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사 3부작
카를 마르크스 지음, 임지현.이종훈 옮김 / 소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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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사건 이전에 작성된 최초의 헌법 초안에는 아직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요구를 요약한 최초의 서투른 공식인 노동의 권리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노동의 권리는 국가로부터 부조를 받을 권리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어떤 국가가 어떤 형태로든 빈민을 먹여 살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동의 권리는 부르주아적 의미에서는 터무니없는 것이며 가련하고 헛된 소망이다. 그러나 노동의 권리 배후에는 자본에 대한 지배 요구가 있고 자본에 대한 지배 요구의 배후에는 생산 수단을 전유하여 그것을 단결한 노동계급에게 종속시키고 그렇게 해서 자본과 노동 그리고 그들 상호 관계를 폐지하자는 요구가 있다. ‘노동의 권리배후에는 6월 봉기가 있었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를 사실상 법률의 보호 밖으로 몰아낸 제헌의회는 법 중의 법인 헌법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공식을 원칙적으로 삭제했으며 노동의 권리에 저주를 내렸다. 그러나 의회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플라톤이 자신의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했던 것처럼 의회는 공화국에서 누진세를 영원히 추방했다. 그런데 누진세는 어쨌거나 기존 생산관계 내에서 시행 가능했던 하나의 부르주아적 수단일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의 중간층을 예의 바른공화국에 묶어두고 국가 부채를 감소시켜가며 다수의 반공화파 부르주아지를 견제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90-91)



부르주아 혁명은 18세기의 여러 혁명과 마찬가지로 폭풍우 치듯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혁명의 극적인 효과는 나날이 더해가고 인간과 사물을 찬연히 빛나 보이며 날마다 정신은 황홀경에 빠져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혁명의 수명은 짧다. 그것은 곧 절정에 도달할 것이며 그 질풍노도의 시기가 가져다준 여러 결과를 사회가 그 자체 내에서 융화시키는 방법을 맑은 정신으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장기간의 몽롱한 침체가 사회를 덮어버린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19세기의 여러 혁명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부단히 자발적으로 그 진행에 제동을 걸고 혁명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외견상 성취된 것을 재검토하며, 비정할 정도로 철저한 태도로 그 최초의 시도에서 드러난 부적합성, 약점 그리고 무가치를 비웃는다. (195) 




1차 혁명이 반농노적 농민을 자유로운 토지 소유자로 전환시킨 이후 나폴레옹은 농민이 이제야 겨우 자기의 수중에 떨어진 토지를 평온히 이용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강화하고 법령화함으로써 그들의 소유욕을 만족시켰다. 그러나 지금 프랑스 농민을 파멸시키고 있는 것은 토지 분할, 즉 나폴레옹이 프랑스에서 확립한 소유 형태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봉건적 농민을 분할지 농민으로, 그리고 나폴레옹을 황제로 만들 물질적 조건이다. 농업의 기하급수적 황폐화와 경작자의 부채 증가라는 불가피한 결과가 창출되는 데에는 두 세대로 족했다. ‘나폴레옹식소유 형태가 19세기 초반에는 프랑스 농촌 주민의 해방과 부의 축적을 위한 조건이었으나 19세기를 경과하면서 농촌 주민의 노예화와 궁핍화를 초래하는 법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정확히 이 법칙은 제2의 보나파르트가 견지했던 나폴레옹 사상의 첫 번째 요소였다. 만일 그가 아직도 농민의 황폐화의 원인을 분할지 소유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외부, 즉 부차적인 상황의 영향에서 찾아야 한다는 환상을 농민과 공유하고 있다면 그의 실험들은 생산관계에 부딪쳐 비누 거품처럼 터져버릴 것이다. (317)




지금까지 모든 국가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났던 것, 국가와 국가 기관들이 사회의 종복으로부터 사회의 주인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해 코뮌은 두 가지 절대 확실한 방책을 강구했다. 첫째, 코뮌은 입법·사법·교육 등의 모든 직책을 관계자들의 보통선거권에 근거하여 인선하되, 동일 관계자들에게 언제라도 자기들의 파견 대표를 소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둘째, 코뮌은 모든 공무원에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단지 다른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만 지불했다. 코뮌이 일반적으로 지불한 최고 급료는 6,000프랑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의 기구들의 파견 대표에게 여전히 불필요하게 부여되는 제한적 위임권 없이도 엽관·매직 운동과 경력주의에 대한 좀 더 확실한 예방책이 마련되었다. (347)




이것은 부유한 자본가만을 제외한 상점주, 수공업자, 상인 등 대다수 파리 중감계급에 의해서 노동계급이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으로 공공연히 인정되었던 최초의 혁명이었습니다. 코뮌은 중간계급 자체 내에서 논쟁 재발의 요인을 항상 지니고 있는 채무자와 채권자 간의 결산에 대한 현명한 조정안을 통해 이들을 구제했던 것입니다. 중간계급의 바로 이러한 부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18486월의 노동자 봉기의 진압에 조력한 직후 푸대접 속에 제헌의회에 대해서 자신들의 채권자를 위해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이제 노동계급의 편에 가담하게 된 이들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오로지 한 가지 대안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코뮌이냐 아니면 여하한 명칭으로 재등장하는 제정이냐의 문제였습니다. 제정은 공공복지에 대한 사정없는 파괴로 이들을 경제적으로 파멸시켰으며, 제정 스스로가 촉진시켰던 대규모 금융 사기에 의해 그리고 인위적으로 가속화된 자본 집중을 제국 스스로가 지원함으로ㅆ 또한 그 부산물로서 중간계급을 착취함으로써 이들을 궤멸시켰던 것입니다.(414)



코뮌이 파리에 가져왔던 변화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제2제정 시대의 저속한 파리의 어떠한 자취도 없었습니다. 더 이상 파리는 영국의 지주들, 아일랜드의 부재 지주들, 미국의 왕년의 노예 소유주 및 속물들, 러시아의 왕년의 농노 소유주들, 왈라키아의 토지 귀족들 등의 회합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시체 공시소에는 더 이상 시체가 없었으며, 야간 강도 범행이 없었으며, 여하한의 좀도둑직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18482월 혁명 후 처음으로 파리의 거리는 안전했고, 이것은 종류를 불문하고 아무런 경찰력 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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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주주의 2 한길그레이트북스 25
A. 토크빌 지음, 박지동.임효선 옮김 / 한길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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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인들은 그들의 관행(慣行)을 통해서 또 다른 습관을 갖게 되었는 바, 즉 그들의 판단 기준을 그들 자신에게만 고정시키는 습관이 그것이다. 그들은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함에 따라 모든 세상사는 무엇이든지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으며 이해력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쉽게 내린다. (564)



민족과 민족, 시민과 시민을 분리시키는 장벽이 제거되면 될수록,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평등한 법을 적용하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개념으로 향하는 인간의 정신적 경향은(그 자체의 충동에 의한 것이기도 한 것처럼) 더욱더 강화되어 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민주주의 시대에는 창조주에게만 바쳐져야 할 숭배와 혼동될 정도로 삼류의 대리자들에게 존경이 베풀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587)



이와 같이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조상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후손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동시대인으로부터 고립시킨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만 매달리게 하며 마침내는 인간을 완전히 고독한 존재로 가둘 위험을 안고 있다. (669)



이와 같이 공공의 복지에 관심을 갖게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언제나 그들의 상부상조가 요구된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공공업무 중에서 중대한 것을 시민에게 맡기기보다는 사소한 업무를 맡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어떤 업무를 멋있게 처리한다면 단번에 국민으로부터 호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친 작은 봉사와 눈에 띄지 않는 선행, 습관화된 끊임없는 친절, 그리고 사욕이 없다는 평판의 확립 등이 요구될 것이다. 그런데 지역적인 자유는 시민으로 하여금 자기 이웃과 자기 친척의 애정을 높이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그것이 인간을 분열시키는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영구적으로 단결시키며 동시에 상부상조하게 만든다.(673-674)



아메리카의 설교자들은 끊임없이 지상의 일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며, 그들이 지상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오히려 매우 어려울 지경이다. 회중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항상 종교적인 생각이 자유와 평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오히려 종교의 중요한 목적이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얻는 데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서의 번영을 얻는 데 있는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696)



민주국가에서는 어느 정도의 평등은 쉽게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만큼은 달성될 수 없다. 순간순간 그들은 이 평등을 달성할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평등은 그들을 외면한다. 그들은 그 매력을 쳐다볼 수는 있지만, 그것을 향유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이 그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기 전에 죽어버린다.(706)



민주국가의 주민이 그 풍요 속에서도 겪게 되는 이 이상한 우울증이나, 조용하고 편안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을 간혹 사로잡는 인생에 대한 혐오감도 바로 이러한 원인 때문임에 틀림없다. 프랑스에서는 자살자의 수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서는 이 자살은 드물지만, 정신이상이 다른 어ᄄᅠᆫ 곳보다도 많다고 한다. 이것은 같은 종류의 질병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아메리카인들은 아무리 불안할지라도 삶을 끝내는 일은 하지 않는데, 이것은 그들의 종교가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물질적인 쾌락에 대한 열정이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의지는 저항하지만, 이성은 항복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706-707)



만약 그들에게 대표자를 선출하라든가 개인적인 봉사로써 정부를 지원하라든가 공공업무를 떠맡으라고 요구하게 되면, 그들은 시간이 없다거나 쓸데없는 일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처럼 시시한 즐거움 따위는 더욱 중요한 생활에 종사하는 진지한 사람에게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이기주의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 원리에 대해 품고 있는 관념은 아주 설익은 것이다. 그리고 소위 그들 자신의 업무라는 것을 더 잘 보살피기 위해 그들은 그들의 중요한 업무를 등한시하는데, 이 중요한 업무란 곧 그들이 계속 그들 자신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708)



자기와 대등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인간적으로 대했던 사람이 그 대등한 관계가 끊어지자마자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백안시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온유함은 문명과 교육보다는 조건의 평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다.(735)



아메리카합중국의 입법자들은 형법상의 거의 모든 형벌을 경감함에도 불구하고 강간을 여전히 중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어떠한 범죄도 강간죄만큼 여론에 의해 냉혹하게 처벌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메리카인들은 여자의 명예보다도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없으며, 여자의 독립성을 그 어떤 것보다도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여자의 의지에 반하여 여자로부터 명예나 독립성을 빼앗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리 엄격한 형벌이 내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동일한 범죄가 훨씬 더 가볍게 처벌되고 있으며, 배심원으로부터 그 범죄자에 대한 유죄평결을 얻어내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이것은 정절에 대한 경시의 결과인가? 아니면 여자에 대한 경시의 결과인가? 나는 이것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한 경시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782) 



민주시대의 사람들이 고매한 야심을 못 가지게 되는 주된 원인은 그들의 재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재산을 늘리기 위해 너무 격렬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그들의 재능을 취대한으로 동원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시야를 급속히 제한시킬 수밖에 없고 그들의 영향력 또한 줄어든다. 그들은 더욱더 가난하게 되는데, 어찌 위대해질 수 있겠는가? (812)



 사람들이 계속해서 가정적인 이해관계라는 좁은 범위 속에 더욱 폐칩하고 그런 종류의 자극을 추구할 경우, 그들은 궁극적으로는 나라를 뒤흔들지만 나라를 발전시키고 재충전시키는 저들 위대하고 강력한 대중적 정념에 접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우려가 있다. 재산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이동이 잦고 재산에 대한 집착이 갈피를 못 잡고 들떠 있을 경우, 사람들은 새로운 이론은 모두 위험한 것으로, 모든 개혁은 역겨운 고역으로, 모든 사회적인 개선은 혁명으로 향한 징검다리로 간주하는 상태에 이르러서 너무 멀리 몰려갈까 봐서 함께 나아가려 들지 않을 우려가 있다.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과 후손들의 미래의 이해관계를 전혀 내다보지 못한 채 비겁하게도 현재의 쾌락에 몸을 내맡기고, 정말 필요할 때 더 높은 목표를 향한 강인하고 신속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손쉬운 인생의 시류에 따라 흘러가기를 좋아하지 않을까 나는 우려한다. 또한 나는 그들이 그런 작태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자 한다.(832)



이와 같이 사회의 구성원을 자기의 수중에 장악하고서는 그들을 마음대로 다루게 된 후, 그 다음으로 최고의 통치권력은 그 세력을 전체 사회로 확장하게 된다. 통치권력은 사회의 전 표면을 사소하고 획일적이면서도 복잡한 작은 규칙의 그물로 뒤덮고 있어서, 아무리 독창적이고 정력적인 사람일지라도 군중을 초월하여 이 그물을 관통할 수가 없다. 인간의 의지가 분쇄당하지는 않지만, 약화되고 굴절하며 종속적이 된다. 인간이 정부에 의해 행동을 강요당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행동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이러한 권력은 구태어 생존을 파괴하지는 않지만 방해한다. 폭정화하지는 않지만, 국민을 억압하고 생기를 잃게 하며, 우둔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침내 개개 국민은 한 떼의 겁많고 근면한 동물로 전락하게 되며 정부는 그 목자(牧者)가 되는 것이다. (890)



만약 개인적인 권리의 중요성과 존엄성에 대해 충분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때에 이 개인적인 권리가 침해를 받는다면, 이 침해는 권리의 침해를 받은 당사자 개인에게만 국한되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이 개인적인 권리에 대한 침해는 국민의 관습을 심히 타락시킬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를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이러한 종류의 권리에 대한 관념이 끊엄없이 희박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899)



현대 국가는 인간의 조건이 평등화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 평등의 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노예상태와 자유, 지혜와 야만, 번영과 고통 중에서 어느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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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주주의 1 한길그레이트북스 24
A. 토크빌 지음, 박지동.임효선 옮김 / 한길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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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중국 국민들의 생활 가운데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사회의 관리에 참여하고 그 문제를 토의하는 것은 아메리카인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말하자면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다. 이런 느낌이 가장 하잘것없는 생활습관들에까지 스며 있다. 여자들까지 자주 공공집회에 참석해서 가사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여흥으로서 정치연설에 귀를 기울인다. 토론클럽들이 연예여흥을 어느 정도 대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아메리카인은 대화는 할 수 없지만 토론할 수는 있으며 그의 말은 주장으로 변해버린다. 그는 마치 자신이 어느 모임에서 연설하듯이 상대방에게 말한다. 우연히 토론에서 열이 오를 경우에는 그는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신사 여러분하고 말할 것이다.(326)


자유로운 민주정치는 능란한 기술을 가진 전제정치처럼 그 모든 계획을 말쑥하게 성취하지는 못한다. 민주정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계획들을 포기하거나 위태로운 결과를 낳을지도 모를 경우 그 계획들을 내버려두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민주정치는 어떤 형태의 절대정치보다 많은 결실을 거둔다. 잘 하는 것이 많지는 않아도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민주정치 아래서는 정부가 하는 일에서보다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거나 정부 밖에서 이루어진 일의 성과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민주정치는 국민에게 가장 능란한 정부를 제공해 주지는 않지만 가장 유능한 정부라도 흔히 이루어 놓을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하자면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부문에 걸치는 활동, 충만한 힘, 그리고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라도 기적들을 낳을 수 있는 민주주의와는 뗄 수 없는 활력, 그런 것들이 민주정치의 진정한 장점들이다.(327-328)


내 의견으로는 합중국의 현 민주제도의 주요한 폐단은 유럽에서 흔히 주장되고 있듯이 그 제도의 취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막강한 그 세력에 있다. 그 나라가 누리는 지나친 자유보다는 폭정에 대해서 충분한 보장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가 내 보기에는 더 경계할 대상이다. 어느 개인이나 당파가 합중국에서 부당한 처우를 당한다면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을까? 여론에 호소하자면 여론도 다수로 이루어진다. 입법부에 호소하자면 입법부도 다수를 대표하여 묵시적으로 다수에 복종한다. 행정권에게 호소한다면 행정권도 다수에 의해 임명되며 다수의 수중에서 소극적 도구 구실을 한다. 공권력은 다수가 무장한 것이며 배심원은 다수에게 사법사건을 청취할 권리를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일부의 주들에서는 재판관들마저 다수에 의해서 선출된다. 그러나 당신이 불평하는 조치들이 아무리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이라고 해도 당신은 가능한 한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 한편 입법권이 반드시 다수의 감정의 노예로 되는 일이 없이 다수를 대표하도록 구성될 수 있다면, 행정권이 권한을 적절히 나누어 가지도록 구성될 수 있다면, 또한 사법권이 다른 두 개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구성될 수 있다면, 민주적이면서도 별로 폭정의 위험성을 가지지 않는 정부를 이루게 될 것이다. (338)


아메리카에서는 다수는 사상의 자유 둘레에 엄청난 장벽을 세운다. 이런 장벽의 한계 안에서 작가는 자기 좋을 대로 쓸 수 있지만 그 한계를 넘을 경우 그에게는 재앙이 올 것이다. 화형을 당할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비방과 박해를 받아야 한다. 그의 정치적 생명은 영원히 죽어버린다. 그 이유는 그 생명을 살려줄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적인 보상도, 명성마저도 그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의 견해를 공표하기 전까지는 그는 동조자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생각을 모든 사람에게 공표한 이후에는 동조자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큰소리로 비판하고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용기없이 멀어져간다. 매일 기울여야 하는 노력에 짓눌려서 그는 마침내 굴복하고, 진실을 말했던 것을 후회나 하는 것처럼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342)


유럽에서는 안주하지 못하는 성격, 끝없는 재물욕 및 너무 지나친 독립 애호심 등을 사회에 대해서 아주 위험한 성향으로 간주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바로 합중국에게 장구한 세월의 평화스런 미래를 보장하는 요소들이다. 이와 같은 시끄러운 감정들이 없이는 인구는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좀처럼 만족시키기 어려운, 구세계가 겪는 것 같은 부족사태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험할 것이다. 신세계가 현재 가지고 있는 행운이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덕성뿐 아니라 그들의 악폐까지도 사회에 유리한 것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동서반구에서 인간행동을 바라보는 견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탐욕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메리카인들은 흔히 칭찬할 만한 근면성이라고 부른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절제하는 덕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심약한 성향이라고 비난한다. (377)


스페인계주민들은 자신들에게 지울 수 없는 오욕을 남겨놓은 유례없는 잔혹성을 가지고도 인디언들을 절멸시킬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인디언으로부터 그 권리를 전적으로 빼앗는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메리카인들은 피도 흘리지 않고 또한 세계인들이 보기에 위대한 윤리적 원칙도 어기지 않은 채 평온하게 합법적으로 자비스럽게 야릇한 축복을 받아서 그 이중적인 목적을 달성했다. 이보다 더 인간이 만든 법률을 존중하면서 인간들을 죽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42)


아직도 노예제도가 있는 남부지방에서는 흑인들에 대한 차별은 덜 세심한 편이다. 때로는 흑인들은 백인들과 함께 일하고 휴식하기도 한다. 백인들은 어느 정도 흑인들과 섞이는 것에 동의한다. 그들에 대한 법률상의 처우는 더욱 가혹한 것이지만 주민들의 습관은 훨씬 관대하고 동정적이다. 남부지방에서는 상전은 노예를 자기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주인은 언제라도 노예를 마음 내키는 대로 해버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부지방에서 백인은 자신과 흑인을 구별하는 장벽을 더 이상 뚜렷하게 식별할 수 없어서 흑인을 더욱 가혹하게 배척한다. 그 이유는 백인은 흑백이 어느 날엔가는 뒤섞일 것이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447)


합중국에서 진행되는 이런 계속적인 변화, 쉴새없이 부침하는 행운, 개인재산과 공공재산의 예측할 수 없는 기복 등의 요인들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열병에 들떠 있다. 이런 상태는 놀랍게 그들의 노력을 불러일으키고 말하자면 일상적인 인간 수준 이상으로 그들을 살아가게 만든다. 아메리카인의 전생애는 노름, 혁명적 위기 혹은 전투처럼 지나간다. 전국적으로 똑같은 원인들이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기 떄문에 그런 원인들은 궁극적으로 국민성에 불가항력적인 충동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아메리카인들은 아무나 무작위적으로 고르더라도 자기가 바라는 바가 이상할 정도로 강렬하고 무슨 일에나 진취적이고, 모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을 좋아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그와 같은 성향이 나타난다. 그는 그런 성향을 법률, 종교교리, 경제이론 및 일상적인 직업 속에 도입한다. 그는 그런 성향을 도시의 일상업무에뿐 아니라 깊은 숲속에까지 가지고 간다. 바로 이런 성향이 해운에 적용될 경우에 아메리카인은 이 세계에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빨리 교역하는 상인이 되는 것이다. (5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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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의 생각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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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A. 매키넌은 포르노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가 포르노에 들이대는 잣대는 보수주의자가 가부장적 지배질서의 유지를 바라면서 들이대는 건전한 성도덕이라는 추상적인 잣대와는 완전히 다른 평등이라는 잣대, 즉 포르노로 인해 학대와 차별을 받는 여성들의 평등권이라는 잣대인 것이다. 이 참신한 주장은 앞으로 우리의 포르노에 대한 인식, 나아가서는 자유권 전반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86)


운동가의 재산은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와 꿋꿋한 헌신뿐이다. 그리고 운동단체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그 시대를 사는 민중들이 진실을 꿰뚫어 보고, 말하고, 힘을 모으기 위한 희망의 물리적 근거로서 기능하는 데 있다. 운동단체에 필요한 것은 결코 규모가 아니다.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마치 고통이 없는 것 같은 허구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고통이 됨으로써 이 세계와 이 세계에서의 삶을 증언하는 용기인 것이다. (109)



전쟁 때 장기형을 받고 20년 가량을 살게 된 사람들이 만기 출소할 시기는 70년대 초반이었어. 이때 이 사람들을 그대로 출소시키지 않으려고 전국 교도소에서 소름끼치는 고문을 했는데, 나도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여러 고문을 당했지. ‘생명을 꺾어 버려도 좋으니 미전향자는 없도록 하라.’는 대통령 특명이 있었다고 했어. (147)



조리가 통하지 않는 독재의 사회에서 악법은 법률가가 깨뜨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운동가가 깨뜨릴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사실을 아프도록 명심하고 있다. 나에게 채워진 족쇄, 그것은 결국 내가 나의 이 손으로 풀어야 할 족쇄인 것이다. (177)



하루에 작업 21시간, 흐리멍덩해진 정신에 매일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몽둥이, 쇠파이프가 쏟아졌다. 한국인 선원들은 조선족 선원을 라고, 그들의 부인을 암캐라고 불렀다. 조선족은 온갖 인간적 모멸 속에서 두 달 동안 견디었다.

 

고통 끝에 조선족 5명은 하선을 결의하지만 선장은 곱게 하선시켜 주지 않았다. ”중국인 선원들이 흉기를 들고 선장을 살해하려 해 강제 하선시킨다.“는 거짓 보고를 하고 사모아의 구류소에 보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장은 그들의 하선으로 인한 조업손실ᄁᆞ지 그들에게 부담시키려 했다. 20만원이라는 중국 돈은 자자손손 10대를 갚아도 영원히 못 갚을돈이라 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술을 마셨다. ”술이 들어가니 가슴에 쌓였던 원한이 눈물이 되고 눈물이 악이 되었으며 마지막 벼랑가에서 조선족 선원들은 죽음을 생각했다. 죽는 마당에 너 죽고 나 죽자로 막가는 것은 정해진 이치였는지도 모른다.

 

(중략)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표현은 원래 지존파가 스스로를 향해 사용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남을 향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우리 중의 어느 한 사람도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따위 저열한 표현으로 남을 평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페스카마호 선장과 사관들, 그리고 함부로 사형을 입에 올린 부산지방법원 판사가 조선족 선원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한 일은 있어도 조선족 선원들은 한번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작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이 비뚤어진 무한경쟁의 체제에 길들여져 인간 모멸을 인간 모멸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다름 아니다. (268-270)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국가가 만들고 국민에게 제시하는 역사의 박제는 사실상 불행한 과거의 역사를 몽땅 되풀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가 십상이다. 모든 역사 기술 중에서 최악은 국가에 의한 역사 기술이다. 우리가 역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가 독점하고 매장시키고 싶어하는 기억들을 도로 빼앗아 오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284)



물론 우리는 이 판결의 중요한 의미를 감지하고 있으며 <한겨레>의 이와 같은 평가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유득형의 몸에 남아 있는 참담한 상처와 청송 재소자들의 증언까지도 깡그리 외면하고 교도관의 가혹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판결은 기본적으로 교도관 편을 드는 비겁한 판결이며 그것을 조건 없이 칭송한 <한겨례>의 태도 역시 비겁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점잖은 법원과 진보적언론이 유득형의 승리를 절반의 승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292)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자면 나는 요즘 마음이 몹시 불안하다. 과거 내가 뚜렷하게 성폭력이라는 의식 없이 저질렀던 그 수많은 행동들이 속속 성폭력의 반열에 올라오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온몸의 땀구멍에서 일시에 진땀이 넘치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바야흐로 여성관의 혁명적 변화 없이는 운동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297)



그러나 이 땅에 처음 태어날 인권위원회가 진정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태어나기를 염원하면 할수록 우리의 고생은 처절하고도 끔찍했다. 그것은 요컨대 과거에 국민의 인권을 벌레 밟듯 짓밟아 온, 따라서 본능적으로 튼튼한 인권위원회의 탄생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군인, 경찰관, 교도관, 검사, 판사, 정치인들과의 투쟁이요 이 모든 세력의 대표선수인 법무부와의 투쟁이었던 것이다. 작년 상반기에 접수된 공무원에 의한 인권침해사건 665건 중 지금까지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된 사건이 단 3건밖에 안 되는 우리의 기막힌 현실이 이 투쟁의 처절함을 대변해 준다. 밥먹듯이 밤을 지새우면서, 혹은 맨 땅에서 단식농성을 하면서 나는 가끔 나의 미뤄 두었던 숙제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죄악과 오만을 뒤집어쓰고 감옥의 높은 담 안에서 허우적대는 수인들의 내일을 생각했다.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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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넷째로, 독서를 할 때는 착한 마음으로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이는 사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어려운 일이다. 흔히 책을 본다는 것은 저자와 독자와의 만남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것은 만남일 뿐 아니라 대결이기도 하다. 어떤 저자라도 완벽하지 않은 이상 잘못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잘못 보기도 하고, 지나칙 비관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악을 정당화시키기도 하고, 인간의 착한 마음을 비웃기도 한다. 만약에 순자가 정신을 차리고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독서한 것이 오히려 순자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책을 많이 본다는 점잖은 사람들 모두가 반드시 인간적으로 훌륭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래서 너의 오빠는 네가 책을 보기 전에 꼭 착한 마음’, 즉 타인과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따뜻한 동정의 마음, 악을 미워하는 마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돌아가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86)



일본에는 내가 살던 집 근처에 욱시글득시글하던 그 비참한 창녀들이 없었다(대학 시절에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창녀들이 불쌍하다는 소리를 했다가 몇몇 친구들에서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늘 야단만 맞고 울기나 하던 그 조그만 식모아이도, 아침 일찍 학교 가는 길 종로5가 길바닥에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잠자던 소년도, 다방에 들어가면 껌 한 통을 꼭 쥔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며 그것을 사 달라고 졸라 대는 아이도, 신문팔이 아이들도, 구두닦에 아이들도, 그리고 늦은 밤에 버스에서 이미자 노래를 한 가락 부르고는 취객들에게 손을 벌리던 맨발의 계집아이도 나는 나의 조국에서 처음으로 보았던 것이다.

 

생존경쟁에 시달리는 여느 각박한 사회가 그렇듯이, 나의 눈에 조국은 철저히 메말라 있었고 세상은 온통 속물투성이었다. 출세주의와 물질제일주의, 그리고 강자에게는 비굴하게, 약자에게는 용감하게라는 금언에 젊은 학우들의 정신은 썩어 들고 있는 것 같았고, 내가 사랑했던 어느 여학생이 그런 속물이라는 사실에 나는 몹시도 괴로워했다.

 

이런 모든 것들을 나는 신선한 심정으로 슬퍼하였고, 그 슬픔의 신선함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부해지는 것, 즉 감각이 둔해지고 면역이 되는 것, 나아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창녀가 불쌍하다고 하는 놈들을 웃어 버릴 수 있게 될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127)



뜻밖의 사람이 나의 재일동포의 통폐를 꾸짖었다는 충격은 엄청나다. 16년 동안 쌓아 올려 온 내 삶의 의미가 근저로부터 와그르르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다. 비참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조국의 아름다움도 슬픔도 어리석음도 더러움도 모두들 이 양팔에 끌어안고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고 함게 숨을 쉬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한낱 꿈인가? 망상인가? ‘재일동포는 나의 숙명인가? 원죄인가?

 

통폐를 나는 얼마만큼이나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국내 동포들이 지금도 나에게서 쪽발이 냄새를 맡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생겨먹은 대로 재일동포로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통폐를 극복하기 위한, 언제 끝날지 모를 절망적 몸부림을 계속할 것인가? 나의 마음은 오늘, 이렇게도 외롭게 방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마늘 냄새가 난다고 타박, 한국에서는 다꽝 냄새가 난다고 타박! (368)




혁명가의 참된 지성은 언제나 정해진 원칙과 비원칙 사이를 과감하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원칙과 비원칙의 경계선상에서 고달픈 줄타기를 감행하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항상 지성이고자 소망하면서도, 그 지성이 나에게 들이대는 이와 같은 과중한 요구 때문에 눌려 죽을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비비 말라 비뚤어져 간다.

 

비정하고 왜소한 음모가나 관료가, ‘인간에 대한 사랑에 튼튼히 입각하고 싶은 참된 혁명가보다도 사회정의를 이룩하는 과정에 있어서 때로는 훨씬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은 괴로운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사악한 권력과 싸우는 현실에 있어서 때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지적 부정직보다도 지적 정직 쪽이 긴 안목으로 본 인류사에 궁극적으로 훨씬 큰 공헌을 한다고 믿고 싶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 튼튼히 입각하는 자세의 소중함, 정당함을 끝까지 믿고 싶다.

 

역사법칙원칙속에 안주하는 것은 삼류이다.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그리고 그 연후에 자동적으로 도래하게 되어 있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충일을 위해 유능하게 분투하는 것만으로는 이류이다.

 

거기에다 더하여 앞뒤 가리지 않는 테레사적 인간애로부터 받은 신선한 감동은 가슴에 늘 간직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 자신의 소망과 사색과 행동을 인간에 대한 사랑에다가 튼튼히 비끄러매어 두기 위한 실존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일류이다! (501)




참으로 고통스러운 세월! 나는 오랜 세월을 이렇게 흔들리며 살고 있다. 이 고통은 나의 사상이 깊어지고 다듬어지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인가? 이런 아픔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나의 사상의 알맹이‘OO주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민족에 대한 사랑임을 뚜렷이 자각하면서 시작되었다. ‘OO주의의 우산 밑에서 안온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아픔의 사작 ....... 이리하여 해방의 신’, ‘부활의 예수에 대한 사색이 그랬듯이 이 고은의 민족주의적 광기역시, 그토록 아름다웠고 자족적이었고 완벽했던 나의 신념체계가 실은 초라하게도 나이브했음을 이렇게도 아프게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내가 간직해 왔던 신념체계에 입각하면서도 해방의 신’, ‘부활의 예수, 그리고 고은적 광기를 다 수용할 수 있다(어쩌면 수용해야 한다.)는 참으로 고통스런 이원론에(잠정적으로) 도달해 있다. (779)




김기춘이 만든 조작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서준식의 서한 속에서 지금은 교수가 된 강순전 교수, 당시엔 검사였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등의 이름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생유전, 구치소와 교도소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이 되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1995.1.1. 봉천동 






2012. 감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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