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궁금한 과학 이야기 - 세상에 뭐 이런 과학이 다 있어?
콜린 바라스 지음, 이다윤 옮김 / 타임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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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 학사, 고생물학 석사, 과학 커뮤니케이션 전공 등의 이력을 가진 콜린 바라스(Colin Barras)의 책 ‘알수록 궁금한 과학 이야기’. 160여 페이지에 미래과학, 지구과학, 물리과학, 우주과학 등 네 챕터로 이루어진 간결한 책이다.

 

저자는 케빈 베이컨(Kevin Bacon)의 6단계 법칙을 말한다. 우리 모두 여섯 단계 이전의 사회적 단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법칙이다. 여섯 단계만 건너면 미국 대통령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을 논할 때 개별 사실들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과학적 태도는 과학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생각을 갖추는 것이란 말을 할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공룡의 후손인 새란 내용이다. 새는 공룡의 후예가 아니라 대멸종을 이겨낸 공룡이란 말도 있다. 공룡은 지금부터 2억 4000만 년 전 지구상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깃털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새를 새이게 하는 특징은 깃털이 있다는 점이다.)

 

저자 역시 새가 재난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공룡이라 말한다. 물론 닭으로 공룡을 부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DNA의 유통기한은 수만년이다. 공룡 멸종은 6600만년전의 일이다. 악어와 공룡이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새의 유전자를 조작하니 악어와 비슷해졌다.

 

새의 발가락을 마주보지 못하게 배아 발달을 조작하니 공룡 발과 닮은 모습이 되었다. 하버드대학교의 유전학자 조지 처치는 자신의 저서 ‘재생; 어떻게 합성생물학은 자연과 우리를 새롭게 만들었는가’를 미생물의 DNA에 저장하는 완전히 새로운 인쇄 방법을 선보였다. 이는 ‘DNA를 USB처럼 메모리로 쓸 수 있을까?’란 챕터에서 나온 말이다.

 

책을 디지털 형태로 변환한다. 53,400개의 단어와 11장의 사진으로 이뤄진 책을 디지털로 변환하면 용량이 5 메가바이트에 불과하다. 그리고 디지털의 표현 형식인 0과 1을 DNA의 염기와 상응시킨다. DNA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이라는 4개의 염기로 이루어졌다.

 

처치 연구단은 0은 DNA의 염기 A 또는 C로, 1은 G 또는 T로 바꾸어 디지털 정보를 DNA 분자 구조로 만들었다. 자기복제는 DNA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다. DNA 정보를 저장매체로 활용하는 것이 DNA 메모리다. IT 기업들이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정보를 저장할 메모리에 주목한 것이다.

 

DNA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유전학자들은 43만년전 살았던 원시인의 뼈에서 DNA를 추출해 유전정보를 읽어내기까지 했다. ‘알수록 궁금한 과학 이야기’는 모두 물음 형식의 챕터들로 이루어졌다. 내 마음대로 날씨를 맑아지고 흐려지게 할 수 있다고? 운전대 없는 자동차가 더 안전하다고? 화산 폭발로 지구 온난화를 벗어날 수 있다고? 시간이 장소별로 다르게 흐른다고? 별들의 조상님이 아직도 우주에 살아 있다고?처럼.

 

가장 흥미로운 제목은 투명 망토가 지진을 막아줄 거라고?다. 투명 망토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나온 이야기다. 물리학의 힘으로 투명 망토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투명 망토를 이해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보는가를 알아야 한다. 빛은 직진하다가 물체에 부딪히면 튕겨 나온다. 이렇게 튕겨 나온 빛이 눈에 들어오면 우리가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빛을 물체와 만나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 물체쪽으로 직진하는 빛을 붙잡아 빙 돌아가게 한다면? 물체와 마주치지 않은 빛을 움직이던 방향으로 놓아주면 빛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다시 쭉쭉 뻗어나간다. 이렇게 투명 망토가 빛과 물체의 만남을 방해하면 물체를 맞고 튕긴 빛이 우리 눈으로 돌아올 수 없다.

 

우리가 투명 망토 안에 든 물체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투명 망토 안에 들어가면 상대가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저자는 지진파가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을 보지 못하게 하면 지진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투명 망토는 실제 만들어졌다. 2006년 미국 듀크 대학교의 데이비드 스미스 연구단이 만들었다. 마이크로파로부터 작은 원통을 거의 완벽하게 숨긴 것이다. 물론 후에 가시광선으로부터 물체를 숨기는 투명 망토도 만들어졌다. 제한적이고 불완전하고 불편한 것이기는 하지만. 투명 망토를 통해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꿈일까?

 

저자는 지진이 특정 건물을 보지 못하게 하면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이 조성된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지구 전체를 숨기는 투명 망토를 구상한다. 과학자들이 의도하는 것은 혹시 모를 외계 지적 생명체의 무시무시한 위협으로부터 지구 전체를 숨겨버리는 것이다. 지진은 지구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외계 지적 생명체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것과 망토의 형태나 크기 등에서 다를 것이다.

 

망토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시 맨틀 이야기를 하자. 지구 내부는 지각, 맨틀, 고체인 외핵, 액체인 내핵 등의 4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 두꺼운 암석층인 맨틀은 지각 아래의 층들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 있는 것이기에 망토(외투)를 연상하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망토에 더 깊은 의미가 있다니...

 

유튜브에는 투명 망토를 홀로그램에 사용되는 메타물질이라고 규정한 콘텐츠도 있다. 메타물질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로 화학적 성질이 아닌 물질 구조를 통해 물질의 성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비이커에 담긴 물에 비스듬하게 레이저를 쏘면 빛(레이저도 빛이다.)은 바닥쪽으로 꺾인다.

 

그런데 빛이 반대 방향(윗쪽)으로 꺾일 경우 음(陰)의 굴절이라 하고 이런 물질을 메타 물질이라 한다. 빛을 마음대로(원하는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굴절시킬 수 있다면 투명 망토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외계 지적 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소개하기 전에 우선 다른 유명 전문가들의 시각을 알아보자.

 

1) 일본의 물리학자 미치오 가쿠는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만남은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물리학의 법칙에 위배되지는 않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100 ~ 200년 안에 실현될 것."이란 말을 했다.(2010년 4월 출간 ‘불가능은 없다’)

 

2) 영국의 진화생화학자 닉 레인은 약 20억년 전에 일어난 한 세포가 다른 세포를 집어삼키면서 미토콘드리아를 품은 진핵 세포의 합체 사건이 지구 외의 다른 곳에서 되풀이 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에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 역시 매우 희박하는 말을 했다.(2009년 1월 출간 ‘미토콘드리아’)

 

3)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마커스 초운은 "우리가 그렇게 찾았음에도 아직 외계 지적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우리가 우주 최초의 존재여서가 아니라 우리가 우주의 황혼기에 태어난 마지막 생명체이기 때문일 것."이란 말을 했다.(2009년 12월 출간 ‘마법의 용광로’)

 

4) 미국의 천문학자 크리스 임피는 "우리는 40억년 전에 지구에 씨앗을 뿌린 더 우월한 종족의 장난감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2009년 6월 출간 ‘우주 생명 오디세이’) 이제 저자의 말을 소개하자.

 

5)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외계인을 찾아다녀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은 투명 망토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각이다. 나는 마커스 초운의 말에 한 표를 던진다. 물론 닉 레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 견해는 대립한다. 그나저나 지진이 건물을 볼 수 없게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더 생각해 보아아야겠다,(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를 읽어야 할까?)

 

‘화산 폭발로 지구 온난화를 벗어날 수 있다고?‘를 보자. 지구 온난화는 심각한 문제다. “플랜 B로 지구공학적인 방법은 어떨까?”(62 페이지) 플랜 A는 세계 정상들이 내놓는 대안이다. 지구공학은 인위적으로 환경을 변화시켜서라도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의 하나다. 화산재와 비슷한 성분의 먼지를 뿌리는 것이다.

 

인공 화산재가 지구 온도를 상당히 낮춰줄 것이다. 부작용도 있다. 언제 비가 올지 몰라 농사를 망쳐 식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 ’새로운 지질 시대가 시작된다고?‘를 보자. 지구의 시간을 덩어리로 뭉텅뭉텅 나누어 이름을 붙인 지질시대 덕에 우리는 공룡이 언제 살았는지란 질문에 쥐라기 시대라고 답할 수 있다.

 

멸종, 빙하시대 등 지구에 생긴 큰 변화를 기준으로 지질시대를 정의한다. 인류세란 개념이 제안되었다. 인류가 지구에 초래한 커다란 변화를 근거로 한 말이다. 지구 변화가 일시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질학자들은 방사성 물질 수치가 높아진 시점을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의 시작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핵폭탄이 코끼리의 멸종을 막았다고?‘란 챕터를 보자. 핵폭탄이 직접 코끼리의 멸종을 막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 이후 탄소 - 14의 수치가 차츰 낮아졌고 1950년대 이후 매년 공기 중 탄소 - 14의 수치가 특정 값을 갖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DNA 표본의 탄소 수치를 측정해 어떤 연도의 탄소 수치와 같은지 맞춰보기만 하면 표본이 만들어진 연도를 알 수 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의 나이를 알아내 과학 수사에 도움을 준다. 과학 수사뿐 아니라 코끼리 밀렵꾼 수사에 도움을 준다. 우리 몸에 탄소가 있게 되는 것은 우리가 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는 식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는 동물을 먹기 때문이다. 공기를 떠도는 탄소가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대기중 탄소 - 14의 양은 우리 몸속 DNA 사슬 속의 탄소 - 14의 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저자는 상대성이론을 근거로 장소별로 다르게 흐르는 시간에 대해 말하고 시간의 틈 사이로 숨길 수 있는 정보에 대해 말한다. ’알수록 궁금한 과학 이야기‘에서 다루어진 내용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압축적인 글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이 쉬운 분야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신 과학의 흐름을 다루었기 때문이다.(내용 자체와 직접 관계가 있지는 않지만 글자가 작고 제목이 세로로 되어 있어서이기도 하다. 본문 글자 크기도 작지만 앞부분에 실린 핵심 요약 내용 글자 크기는 더 작다.)

 

’외계 건축물이 별들과 지구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고?‘를 보자. 다 아는 비밀 하나를 말해보자. 별들은 규칙적으로 깜빡인다. 그런데 우리 은하 깊숙한 곳에 굉장히 이상한 별이 있다. 반짝이다 멈추다 들쯕날쭉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인 별이다. 변광성은 아니다. 주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밝아졌다가 어두워진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 태비(Tabby)의 별이라 불리는 이 별은 KIC 8462852가 정식 명칭이다.

 

과학자들은 이에 외계 지적 생명체가 건설한 무엇인가가 별빛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솔직히 우주의 일을 설명할 때 외계문명은 마지막까지 아껴두어야 할 비장의 카드라 말한다. 잘 모르겠다고 걸핏하면 외계문명을 꺼내 들면 곤란하다. 감마선 폭발 정도의 재앙이 아니고서야 외계 지적 생명체가 뭐 하러 거대한 구조물을 짓겠는가? 커다란 별을 감쌀 구조물을 만들 만큼 발전한 외계 문명의 존재도 상상하기 어렵다.(146 페이지)

 

2017년 10월 NASA가 태비의 별빛은 자외선이 적외선보다 더 흐릿하다고 밝혔다. 먼지로 인해 별빛이 흐려졌을 때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외계 건축물로 인해 별빛이 흐려진 것이라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손바닥만한 우주선으로 외계인을 찾을 거라고?‘에 호킹의 말이 인용되었다.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천억 개 이상의 은하가 존재하는 우주에 외계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이성적이다.”(147 페이지) 항성인 프록시마 켄타우리 주위를 도는 프록시마 b가 발견되었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알파 센타우리 항성계에 있는 3개의 항성 가운데 하나다.(지구에서 4.3억 광년 떨어짐)

 

우주선이 작은 이유는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화성에 가는 데 8개월이 걸린다. 알파 센타우리까지는 화성까지보다 50만배 멀다.(가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프록시마 b까지 빛으로 4년 조금 더 걸린다.(손바닥만한 우주선으로는 20에서 30년 걸린다.)

 

크고 무겁고 느린 우주선으로 성간 우주 여행은 어림도 없다. 손바닥만한 우주선은 거침 없이 쭉쭉 달려갈 수 있다.(그래서 사람이 탈 수 없다.) 프록시마 b는 11일 정도로 공전 주기가 너무 짧다. 대기 흐름도 적도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이 경우 오존 검출은 매우 어렵다.(오존 검출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증거하는 지표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는 일은 멀게만 느껴진다는 의미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예언한 것이다. 중력파는 시공간의 파동이다. 중력파의 존재가 입증된 것은 2015년 9월 14일이다. 지구에서 14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블랙홀이 서로 충돌하며 생겨난 중력파를 감지해낸 것이다. 물론 이는 원자보다 더 작은 물결이었다.

 

우주과학의 마지막 순서이자 전체의 마지막 순서이기도 한 ’또 다른 우주가 있다고?’는 의미심장하다. 가장 나중에 논할 수 있는, 저 먼 곳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우주는 다중우주론으로 이어진다. 과학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또 다른 과학 책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리라. 하나 하나를 한 권으로 다룬 책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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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의 모 장로교회 목사님께서는 자신의 교회 성도들은 모두 땅만 바라본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그분들이 겸손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안타깝지만 영혼이라도 끌어모아 부동산에 투자해 돈을 버는 데만 온통 집중한다는 의미다. 목사님은 자신이 성도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 하셨다. 우리시대의 불가항력적인 흐름을 말씀하신 것이라 하겠다.

 

목사님의 말씀 중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땅(영토)이 없을 때 하나님을 잘 믿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태에서는 신앙이 죽는다는 의미일 수 있겠다. 목사님은 도시 신학을 전공하신 분이다. 전공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쓰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을 위해서다.

 

어떻든 도시 신학이란 친숙하기도 하고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직접 책을 읽어야겠다. 도시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건축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우선 건축가들의 생각으로부터 단서를 길어 올릴 필요가 있다. 최근 "공대생이니 생태적 실체를 한 번 더 봅니다."라는 말에서 깊은 울림을 경험했다. 시인 이상(李箱)처럼 건축과 관련한 분의 말이다.

 

이상 시인은 김상옥(金相玉; 1890 - 1923) 의사(義士)의 최후를 목격한 친구 구본웅의 영향을 받아 제비라는 이름의 다방을 운영했다.(제비는 김상옥 의사의 별명이었다. 제비처럼 날쌔고 신출귀몰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상 시인에게 비상 충동이 있었다는 점이다.

 

철학자 김영민 교수는 연(鳶)은 자신의 초창기 초월의식의 가장 확실한 지표라는 말을 했다.('신 없는 구원 신 앞의 철학' 171 페이지) 비상(飛翔)도 좋고 초월(超越)도 좋지만 나는 도약(跳躍)할 것이라 말하고 싶다. 우선 이 두통을 떨치고 어디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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街玭.. 街가 거리 가라는 글자인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일 것입니다. 그러면 玭는 어떨까요? 음이 비인가, 빈인가가 먼저 해명되어야 할 듯 합니다. 답은 빈입니다. 구슬 이름 빈이란 글자입니다. 정자 정(亭)자 만큼 거리 가(街)자도 이름에 쓰기에는 독특한 듯 합니다. 그럼 왜 빈(玭)이란 글자를 썼을까요? 빈(玭)을 파자(破字)하면 왕(王) + 비(比)가 되지요. 왕비(王妃)를 의미하는 글자로 쓴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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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서 보낸 하루 라임 틴틴 스쿨 11
김향금 지음 / 라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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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금은 지리학과 국문학 등을 공부한 저자다. ‘경성에서 보낸 하루’는 그가 ‘조선에서 보낸 하루’를 쓴 지 3년만인 2018년 출간한 책으로 일제 강점기의 서울인 경성에 대한 가상 여행을 전제로 쓴 책이다.(‘~에서 보낸 하루’ 시리즈 책은 2019년 ‘가야에서 보낸 하루’까지 이어졌다.) 가상 여행이라 했지만 시간 여행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일행이 경성을 방문한 시기는 1934년 무렵의 어느 봄이다. 1930년대는 우리가 사는 현대 생활의 거대한 뿌리다. 규율, 폭력, 통제 등이 시작된 시점이다. 일행의 여행은 하루 일정의 여행이다. 한 친일파 은행장의 저택에서 시작해 그곳에서 끝나는 여행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여행기인 한편 생활사를 담은 역사책으로 규정했다.

 

일행이 본격 여행에 앞서 들른 곳은 1925년 9월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건설된 경성역이다. 도쿄역이 아닌 루체른 역(스페인의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Santiago Calatrava’가 설계. 루체른역은 1971년 화재로 사라지고 현재는 현대식 역사가 들어섰다.)을 모체로 한 역사(驛舍)다.

 

당시 경부선 시간표에 경성에서 부산 가는 기차에 상행, 부산에서 경성 가는 기차에 하행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일본 본토가 아닌 조선이나 만주에서도 모든 것이 도쿄 중심으로 돌아간 것이다. 도쿄쪽인 부산 방향을 상행으로 삼은 것이다. 원래 경부선은 조선의 전통 도시인 공주와 강경을 지나게 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 공주는 충청도 감영이 있던 중심지였고 강경은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 후기 3대 시장이 설 만큼 교통의 요지였다. 일제는 조선의 전통 도시를 무시하고 대전에 기차역을 세우고 교통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그 뒤 대전역 주변으로 일본인들이 몰려와 잡화상과 여관, 술집을 열고 장사를 했다. 허허벌판이었던 대전은 경부선이 지나게 되면서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경부선과 경의선은 일제의 만주 진출의 발판이었다. 당시 일본은 1872년부터 자국에서 시행하던 좌측통행을 우리나라에도 적용했다. 본문에는 사라진 광화문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총독부 맞은편, 옛날 의정부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붉은 벽돌로 된 경기도청 건물 이야기도 나온다.(서울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인해 경기도에 속한 경성부라는 일개 도시로 격하되었다.)

 

공조(工曹) 자리에는 체신국이, 이조(吏曹) 자리에는 경성법학전문학교가, 호조(戶曹) 자리에는 순사 교습소가 들어섰다는 이야기도 있다. 본문에는 고종 이야기도 나온다. 개혁을 추진했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몰두한 나머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개혁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여러 열강의 간섭 때문에 개혁 추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34 페이지)

 

일제 강점 초기만 해도 조선인들은 북촌, 일본인들은 남촌에 모여 살았다. 이때 북촌과 남촌을 가르는 기준은 청계천이었다. 그러다 1926년 남산 아래의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자리로 옮김에 따라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북촌에 진입했다.(39 페이지)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분이 건축왕 정세권이다.

 

1920년대에 물이나 음식물에 들어 있는 세균에 의해 전염되는 콜레라가 크게 유행했다. 호랑이에게 찢겨 죽는 것 같이 아프다고 해서 호열자(虎列刺)라 불린 이 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천연두, 콜레라, 장티푸스 등은 위생 관념 부족 탓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수도 시설 등 인프라 부족 때문이다. 청계천은 탁계천이라 불릴 정도였다.

 

당시 종로경찰서가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악랄하게 심문한 폭력 통치의 상징이라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식민지 경제수탈의 상징이었다.(71 페이지) 일제 강점기 학교는 규율의 제국이었다.(76 페이지)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차별과 동화라는 모순적인 정책을 펼쳤다. 모두 천황의 신민이라고 하면서도 조선인에게는 참정권이나 자치권을 주지 않고 차별했다.

 

그러면서 조선인에게 일본어와 일본 역사, 일본 지리를 가르치며 일본식 의식주 문화를 퍼뜨리는 동화 정책을 폈다. 일제의 이런 동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이 학교였다.(82 페이지) 1919년 3월 전국적인 민족 저항 운동인 3.1 운동을 계기로 일제는 무력을 동원한 무단통치에서 회유와 이간질을 곁들인 문화통치로 지배 방법을 바꾸었다.

 

악명 높았던 헌병 경찰 제도도 보통 경찰 제도로 바꾸었고 조선인의 신문 간행도 허용했고 무관만 임명하던 조선총독 자리에 문관도 임명할 수 있게 했다. 물론 기만적인 정책이었다. 해방이 될 때까지 조선 총독 자리는 전부 현역 군인이 맡은 것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친일 지식인 양성도 당시 추세였다.(92 페이지)

 

당시 일본인들이 호들갑을 떨며 즐기는 하나미(はなみ; 화견; 花見; 벚꽃놀이)를 위해 경성 시내는 벚나무 천지를 이룰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 경성은 청계천을 경계로 북촌과 남촌으로 선명하게 구별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청계천이 아니라 황금정(지금의 을지로)이 남과 북을 가르는 기준선이었다.(103 페이지)

 

청계천 북쪽을 북촌이라 부른다. 이름은 같지만 조선시대에 지배층이 살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과는 엄연히 다르다.(103, 104 페이지) 일제 강점기의 북촌은 종로를 중심으로 발달한 거리다. YMCA와 한성전기회사, 화신백화점 같은 근대식 건물이 간혹 보이고 넓은 거리에는 전차가 무시로 지나갔다.

 

청계천 남쪽에는 미츠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 조선은행(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경성우편국(중앙우체국 자리, 건물은 철거됨),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전기주식회사, 혼마치호텔 같은 근대식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1926년 조선총독부를 미츠코시백화점 자리에서 광화문통으로 옮긴 뒤 일본인들은 적극적으로 북촌에 진출했다.

 

북촌이 정치, 행정, 교육의 중심지였다면 남촌은 상업과 금융의 중심지였다. 일본은 경성에 반듯반듯한 바둑판 모양의 도로를 만들어 식민 지배를 공고히 했다. 이 과정에서 한양의 골목길은 대부분 사라졌다.(105 페이지) 일제가 들여온 근대 문물과 제도는 일본인과 극소수 상류층의 조선인들만 누릴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력을 강제로 착취당하며 빈곤한 삶을 떠안았다.

 

일제는 1929년, 1940년 대규모 조선박람회를 연이어 열었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박람회 및 공진회를 170여회 열었다.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려는 의도였다. 소설가 박태원의 구보는 갑빠라는 머리 스타일을 했다. 구보는 종로 네거리에서 전차를 타고 종묘, 창경원 앞 대학병원, 경성운동장, 훈련원, 약초정, 본정을 지나 조선은행 앞에서 내렸다.

 

원래 구보는 경성의학전문학교에서 해부학을 담당하던 일본인 교수 이름이었다.(114 페이지) 해부학 교실에서 실험용 해골이 사라지자 조선인은 해부학 실험 대상이라는 망언을 한 사람이다. 보통학교 시절 학교에 약을 가져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박태원을 누군가 그 일본인 이름에 빗대어 어이, 구보 박사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어 별명이 되었다. 박태원은 이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 별명을 구보라 칭했을 정도였다.

 

일제는 순종이 죽자마자 종묘 관통 도로 건설에 착수했다. 조선 왕실의 사당인 종묘를 공원화하려는 속셈을 대놓고 드러낸 것이다. 광화문에서 안국동을 거쳐 돈화문을 지나 종묘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해 창덕궁, 창경궁, 종묘를 강제 분리시켰다.(119 페이지) 일제 강점기가 되면서 북촌의 상징인 종로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1926년에 조선 총독부가 광화문통에 자리 잡은 뒤 조금씩 바뀌었다. 1930년대 들어서서 은행, 회사 등 3, 4층의 근대식 건물들이 세워지고 조선인이 운영하는 백화점도 문을 열었다.(123 페이지) 본문에는 제비다방이 나온다. 시인 이상이 운영하던 다방이다. 이상이 기생 출신 '금홍'을 마담으로 앉히고 1933년부터 중구 다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인 1935년까지 운영한 다방이다.

 

종각역 1번 출구로 나와 걸어가면 만나는 농협 인근인 종로1가 33번지에 위치했던 다방으로 벽에 이상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1931년 일제 강점기에 개최된 미술 공모전인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입상한 그림이다. 이상 시인과 신명소학교 동기동창생인 구본웅의 막내 아들 구순모씨가 자신의 큰형 구환모씨가 아버지를 따라 몇 번 다방에 간 뒤 자신에게 이곳이라며 손으로 가리켜 보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인사동에 카페 쓰루(つる; 鶴)를 세우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제비는 의열단원 김상옥(金相玉; 1889 - 1923)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제비처럼 날렵하고 신출귀몰 했기에 붙은 이름이다. 제비다방이란 이름은 구본웅이 이런 글을 남긴 데서 비롯되었다. “아침 7시, 제비 길을 떠났더이다. 새봄 되오니 제비시여 넋이라도 오소서.”.. 1933년 이상이 폐결핵에 걸려 총독부 건축 기사 일을 그만두고 황해도 백천 온천으로 요양 갈 때 함께 한 친구가 구본웅이다.

 

구본웅은 열일곱 살 때 학교에 가다가 우연히 의열단원인 김상옥의 최후를 목격했다. 독립운동 탄압의 총본부라 할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제 경찰들과 대치하다 자결한 분이다.(마로니에 공원에 동상이 있다.) 박태원과 이상은 이태준, 이효석 등과 함께 순수문학 단체인 구인회에 몸 담았었다.

 

본문에는 서대문형무소 이야기도 나온다. 1930년대 경성 트로이카라는 지하혁명 조직을 이끌며 일제에 저항한 사회주의 운동가 이재유(李載裕; 1905 - 1944)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남북한 모두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분이다. 독립 운동가 일송 김동삼(金東三; 1878 - 1937) 선생 이야기도 그렇다. 만주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끈 분으로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세운 분이다.

 

3.1 독립운동 기념터인 선은전 광장 이야기를 보자. 선은전(鮮銀前)이란 조선은행 앞이라는 의미다. 명동역 5번 출구 한국은행 앞 인도 오른쪽이다. 광장 가는 길에 조선호텔이 있다. 일제가 철도 호텔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원구단을 철거하고 세운 호텔이다. 경복궁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세우고, 창경궁에 동물원을 세운 일제는 같은 방식으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건축물인 원구단 자리에 서양식 호텔을 세운 것이다.

 

원구단이 자리한 곳은 소공동이다. 소공로는 조선 태종의 둘째 공주인 경정 공주가 살던 궁이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이 거리 이름이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사령관이었고 1916년 제2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1850 - 1924)가 살았다 해서 하세가와마치로 불리기도 했다.(166 페이지)

 

당시 북촌에는 조선인이 세운 화신백화점이 있었고 남촌에는 미츠코시백화점을 비롯 네 개의 백화점이 있었다. 미츠코시 백화점 옥상(정원)은 시인 이상이 날개가 돋기를 꿈꾸었던 장소다. 장충단은 을미사변 때 피살된 시위연대장 홍계훈과 궁내부대신 이경직 등을 추모하기 위해 새운 제단이다. 일제는 장충단을 공원으로 만들어버렸다.(175 페이지)

 

일제는 남산에 조선신궁, 경성신사, 박문사를 지었다. 박문사(博文寺)는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기리는 절이다. 박문사의 박문은 이등박문(伊藤博文; いとうひろぶみ)의 박문이다. 일제는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떼어다 이름까지 경춘문이라 바꾸어 박문사의 정문으로 삼았다.

 

혼부라(ほんぶら)란 말이 있다. 현재의 충무로인 본정(本町) 즉 혼마치를 어슬렁어슬렁 걷는 것(플라뇌르에 해당?)을 말한다. 동경의 긴자 거리를 헤매는 것인 긴부라에서 따온 말이다. 원래 이곳은 진고개라 불린 곳이다. 지금의 중국 대사관 뒤편의 충무로 2가 언덕길이다. 혼부라를 하던 남녀들을 모던 보이, 모던 걸이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에 세 명의 왕이 있었다. 박흥식은 화신백화점 사업으로, 정세권은 북촌의 대단위 한옥 단지 사업으로, 최창학은 삼성 금광 사업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당시는 황금광 시대였다.

 

여행은 정동을 거쳐 경성역에서 끝난다. 이 여행은 전작인 ‘조선에서 보낸 하루’에서 한양 여행을 한 지 141년이 지난 시점인 1934년에 감행한 하루 여행이다. 일본 제국은 1868년부터 1945년까지 존재했던 일본의 제국주의 국가다. 1868년은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단행한 해이다.

 

경성은 상업 도시이자 소비 도시였다. 당시 경성의 외국인 비중은 30%에 달했다. 당시 북촌에는 가로등이 없었다. 남촌은 불야성을 이루었었다. 여행은 설레지만 경성 여행은 역사적 무게 때문에라도 그리 편한 여행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경성에서 보낸 하루’는 230여 페이지 정도고 활자도 큰 데다가 삽화나 사진의 비중이 크지만 참고 문헌의 수가 많은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꽤 알찬 책이다. 전작인 ‘조선에서 보낸 하루’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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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교리는 튤립 교리를 근간(根幹)으로 한다. 꽃의 하나인 튤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나는 튤립 교리가 인간의 속성에 모두 들어맞지는 않지만 장로교회 뿐 아니라 기독교인 일반의 속성에 대체로 맞는다고 생각한다. 전적 타락은 장로교의 출발점으로 에덴동산에서의 불순종으로 빚어진 결과를 의미한다.)

 

1) 전적인 타락, 2) 하나님의 무조건적 성도 선택, 3) 제한 속죄, 4) 저항할 수 없는 은혜, 5) 성도의 견인 등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들의 머릿 글자들을 따서 TULIP이라 부르는 것이다. Total Deprevity(전적 타락), Unconditional Election(무조건적 선택), Limited atonement(제한적 속죄), Irresistible grace(저항할 수 없는 은혜), Perseverance of the saints(성도의 견인) 등이다.

 

나는 I 하나를 추가해 TULIIP 교리를 말하고 싶다. 그것은 Irrational Exuberance(비이성적 과열)이다. 코로나 확산 사태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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