에서 나는 <묵자>에 아이러니가 가득하다는 내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다.

묵가는 제자백가에서도 주류가 아니다. 사상적으로 춘추전국시대 때는 승승장구했지만,진나라 때의 분서갱유와 한무제 때 유학을 관방철학으로 채택한 이후에 2천년 동안 침묵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처럼. 청나라 말기에 서양에 의한 인위적인 충격으로 중국의 지식인들이 새롭게 자신들의 사상을 되돌아보다 재발견된 묵가는, 그 독특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제자백가중에서도 가장 백성과 서민들을 위한 사상을 펼쳤던 묵자, 실제로 그 당시에 서민과 백성들을 돕기 위해 가장 발벗고 났던 묵자, 자신의 이상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묵자. 인간적인 모습과 최선의 노력이라는 행동이 더해진 묵자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충분히 인간을 끌어당길 만하다. 유가나 도가만이 아니라 묵자라는 독특하고도 이색적인 사상가들을 만나면서 나의 동양철학 탐험도 무지개빛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저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가진 다양한 사상들의 매력이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다채로운 빛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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