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의 아픔을 알아주나요
브라이언 코나한 지음, 정미현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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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고슴도치의 삶으로 뛰어들다.

그들은 온몸에 가시가 돋아난 고슴도치와 같았다. 고요한 정적에 파장을 일으키듯,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재빨리 가시를 뾰족하게 세웠다. 그리고 똬리를 트는 뱀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버렸다. 자신을 향해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입과 귀 그리고 눈을 막아버린 것이다. 우리는 고슴도치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다. 딱 하나, "너희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그 무엇이 되어라!"고 말해줬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고슴도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죽음이었다.

 

우리가 누군가와 다르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

그것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와 같았다. 낯선 문화와 환경을 가져온 클렘, 아이들은 전학생 클렘에게 적개심과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에 분노했으며, 분노를 감추기 위해서 처참히 짓밟기 시작했다. 《누가 나의 아픔을 알아주나요》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의 심리적 특성을 중심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고발성이 담긴 청소년 문학이다.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로 이사를 오게 된 클렘. 그는 새로운 학교와 친구에 대한 희망을 품었으나, 그 누구도 클렘을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다. 도리어 클렘의 영국식 말과 행동에 대한 비난과 조롱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여자 선생님과 불미스러운 관계라는 소문까지 떠돌게 되었다.

 

「내가 할 말은 딱 하나다. 학교에서 듣는 얘기를 전부 믿지는 말라는 말씀! 그게 다다. 문자 한 통이면 전교에서 가장 헤픈 계집애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학교가 그런 데다. 가끔은 간절하게 휴대폰 따위 없던 옛날로 돌아가고픈 마음일 때도 있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그 시절 얘기를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휴대폰이 없다니 그게 상상이나 되나? 분명 친구 하나 없는 왕따가 될 거다.」p. 23 <코라 켈리의 견해 中>

 

클렘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모든 것이 진실인가?

책은 클렘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에 대한 회고록 형식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주인공 클렘의 주변 인물이 각자 입장과 주장을 독자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클렘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는 점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침묵, 방관, 체념으로 버텨오던 클렘. 그는 결국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던 분노를 참지 못해 터트리고 말았다.

 

학교 폭력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학교 폭력'이다. 현재 학교에서 청소년으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 사건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사건 자체가 성인의 폭력을 능가할 정도로 잔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다양한 매체의 영향 즉, 모방학습으로 인한 폭력의 재현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 청소년의 억눌린 자아와 욕구가 비현실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청소년. 그들은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 놓인 '애매한 존재'다. 스스로 성숙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여리고 순수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특성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사회의 구조가 도리어 청소년의 일탈을 부추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클렘의 사연을 해석하는 방식이 편파적임을 밝힐 수밖에 없다. 

 

작가는 초반에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빌미를 넌지시 던져놓았다.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 역할을 피해자의 주변 인물이 맡은 것이다. 누군가의 합리적인 선택, 변명으로 인해 피해자는 자신의 존재가 지닌 권리를 박탈당했다. 자신에게 닥친 일을 감당할 수 없었던 주인공 클렘에게 소극적인 반항력만 제공해주었을 뿐, 작가는 그 이상의 용기와 희망을 보여주지 않았다. 피해자의 부모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등장했으며, 친구들도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진부하게 행복한 결말로 막을 내리지 않았음이 인상적이다. 문제를 던져놓았으나, 작가가 정답까지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로서 생각할 거리를 남겨둔 셈이니 말이다. 한편으론 청소년 문학이 한정된 공간을 맴돌고 있음이 안타깝다. 또한, 청소년을 올바로 이해하고 문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래서 클렘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난 녀석이 고슴도치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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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 미사일 나남시선 84
김영승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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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은 그저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시집을 읽을 때마다 시적 감수성으로 그 속내를 이해해야겠다는 마음 자체를 비운 지 오래다. 사실, 그 간결히 함축된 언어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장편소설책을 읽기 위해 소비하는 시간과 시집 한 권을 읽기 위해 소비하는 시간은- 두 시간이 지닌 가치가 똑같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책을 읽기 위해 소비된 시간의 양과 질에 따라 책이 시사하는 바가 크고 대단한 것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시간이면 충분한 책일지라도- 그 안에 함축된 질적인 의미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면, 가볍고 얇은 시집이라도 우습게 볼 수 없다.

 

이번에 읽은 시집을 여러 각도로 높이 평가하는 목적으로 감상문을 쓰고 싶지는 않다. 시를 읽으면서 작가와 나의 파란만장했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기도 하고, 다시 시를 읽으면서 그 안에 축소된 세상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작가는 자신과 가족이 등장하는 詩의 세상을 펼쳐놓았다. 스스로를 관찰하고 음미하면서, 또 가족과 일상을 생각하면서 시를 쓰지 않았나 싶다. 누구나 이런 느낌, 방식으로 시를 쓰겠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간결하게 다듬는 작가의 필력이 아닐까. 그가 진정 자신의 언어로 시작과 끝을 맺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어디 詩 쓰는 사람이 남보다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으랴. 단 한 줄이라도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인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삶을 온몸으로 더듬고, 핥고, 던지고, 밟고, 늘리고- 다시 줄이면서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 있다면, 詩는 더이상 난해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나의 말에, 詩에 功을 들인 적이 없다. 功을 들이다니……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다니…… 기쁘다." 마음을 애쓰지 않고 한 줄, 두 줄 써내려가는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흐린 날 미사일》은 제목만큼이나 다소 어둡고 무거운 느낌의 詩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낮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독자의 입장으로 재치있게 숨은그림찾기를 해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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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분 피로를 푸는 습관 -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직장인을 위한 피로 관리법
니시다 마사키 지음, 박재현 옮김 / 부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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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는 개인의 신체와 정신 상태에 따라 쉽게 생기기도 하며, 다시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혹, 피로를 유발하는 환경의 자극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을 탓하기 전에 우리는 저마다의 입장 즉, 상태를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피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생각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곧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고로 스스로 피로를 몸과 마음에 지닌 채 살아간다.' 그래서 생각건대, 피로를 물리치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한다는 자체가 참 유감스럽기도 하다. 심신이 지쳐버린 사람에게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알려준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자기 자신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피곤하게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왜, 그동안 우리는 고지식하게, 고집을 부리면서 몸과 마음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 주변 환경과 사람 그리고 어떤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곧 피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스스로의 무고함을 입증하려는 자만과 욕심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피로를 더욱 부추기는 역효과를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피로에 대한 다양한 해소법을 알려주고 있다. 개인이 소속된 집단과 조직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에 즉흥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차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전문 분야로 하는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피로'를 말하고 있다. 책의 초점은 피로에 대응하는 방법이 아닌, 피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에 맞춰진 셈이다. 총 4부로 구성된 목차를 보면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점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15분 피로를 푸는 생활 습관은 다음과 같다. 나쁜 기억을 잊게 하는 15분 이른 기상, 몸의 긴장을 풀어 주는 15분 산책, 상쾌한 숙면을 돕는 15분 일광욕, 일의 성과를 높이는 15분 낮잠, 잠든 뇌를 깨우는 15분 티타임, 좋은 자세를 만드는 15분 스트레칭 끝으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15분 명상이다.

 

15분은 하루의 단 1%에 해당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굳이 15분을 지킬 필요 없이 저마다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시간은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다. 15분이라고 정한 것은 하루 24시간 중에서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저자의 당부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직장인의 피로 해소를 위해 집필된 책의 성격에 따라 《하루 15분 피로를 푸는 습관》은 직장인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자, 마무리를 해보자. 초반에 언급했던 대로 피로를 푸는 방법 중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것은 장담컨대, 저마다 생각하는 방식을 능동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재치있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즐긴다면 어느 누구도 쉽게 피로감을 느끼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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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박스 - 낯선 역사에서 발견한 좀 더 괜찮은 삶의 12가지 방식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강혜정 옮김 / 원더박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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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책 제목과 목차의 관계와 의미를 유추하는 시간부터 마련해보았다. 저자는 과거가 되어버린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21세기의 인간이 습득해야 할 삶에 대한 자세와 방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자)는 사랑, 가족, 공감, 일, 시간, 돈, 감각, 여행, 자연, 신념, 창조성, 죽음 방식이라는 12가지 주제에 주목했다. 그리고 각각의 주제로 인해 발생했던, 그 주제를 원인으로 해석할 필요, 할 수도 있는 사건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였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호기심의 방'과 유사한 '원더박스(wonder-box)'에 이 모든 주제와 내용을 담았다. 이 용어는 독일인에게 '분더캄머'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 공간에는 여기저기서 수집한 매혹적이고 진기한 물건들을 전시했다고 한다. 한 집안의 유물에 대한 보존적 가치를 상징하기도 하며, 나아가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기꺼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을까. 새로운 시대와 문명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서 무엇을 발견했던 것일까. 책이 선정한 12가지 주제는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신념'은 나머지 11가지 주제를 통솔하는 위치에 놓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신념'을 분리된 성격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우선 책 내용에 집중하기로 했다. 책은 역사란 현대인의 미래를 암시하는 거울이라 표현하고 있다. 현대인이 겪는 세상에 대한 딜레마를 말끔히 씻겨줄 수 있는 방법이 역사 속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탄생, 가족의 성립과 조화에 대한 이해, 공감력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방법, 일에 대한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인식관, 시간의 무한성에 대한 인간의 고정관념, 감각을 구성하는 물질의 모든 것, 여행에 임하는 자세와 여행으로 인한 실천적 삶, 신념이 지닌 힘, 창조성의 두 얼굴, 죽음으로 시작된 또 하나의 삶을 인류가 거쳐온 역사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관찰하는 관찰자, 나아가 거기에 참여하는 참여자가 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와 문화의 사회적 관행에 안테나를 맞추고 살피다 보면 각자의 생활 방식을 되돌아보고 문제가 있을 경우 발전적인 방향으로 개선할 기회를 가질 수가 있다. 또한 익숙하기 때문에 당연시해왔던 자신의 방식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깨닫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p.307

 

한편으로는 저자가 세운 해석의 기준에 따른 결과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이 다루는 내용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시공간을 뛰어넘어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연결하여 12가지 주제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우리가 돈과 시간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는지, 공감한다는 것 혹,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지닌 희망력은 무엇이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감각 기관의 숨겨진 기능과 미래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상황과 인물을 통해 하나의 전환점이 보여지고 있다. 물론, 역사에 초점을 맞춘 저자의 해석론이기 때문에 비슷한 성격의 현상을 한데 묶어서 추론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그 누구도 같을 수 없으며, 《원더박스》의 경우는 사고와 인식의 전환점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신한 발상의 책이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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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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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푸르게 살아가는 소나무보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잎과 열매를 떨구는 나무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늘 한 곳에 고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강물, 사실 끊임없이 순환하여 새로운 물과 물이 어우러지고 있음을 알 게 되는 것처럼. 자신만의 고유함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언제나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이 더욱 가치롭게 느껴진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제와 오늘 마주하는 자연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우리가 체감할 수 없을 만큼 천천히 그 모습과 향기를 달리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애써 슬퍼하지 않는다. 본래 자연은 조금씩 순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희망이다. 마음의 안식을 위해 산과 강으로 떠나고 자연 속에서 먹거리, 볼거리를 찾는 것도 그 모든 것이 희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떠나 우리가 사는 현실은 어떠한가. 온갖 비교와 속박에 자기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어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하염없이 크고 작게 만드는 것, 우리는 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시련과 고통을 자처하고 있을까. 저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어떤 미래에 대한 갈망, 욕망 때문은 아닐는지.

 

「우리가 꿈을 접은 순간에도, 꿈은 우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희망 끈을 놓은 순간에도, 희망은 우리 곁에 있다. 왜? 꿈이며 희망이며는 인간본능이기 때문에. 요구가 되었든, 욕구가 되었든, 욕망이 되었든, 아니라면 의지가 되었든, 이런 것들은 인간 안에 내재된 희망의 원천인 것! 그러므로, 절망은 오히려 그대를 속이는 것이다. "꿈을 접었노라"는 선은은 자기기만이며, "더 이상 희망을 믿지 않겠다"는 고집은 부질없는 자기부정!」- 본문 중에서

 

희망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인간이 곧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처럼 움직이면서 살아간다면- 이것이 혹,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각자의 희망을 품기엔 충분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있어 자연과 희망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다. 마구 흔들리거나 넘어지는 것을 통해서 다시 일어서야만 하는 필요성과 의미를 깨닫듯이- 희망적이지 않은 현실을 극복해야지 만이 진짜 희망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차동엽 신부의 <희망의 귀환>이 전하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기억하라. 희망은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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