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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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표현이겠지만,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고요하고 잔잔한 호수에 작은 조약돌이 첨벙 일으키는 파동과도 같은 소설입니다. 그러나 그 파동의 여파는 이처럼 사소하지만은 않습니다.

소설의 중심인물인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과 함께 시내에 사‘(18쪽)는, 석탄•목재상입니다. ‘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15쪽)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근면함으로 채워 넉넉하지는 않을지라도 장대비에 땔감을 주우러 나온 아이에게 ‘차를 세우고 태워주겠다 하고 주머니에 있던 잔돈을 좀 줄‘(20-21쪽) 여유 정도는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펄롱의 일상은 이렇다할 큰 변화가 없는 그저 그런 삶입니다. 그렇게 사소한 듯한 삶이 나름으로는 펄롱의 사소한 행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흔을 바라보는 펄롱에게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44쪽) 고민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 펄롱에게 어느 날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수녀원으로 배달을 나간 펄롱은 수녀원에서 ‘바닥에 엎드려서 구식 라벤더 광택제 통을 놓고 걸레로 둥근 모양을 그리며 죽어라고 바닥을 문지르고 있‘(50-51쪽)는 아이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 중 한 여자아이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펄롱과 펄롱에게 닥친 하나의 사건이 맞물리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며,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책 표지) 소설입니다.

...

📖 119쪽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읺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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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은 첫 번째 독서보다는 두 번째 독서에서 더욱 강렬했습니다. 나에게는 그랬습니다. 저는 ‘강렬‘이란 단어로 소설에서 받은 감동의 정도를 표현했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 받은 정서적 충격의 크기나 깊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 내 삶을 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살피도록 부추기면서 펄롱의 삶을 관통하는 가치적 판단과 선택에 대한 지극히 보통의 고뇌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과정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독서의 어느 도중이거나 후에 오는 것도 아니라 독서의 시작부터 마지막,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는 동시간적 시간, 그러니까 펄롱과 함께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는 ‘평범‘으로 번역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보통의 사람과 그 사람의 보통의 삶이 겪는 고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고뇌는 충동적이거나 극단적인, 또는 보통 이상이거나 이하의 것이 아닌 그야말로 나와 같은 보통이자 평범한 존재들이 그러하듯이 평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평범이 그 무엇보다도 고귀하게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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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다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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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 구조화된 사회에서는 개인이 행하는 차별 역시 관습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떤 말이나 행동이 차별이 되는지 그 행위를 하는 입장에서는 인식하지 못할 수가 있다. 이런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바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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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 한국희곡명작선 103
김수미 지음 / 평민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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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타클라마칸>, 극작가 김수미는 무대를 다음과 같이 꾸며주길 원합니다.

˝길 위는 표지판 하나 없다.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난 길을 잃어버린, 막막한 그들의 상황이 설명될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도시와 단절된 느낌을 주어 자연 속에 들어온 그들을 일상과 분리하기 위함이고, 자연을 실록을 배제한 사막과 가까운 모습을 원하는 건 그들 자신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과 가장 닮은 모습의 환경 속에 그들을 두기 위함이다.˝

무대는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막막한 그들의 상황‘을 상징처럼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희곡 <타클라마칸>은 이러한 무대의 배경을 상상하면서 희곡을 읽어나가야만 합니다. 이유는 작품 후반부를 강타하는 반전때문입니다. 이 반전은 작품 속 ‘그들‘ 이야기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너머로 작품 건너편에 있는 독자(연극이라면 관객), 즉 ‘나‘로 향하는 눈을 뜨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사내와 홍숙영, 둘은 60대의 부부입니다. 사내에게는 차현배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는 해리 장애로 기억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이름도 잊어버린 상태입니다. 아내 홍숙영은 남편의 기억과 이름을 되찾고자 함께 남편의 오랜 친구를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도중에 차가 고장을 일으켜 휑한 벌판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극작가가 원하는 무대의 모습, 그러한 배경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잃어버린 사내의 기억을 되찾고자 하는 홍숙영의 사랑을 표현하려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작품에는 반전이 있고, 그 때문에 결국 누가 기억을 잃어버린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깁니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또는 애써 외면하려는 아픈 이유가 밝혀집니다. 그럼으로써 희곡 <타클라마칸>은 정작 하고자 한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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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김수미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취향에 맞는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화해 또는 포용이 아닌 새로운 갈등, 또다시 시작되는 위기를 향한 반전이 보여주는 작품 스타일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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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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