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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주주의 2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25
A. 토크빌 지음, 박지동.임효선 옮김 / 한길사 / 1997년 7월
평점 :
아메리카인들은 그들의 관행(慣行)을 통해서 또 다른 습관을 갖게 되었는 바, 즉 그들의 판단 기준을 그들 자신에게만 고정시키는 습관이 그것이다. 그들은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함에 따라 모든 세상사는 무엇이든지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으며 이해력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쉽게 내린다. (564)
민족과 민족, 시민과 시민을 분리시키는 장벽이 제거되면 될수록,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평등한 법을 적용하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개념으로 향하는 인간의 정신적 경향은(그 자체의 충동에 의한 것이기도 한 것처럼) 더욱더 강화되어 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민주주의 시대에는 창조주에게만 바쳐져야 할 숭배와 혼동될 정도로 삼류의 대리자들에게 존경이 베풀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587)
이와 같이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조상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후손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동시대인으로부터 고립시킨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만 매달리게 하며 마침내는 인간을 완전히 고독한 존재로 가둘 위험을 안고 있다. (669)
이와 같이 공공의 복지에 관심을 갖게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언제나 그들의 상부상조가 요구된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공공업무 중에서 중대한 것을 시민에게 맡기기보다는 사소한 업무를 맡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어떤 업무를 멋있게 처리한다면 단번에 국민으로부터 호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의 사랑과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친 작은 봉사와 눈에 띄지 않는 선행, 습관화된 끊임없는 친절, 그리고 사욕이 없다는 평판의 확립 등이 요구될 것이다. 그런데 지역적인 자유는 시민으로 하여금 자기 이웃과 자기 친척의 애정을 높이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그것이 인간을 분열시키는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영구적으로 단결시키며 동시에 상부상조하게 만든다.(673-674)
아메리카의 설교자들은 끊임없이 지상의 일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며, 그들이 지상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오히려 매우 어려울 지경이다. 회중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항상 종교적인 생각이 자유와 평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오히려 종교의 중요한 목적이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얻는 데 있는지, 아니면 이 세상에서의 번영을 얻는 데 있는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696)
민주국가에서는 어느 정도의 평등은 쉽게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만큼은 달성될 수 없다. 순간순간 그들은 이 평등을 달성할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평등은 그들을 외면한다. 그들은 그 매력을 쳐다볼 수는 있지만, 그것을 향유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이 그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기 전에 죽어버린다.(706)
민주국가의 주민이 그 풍요 속에서도 겪게 되는 이 이상한 우울증이나, 조용하고 편안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을 간혹 사로잡는 인생에 대한 혐오감도 바로 이러한 원인 때문임에 틀림없다. 프랑스에서는 자살자의 수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서는 이 자살은 드물지만, 정신이상이 다른 어ᄄᅠᆫ 곳보다도 많다고 한다. 이것은 같은 종류의 질병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아메리카인들은 아무리 불안할지라도 삶을 끝내는 일은 하지 않는데, 이것은 그들의 종교가 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물질적인 쾌락에 대한 열정이 일반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의지는 저항하지만, 이성은 항복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706-707)
만약 그들에게 대표자를 선출하라든가 개인적인 봉사로써 정부를 지원하라든가 공공업무를 떠맡으라고 요구하게 되면, 그들은 시간이 없다거나 쓸데없는 일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처럼 시시한 즐거움 따위는 더욱 중요한 생활에 종사하는 진지한 사람에게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이기주의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 원리에 대해 품고 있는 관념은 아주 설익은 것이다. 그리고 소위 그들 자신의 업무라는 것을 더 잘 보살피기 위해 그들은 그들의 중요한 업무를 등한시하는데, 이 중요한 업무란 곧 그들이 계속 그들 자신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708)
자기와 대등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인간적으로 대했던 사람이 그 대등한 관계가 끊어지자마자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백안시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온유함은 문명과 교육보다는 조건의 평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다.(735)
아메리카합중국의 입법자들은 형법상의 거의 모든 형벌을 경감함에도 불구하고 강간을 여전히 중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어떠한 범죄도 강간죄만큼 여론에 의해 냉혹하게 처벌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메리카인들은 여자의 명예보다도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없으며, 여자의 독립성을 그 어떤 것보다도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여자의 의지에 반하여 여자로부터 명예나 독립성을 빼앗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리 엄격한 형벌이 내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동일한 범죄가 훨씬 더 가볍게 처벌되고 있으며, 배심원으로부터 그 범죄자에 대한 유죄평결을 얻어내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이것은 정절에 대한 경시의 결과인가? 아니면 여자에 대한 경시의 결과인가? 나는 이것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한 경시에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782)
민주시대의 사람들이 고매한 야심을 못 가지게 되는 주된 원인은 그들의 재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재산을 늘리기 위해 너무 격렬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그들의 재능을 취대한으로 동원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시야를 급속히 제한시킬 수밖에 없고 그들의 영향력 또한 줄어든다. 그들은 더욱더 가난하게 되는데, 어찌 위대해질 수 있겠는가? (812)
사람들이 계속해서 가정적인 이해관계라는 좁은 범위 속에 더욱 폐칩하고 그런 종류의 자극을 추구할 경우, 그들은 궁극적으로는 나라를 뒤흔들지만 나라를 발전시키고 재충전시키는 저들 위대하고 강력한 대중적 정념에 접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우려가 있다. 재산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이동이 잦고 재산에 대한 집착이 갈피를 못 잡고 들떠 있을 경우, 사람들은 새로운 이론은 모두 위험한 것으로, 모든 개혁은 역겨운 고역으로, 모든 사회적인 개선은 혁명으로 향한 징검다리로 간주하는 상태에 이르러서 너무 멀리 몰려갈까 봐서 함께 나아가려 들지 않을 우려가 있다.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과 후손들의 미래의 이해관계를 전혀 내다보지 못한 채 비겁하게도 현재의 쾌락에 몸을 내맡기고, 정말 필요할 때 더 높은 목표를 향한 강인하고 신속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손쉬운 인생의 시류에 따라 흘러가기를 좋아하지 않을까 나는 우려한다. 또한 나는 그들이 그런 작태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자 한다.(832)
이와 같이 사회의 구성원을 자기의 수중에 장악하고서는 그들을 마음대로 다루게 된 후, 그 다음으로 최고의 통치권력은 그 세력을 전체 사회로 확장하게 된다. 통치권력은 사회의 전 표면을 사소하고 획일적이면서도 복잡한 작은 규칙의 그물로 뒤덮고 있어서, 아무리 독창적이고 정력적인 사람일지라도 군중을 초월하여 이 그물을 관통할 수가 없다. 인간의 의지가 분쇄당하지는 않지만, 약화되고 굴절하며 종속적이 된다. 인간이 정부에 의해 행동을 강요당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행동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이러한 권력은 구태어 생존을 파괴하지는 않지만 방해한다. 폭정화하지는 않지만, 국민을 억압하고 생기를 잃게 하며, 우둔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침내 개개 국민은 한 떼의 겁많고 근면한 동물로 전락하게 되며 정부는 그 목자(牧者)가 되는 것이다. (890)
만약 개인적인 권리의 중요성과 존엄성에 대해 충분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때에 이 개인적인 권리가 침해를 받는다면, 이 침해는 권리의 침해를 받은 당사자 개인에게만 국한되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이 개인적인 권리에 대한 침해는 국민의 관습을 심히 타락시킬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를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이러한 종류의 권리에 대한 관념이 끊엄없이 희박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899)
현대 국가는 인간의 조건이 평등화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 평등의 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노예상태와 자유, 지혜와 야만, 번영과 고통 중에서 어느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