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 들키면 어떻게 되나요? 위픽
최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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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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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한동안 기억하고픈, 기억하려는 이름입니다.

2006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해 작가의 대열에 들며 지금까지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이어온 작가라는데, 정작 저는 작년 말부터 올해 초를 거쳐 알게 된 작가입니다. 특히 2015년에 발표한 <구의 증명>이라는 소설을 통해 최진영이라는 이름과 그의 작품에 끌림을 받았습니다.

소설 <구의 증명>의 모티프는 사랑과 죽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가 자극적이고 충격적입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나는 미친년이다. 사이코패스다. 인간이 아니다. 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구를 먹는다. 나를 비난하고 가두고 죽여도 좋다. 그 모든 것은 내가 구를 다 먹은 후에. 이 장례를 끝낸 후에. ----- <구의 증명> 108쪽에서...

소설의 소재는 충격적이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이야기는 차마 견디기 벅찬 아픔과 슬픔으로 가득합니다. 만일, 이 소설을 읽고 눈물을 참아낸다면 당신은 아마도 세상의 도를 통달한 분일 겁니다.

그렇게 만난 최진영 작가가 최근에 발표한 작품이 바로 소설 <오로라>입니다.

82쪽 분량이라 금방 읽힙니다. 분량만큼 이야기도 단순합니다. 제주도의 겨울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던 작가의 다짐을 꺼내 쓴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믿음과 사랑에 관한 짧은 소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해서는 안 될, 즉 기혼남을 사랑하게 된 작중 너가 그 사랑을 접고자 마음을 정리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단순하다고해서 이야기가 품은 믿음과 사랑의 관계에 대한 사유적 깊이마저 얕은 것이 아닙니다.

이 작품이 위픽 시리즈로서 기획되었다는 점, 위픽 시리즈는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취지를 갖는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소설 <오로라>를 내용의 가시적 단편성만으로 이해하거나 감상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작가도 스스로 밝힙니다. ˝<오로라>를 쓰면서 사랑과 믿음을 나란히 두고 바라봤습니다. 둘의 크기는 같지 않아서 어느 한편에 더 많은 그림자가 집니다. 믿음 없는 사랑은 가능한가. 사랑 없는 믿음은 어떤 모습인가. 그게... 완전히 없을 수가 있는가. 질문은 답이 아닌 더 많은 질문을 불러옵니다.˝(‘작가의 말‘ 中에서)

그렇듯 이 단순한 소설은 끝도 없는 질문을 요하게 만드는 만큼 단순하지가 않다는 역설을 자아냅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쓰면서 사랑에 대한 사유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저 제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작가의 말‘ 中에서)라는 작가의 고백을 통해서도 저는 소설 <오로라>를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전작들을 만나봐야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의 글을 통해 단편적으로 저울질하거나 가위질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를 이해하겠다는 의지가 아닙니다. 공감하겠다는 열정은 더더욱 아니겠죠. 그저 너를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값싼 치기에 불과할 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 하나의 작품만으로 작가 또는 세상 전부를 해석한 것인마냥 값싼 지적 허영과 오만을 부리려 합니다. 나의 비루한 기준으로 광활한 세상을 판단하고 결정 지으려 합니다. 그것이 어찌나 불손하고 방자하며 가련하던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넓게 보고 깊게 헤아리려 노력합니다. 판단을 하려 말고 이해와 공감에 젖어들게끔 애씁니다. 요즘 독서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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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청설모가 되기 위해 들어온 이곳에서, 구가 말했다.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야.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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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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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한국희곡명작선 118
김성희 지음 / 평민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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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동행
#김성희
#평민사
#한국희곡명작선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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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동행>은 고부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고부갈등은 남성중심주의적 가부장제가 양산한 폐단 중에 가장 고약한 것으로 간주된다. 나의 입장은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가부장제를 무조건적으로 폐악스럽게 판단할 수만은 없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제도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중심주의적 가부장제는 사라져야 하거나 과감하게 수정되어야할 구시대적 유산에 불과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고부갈등은 시어머니로 대표되는 구세대적 여성과 며느리로 대표되는 신세대적 여성 사이의 투쟁적 갈등이다. 그 투쟁 사이에는 이를 중재해야 할 남성, 즉 시아버지나 남편이 늘 존재하지만 그들은 암묵적으로 고부갈등을 당연시하거나 외면하기 일쑤다. 간혹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을 시도하고자 덤비지만 안타깝게도 남성들은 어느 한 쪽의 편을 드는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오히려 고부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만다.

희곡 <동행>은 고부갈등을 야기하는 남성중심주의적 가부장제나 고부갈등에서 비롯되는 여성 간의 투쟁의 주제를 한풀 걷어내는 기염을 보인다. 오히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세대간의 이해와 여성으로서의 화해를 도모하는 모습에 집중한다.

전체적인 내용은 진부한 면이 없지 않지만, 고리타분하지는 않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갈등은 마치 죽어가는 화초를 닮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덕분인지 죽어가던 화초마저 살아난다는 적절한 비유와 장과 장 사이에 곁들어지는 다양한 짧은 회상 장면들이 희곡 <동행>을 읽는 재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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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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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콘트라바스
#파트리크쥐스킨트
#박종대_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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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노드라마(1인극) 형식의 희곡
🔸️ 콘트라바스라는 악기를 소재로 한 희곡
🔸️ 국내에 소개된 쥐스킨트의 유일한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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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킨트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린 그의 작품은 대표적으로 소설 <좀머 씨 이야기>와 <향수>, 희곡 <콘트라바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향수>는 영화로도 상연되어 그 유명세를 톡톡히 하는 작품이다.

아마도 쥐스킨트를 만나게 된다면 위 세 작품은 자연스럽게 독서의 행위로 만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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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콘트라바스>는 일반적으로 콘트라베이스로 잘 알고 있는 그 악기를 소재로 하는데, 작품 속 화자는 콘트라바스 연주자이다.

전체적으로 희곡은 회의적인 분위기가 짙다. 쥐스킨트는 회의론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화자는 콘트라바스 연주자로서 자신의 악기와 자신의 직업에 대해 넋두리를 지루하게도 쏟아낸다. 심지어 화자가 사랑한 여인과 그 사랑에 대해서까지...

그런데 그 넋두리를 듣고 있노라면 작가 쥐스킨트가 이 희곡을 쓰기 위해 콘트라바스라는 악기와 연주자에 대해, 또한 음악에 대해서까지 얼마나 깊고 디테일하게 조사하고 연구했을까를 놓고 끔찍하리만치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희곡 <콘트라바스>를 읽고 나면 독자는 아마도 콘트라바스, 그리고 그것과 연관되는 음악적 지식에 해박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희곡은 깊이 있고 디테일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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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당시에도 음악은 계속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46쪽)

(중략)

음악은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이죠. 거기엔 정치와 시대 흐름을 띄어넘어 무언가 인간 보편적인 것이 있어요.(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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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콘트라바스>에서 방점을 찍게 되는 부분이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에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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