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이민문제 서강학술총서 106
엄한진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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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통합 모델은 영국, 미국, 네덜란드, 독일 모두 어느 정도는 출신 지역의 특수성을 용인하는 것과 달리 이주민의 완전한 문화적 동화에 기초한 것이어서 공화주의 모델로 불리어 왔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로마제국의 경험에서 비롯되어 부침을 거듭해 온 공화주의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의 이해나 공공의 이해를 우선시한다. 둘째, 사회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이해는 전체의 이해에 종속되어야 한다. 셋째, , 제도 및 기관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이 세속적이고 공적인 장치들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것을 사회의 유지 및 발전의 관건으로 간주한다. (48)



1950, 1960년대만 해도 젊고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었떤 마그레브 출신자들은 프랑스 토박이들보다 의료보험, 실업보험, 연금 등 사회보장체계에 더 큰 기여를 했다. 즉 이들은 혜택을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가족합류이민, 경제활동참가율 저하, 생산가능인구 비율의 저하, 실업의 증가 등으로 양상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이민문제 부상과 연관해 중요한 것은 마그레브 출신자들의 경제활동 약화와 높은 실업률이 이들의 프랑스 거주에 대한 정당성을 크게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전후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던 시기 프랑스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노동력으로 인식되어 온 이민자들이 이제 불안정한 고용상황으로 인해 무능력하고 복지에 의존하는 부정적인 존재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고용과 관련되어 악화된 이미지를 더 나쁘게 한 것은 청년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위험하다고 여겨진 이들이 부당한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81)



인종주의 범죄는 크게 경찰에 의한 치안 차원의 범죄와 민간인에 의한 인종주의적 행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경찰은 어떤 범죄의 혐의자가 유색인종일 경우 쉽게 진압봉 등 무력을 사용한다. 이와 관련해 비비오르카는 경찰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의 경우 경찰 분야의 활동방식 자체에 인종주의가 내재해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Wieviorka, 1992:262). 미국은 경찰 분야에 존재하는 제도화된 인종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미국의 흑백 갈등을 폭발시키는 주된 요인은 경찰폭력이며 이는 경찰 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인종주의가 주된 원인이다. 강한 인종차별적인 문화가 존재하며 경찰의 훈련과정에서 인종주의가 계승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60년대까지 미국에서 경찰은 백인만이 채용되었다. 당시 검은 표범과 같은 극단주의 흑인단체가 등장하게 된 배경 중의 하나도 백인이 경찰을 독점하는 상황에 대한 반발이다(엄한진, 2017). 한편 민간인에 의한 인종주의 사건은 크게 인종주의적 행위와 인종주의적 위협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인종주의적 행위는 폭탄테러, 폭행, 방화, 강도, 사람을 겨냥한 총격 등을 포함한다. 인종주의적 위협은 비방의 낙서 또는 유인물 배포, 모독, 경미한 절도 등을 포함한다(82-83).




이주민 사회 구성원 중 적극적인 부분들의 대응 중 눈에 띄는 새로운 점은 이들의 주된 지지자였던 좌파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탈출구를 찾는 것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이슬람과 우파를 들 수 있다. 전자는 주류사회의 종족적 낙인에 종족적, 문화적 구분을 초월하는 종교적 정체성으로 대응한다는 의미가 있따. 후자, 즉 우파를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매개체로 삼는 경향은 그간 비참함을 강조하고 절망적인 측면을 강조한 좌파의 논리를 대신해 성공의 꿈을 심어주는 우파의 논리가 신자유주의적인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설득력을 얻게 된 데 따른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2000년대 초반 프랑스의 대표적인 우파정당이었던 대선승리연합(Union pour la majoritîé présidentielle, UMP)이 이주민 집단의 인사들을 영입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이 이러한 시대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대선승리연합은 유권자가 300만 명인 아랍계의 지지가 절실했고 이러한 맥락에서 이주민 출신 인사를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행정부에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전략을 채택했던 것이다. 게다가 공산당, 사회당 등 좌파와 이민집단의 결별이 낳은 공백은 이제 지자체 수준에서 많은 지역에서 제2의 정치세력이 된 국민전선(FN)이 채우게 되었다. 이주민 사회운동과 그 주체인 지역 활동가들의 불행한 운명은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이 집단이 기댈 제도가 사회에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했다. 지난 1세기 동안 프랑스 민중계급(la classe populaire)’의 정치사회화의 중심에 있었던 공장, 노조, 좌파정당에서 이제 이들의 자리는 없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조건에서 이민 2세들의 탈정치화, 은둔적 경향은 심[[161]]화되었고 그들의 열망은 간헐적으로 자연발생적인 폭동을 통해 분출하거나, 또는 이슬람에의 열정으로 표현되었다. 이제 프랑스 사회에서 낯설지 않게 된 이주민들의 집합행동은 사회운동의 부재, 전망의 부재를 보여주는 징표인 것이다. (161-162)




이와 관련하여 인종주의가 프랑스 사회의 주류에 존재해왔다는 역사적 측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종주의가 대중화, 일상화되기 이전에도, 그리고 극단적인 세력이 아니라 프랑스 사회의 주류에 해당하는 세력 속에 존재해 온 것이다. 프라아스에서 지난 1세기 이상 동안 식민지배를 주도하거나 지지했던 사람들은 군주제의 복귀를 옹호하는 극우주의자들이 아니라 정통 공화주의자들이었다. “ ‘열등한 인종에 대한 우월한 인종의 권리와 의무를 언급한 것은 쥘 페리였다. 1차 대전과 2대전 사이의 간전기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indésirales)이라고 불린 이들에 대한 혐오증을 주도한 이들도 극우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권좌에 올라 이주민들을 특별히 다루는 치안조치와 수백만의 일자리, 정확히 말하자면 700, 즉 전체 프랑스 사회의 일자리 중 1/3에 해당하는 일자리에 민족 선호’(préférence nationale)의 법을 도입해 인종차별을 자행한 것도 극우주의자들이 아니라 공화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었다.

1976년 당시 “150만 명의 이민자만 없다면 150만 실업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던 것도 당시 수상이자 공화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자크 시라크였다. 2년 후 그의 후임자 레이몽 바르 역시 기업들에게 이주민들의 일자리를 프랑스인들에게 주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발언은 프랑스에서 법으로 금지된 고용상의 인종차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프랑스 공산당 역시 1981관용의 한계를 넘어선이주민 노동자들의 가정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일들은 국민전선이 정치적으로 거의 존재감이 없던 시기에 일어난 것이었다. 미테랑의 대통령 당선 이후 사회당 정권에서도 이러한 관행은 계속되었다. 1984년 당시 수상이었던 사회당의 로랑 파비우스는 장 마리 르팽이 옳은 문제 제기를 한다고 두둔했으며 미테랑 대통령 역시 1989관용의 한계를 넘어선이라는 표현을 진지하게 사용했다. (262-263)



프랑스 이주민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이 국가 간 관계가 중요하며 이러한 측면을 이민 논의에 도입해야 한다. 이주민과 토박이의 공존은 이주민 출신 국가와 수용국 간의 공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다문화 현상은 국제이주의 산물이며 국제이주는 국가 간 관계,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질서의 산물이다. 노동이민이나 경제난민은 ㅈ경제질서의 산물이며, 전쟁이나 박해 등에 기인한 일반적인 난민은 정치질서에 기인한다. 또한 이 두 측면은 상호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다문화 현상이 제기하는 문제 역시 근본적으로는 글로벌한 측면 또는 국제적인 측면에서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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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16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고사니즘 앞에서는 공화국의 자랑거리
였던 똘레랑스도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 현실이네요.

공화국의 위선은 이미 베트남 전쟁과
알제리 전쟁을 통해 여실하게 드러나지
않았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