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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질르의 고백 - 버새가 노새에게
홍달오 지음 / 책과나무 / 2018년 11월
평점 :
서평 B
범죄 심리학책을 읽어보면, 그 범죄의 뿌리를 온전히 어릴적 불우한 집안 환경에 두고 있다. 예외가 있을 수 있으나 ,편부모 아래서 가혹행위를 받으며 자라 났다거나, 아이의 SOS를 묵살한다. 그렇게척박한 환경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배려가 없이 키워져 , 독단적 이기적 성향의 매우 날카롭고 저돌적인 성격이 형성된다. 그래서 어릴적 사진을 보면 , 늘 무표정이거나 시선의 촛점이 없고, 놀 때 개나 고양이를 학대하고 불장난이 심하다.
이 책의 배경 역시 작가가 우울증을 갇게 된 감정상 이유를 유아기의 배경에 두고 있다. 자신의 청소년 시기와 대학시절 그리고 잠깐 했던 교수시절의 일련의 시간들을 회고록 같은 편집으로 거꾸로 되돌려 들춰보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몆 번의 우울증이 거론되긴 했으나, 독자로서는 약간 예민하고 감성이 풍부한 행복한 어린시절의 추억만 읽힐 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도리어 따뜻한 어머니의 배려로 피아노와 문학을 사랑하게 되고, 무뚝뚝한 아버지이지만 슈베르트를 사랑했던 그에게서 정서적 외로움의 성향을 받게 되고, 그리고 일본인 친조부모에게서 손자로서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사랑을 받았던 것 같았다. 간혹 그들과의 이별로 인해 '죽음'이란 명제가 어린 그에게 버거움으로 씌여졌을 수도 있겠으나 , 그때마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감정들이라 여겨졌다.
작가는 피에로인 질르의 표정과 처지를 빗대어 , 자신의 처지를 폄하하고 유사시 하였으나 , 전혀 그렇지 않게 느껴졌던 이유는 또 있었다. 그가 말하는 독서에 있었는데, 대문호들과 철학가, 음악가와 미술, 과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책을 접하고 몰입하였다는 점이다.
대학시절엔 누구나 머리가 커진다.
자신에게 맞는 가치관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책 속에서 철학가들과 조우하고 대문호들의 필력에 매료되며, 현실을 토막쳐 이상적으로 꿰매 놓은 칸트를 사랑하거나 ,조금의 빈틈도 없이 머리를 흔들어 놓고 숭배케 하는 니체를 인생의 형님으로 모시게 된다. 때론 발자크와 르네의 글 속에서 이성을 탐닉하며, 쇼스타코비치 심포니 5번을 들으며 벅차하고, 귀를 잘라서라도 나는 세상 것들과는 달라 하며 고고하게 고흐가 되고 싶어진다. 머리와 가슴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고독한 섬에 가두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적성에 안맞다고 부르짖던 국문과를 다니면서도 학위를 위해 미친 듯 공부했을 작가의 고군분투와 집념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얻은 교수직....그 직분을 박탈 당했다고 해서 그 직분 자체와 경험들을온통 괴로움의 시간으로 먹칠 해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 먹칠로 인해 결과를 두둔하고 회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원치 않았던 거지 같은 환경이었다 해도, 애초엔 그도 그 옷이 입고 싶었을 거다.
자신에게 안맞는 옷이라고 그 옷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 치부할 순 없다. 그 옷을 입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채우고 사는 사람들도 허다하기 때문이다.비록 열정의 시간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죄악의 시간으로 퇴색돼 잔류하여도 ,그 과거의 시간들을 지울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뇌과학을 공부 한 작가가 더 잘 알 것이다. 기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약 160여개의 단어를 자신만의 의미로 해석 해 놓은 질르의 언어 사전이었는데, 매우 독특했다. 일반적인 단어의 의미를 비우고, 그 안에 자신의 경험치 만큼의 시각으로 다시 채워 넣은 새로운 단어의 의미를 읽어가면서 , 작가의 독단성과 고집 그리고 위트를 느꼈다. 문학도만의 향유다.
글의 중반에는 그가 대학 입학과 동시에 다시 찾은 피아노 음악에 대해 전문가 이상의 곡 해석과 감상을 언급하였는데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성향이 프랑스 작곡가들과 어울린다. 그의 짧막한 소설도 읽을 수 있었는데 어머니에게서 나온 소설 주인공의 모티브가 색달랐고 재미있었다.
니체가 말하는 관조의 예술과 직접적인 행위의 예술을 누리는 것만이 ,진정의 유일무이한 '행복'으로의 길이라 언급했던 이유를 되새기기 바란다.
질르는 지금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