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작업 21시간, 흐리멍덩해진 정신에 매일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몽둥이, 쇠파이프가 쏟아졌다. 한국인 선원들은 조선족 선원을 ‘개’라고, 그들의 부인을 ‘암캐’라고 불렀다. 조선족은 온갖 인간적 모멸 속에서 두 달 동안 견디었다.
고통 끝에 조선족 5명은 하선을 결의하지만 선장은 곱게 하선시켜 주지 않았다. ”중국인 선원들이 흉기를 들고 선장을 살해하려 해 강제 하선시킨다.“는 거짓 보고를 하고 사모아의 구류소에 보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장은 그들의 하선으로 인한 조업손실ᄁᆞ지 그들에게 부담시키려 했다. 20만원이라는 중국 돈은 ”자자손손 10대를 갚아도 영원히 못 갚을“ 돈이라 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술을 마셨다. ”술이 들어가니 가슴에 쌓였던 원한이 눈물이 되고 눈물이 악이 되었“으며 마지막 벼랑가에서 조선족 선원들은 죽음을 생각했다. 죽는 마당에 ‘너 죽고 나 죽자’로 막가는 것은 정해진 이치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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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표현은 원래 지존파가 스스로를 향해 사용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남을 향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우리 중의 어느 한 사람도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따위 저열한 표현으로 남을 평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페스카마호 선장과 사관들, 그리고 함부로 사형을 입에 올린 부산지방법원 판사가 조선족 선원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한 일은 있어도 조선족 선원들은 한번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작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이 비뚤어진 무한경쟁의 체제에 길들여져 인간 모멸을 인간 모멸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자신에 다름 아니다. (268-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