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넷째로, 독서를 할 때는 착한 마음으로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이는 사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어려운 일이다. 흔히 책을 본다는 것은 저자와 독자와의 만남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것은 만남일 뿐 아니라 대결이기도 하다. 어떤 저자라도 완벽하지 않은 이상 잘못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잘못 보기도 하고, 지나칙 비관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악을 정당화시키기도 하고, 인간의 착한 마음을 비웃기도 한다. 만약에 순자가 정신을 차리고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독서한 것이 오히려 순자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책을 많이 본다는 점잖은 사람들 모두가 반드시 인간적으로 훌륭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래서 너의 오빠는 네가 책을 보기 전에 꼭 착한 마음’, 즉 타인과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 따뜻한 동정의 마음, 악을 미워하는 마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돌아가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86)



일본에는 내가 살던 집 근처에 욱시글득시글하던 그 비참한 창녀들이 없었다(대학 시절에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창녀들이 불쌍하다는 소리를 했다가 몇몇 친구들에서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늘 야단만 맞고 울기나 하던 그 조그만 식모아이도, 아침 일찍 학교 가는 길 종로5가 길바닥에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잠자던 소년도, 다방에 들어가면 껌 한 통을 꼭 쥔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며 그것을 사 달라고 졸라 대는 아이도, 신문팔이 아이들도, 구두닦에 아이들도, 그리고 늦은 밤에 버스에서 이미자 노래를 한 가락 부르고는 취객들에게 손을 벌리던 맨발의 계집아이도 나는 나의 조국에서 처음으로 보았던 것이다.

 

생존경쟁에 시달리는 여느 각박한 사회가 그렇듯이, 나의 눈에 조국은 철저히 메말라 있었고 세상은 온통 속물투성이었다. 출세주의와 물질제일주의, 그리고 강자에게는 비굴하게, 약자에게는 용감하게라는 금언에 젊은 학우들의 정신은 썩어 들고 있는 것 같았고, 내가 사랑했던 어느 여학생이 그런 속물이라는 사실에 나는 몹시도 괴로워했다.

 

이런 모든 것들을 나는 신선한 심정으로 슬퍼하였고, 그 슬픔의 신선함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부해지는 것, 즉 감각이 둔해지고 면역이 되는 것, 나아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창녀가 불쌍하다고 하는 놈들을 웃어 버릴 수 있게 될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127)



뜻밖의 사람이 나의 재일동포의 통폐를 꾸짖었다는 충격은 엄청나다. 16년 동안 쌓아 올려 온 내 삶의 의미가 근저로부터 와그르르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다. 비참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조국의 아름다움도 슬픔도 어리석음도 더러움도 모두들 이 양팔에 끌어안고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고 함게 숨을 쉬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한낱 꿈인가? 망상인가? ‘재일동포는 나의 숙명인가? 원죄인가?

 

통폐를 나는 얼마만큼이나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국내 동포들이 지금도 나에게서 쪽발이 냄새를 맡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생겨먹은 대로 재일동포로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통폐를 극복하기 위한, 언제 끝날지 모를 절망적 몸부림을 계속할 것인가? 나의 마음은 오늘, 이렇게도 외롭게 방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마늘 냄새가 난다고 타박, 한국에서는 다꽝 냄새가 난다고 타박! (368)




혁명가의 참된 지성은 언제나 정해진 원칙과 비원칙 사이를 과감하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원칙과 비원칙의 경계선상에서 고달픈 줄타기를 감행하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항상 지성이고자 소망하면서도, 그 지성이 나에게 들이대는 이와 같은 과중한 요구 때문에 눌려 죽을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비비 말라 비뚤어져 간다.

 

비정하고 왜소한 음모가나 관료가, ‘인간에 대한 사랑에 튼튼히 입각하고 싶은 참된 혁명가보다도 사회정의를 이룩하는 과정에 있어서 때로는 훨씬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은 괴로운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사악한 권력과 싸우는 현실에 있어서 때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지적 부정직보다도 지적 정직 쪽이 긴 안목으로 본 인류사에 궁극적으로 훨씬 큰 공헌을 한다고 믿고 싶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 튼튼히 입각하는 자세의 소중함, 정당함을 끝까지 믿고 싶다.

 

역사법칙원칙속에 안주하는 것은 삼류이다.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그리고 그 연후에 자동적으로 도래하게 되어 있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충일을 위해 유능하게 분투하는 것만으로는 이류이다.

 

거기에다 더하여 앞뒤 가리지 않는 테레사적 인간애로부터 받은 신선한 감동은 가슴에 늘 간직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 자신의 소망과 사색과 행동을 인간에 대한 사랑에다가 튼튼히 비끄러매어 두기 위한 실존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일류이다! (501)




참으로 고통스러운 세월! 나는 오랜 세월을 이렇게 흔들리며 살고 있다. 이 고통은 나의 사상이 깊어지고 다듬어지면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인가? 이런 아픔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나의 사상의 알맹이‘OO주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민족에 대한 사랑임을 뚜렷이 자각하면서 시작되었다. ‘OO주의의 우산 밑에서 안온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아픔의 사작 ....... 이리하여 해방의 신’, ‘부활의 예수에 대한 사색이 그랬듯이 이 고은의 민족주의적 광기역시, 그토록 아름다웠고 자족적이었고 완벽했던 나의 신념체계가 실은 초라하게도 나이브했음을 이렇게도 아프게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내가 간직해 왔던 신념체계에 입각하면서도 해방의 신’, ‘부활의 예수, 그리고 고은적 광기를 다 수용할 수 있다(어쩌면 수용해야 한다.)는 참으로 고통스런 이원론에(잠정적으로) 도달해 있다. (779)




김기춘이 만든 조작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서준식의 서한 속에서 지금은 교수가 된 강순전 교수, 당시엔 검사였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등의 이름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생유전, 구치소와 교도소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이 되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1995.1.1. 봉천동 






2012. 감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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